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이야기의 추가로,
검색만 하면 다 찾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고 나도 여기 저기 줏어 읽고 현지 가이드의 한결 같은 설명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로마 교황청의 시스티나 예배당(혹은 소성당)은 의전을 담당하는 장소로 교황이 미사를 진행하기도 하는 중요한 장소이며
지금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할 때 열리는 콘클라베가 열리기도 하는 곳이다.
이 곳 천장에 미켈란젤로 '천지창조'가 그려지고 (1512년) 21년이 지난 후 시작은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주문했지만 시작도 못보고 1년만에 죽는 바람에 차기 교황 바오르 3세에 의해 다시 주문, 그려지기 시작해서(1536년) 5년 후 1541년 완성된 그림이
'최후의 심판'이다.
하나는 그가 40대에, 또 하나는 60대의 시간이기도 하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왜 그를 복수의 화신, 복수의 끝판왕이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완성된 그림을 공개를 하자마자 한결 같이 " 목욕탕인가 .... 발가 벗었네" .
등장 인물들이 모두 나체상태이기 때문.
그래도 속으로만 그리 생각할 뿐 감히 이 위대한 천재 미술가( 회화 조각 건축)에게 대놓고 말 못하는 분위기였다.
허지만 무리들 중에는 반드시 튀는자나 시기 질투의 성정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
작업을 할 때 부터 문제만 제기하든 사람들 중에 특히 교황의 의전을 담당하는 비아조 다 체세나( 체세나 출신의 비아조) 추기경.
그의 혹평은 ' 술집이나 매춘굴에서나 어울리는 그림이다'
이를 들은 미켈란젤로 그는 첨 부터 예사 성질이 아니다. 친구 그림을 혹평하다가 코뼈가 내려 앉을 만큼 그 시대에 어울리지 못하는 잣대가 분명하다.
그 비아조를 그림의 우측하단에 지옥의 사신(그리스 신화)인 미노스의 몸체에 얼굴을 그려 넣어 버렸다.
귀는 당시의 말로 바보의 뜻으로 쓰이는 당나귀 귀를 그리고,
온 몸을 뱀이 칭칭감고 있는데 뱀대가리는 그의 거시기를 물고 있다.
이를 본 비아조가 기절초풍을 하고 교황에게 고자질 하며 그림을 지우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뭐든지 예쁘게 치장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교황의 머리가 핑그러 돌면서 재빠른 판단,
지금은 교황의 얼굴을 예수의 좌측하단에 천사의 모습으로 그려 넣어 줬는데 이 추기경의 요청대로 그림을 지우게 한다면
이 깐깐하고 고약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 이번에는 또 자신에게까지 무슨 앙화를 씌워줄지도 모르는 판이지.
온 로마 천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이렇게 농담으로 말했다고 한다
연옥에 있는 자네라면 내가 건져줄수도 있겠지만 이미 지옥에 빠져 있는 자네를 구한다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닐쎄.
결국 이 비아조 추기경은 영원히 그림속의 표구가 돼 버렸고 자자손손 불명예.
어쨌든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 사후에 교황청의 평의회 심의에 따라 벌거벗고 들어내 놓은 부랄들은 모두 지우기로 결정.
수정 작업에 참여한 미켈란젤로의 제자 다니엘라는 "지저귀를 채우는 사람"으로 또 별명이 만들어졌다고.
날짜를 뒤로 좀 더 돌려서, 아래 그림 이야기.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로마 첫날 콜로세움 관광을 마치고 찾아간 카피톨리니 박물관에서 담은그림인데,
로마 건국의 신화에 가까운 역사적 이야기.
신화와 전설의 가치는 그것들의 사실여부 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긴 세월동안 믿어왔는가에 있다.
줄곳 자기네가 트로이 영웅의 후예라고 믿어왔고 그리스인들도 인정.
건국왕 로물로스와 그의 부하들은
인구가 부족하고 여자가 모자라는 판이라 인근에 사는 사비니족을 축제에 초대한다.
신을 받들고 바치는 축제일에는 전투가 금지 되는 시기이니까.
이에 사비니 족은 초대에 감사를 표하면서 온 가족을 대동하고 로마에 찾아왔고 사비니족의 남자들이 술에 떨어졌을때 로물로스의 신호에 따라 사비니족의 아가씨들을 덥쳐버린다.
느닷없이 허를 찔린 사비니족 남정내들은 노인들과 마누라 자식들을 챙겨서 부랴부랴 그들 부락으로 도망칠 수밖에.
나중에야 그들은 강탈당한 처녀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만 대답은 정식으로 결혼해서 마누라로 삼겠다고.
그리고 로물로스 자신 부터 총각이라 결혼식을 올려버린다.
사비니족은 선전포고를 하고 그 후 부터 세 번의 전투가 있었으나 대부분 로마의 우세로 이어지고 네 번째 전투가 한창일때 느닷없이 납치된 사비니 여인들이 끼어들어서,
이제는 남편이 된 로마인과 친정 오라비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호소.
그 여인들이 노예가 된 것이 아니고 정식으로 아내의 대접을 받았기에 애정이 싹트고 있었든 상태. 예나 지금이나 살다보면 다 정나게 마련이지.
결국 로마의 로물로스 왕도 사비니족의 타티우스 왕도 그녀들의 호소를 받아들이고 화해했고,
한 때는 이 두 종족이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리기도 했지만 곧 타티우스는 전사하고 만다
서양에서 신랑이 신부를 안아들고 신방 문턱을 넘는 풍습이 이것이고,
이 상황의 그림을 피에트로 이외도 푸생, 루벤스 등이 남긴다
좌측하단에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하는 소년이 로물로스.
첫댓글 해설을 너무 재미있게 풀어가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