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각 종파의 수지는 반드시 「행기해절行起解絶」에 이르러야 실익이 있다.
나는 여기서 기起 한 글자의 뜻은 극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행에 힘써 극처極處에 이르기만 하면 「능소能所」가 함께 문득 사라지고 일심이 철저히 드러난다. 수행공부가 극처에 이르지 못하면 비록 (부처님 형상을) 관념觀念할 수 있을지라도 오히려 여전히 능能이 있고 소所가 있어 전체가 범정용사(범부의 망령된 정서로 일을 처리함)이고, 전체가 지견분별이며, 전체가 알음알이(知解)이니, 어떻게 진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오직 수행에 힘을 써 극처에 이르러야 능소와 범정지견이 사라지고, 본유진심이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고대에는 「죽운 목각인형(死木頭人)」과 같은 대덕이 있어 나중에 과위를 증득하고 도풍道風이 고상하여 고금에 빛났다. 그 이익은 「극極」 한 글자에 있다!
【보충】 행기해절行起解絶에서 “기起”는 어떻게 해석하는가?
일반 염불인은 어떤 폐단이 있는가?
「기起」. 한 글자의 뜻은 「극極」이 되어야 한다.
오직 수행에 힘써 극처에 이르러야 그 진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정토법문은 신원행 삼법으로 종宗을 삼는다. 정토는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갖추어야 성실한 행이 있다. 행이 지극하면 일심을 얻을 수 있다.
말법중생은 마치 쌓아올린 장작 위에 편안히 누워 있는 것만 같다. 그 아래 이미 사나운 불길이 일어났지만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리 큰 재난이 닥쳐도 곧 성실할 수 있고, 아무 일이 없는 듯 잘 지내면서 곧 느긋할 수 있다.
이것이 범부의 병통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세상의 정세는 마치 쌓아올린 장작 위에 편안히 누워 있는 것과 같다. 그 아래 이미 사나운 불길이 일어났지만 그의 몸에는 이르지 않았고, 눈 깜짝할 사이 불이 세차게 타올라 온 세계에 도피할 곳이 없다.
아직도 허송세월을 보내며 전심으로 뜻을 두어 한 마디 부처님 명호에 구원을 청하지 않아, 그 지견은 지극히 얕다.
불교 각 종파의 수지는 반드시 「행기해절行起解絶」에 이르러야 실익이 있다.
정종의 수관修觀도 그러할 뿐만 아니라 선종도 해석할 수 없는 화두를 마음속에 두고 본명원진本命元辰으로 삼아 시간 날짜를 헤아리지 않고 늘 참구하여야 한다.
몸과 마음, 세계를 모두 알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확철대오할 수 있으니, 행기해절行起解絶이 아니겠는가? 육조대사께서는 《금강경》만 간看하고 곧 명심견성하였다고 하니, 행기해절이 아니겠는가? ㅡ《인광대사문초》
【보충】 인해기행因解起解行 행기해절行起解絶에서 ‘행기해절行起解絶’ 문구의 뜻은?
수행자는 마땅히 교리로부터 깊이 들어가 제법의 실의를 올바로 깨닫고 나서 교리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인해기행」이라 한다.
이는 정당하게 수행하는 사이 행문 가운데 해물이 있고, 해문 가운데 행문이 있어 당하當下에 중도실의 中道實義가 드러나니, 수행 가운데 달리 신해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왜 그러한가? 해로 인해 행이 있고(因解有行), 해로 말미암아 행이 있으니(行由解有), 해를 여의고 달리 행이 있어 얻을 수 있음도 아니고, 또한 행을 여의고 달리 해가 있어 얻을 수 있음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가 곧 둘이고, 둘이 곧 하나이며, 하나는 둘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까닭이다. ㅡ《불학문답佛學問答》 여본 법사 강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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