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만민’으로 인도하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간증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1999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TV를 보는데 만민중앙교회가 나왔습니다.
M방송의 시사프로였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정말 충만했습니다.
“워~ 아니, 뭐 저런 교회가 다 있어? 참 대단한 교회네.”
이것이 만민교회와 저의 첫 대면이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알던 지인이 아주 조심스럽게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방송에 나온 목사님 말이지... 제대로 된 분인 것 같아.
성령께서 분명히 ‘어찌하여 내 종을 함부로 판단하느냐!’ 라고 말씀해 주셨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하고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어"
지인의 말을 들었을 때, 신기하게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이 그대로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만민중앙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둘러봤습니다.
“아니, 이런 교회가 있다니! 참 대단한 교회네!”
방송에 왜 그렇게 나왔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었지만,
만민중앙교회는 바른 교회이고, 이재록 목사님은 능력이 많은 목사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우리 교회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기관식구들과 함께 (2가나안 선교회)

사실 저는 그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했습니다.
훌륭한 목사님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말씀을 들어보고 찾아가고 했지요.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 방송과 지인을 통해 우리 교회와 목자님을 연결시켜 주신 것입니다.
참된 교회와 참된 목자를 만나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200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조지아텍(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건축과에 입학했지요.
유학 중에도 계속 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2004년 잠시 귀국했는데, 꼭 한번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마지막 2주연속특별부흥성회가 진행 중이었지요. 단 하루였지만 성회에 참석하고 단물도 마셨습니다.
‘이 좋은걸 이제야 맛보다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무안단물이구나!’
당시 저의 왼쪽 눈에 문제가 조금 있었습니다.
낫기를 소원하는 내용을 헌금봉투에 적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당장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얼마 후 통증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지요.
완전히 치료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후로 꽤 오랫동안 통증 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2005년 여름,
‘인터넷으로라도 등록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등록했고 정식으로 만민의 양떼가 되었지요.
그 후로도 틈틈이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말씀을 듣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우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2006년 7월 뉴욕에서 성회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뉴욕으로 가려면 버스로 약 20시간이나 걸립니다.
그럼에도 ‘꼭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본 교회에 전화를 걸어 참석 문의를 하던 중, 통역 봉사 제의를 받았습니다.

사진) 당회장님 안수기도 모습
그래서 뉴욕성회 시 음향을 담당하신 방송실의 장헌영 집사님의 통역을 맡았지요.
그곳에서 당회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기도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서 뵙기는 처음이었지요.
당회장님은 제 말에 “예? 예?” 하시며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저 같은 평범한 성도의 말도 귀 기울여 들으려 하시는 당회장님의 마음 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진) 미국 뉴욕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뉴욕연합대성회 (간증장면)
직접 참석한 뉴욕성회는 특히 2가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첫째는, 권능입니다.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보기는 처음이었지요. 각종 질병을 치료받고 눈물 흘리며 간증하는 모습들, 특히 휠체어와 지팡이를 버리고 기뻐하는 모습들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강사님들의 집회에도 참석해 보았지만, 뉴욕성회처럼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치료받는 폭발적인 역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사랑이었습니다.
사실 거짓소문만 듣고 오해하여 성회를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회 중에도 밖에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했지요. 이런 경우 보통 다른 목회자들은 강력대응을 합니다.
그런데 당회장님은 전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만을 잠잠히 바라보셨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주 안에서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참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고 깨닫기를 원합니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저를 훼방하고 핍박했던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슬프거나 힘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며,
원수까지도 사랑으로 오래 참고 오히려 눈물의 간구를 드리신 주님의 모습을 너무나도 닮으신 목자님을 통해,
저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과 참사랑이 진정 무엇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저의 뉴욕성회 자원봉사를 기쁘게 받으셨나봅니다.
졸업 후 저의 진로를 아주 형통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2007년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당회장님께 기도 요청 편지를 드렸습니다.
미국에서 외국인이 좋은 회사에 취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애틀랜타 최대 건축설계회사인 SRSS(Smallwood, Reynolds, Stewart, Stewart & Association, Inc.)에 지원했습니다. 인터뷰 당일 바로 취업이 확정됐고, 연봉도 제가 원하던 액수를 제시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사진) 회사에서 근무하는 모습
미국에서 외국인이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도 어려운데, 저는 졸업 전에 좋은 회사로 취업이 확정됐으니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기쁜 마음으로 당회장님께 감사서신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저와 같은 외국인이 취업을 하려면 EAD(Employment Authorization Card)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신청에서 발급까지 통상 10주에서 12주가 걸리지요.
첫 출근 날짜는 9월 4일인데, 저는 제때 신청하지 못하고 6월말에야 신청을 했습니다.
약 9주밖에 남지 않아 사실상 이미 늦은 상황이었지요.
저의 EAD를 가지고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100%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믿는 것이 있었지요. 저는 당회장님께 기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단 4주 만에 발급이 되었습니다. 최소 10주는 걸릴 일이 겨우 4주 만에 해결되었지요.
카드를 발급해 주는 담당자는
‘It is very unusual that you received your card that soon'
이라 말했습니다.

사진) EAD 카드
2008년 5월에도 만민의 양떼로서 또 다른 혜택을 받았습니다.
외국인이 미국에서 일하려면 H1-B(워킹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이 비자는 추첨식으로 발급됩니다. 외국인 근로자가 이 비자를 받지 못하면 회사를 정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지요. 따라서 사람들은 비자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동안 매우 초조해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회장님께 기도 부탁을 드렸기에 평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지요.
당회장님께서는 은사집회 시 단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해 주셨고, 저는 워킹 비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2009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얼마 후 시작된 전반기 특별다니엘철야에 참석했습니다.
놀랍게도 시상식 날 제 이름이 불렸습니다.
수천 명 중 단 100명만 상을 받았는데, 저도 뽑힌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를 격려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단에서 상을 받아서 자리로 돌아가려고 복도를 걸어갈 때였습니다.
세상에! 자리에 앉아 계시던 당회장님께서 일어나셔서 몸을 숙이면서 손을 내미시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장명준, 축하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또 얼마나 감사하고 송구스러웠는지요.
저는 목자를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그냥 은혜만 받은 성도인데 그렇게 대해 주시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릴 때면 항상 눈물이 어립니다.
‘목자님을 위해서 기도 해드려야지, 변화되어야지.’ 다짐할 뿐입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큰 교회를 여러 군데 다녀보았지만, 정말 세상에 이런 목사님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한자기 소원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유학시절을 마친 후,
취업하고 제 개인 방을 갖게 되었을 때에 방을 꾸미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하물며 ‘아버지의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 경제적으로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할때 모습

사진) 취업 후 개인방을 갖게되며..
미국까지 유학 가서 공부한 제 전공(건축)이 아버지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무엇보다, 선하고 지혜로운 일꾼, 깨끗한 그릇이 되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자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림북 성도 간증 수기 응모전 '나는 만민입니다' 특별상 수상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