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女眞一萬則天下不敢當”, 12세기 阿骨打의 金 건국 이후 두각
ㅇ 建州, 海西, 野人女眞의 세 갈래
ㅇ 明은 역사적 교훈에 따라 여진을 분할지배 시도→ “非太强非太弱”
ㅇ 경제권을 장악하여 통제 시도, 300명의 유력자에게 勅書 내림
ㅇ 누르하치는 建州左衛 수장의 子, 부친 타쿠시(塔克世), 성은 愛新覺羅(아이신 교로), 李成梁의 가신
ㅇ 이성량은 1571년 寧遠伯으로 왕고(王杲)의 반란 진압, 왕고 하다(哈達)로 망명, 하다는 그를 명에 인도, 왕고의 아들 아타이(阿台)는 복수 시도
ㅇ 1583년 이성량 하다를 도와 아타이 공격, 이때 누르하치의 父祖 사망→ ‘七大恨’
ㅇ 피 값으로 교역권 장악, 경제적 기반 마련, 명은 그에게 左都督龍虎將軍 하사
2. 누르하치의 거병과 조선
ㅇ 1583년 이후 누르하치 거병, 1589년 建州女眞 통일, 1593년 海西女眞 격파
ㅇ ‘債帥’ 이성량의 방조, 임진왜란 이후 1613년까지 海西女眞 葉赫만 빼고 장악
ㅇ 1615년 八旗制, 1616년 大金 건국, 可汗 즉위
ㅇ 명은 교역 정지로 견제, 누르하치는 개간 등을 통해 농업국으로 변신 시도
ㅇ 1618년 명에 선전포고하고 푸순(撫順) 장악
ㅇ 명은 정벌 시도하며 조선에도 동참 요구→ 光海君의 대응
3. 인조반정과 丁卯胡亂
1) 정묘호란의 발생
ㅇ 기존의 설명: 仁祖정권의 崇明排金
ㅇ 실질적인 원인
* 후금의 경제적 위기 ←饑饉과 人相食, 對明貿易의 중단, 생필품 부족
* 毛文龍 제거: 위기 상황에 노동력은 자꾸 유출
* 紅泰豕 왕권 강화의 필요성
2) 조선의 대응과 兄弟關係
ㅇ 仁祖反正, 「李适 반란」, 譏察, 그리고 安州城 전투
ㅇ 무책임한 반정공신들, 軍官 문제
ㅇ 세폐로 무명 1만 5천 필 제공
ㅇ 尹煌의 인조 비판
二. 병자호란의 발발과 결과
1. 정묘호란 이후의 관계 악화
ㅇ 무역과 歲幣를 둘러싼 갈등
ㅇ 모문룡 문제의 심각성: 淸北의 領土主權 상실, 후금과의 관계 악화
ㅇ 멸망으로 치닫는 명, 그리고 後金의 함선과 紅夷砲 획득(1633)
* 1630년대 이후 조선 수군을 둘러싼 명과 후금의 신경전
* 孔有德 등의 귀순→ 水軍 확보→ 戰力 강화→ 稱帝建元으로 가는 후금
2. 병자호란 일어나다
ㅇ 홍태시, 稱帝建元1636)→ 滿蒙漢을 아우르는 제국 등장
ㅇ 조선 동참 요구와 斥和-主和의 격렬한 대립
ㅇ 인조의 主戰敎書, 용골대 일행에게 강탈되다
ㅇ 崔鳴吉의 마지막 계책
ㅇ 청군의 질주와 조선의 방어태세 난맥상
* 山城 중심 방어의 허점
* 烽火를 무시한 도원수 김자점과 지휘관들
ㅇ 인조, 남한산성 농성
* 여전한 주화-척화의 논쟁
* 김경징과 강화도
3. 三田渡의 치욕과 교훈
ㅇ 무조건 항복이 불러온 참상
* “왕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포로들의 절규
* 贖還, 그리고 슬픔, 에피소드
* “이 가련한 여인들을 어찌할 것인가?”→ 환향녀의 문제
ㅇ 병자호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병자호란 주요 일지
* 1636년 12월 13일: 적군 安州로 도달
* 14일: 적군은 개성으로 들이닥쳤고 조정과 백성들은 혼란에 빠졌다. 같은 날 저녁 崔鳴吉을 적진에 보내어 강화를 청하려고 하는 한편 왕은 수구문을 나가 남한산성에 도착. 영의정 김류는 다시 강화도로 옮길 것을 주장했으나 눈보라가 극심하여 결국 포기하였다.
* 15일: 적은 왕의 동생 등을 인질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 16일: 왕은 밀서를 보내어 여러 도에 근왕병을 호소하다.
* 17일: 왕은 울면서 척화파를 원망하고 영의정에게 적을 만나 전날의 ‘과오’를 사죄하라고 지시하다. 적이 삼남으로 통하는 길을 판교에서 차단하다
* 19일: 적이 남성으로 접근하자 아군이 화포 발사하여 격퇴하다
* 20일: 청의 태종이 개성에 도착하다
* 26일: 강원도의 장수가 병졸을 거느리고 왔다가 검단산에서 패배하다
* 27일: 사람을 시켜 적진에 술과 고기를 가져가다. 적장은 말하기를 ‘굶주린 너희나 먹어라’고 하다
* 28일: 최명길이 다시 화의를 시도하자고 청하다
* 1637년 1월 1일: 청 태종이 탄천에 진을 치다. 적병이 30만이라는 소식이 오다
* 3일: 척화냐 화의냐를 놓고 다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다
* 9일: 김상헌이 적에게 사신을 보내면 안 된다고 강조하다
* 14일: 날씨가 추워 얼어죽는 군사가 출현하다
* 15일: 구원병이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오다
* 16일: 무조건 항복 문제를 논의하다
* 18일: 최명길이 작성한 국서를 김상헌이 찢다
* 19일: 적 포탄이 날아와 맞아죽는 자가 발생
* 20일: 척화파들을 묶어 보내라는 요구가 들어오다
* 22일: 강화도 함락되다
왕은 세자를 보내 항복하려 했으나 적은 왕이 직접 나오라고 재촉하다
* 28일: 청이 항복조건을 제시하다
김상헌과 정온이 자결을 시도하다
* 29일: 洪翼漢, 尹集, 吳達濟를 적진에 잡아 보내다
* 30일: 인조 항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