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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5강-2 (2016. 5. 2.)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3) 受苦惱救護
마. 譬喩로 重明함
(4) 廻向하는 心
(5) 廻向하는 願
“석가모니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복을 제일 많이...
그렇다고 누구에게 밥 한 그릇 보시한 적은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복을 지었는가?” 궁극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그런 법보시를 했기 때문에 그래서 물질도 많이 따라오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래서 제가 그러지요.
“4월 초파일 돼봐라. 전국 사찰마다 부처님 앞에 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부처님이 무슨 복을 지어서 그러냐?
법보시하는 복을 지어서 그렇다.”그것은 우리가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 해인사ㆍ통도사ㆍ불국사ㆍ저 모든 훌륭한 사찰들이 전부 부처님 앞으로 등기 됐다. 말입니다.
그것 어느 누구도 함부로 못합니다. 왜냐? 부처님 재산이기 때문에요.
부처님은 어찌하여 그런 부자가 됐느냐?
그런 까닭을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요? 우리 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법에 대한 그런 존중심ㆍ법에 대한 어떤 가치관이 확실하게 서 있어야 됩니다. 그런 신념 하나로 우리는 불법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普爲救護一切衆生故로
널리 일체중생을 구호하기 위한 까닭으로 선근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如是, 이와 같이
不但爲淨一佛刹故(부단위정일불찰고)며,
다만 한 佛刹을 청정하게 하지 않으며,
不但爲信一佛故며, 한 부처님을 믿기 위한 것도 아니며,
淨一佛刹. ←이것이, 불교는 우리가 왜 공부하는가?
왜 수행하는가? 간단하게 표현하면 딱 두 마디입니다.
그야말로 上求菩堤 下化衆生인데요. 우리 개인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나아가서 그 인격을 통해서 사회를 맑고 아름답게, 향기롭게 좋은 세상 만들자고 하는 것. 그겁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스님이라고 늘 말하는
대만의 성엄스님은 법문하실 때, 꼭 그 두 마디를 좌우에다 걸어놓고 합니다. 그 스님들 법문하는 그림을 보면, 각자
어떤 신념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한 쪽에는
裁成人格(재성인격) 그래 놨어요.
자기의 인격을 향상시키는 것. 그 다음에
淨佛國土(정불국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
이 세상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드는 것.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늘 이 법회를 하노라. 그것을 딱 써 붙여놓고 합니다.
그런 글 한줄 써 붙여놓은 것을 볼 때마다,
‘아, 그 스님의 정신이 무엇이구나!’하는 것, 그리고 또
‘불교를 어떻게 정리했구나!’하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한 불찰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 한 부처님을 믿기 위한 것도 아니고,
不但爲見一佛故며,
다만 한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不但爲了一法故(부단위료일법고)로,
다만 一法을 알기 위해서, 한 가지 이치를 알기 위한고로,
起大智願(기대지원)하야, 대 지혜와 원력을 일으켜서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아니다.
不자가 여기 저기 있어서 정확하게 갖다 새기려면 지금 새긴 것하고 똑같습니다. 아니다.
爲普淨一切佛刹故(위보정일체불찰고)며,
一切佛刹 = 온 세계를 널리 다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普信一切諸佛故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널리 다 믿기 위한 까닭이며,
普承事供養一切諸佛故(보승사공양일체제불고)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널리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기 위한 까닭이며,
普解一切佛法故로 發起大願(기대지원)하야
일체 모든 불법을 널리 이해하기 위한 까닭으로 큰 서원을 일으켜서 修諸善根하야, 모든 선근을 닦고, 그래서 그것으로써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제가 늘 이야기하지요? “우리가 시내에 가서 급식활동 하는 일들이 많은데 참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 국수 한 그릇 밥 한 그릇에도 불법을 담아서 줘라.” 기독교인은 어디 가서, 저 아프리카나 못사는 나라에 가서 구호활동 할 때, 교회부터 지어놓고 그 교회에 나오도록 부터 시키고,
찬송가부터 부르도록 해놓고 그 지역 사람들에게 구호활동 합니다. 그런데 우리 불자들은 실컷 나눠주고 부처님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와 버려요. 보면 그것 참 신기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늘, 저는 그런 일을 못해서 크게 주장할 바는 못 되지만, “국수 한 그릇을 급식활동을 하고, 밥 한 그릇을 하더라도 거기에 불법 하나라도 담아서 줘라.”그래서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누가 묻더라고요.
“나는 처음에 일지경이라고해서 한 페이지, A4용지 한 장에다가 부처님 말씀 인과 법문 하나라도 써서 그렇게 가는 사람 오는 사람에게 나눠줬다. 밥 한 그릇 줄 때도, 급식활동 할 때도 그렇게 해라. 그렇게 하면 그것 버리는 사람도 있고, 코 닦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휴지로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10000장을 가져가면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건진다.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읽고 감동한다.
그러면 10000장 찍은 보람이 있다.” 말입니다.
저는 늘 그 주의입니다.
그물 쳐놔서 그 그물에 모든 그물눈 마다 전부 새가 다 걸리면 그 새를 어떻게 감당합니까? 감당 못합니다.
수 천 개의 눈을 가진 그물을 쳐놨는데, 거기에 새 한 두 마리 그냥 걸리는 겁니다. 세상의 이치는 그래요. 그렇습니
다. 그래서 우리불자들도 어디 가서, 저기 아프리카나 어디 동남아에 가서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은 좋은데, 불법을 전
하고 오진 않아요. 그냥 좋은 일만하고 옵니다.
가만히 보니까 우물만 파주고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지어 주고요. 어떡하든 좋은 일이지요.
그것까지도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보시행이고,
훌륭한 보살행이고 훌륭한 불법의 실천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부처님은
궁극에 가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불자가 하는 모든 보시행의 절정에 있다니까요.
그것을 우리는 하든 못하든 알고는 있어야 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4) 廻向하는 心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佛法으로 而爲所緣하야
起廣大心과 不退轉心하야 無量劫中에
修習希有難得心寶하야 與一切諸佛로 皆悉平等이니
菩薩이 如是觀諸善根하야 信心淸淨하며
大悲堅固하야 以甚深心과 歡喜心과 淸淨心과
最勝心과 柔軟心과 慈悲心과 憐愍心과 攝護心과
利益心과 安樂心으로 普爲衆生하야 眞實廻向하고
非但口言이니라
廻向하는 心. 회향하는 마음.
열 가지 마음을 여기서 소개합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佛法으로, 모든 불법으로써
而爲所緣(이위소연)하야, 인연할 바를 삼아서,
그렇잖아요. 모든 부처님 법으로써 인연할 바를 삼아요.
그래서 起廣大心(기광대심)과, 광대한 마음과,
不退轉心(불퇴전심)하야, 퇴전하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서,
無量劫中(무량겁중)에, 한량없는 겁 가운데,
修習希有難得心寶(수습희유난득심보)하야,
희유하고 얻기 어려운 마음의 보배를 수습한다. ←이것이 뭐겠습니까? 영원히 변치 않는 참마음 자리입니다.
진여불성 자리입니다. 참 생명ㆍ진여생명 참 나 자리입니다. 남방불교 공부한 사람들은 또 “그 無我인데, 무슨 그런 참 나를 말하느냐?”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런 사람들 몫이고요.
선불교ㆍ대승불교에서는 참 나 빼버리면 무너집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이야기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차별 없는 참사람이라고도 하고, 眞心이라고도 하고, 참 나라고도 하고요. 常樂我淨할 때, 우리가 어떻게 설명합니까? 참 나 아니고는 설명 못하는 겁니다.
그것이 希有難得心寶입니다. 우리가 늘 가지고 일거수일투족에 그 마음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 그와 같이 모든 부분에 다 쓰고 있는 것이지만, 정작 그것은 우리 손에 안 잡힙니다.
내가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손에 안 잡힙니다.
마치 내가 내 그림자를 밟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그림자를 밟으려면 그만치 가버리고, 그림자를 밟으려면 저만치 가버리고요. 우리 참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눈앞에 있고 손에 잡힐 듯하지만, 정말 그것을 확연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어떤, 쉽게 표현해서 법사라고 합시다.
어떤 법사가 1분 안에 見性하고, 1분 안에 참마음 아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당히 일리는 있어요.
일리는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또 반론하는 사람도 물론 많기는 합니다. 참마음은 사실은 우리가 떠나려야 떠날 수는 없으면서 그러나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眞空妙有. 찾아보면 없지만 그러나 모든 일을 다 관장하는 겁니다. 그 놈이 들어서 모든 일을 다 관장해요. 인생사 모든 것을 그 놈이 다 관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다 제가 별을 쳐놨네요.
希有하고 難得한 心寶. 그것을 수습해서
與一切諸佛(여일체제불)로 皆悉平等(개실평등)이니,
그것 알면 모든 부처님으로 더불어 함께 다 같이 평등해진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착한일 할 때 ‘부처님 행동해야 부처님이지,’ 그것이 아닙니다. 착한일한다고 부처님이아니라, 착한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간에 바로 그 참마음의 작용이 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 때, 그것이 바로 부처의 작
용입니다.
그것이 부처의 작용입니다.
이것이 그 말 아닙니까? 與一切諸佛로 皆悉平等이라
希有하고 難得한 心寶를 수습해 가지고서,
그것을 닦는다고 표현은 했지만, 닦아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닦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與一切諸佛로 皆悉平等함이니
菩薩이
如是觀諸善根(여시관제선근)하야,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을 관찰해서.
信心이 淸淨(신심청정)하며 大悲가 堅固(대비견고)하야,
以甚深心(이심심심)과, 깊고 깊은 마음과,
歡喜心(환희심)과, 환희하는 마음과,
淸淨心과, 청정한 마음과,
最勝心(최승심)과, 가장 수승한 마음과,
柔軟心(유연심)과, 유연한 마음과,
慈悲心(자비심)과, 자비한 마음과,
憐愍心(연민심)과, 연민히 여기는 마음과,
悲자도 연민의 뜻이 있습니다만, 좀 더 확연하게 이렇게 했네요. 연민히 여기는 마음과,
攝護心(섭호심)과, 거둬들여서 보호하는 마음과,
利益心(이익심)과, 남을 이익하게 하는 마음과,
安樂心(안락심)으로, 안락 하는 마음으로
普爲衆生하야, 널리 중생을 위해서,
眞實廻向(진실회향)하고, 진실하게 회향하고,
非但口言(비단구언)이니라. 다만 말로,
입으로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니라. 그랬습니다. 非但口言.
밑줄 쫙 입니다. 非但口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우리 보리심ㆍ보리심. 불교의 수많은 용어 중에서 한 마
디만 딱 선택하라면, 사실은 보리심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菩提心. 그런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 범어잖아요.
보리라는 말은 범어잖아요. 心자는 우리가 아는 것이지만요. 이타심입니다. 利他心. 조금 더 부연하면 지혜와 자비의 마음. 한 마디로 하면 利他心입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 그것이 보리심입니다.
달라이라마 스님이 보리심을 제일 많이 강조하는데요.
그냥 보리심ㆍ보리심 했지, 보리심을 더 이상 풀어서 말을 안 해요. 그래서 백방으로 제가 책을 읽고, 뜯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利他心이더라고요. 利他心. 근래에 부산만 하더라도 티벳 스님이 절을 세워서 티벳불교를 선양하고 있습
니다. 그런데 사이트에 들어가면 달라이라마 스님의 법문을 녹취해서 올려놓은 것도 있고,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
저는 평소에 늘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보리심이라고 한다. 그렇게 늘 강조했는데 더 간략하게 하면 利他心.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다. 10회향에서는 더욱 더 그렇지요.
(5) 廻向하는 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廻向之時에
作是念言호대 以我善根으로 願一切趣生과
一切衆生이 皆得淸淨하야 功德圓滿하며
不可沮壞하며 無有窮盡하며 常得尊重하며
正念不忘하며 獲決定慧하며 具無量智하야
身口意業의 一切功德으로 圓滿莊嚴이니라
又作是念호대 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承事供養一切諸佛하야 無空過者하고 於諸佛所에
淨信不壞하야 聽聞正法하며 斷諸疑惑하야
憶持不忘하며 如說修行하야 於如來所에
起恭敬心하며 身業淸淨하야 安住無量廣大善根하며
永離貧窮하야 七財滿足하며 於諸佛所에
常隨修學하야 成就無量勝妙善根하며 平等悟解하야
住一切智하며 以無碍眼으로 等視衆生하며
衆相嚴身하야 無有玷缺하며 言音淨妙하야
功德圓滿하며 諸根調伏하야 十力成就하며
善心滿足하야 無所依住하고 令一切衆生으로
普得佛樂하며 得無量住하야 住佛所住케하나니라
廻向하는 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廻向之時에, 회향할 때에
作是念言(작시념언)호대,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는 말입니다.
念言이라고 하는 말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말을 하는 겁니다.
以我善根으로, 나의 선근으로
願一切趣生(원일체취생)과, 원컨대
一切趣生과, 이 밑에는 一切衆生. 그랬잖아요.
一切趣生하면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다 포함해서 말할 때 一切趣生. 이라고 하고, 그것도 다 중생에 포함되긴 되지만, 또 우리에
게 익숙한 말로써 一切衆生.
원컨대 一切趣生과 一切衆生이
皆得淸淨하야, 다 청정해서, 이 淸淨이라는 말도 참 쉬운 말이면서도 뜻이 아주 무궁무진합니다.
功德이 圓滿(공덕원만)하며
不可沮壞(불가저괴)하며,
가히 무너뜨리거나 막을 수도 없으며,
無有窮盡(무유궁진)하며, 다 할 수도 없으며,
常得尊重(상득존중)하며, 항상 존중함을 얻으며,
正念不忘(정념불망)하며,
正念 ←이것이 남방불교에서 제일 좋아하고, 제일 많이 사용하는 글자지요. 正念. 마음 챙김 ←이렇게도 표현하고 하는데요. 正念이 不忘하며, 바른 생각을 잊지 아니하며,
獲決定慧(획결정혜)하며,
확실한 지혜, 결정한 지혜를 얻으며,
具無量智(구무량지)하야, 한량없는 지혜를 갖추어서,
身口意業의 一切功德으로
圓滿莊嚴(원만장엄)이니라.
원만하게 장엄하게 하여 지이다. 속으로 그렇게 읊조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겁니다. ←이것이 첫째 생각이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생각은
又作是念호대 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承事供養一切諸佛(승사공양일체제불)하야,
일체제불에게 承事供養해서,
저는 一切諸佛 나올 때 보현행원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고 합니다. 대승불교 경전에는 자주 등장하는
一切諸佛 ←이렇게 하는데요. ‘도대체 무슨 부처님이 그렇게 무량 아승지 숫자로 부처가 있다는 말인가?’
일체사람과 일체생명을 一切諸佛이라고 표현합니다.
一切諸佛 = 일체사람과 일체생명. 사람을 앞에다 놓는 것이 좋지요. 일체사람과 일체생명!
그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공양해서
無空過者(무공과자)하고, 헛되게 지나치지 않고,
於諸佛所에, 모든 부처님처소에
淨信不壞(정신불괴)하야, 철저하게 믿고,
증엄스님 이야기를 아까도 했는데요.
그 분의 3대강령이 있지요. 그 스님 약력에 들어가면 3대강령을 딱 써 놨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나는 언제 출생하고, 무슨 공부를 했고, 그런 이야기 한 마디도 없고,
普天三無(보천삼무).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나를 천번 만번 만 번 속인다.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그 사람을 믿을 것이다.
아~~! 대단하잖아요? 설사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나는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그런 뜻입니다. 그것 普天三無중의 하나지요. 淨信不壞. ←이것이 사람에 대한 믿음입니다.
불법에 대한 淨信도 포함되겠습니다만, 여기는 諸佛所에, 했으니까요.
聽聞正法(청문정법)하며,
대승 경전에 오면 正法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지요.
사실은 불법이라는 간판 밑에도 邪法(사법)이 많고,
非正法도 많고요. 그러니까 이 대승불교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승불교 운동하는 사람들은 正法이라는 말을 꼭 쓰기 바랍니다. 법 중에도 바른 법! 정법을 청문하며,
斷諸疑惑(단제의혹)하야, 모든 의혹들을 다 끊어서
憶持不忘(억지불망)하며, 다 기억해서 잊지 아니하며,
如說修行하야, 설한 바대로 수행해서
於如來所에, 여래 소에서
起恭敬心(기공경심)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身業이 淸淨하야
安住無量廣大善根(안주무량광대선근)하며,
한량없이 광대한 선근에 安住하며,
永離貧窮(영리빈궁)하야, 영원히 빈궁한 것을 떠나서,
빈궁한 것을 떠나려면 어떻게 하지요?
우리가 복을 많이 지어야지요. 복 짓는 것이 뭡니까?
보시하는 겁니다.
七財에 滿足(칠재만족)하며, 그랬습니다.
일곱 가지 법의 재물을 만족케 한다. 이것 10무진장 품에
열 가지무진장을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처음에 나오는 일곱 가지하고 똑 같습니다.(65강 ~ 66강)
일곱 가지 법의 재물 = 1信(신) = 믿음. 2戒 = 계율.
3慚(참). 4愧(괴). 5聞(문) = 많이 듣는 것.
6捨(사) = 보시. 글자는 버릴 捨자인데 보시입니다.
7慧(혜) ←이렇게 일곱 가지가 법의 재물이다. 그렇게 했습니다. 이 또한 말하자면 법으로써 빈궁함을 떠나야 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물론 생활상에 경제적으로 빈궁함을 떠나는 것도 급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런 문제가지고 이야기하는 마당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淸福(청복)이니 濁福(탁복)이니 그런 말을 하잖아요. 이 일곱 가지 법의 재물이 만족하면
그 사람은 淸福이 넘쳐나는 사람입니다. 청정한 복이 넘쳐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화엄경을 공부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
도, 개인적으로 설사 아무리 빈곤하게 산다하더라도, 또
사회적인 아무런 지위가 없어서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화엄경을 의지하고,
화엄경과 마주하고 있고 당당하게 ‘나는 화엄행자다.’ 잘하든 못하든 ‘나는 화엄경 공부하는 사람이다.’ ←이런 신념
가지고 사니까 그 사람은 淸福이 아주 넘쳐나는 사람입니다.
아주 깨끗한 복!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아주 훌륭한 청정한 복을 잔뜩 가진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부자입니다. 淸福으로써의 부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자부심.
그런 신념ㆍ긍지가 있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 대한 믿음. 현수 품에 보면 10信! 믿음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잖아요. 믿는 마음같이 큰 재산은 없다.
믿음은 불법에 대한 큰 재산이다. 그랬습니다.
사실은 정말 믿는 마음만치 중요한 재산은 없습니다.
有形. 눈에 보이는 재산, 그것이 얼마 되겠습니까? 또
상당히 있다 손치더라도 그것 크게 믿을 것이 못됩니다.
유형한 재산은 크게 믿을 것은 못됩니다.
그런데 불법에 대한 신심의 재산은 이것은 누가 뺏어갈 수도 없고, 무슨 태풍이 불어도 바람에 날려갈 일 없고,
폭우가 쳐도 물에 떠내려갈 일도 없고, 불에 탈일도 없고
그렇습니다.
於諸佛所에 常隨修學(상수수학)하야,
모든 부처님처소에서 항상 따라서 修學해서, 배워서
成就無量勝妙善根(성취무량승묘선근)하며,
한량없는 수승하고 미묘한 선근을 성취하며,
平等悟解(평등오해)하야, 평등하게 깨달아 알아서,
住一切智하며, 일체지혜에 머물며, 모든 것을 아는 평등과 차별을 공히 아는 그런 지혜. 一切智에 머물며,
以無碍眼(이무애안)으로, 걸림 없는 눈으로
等視衆生(등시중생)하며,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며,
그렇습니다.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려니까 평등해야 평등하게 보지요. 그런데 단 부처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다 같이 평등한 그런 부분이 또 있습니다. 대단한 부분이 있다고요.
외형만 보면 전부가 차별하지요. 그래서 임제스님은
차별 없는 참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짖은 겁니다.
차별 없는 참사람.
그것은 부처나 보살이나 중생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그것은 정말 평등한 겁니다. 차별 없는 참사람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입장으로 等視衆生해야 됩니다.
중생을 똑같이 평등하게 봐야 됩니다.
衆相으로 嚴身(중상엄신)하야,
여러 가지 모습으로써 몸을 장엄해서,
無有玷缺(무유점결)하며, 결점이 하나도 없으며,
言音淨妙하야, 말이 아주 청정하고 미묘해서,
功德이 圓滿하며, 말도 참 잘해야 됩니다.
특히 남 앞에서 법문한다든지, 아주 짧은 스피시도 사람에게 정말 감동을 줄 수 있도록 그렇게 준비하고 다듬어서 해야 됩니다.
제가 남 훈수 안 들기로 스스로 약속을 아주 많이 하고,
남 잘, 잘못, 눈에 거슬리고 하는 그런 문제들을 지적하지 않기로 항상 다짐하면서도 또 합니다. 업이 되어서요.
불교 TV를 보면, 차라리 판서 안하든지 직직직직 개미 기어가는 것 같이, 자기도 못 알아보게 그냥 아주 무성의하게 직직직직 쓰고, 글씨 잘 쓰고 못쓰고는 절대 문제 아닙니
다. 성의 있게 써야 됩니다. 한 획ㆍ한 획을 성의를 있게 쓰면 그것이 잘 쓰는 글씨입니다.
그런데 전혀 성의 없이 직직직직 직직, 그런데 제가 반대로 칭찬도 해야지요.
저~ 기 논산에 안심정사에 있는 태고종 법안스님.
불교 TV에 나와서 판서하는 사람 중에 제일 잘 써요.
제일 깨끗하게 잘 써요. 태고종 스님입니다.
안심정사 법안스님. 자주 나오지요. 얼마나 정갈하게 쓰는지 몰라요. 신심 나게 씁니다. 쳐다만 봐도 신심 나게 써요. 도대체 조계종 중은 그렇게 하는 중이 하나도 없어요.
야~~ 참 신기하지요. 그런데 글씨라고 씁니다.
아주 무성의하게 직직직직 직직. 명필로 쓰라는 뜻은 아
닙니다. 한 자ㆍ한 자를 써도 성의를 담아서 마음 다해서
쓰라는 것이지요. 조계종 스님으로서 괜찮게 쓰는 스님은 지안스님 글씨가 괜찮아요. 아주 얌전하게, 많이는 안 쓰는데 아주 얌전하게 통도사 계시는 지안스님이 깨끗하게 잘 써요. 법안스님이 그렇게(전부 眼자 들어간 스님이네요.)
그 스님이 그렇게 아주 참 정갈하게, 질서정연하게 쓰더라고요.
보는 사람이 그것만 봐도 신심 나잖아요.
글씨도 글씨지만, 말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言音淨妙라고 했잖아요. 말이 淨妙해야 됩니다.
功德이 圓滿하며, 그래 그런 것, 말하는 것 보고, 또 글씨 쓰는 것 보고 사람들이 신심을 내고, 환희심을 내면 그 사람은 저절로 공덕이 불어나는 겁니다. 功德이 圓滿하며,
諸根이 調伏(제근조복)하야,
모든, 안이비설신의 6근이 전부 조복되어서
十力成就(십력성취)하며, 열 가지 힘을 성취하며,
부처님이나 보살을 표현할 때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十力입니다.
善心滿足하야, 선심이 만족해서,
無所依住(무소의주)하고, 의지하는 바가 없고,
저는 다 못 외우는데 十力중에 處非處智力(처비처지력).
옳은 것과 옳지 아니한 것. ←이것이 十力중에 제 1조입
니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가려서 아는 지혜의 힘. ←이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앉을자리 설 자리를 잘 가려서하라. 그것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그 인품 괜찮은 겁니다.
그것은 남의 일에 훈수 안 두는 것하고도 연관이 있습니다.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普得佛樂(보득불락)하며,
부처님의 즐거움을 널리 얻는다.
得無量住(득무량주)하야, 한량없이 머물 곳을 얻으며,
住佛所住케하나니라.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 머물게 하여지이다.
令一切衆生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이 ‘무엇을 즐기는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중생들도 좋아하게 한다니까요. 또
得無量住하야,
우리는 머물 곳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취사선택을 잘합니까? 취사선택 참 잘합니다. 사람도 취사선택 잘하고요.
어디 뭐하는데 있다면 ‘거기 누가 나오나?’이름 한번 열거해보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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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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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信. 2戒 .3慚. 4愧,5聞,6捨,7慧...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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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에 가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불자가 하는 모든 보시행의 절정이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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令一切衆生으로
普得佛樂하며 得無量住하야 住佛所住케하나니라..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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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有難得心寶!
이존재를 알게 해주신 부처님, 큰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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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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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불법에 대한 큰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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