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아들이 내려와 몇 해 동안 부산집에서 지냈다. 다니던 회사가 경영난으로 명퇴를 권하고 전염병으로 엎친 데다 덮쳐 어려운 휴직 시기였다. 주식을 한다며 문 닫고 들앉아 있길 잘한다. 더운 여름날 그러고 있으면 갑갑증이 생겨 밖에 바람 좀 쐬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눈치를 받았는가 앞 바닷가 솔밭길을 걸었다. 다리가 안 좋아 절뚝이면서 들어왔다. 나처럼 운동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
구직 광고란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어버이날 가슴에 카네이션꽃을 꽂는데 그 조화를 팔고 남은 것을 걷으러 다니는 일을 얻어걸렸다. 주인 차를 몰고 가까운 도시를 다녔다. 점심과 저녁은 국밥으로 때웠다. 멀리 전라도 광주를 갔는데 하룻밤 자야 했다. 밤늦게까지 술잔을 거나하게 비워댔다.
술 못하는데 어쩔 수 없이 권하는 맛에 한 잔씩하고 온갖 얘길 들어줘야 했다. 종일 운전해 피곤하고 잠이 와도 견뎌야 함이 힘들었다. 이제는 그만 잤으면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몇 번 들었는데도 잊고 또 하는 말에 그냥 끄덕일 수밖에 없다. 웃으며 맞춰줬지만 자고 날이 밝으면 나는 가리라 맘먹었다.
좀 쉬운 일은 없나 찾다가 실내 작업하는 곳을 갔다. 수리나 단장하는 일이다. 에폭시를 발라 바닥이나 탁자를 예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자갈과 모래를 섞어 넣어야 했다. 차에서 끌어 내려 메고 가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쪼그려 앉아 오랫동안 꿈적였더니 그만 약한 다리 관절 오금이 저리고 아팠다. 며칠간 정형외과를 들랑거렸다.
가까운 곳에 갓 생긴 작은 호텔이 있어 마침 사람을 구했다. 정장을 하고선 손님을 맞으니 할 만했다. 사장이 직원 이름을 부르며 아이 대하듯 해도 그런가 싶었다. 몇 주간 일하고 달이 바뀌어 월급을 받아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뤄서 곧 주겠다 준다. 하면서 감감소식이다. 때 되어 먹는 것도 찬 음식을 내가 스스로 찾아 먹어야 했다. 어디 뭐가 있는지 아나.
싹이 노란 곳이어서 하는 수 없어 그만두고 나왔다. 돈 받을 기미가 없어 보여서 여러 달 시루다가 노동청에 의뢰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다. 나라에서 대신 일부를 생활비로 주니 이럴 수 있나 싶다. 어려운 회사도 도와주고 일용급료를 갚아줘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국가가 고마워라. 국민의 세금인데 나중에 받아내려나.
하루 8시간 시간당 1만 원꼴 돈이다. 어디든 가고 오고 하루해를 꼬박 넘겨야 돈을 받는다. 점심은 가까운 식당에서 만 원짜리의 곰탕이나 된장찌개가 대수다. 일이 고된 곳은 배로 주는 데가 있다. 그곳에 가 일하면 죽을 맛이다. 힘들어서 견디기 어렵다. 돈 많다 달려들었다가 혼쭐났다. 작게 받아먹고 가는 걸 누는 곳이 좋다.
인력소개소에 가면 일터를 안내받고 비용을 낸다. 가라는 데로 가야 한다. 구직 사이트에 갖가지 일꾼을 부른다. 수월한 게 어디에도 없고 힘들게 알뜰히 일 시키는 곳이다. 인부를 모집하는 중개 일을 맡아 하는 데서는 소개소처럼 비용을 내고 들어가 적은 품삯을 받아야 한다. 아니면 받을 때 떼고 준다. 식당 일이어서 괜찮을까 싶어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청 힘들었다.
점심때가 넘었는데도 중식 식사가 없다. 허기져서 일할 수 없자 조금 쉬었다 하라는 말뿐이다. 그릇이 쏟아져 나오니 비우고 씻기 바빴다. ‘알바’가 하는 일은 모두 이런 것인가 싶어 한숨이 다 나왔다. 여러 사람 쓸 형편을 줄여서 하다 보니 무리가 생긴다. 일이 많을 때 불러서 시키는 일은 그렇게 해야 하는가 보다. 배고프니 먹는 생각뿐이고 냄새가 코를 찌른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이리 굶주려서 되겠나.
하루는 공장 안의 못 박는 드릴 작업을 했는데 무거웠다. 뒤에 가벼운 것으로 일하니 좀 쉬웠는데 처음이어서 서툴렀다. 팔에 쥐가 내리고 며칠간 덜덜 떨리는 게 불편했다. 임시로 쓰는 일꾼에겐 무자비했다. 일당을 내 모르겠다며 떼어먹는가 하면 점심도 주지 않고 마구 시키는 매몰찬 인심이다.
측량 일을 배울 겸 나섰다. 거제도여서 차를 몰고 가는 1시간 거리다. 며칠간 교육받아 근사한 삼각 다리 기계를 매고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길 닦고 수도관과 가스관 등 각종 관을 매설하는 곳에서 하는 일이다. 또 매설된 관을 교체하는 공사장에서 기계를 세워놓고 도면 따라 한다. 한결 쉽다. 굴착기가 땅을 파나가고 인부들이 매달려 옮길 때 측량기사가 위치를 안내하는 것이다.
중장비가 잘못 건드려 수돗물이 흘러나오고 작업이 중단되면서 한참을 수습하느라 기다려야 했다. 추운 겨울날이나 뜨거운 여름은 고생하는 인부들에 비해 미안할 정도로 빈둥거리는 일이다. 일이 있을 때는 부르고 없을 때는 놀면서 기다려야 한다. 비 오거나 궂은날은 피한다. 그러니 한 달 해 봐야 쉬는 날이 더 많다.
가고 오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점심도 해결해야 하는 등 일용직은 오나가나 푸대접이다. 하는 수 없이 그만두고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어디 일이 있나 맨날 헤매야 한다. 흔해 빠져도 다 그렇고 그런 곳이다. 그러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오라는 전갈이다. 하늘에서 복음이 들려온 것이다. 몇 해 동안 수많은 일을 하면서 숱한 고생이 사르르 눈앞으로 스쳐 흘러간다.
첫댓글 아드님 일을 그리 소상하게 쓰셨어요
대단하십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엔딩이 좋아요
많은 경험이 살아가는 바탕이 되겠어요
그래도 너무 고생해서 얼마나 아팠을 까요
수고하셨습니다
여러 경험을 겪어서 더 잘 살 것입니다.
좋은직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스스로 하는일에 만족하며 보람으로 여기는 곳이 좋은직장 아닐까.싶습니다.
점점 살아가기 힘든세상으로 바뀌는것 같습니다. 뒤쳐지지않기 위해서는 자기자신도 부단히 노력해야하고,쉼없이 배워야 하는 세상입니다.멋쟁이 아드님이 재취업하셨으니,먼저 축하드립니다. 온갖 궂은일뒤에 얻은 직장이라 아마도 남다른 각오로 임하지않을까? 싶습니다.^^
월급 받는 직장이 좋습니다.
날품팔이 일용직 일이 힘듭니다.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