[명문대 총장의 조언] 한국외국어대 박철 총장이 들려주는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교육’ 글·이남희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한국외국어대(이하 외대)의 졸업생들은 흔히 ‘민들레’에 비유된다. 영어·중국어 등의 주요 언어를 비롯해 39개 외국어를 습득한 졸업생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인재의 산실’ 외대에 최근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2월 박철 총장(58)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총장인 그는 ‘7+1’ 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이 한 학기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학제도를 크게 개선, 기회의 폭을 넓혔다. 뿐만 아니라 2006학년도 신입생부터 두 개 이상의 외국어를 습득하고, 전공도 두 개씩 이수하도록 했다. 한국의 세계화에 기여해온 외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박 총장의 포부다. “과거에는 학생이 외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거나 연수를 떠날 때 자비를 들였지만, 이제는 ‘7+1’ 제도를 통해 상당수의 학생들이 한 학기는 학교의 지원을 받아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지난 2학기에 이 제도가 시행돼 1차로 2백 명을 선발했어요. 연 4백 명을 해외로 보내는 것을 기본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의무적으로 ?! ? 개의 전공을 이수하도록 하고, 비어문계열의 학생도 영어뿐 아니라 제2외국어를 공부하도록 했어요. 전공을 두 개 하려면 각 54학점씩 1백8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흔쾌히 이 제도를 받아들였습니다. 공부에 목마른 요즘 학생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죠.” 최근 경영학과 출신 총장이 대세를 이루는 것과 달리, 박 총장은 85년부터 외대 스페인어과 교수로 재직한 인문학자다. 그는 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국립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4년 국내 처음으로 소설 ‘돈키호테’를 완역 출간하기도 했다. “인문학을 전공한 학자가 대학을 경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지 않냐”는 질문에 박 총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외대는 다른 대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외국어 관련 전공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랍어·베트남어·말레이어·인도네시아어 등은 물론 스칸디나비아어나 아프리카어, 유고·폴란드·체코·헝가리·루마니아어 등 동유럽 5개 국어 등 현재 39개 언어를 가르치고 있죠. 이들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해외교류 확대에 이바지하는 프런티어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외국어를 연구했기에! 이러한 외대의 특성을 살리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외대는 캠퍼스별로 특성화된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 서울 캠퍼스에서는 외국어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며,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에 위치한 용인 캠퍼스에는 인문대, 경상대, 자연대, 공대 등이 들어서 있다. 박 총장은 현재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제3의 캠퍼스를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만 평의 터에 통·번역센터, 외국어·외국학 전문센터 등을 세워 서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익힐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 박 총장은 “세곡동 일대는 아직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서울시와 논의하고 있는데 곧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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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총장은 무려 7개월 동안 이어진 직원노조 파업을 종결시킨 ‘원칙주의자’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대학 노조 중에서도 최강성으로 알려진 외대 직원노조는 직원 인사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2백15일간 파업을 했으나 지난해 11월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이 사태가 종결된 데는 “어떤 경우든 원칙을 지키겠다”며 노조와 타협하지 않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한 박 총장의 집념이 있었다. “저는 평교수 시절에도 일단 학점을 주면 고쳐주지 않았을 정도로 원칙주의자입니다. 대학은 원칙을 가르치는 곳이므로, 원칙을 지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죠. 파업이 길어지면서 특히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은 게 사실입니다. 학생들은 노조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직원들도 개혁에 동참하라’며 1백 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어요. 파업 종결은 학교의 개혁 의지에 공감한 학생·동문·교수 모두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파업 사태를 5대 명문 사학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계기로 삼고, 외대를 학생을 감동시키는 대학으로 만들 겁니다.”
아이에게 알파벳부터 주입식으로 가르치기보다 재밌는 동화 읽어주며 영어에 대한 흥미 유발해야 외대는 요즘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표방하는 국제화·세계화 열풍의 진원지로 손꼽힌다. 54년 ‘국제관계의 전문 실무자 양성’이란 교육목표를 갖고 설립된 외대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외교관, 기업인 등 수많은 글로벌 인재를 배출했다. 외국인 교수의 비율이 3분의 1을 넘고, 원어 강의의 비중이 높은 것도 외대 교육의 강점 중 하나다. 지난해 7월에는 ‘브릭스(Brics·2000년대를 전후해 빠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경제 4국을 일컬음)’ 특성화 우수대학으로 지정돼 5년간 23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박 총장은 “국제 사회에 진출하려면 외대 졸업생이 최고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며 ‘글로벌 리더’의 요건을 들려줬다. “글로벌 인재란 다른 나라의 언어는 물론 정치·경제·역사·문화 등 다양한 분야까지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스페인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거죠. 신기하게도 외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하는 사람은 정말 아랍 사람 같은 느낌이 들고, 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태국 사람과 비슷한 매너를 갖고 있더군요. 이는 외대생들이 얼마나 전공어와 해당 나라의 문화에 심취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단순히 어학 실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국제적 감각과 소양을 갖춘 ‘글로벌 인재’을 길러내는 것이 외대의 교육목표입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살아남는 길 가운데 하나는 우수한 인재를 해외로 진출시켜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대·법대로만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현상을 그는 안타깝게 바라본다. 박 총장은 “외대가 원하는 인재상은 바로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세계는 넓어요. 뜻이 있고 진취적인 젊은이라면 국내에서만 승부를 볼 생각을 하지 말고, 아프리카와 같은 ‘미지의 대륙’으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현재 개발붐이 일고 있는 동유럽이나 인도 등지에 가서 새로운 사업을 벌여 변화를 주도해야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모험정신이 없다면, 더 이상의 발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 총장은 한국외국어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정·검인정 스페인어 교과서 20종을 집필할 만큼 외국어 교육의 권위자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열린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외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을까. 박 총장은 “어린아이들에게 알파벳부터 주입식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먼저 재미있는 동화를 읽어주며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교육을 시작한 것은 글로벌화 추세에 걸맞을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여러 언어를 가르치면 혼란을 겪기 쉽다고 하는 데, 인간은 어릴 때 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고 있어요. 모국어는 실제 잘 잊어버리지 않고요. 외국어를 배울 때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어려운데, 어린 시절 외국어를 배우면 듣기에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칠 때는 아침인사법이나 문화부터 재미있게 알려주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를 가르친다면, 아이에게 스페인 음식이나 투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스페인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좋겠죠. 철자부터 외우도록 시키면, 아이들은 금방 언어를 배우는 데 싫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해외 여러 나라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세계를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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