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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projection)란 개인의 태도나 특성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원인을 돌리거나, 또는 자신의 감정,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는 심리현상을 말합니다
죄책감과 공포때문에
충동이나 감정을 억압하고는
그런 것이 내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스스로 충동이나 감정을 느끼는 대신
세상과 주변사람들에게
덮어씌우는 투사를 한다.
그러고는 그런 감정이 그들의 것인양 느낀다.
이제
그들은 적이 되며
마음은 투사를 강화하기 위한
정당한 이유를 찾는다.
사람, 장소, 기관, 음식, 기후, 별자리, 사회여건,
운명, 신, 운, 악마, 외국인, 민족, 정치적 경쟁자 등
외부의 대상을 탓한다.
투사는
현대사회에서 두루 쓰이는 기제다.
전쟁, 분쟁, 폭동은
모두 투사에서 비롯된다.
심지어
좋은 시민이 되려면
적을 증오해야 한다고
부추기기도 한다.
우리는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이는 결국 사회붕괴를 초래한다.
공격, 침략 등의
사회적 파괴는 모두
투사기제를 바탕으로 한다.
2. 표출
우리는 표출 기제를 사용해
감정을 분출하거나
입밖에 내거나
몸짓으로 드러내거나
끝없는 집단시위로 보여준다.
부정적 감정을 표출해
내면의 압력을 내보내고 나면
억제할 수 있는 만큼만 남는다.
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사회에는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 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그 이유를 꼽자면 첫째,
어떤 감정을 표출하면
그 감정은 증식되면서
더 큰 에너지를 얻는 경향이 있다.
둘째,
그 감정을 표출한 까닭에
나머지 감정은 알아차릴 수 없도록
억제된다.
각 개인마다
억제와 표출간의 균형점이 달라지는 것은
어릴 때 받은 훈육이나 현재의 문화규범과 관습,
대중매체의 영향에 달려있다.
자기표출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프로이드의 저작과
정신분석을 오해한 결과다.
프로이트는
억제가 신경증의 원인이라고 지적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표출이
그 치료법이라고 잘못 받아들였다.
이런 오해에서
타인을 희생해 방종해도 좋다는
근거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고전 정신분석에서
프로이트가 실제로 말한 바는
"억압된 충동이나 감정을 중화하고 승화시켜 사회화해
사랑과 일, 창조성같은 생산적 욕구로 돌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남에게 떠넘기면
이번에는 그 사람이
그것을 공격으로 느끼고
감정을 억제하거나 표출하거나 회피할 차례가 된다.
그래서
부정성 표출은
관계를 악화시키고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훨씬 바람직한 대안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챙겨서
중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긍정적 감정만 남기고
표출할 수 있게 된다.
3. 회피
회피는
주의를 다른데로 돌림으로써
감정에서 벗어나는 기제다.
회피는
연예사업과 주류사업을 받치는 근간인 동시에
일 중독자가 택하는 길이기도 하다.
마음속 느낌에서
달아나고 벗어나려는 기제는
사회에서 용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속 자아에서 벗어나고
감정이 올라오지 않도록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이런 활동에 의존할수록 활동자체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회피기제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머무른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텔레비전을 켠 다음
꿈꾸는 듯한 상태로 돌아다니며,
쏟아지는 정보에 끊임없이
프로그래밍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사람들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고
잠시라도 홀로 존재하는 것을 끔찍히 겁낸다.
그래서 계속해서 미친듯이 행동한다.
끝없이 어울려 놀고,
대화하고 문자를 주고받고,
책을 읽고 음악을 틀고
일하고
여행하고 구경하고 쇼핑하고
과식하고 도박하고 영화를 보러가고
좋다는 약을 복용하고 마약에 손대고 파티를 연다.
이런
회피기제는
대다수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별 효과없이 스트레스만 준다.
또한
그 자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한다.
억제하고 억압한 감정에서 오는
압박을 낮추려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갈수록 자각을 잃고
성장하지 못한다.
창조성과 에너지를 잃는다.
타인에게 참된 관심을 갖지 못한다.
영적 성장이 멈춘다.
결국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들면서 늙다가
때이른 죽음을 맞이한다.
억압된 감정이 세상에 투사되면
사회문제와 무질서가 생기고,
현 사회를 특징짓는
이기심과 냉담함이 증폭된다.
무엇보다 개인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신뢰할 수 없어
늘 외로움을 느끼고
자기혐오가 생긴다.
이와
반대로
감정을 놓아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감정의 이면의 에너지를
즉각 포기하고 항복함으로써
압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얻는다.
즉 끊임없이 놓아버리면
쌓인 압력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놓아버리면
기분이 즉시 나아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몸의 생리작용에도
변화가 생긴다.
피부색과 호흡, 맥박, 혈압, 근육긴장도, 위장기능,
각종 혈중 수치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마음속 자유를 얻은 상태에서는
모든 신체기능과 기관이 정상을 되찾고
건강해지는 쪽으로 변화한다.
근력이
곧 바로 좋아진다.
시력이 좋아지고
세상과 자신이 보는 눈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보다 행복하고
보다 사랑에 차있고
보다 느긋해진다.
감정과 스트레스
대중과 언론은 스트레스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지만 스트레스의 본질은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현재 우리는 과거 어느때보다도 스트레스에 약하다고 한다.
스트레스의 핵심원인은
무엇일까?
외부요인에 의한 것은
분명 아니다.
스트레스는
앞에서 이야기한
투사기제를 보여주는
본보기일 뿐이다.
보통
그들이나 그일이
스트레스의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라고 느끼는 것은
사실 억압된 감정이 주는
마음속 압력이 새어나오는 것일 뿐이다.
억압된 감정으로 인해
외부 스트레스에
약해진 것이다.
스트레스의 진정한 근원은
안에 있다.
밖에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내 안에 있다.
예를들어
겁이 얼마나 나는지는
안에 이미 차있는 두려움의 양에 달려있다.
외부자극은
그 두려움을 촉발시킬 뿐이다.
안에 두려움이 많을수록
세상을 보는 눈도 앞일을 겁내고
조심하는 쪽으로 바뀐다.
겁먹은 사람에게
세상은 섬뜩한 곳이다.
화난 사람에게
세상은 불만스럽고
짜증나는 일투성이인 곳이다.
죄책감에 빠진 사람이
보이는 세상은
유혹과 죄로 가득하다.
안에 품고 있는대로
세상이 보인다.
죄책감을 놓아버리면
순수해 보이지만,
죄책감에 사로집힌 사람에게는
사악하게만 보인다.
즉
사람은 자기가 억압한 것에
정신이 팔리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는
억압되고
억제된 감정이 쌓여 생긴
압력에서 비롯한다.
압력은
탈출구를 찾으려는 속성을 갖고 있는데,
이때 외부 사건은
우리가 잡아누르던 것이 터져 나오도록
의식과 무의식 양면에서
방아쇠 역할을 한다.
감정을 억누르면
그 에너지가 자율신경계를 통해
다시 나타나 병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실제로 병이 생긴다.
부정적 감정이 생기면
근력이 곧바로 반으로 줄어들고,
시야도 몸과 마음 양면에서 좁아진다.
그래서
스트레스란
외부 축발요인이나 자극에 대한
우리의 감정반응이다.
우리의 신념체계
그리고 신념체계와 결부된 감정압력이
스트레스를 규정한다.
그러므로
스트레스의 원인은
외부자극이 아니라
우리의 반응성 수준에 있다.
더 많이 포기하고
항복할수록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스트레스로 인한 피해는
자신의 감정이 낳는
결과일 뿐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반응을 놓아버림으로써 반응을 줄이는 것에 대한 효과는 이미 과학적 연구결과로도 입증되어 있다. 14장 참조.
현재의 스트레스 경감 프로그램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의 원인자체를 없애기 보다
스트레스의 여파를 완화시키려고 하거나
외부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마치
'감염을 치료하지 않고 열만 내리려는 것'과
같다.
예를들면 근육긴장은 불안, 공포, 분노, 죄책감의 후유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육이완기법 강좌를 듣더라도 매우 한정된 성과만 얻는다.
대신
근육긴장의 바탕에 딸려있는 원인
즉 억압받고 억제된 분노와 공포,
죄책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면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삶에서 겪는 사건과 감정
마음은
합리화에 능해
감정이 생긴 진짜 원인을 계속 외면하는 쪽을 택하며
그렇게 하는데, 투사기제를 활용한다.
마음은 어떤 사건이나 타인이
감정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탓하면서(투사하면서)
스스로를 그런 외부 원인에 당한
무력하고 순진한 희생자로 본다.
"걔들 때문에 화가 나",
그 인간때문에 속상해,
그일 때문에 겁이나,
세상일 때문에 불안해"
진실은
정확히 반대다.
억제되고 억압된 감정이 발산수단을 찾다가
외부사건을
방아쇠겸 핑계거리로 삼으면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기회만 생기면
증기를 내뿜으려고 벼르는
압력솥과 같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도록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있다.
정신의학에서 이런 기제를 전치 displacement라고 한다. 이런 저런 일들이 나를 화내게 만드는 것은 내가 원래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항복하여
분노를 억눌러 놓은 저장소를 놓아버리면
어떤 사람이나 어떤 상황도
나를 화내게 만들기가 아주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부정적 감정도 항복하고 나면
어떤 일로도 재발하지 않는다.
참고) 전치 : 어떤 사상, 감정 또는 소망을 더 바람직하고 수용 가능한 다른 사상, 감정 또는 소망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거기에 따르는 걱정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무의식적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이다.
사회에서 길들여진 탓에 사람들은
긍정적 감정마저
억제하고 억압한다.
사랑을
억제하면 상심한 가슴에
심근경색이 일어난다.
억제된 사랑은
애완동물을 지나치게 떠받들거나
그 밖의 갖가지 것을 숭배하는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진정한 사랑은
공포가 없으며
애착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잃을수도 있다는 공포로 인해
과도한 애착과 소유욕이 힘을 얻는다.
예를들어
여자친구에 대해 자신이 없는 남자는
질투가 심하다.
억제되고 억압된 감정의 압력이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마음은 저바깥에
어떤 일을 만들어 내
감정압력을 분출시키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억압된 슬픔이 큰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삶에서 슬픈 일을 만들어낸다.
겁 많은 사람은
겁나는 일을 촉발시킨다.
화난 사람은
짜증나는 상황에 둘러싸이고
자부심에 찬 사람은
계속해서 모욕당한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왜 너는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
우리의 내면을 가리키며
직시하라고 한다.
우주 만물은 진동을 방출한다.
진동수가 높을수록 힘이 강력하다.
감정 또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진동을 방출한다.
감정의 진동은
몸의 에너지 장에 영향을 주어,
보고 느끼고 측정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는다.
초심리학자 델마 모스 박사 등이 키를리안 사진술로 찍은 동영상을 보면, 감정이 바뀜에 따라 에너지 장의 색깔과 크기도 급격한 변동을 거듭하는 것을 알 수 있다(심리학자 스탠리 크리프너 1974).
이 에너지 장은
예로부터 오라라고 부르는 것으로
오라의 진동을 보는 능력을 타고났거나
보는 법을 익힌 사람들에게는
오라가 보인다.
오라는 감정변화에 따라
색깔과 크기가 바뀐다.
근육 테스트로도
감정변화에 따른
에너지 변화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 몸의 근육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자극에
즉각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기본 감정상태는
우주로 송출되는 것이다.
마음은
차원이나 크기가 없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진동에너지를 통해
마음의 기본상태를 송출할때
송출거리에 제약이 없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심결에
자신의 감정상태와 생각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뜻한다.
예컨대
감정패턴과 그에 관련된 생각형태는
심령능력자들이
원거리에서 포착해
수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실험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 과학적 근거를 밝히는 일은 첨단의 양자 물리학에서 큰 흥미를 보이는 주제가 되어있다.
감정은
진동하는 에너지 장을 방출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결정한다.
억압되거나 억제된 감정은
정신적 차원에서
우리가 겪는 삶의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즉 노여움은 노여운 생각을 끌어들인다.
마찬가지로
사랑은
사랑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내면에서 부정성을 많이 놓아버린 사람은
사랑이 담긴 생각,
사랑스러운 사건,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에
둘러쌓인다.
유유상종, 부익부빈익빈,
이미 가진 사람이
더 가진다.
따라서
의욕이 없는 사람은
삶에 빈곤한 여건을 끌어들이고,
의식에 번영이 가득한 사람은
삶에 풍요를 끌어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진동하는 에너지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은
우리의 기본적인 감정상태를 포착하고
그에 반응한다.
동물이
인간의 감정상태를
즉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박테리아의 성장이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받고,
인간의 감정상태에 따른
식물반응을 측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실험도 있다.
놓아버림 기제
놓아버림에는
어떤 감정이 있는지 알아차리기,
감정이 일어나도록 놓아두기,
감정과 함께 있기,
감정을 바꾸거나 어떻게 하려는 바람없이
감정 스스로 제갈길을 가도록 놓아두기가 포함된다.
즉
감정은 있는 그대로 놓아둔 채
단지 감정이면의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 첫 단계는
감정을 지니고 있을뿐
감정에 저항하거나
감정을 분출하거나
겁내거나 비난하지 않고
감정을 가지고
도덕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판단을 멈추고
감정은 감정일 뿐임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감정을 그저 생생히 느끼기만 하면서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노력을
모두 항복하는 것이다.
감정에
저항하고 싶은 바람을
놓아버려라.
저항때문에
감정이 지속되는 것이다.
감정에 저항하거나
감정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감정이 달라지면서
강도가 약해진다.
감정에 저항하지 않으면
감정이면의 에너지가 사라지면서
감정이 없어진다.
이 과정에 들어가보면
감정을 갖는 것 자체를 두렵고
죄송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알게된다.
즉
감정 전반에
저항이 있다.
감정이 일어나도록 놓아두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에 대한 반응부터
놓아버리면 쉽다.
쉬운 예로 우리는 두려운 감정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러니 감정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책감부터 놓아버린 다음, 감정자체에 접근한다.
놓아버릴때
모든 생각을 무시한다.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생각에는 신경을 끈다.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며
스스로 강해져
다른 생각을 더 많이 일으킬 뿐이다.
생각이란
감정이 생긴 까닭을 설명하려는
마음의 합리화에 불과하다.
감정이 생기는 진짜 원인은
감정이면에 쌓여있는 압력이
감정을 밀어붙여
특정시점에 올라오게 하는데 있다.
생각이나 마음 밖 사건은
마음이 지어내는 변명일뿐
감정의 원인이 아니다.
놓아버림에 보다 익숙해지면,
모든 부정적 감정은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관련이 있으며
모든 감정이란
마음이
생존에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점을 알게된다.
놓아버림 기법을 쓰면
프로그램이 점차 제거된다.
이 과정을 통해
감정 이면에 깔려 있는 동기가
점점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항복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
격한 감정이 없음을 뜻한다.
그런일이 생겨도 괜찮고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
자유로워지면 애착을 놓아버린다.
어떤 것을
즐길수는 있어도
그것이 행복에 꼭 필요하지는 않다.
자신 이외의 사물이나 사람에게
점점 덜 의존한다.
이러한 원리는
세상일에 애착을 갖지 말라는
부처의 근본 가르침과 일치하며
'세상속에 있되 세상의 일부가 되지 말라'는
예수의 근본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어떤 감정을 항복했는데도
그 감정이 돌아오거나
계속 이어질 때가 있다.
항복할 것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평생토록 감정을 잔뜩 쌓아 놓았기에
꽉꽉 눌러 놓은 에너지가 많을 수 있는데,
이것이 올라오게 놔두고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항복이 일어날때면
황홀경같은 경쾌한 느낌이
즉시 따른다.
우리는
계속 놓아버림으로써
이러한 자유상태에 머물 수 있다.
감정은 오고 가지만
나의 감정이 곧 나는 아니며
진짜 나는 과정을 지켜볼 뿐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더 이상
자신을 감정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자각하는 나는
늘 똑같다.
변치 않는 목격자가
존재함을 더욱 더 자각하면서
자신이 그런 의식수준에
들어섰음을 알게 된다.
갈수록 현상의 경험자가 되기보다는
현상의 목격자가 된다.
진정한 큰나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그 동안 감정에 속았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전에는
내가 감정때문에
피해를 본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감정은
나의 참 모습이 아님을 안다.
감정은
에고가 창조한 것에 불과하다.
생존에 필요한 것으로
마음이 잘못 믿었던
프로그램들을 모아 놓은 것일 뿐이다.
놓아버림은
믿기지 않을 만큼 신속하고
절묘한 결과를 가져온다.
효과 역시 강력하다.
이미 놓아버리고도
아직 놓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깨닫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어떤 것을 완전히 항복하면
그것이 의식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까닭에
사라진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의식면에서 성장중인 사람들에게
흔하다.
캐놓은 석탄을
통째로 의식하지 않는다.
지금막 푸는
한삽만 바라볼 뿐이다.
쌓였던 더미가 얼마나 줄었는지
본인은 깨닫지 못한다.
친구나 가족이
먼저 알아차릴 때가 많다.
진도파악을 위해
진전 상황을 도표로 그려 놓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하면
이거 효과 없잖아와 같은 식의 저항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엄청난 진전을 이루고도
안되는 것이라
단언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때로는 과정 시작전에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상기해야 한다.
놓아버림에 대한 저항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번번히 저항하는 에고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이 기법을 실천하다보면
회의가 들거나
항복하는 것을 잊거나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거나
감정을 표출하고 행동으로 옮겨
감정을 분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해결책은
과정 전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계속 놓아버리는 것이다.
저항감을 내버려두고 이에 저항하지 말라.
우리는 자유롭다.
놓아버릴 필요가 있다.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항감 뒤에 있는 공포를 살펴보라.
항복과정과 관련하여
과연 무엇이 겁나는 것일까?
그 공포를 기꺼이 놓아버릴 수 있겠는가?
공포가 올라올때마다
계속해서 놓아버리라.
그러면 저항이 해결된다.
letting go(놓아버림)
우리는 지금 오랜 세월
우리를
노예와 피해자로 만들어 온 프로그램을
전부 놓아버리고 있음을 잊지 말자.
그런
프로그램들에
눈이 가려
우리는 진정한 정체성의
참모습을 보지 못했다.
설자리를 점점 잃게될 에고는
우리에게 속임수를 쓰고
엄포를 놓으려 할 것이다.
우리가 놓아버림을 시작하는 순간,
에고는 죽을 날을 받아놓은 셈이며,
그 힘도 점점 줄어든다.
에고가
잘 쓰는 속임수 한가지는
기법자체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를들어
항복기제는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어떻게하는 것인지 헷갈리는데다
잊지 않고 실천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이런 단정자체가
정말로 진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또한
우리에게
에고의 속박을 잘라 내
자유를 되찾을 칼이 있으며
자기가 설자리를 잃고 있음을
에고가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에고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영화 트론에 나오는 마스터 컨트롤 프로그램처럼
에고는 갖은 프로그램을 동원해
우리의 노예상태를
유지시키고 싶어 한다.
놓아버림은 타고난 능력이다.
새롭거나 생소한 방법도 아니다.
비밀리에 전수되는 가르침도 아니고
누군가가 주창한 사상이나 신념체계도 아니다.
더욱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 내면의 본성을 활용하는 일일뿐이다.
놓아버림 기법을 실천할 때
기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실행에 옮기는 편이 낫다.
그러다 보면
모든 생각은
결국 저항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생각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게 끔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다.
얼마동안 놓아버림을 실행해서
실제로 벌어지는 바를 느끼기 시작하면
자신의 생각을 웃어넘기게 된다.
생각은
모조품이다.
실상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환상이다.
생각을 좇으면
계속해서 생각에
점유될 뿐이다.
처음 출발한
바로 그곳에
우리가 있음을 어느 날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생각은
어항속의 금붕어와 같고,
진정한 큰 나는
어항의 물과 같다.
진정한 큰나는
생각들 사이의 공간,
더욱 정확하게는 모든 생각아래에 있는
고요한 자각의 장이다.
누구나 자기가 하던 일에
완전히 몰입한 경험이 있다.
그럴때는
시간의 흐름조차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마음은 아주 고요하고
아무런 저항감이나 노력없이
그 순간에 하고 있던 일을
할 뿐이다.
행복을 느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을 수도 있다. 스트레스 없이 제구실을 다했다. 아주 느긋하면서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은 전혀 필요없음을 깨달았다.
생각은
물고기 앞의 미끼와 같다.
생각을 덥석 무는 순간
우리는 사로잡힌다.
생각이라는 미끼를 물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는 생각이 필요없다.
"자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우리 내면에는 내가 알아야할 모든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라는
진실이 있다.
이 진실은
제 스스로 성립한다.
기법의 효과가 좋은 탓에
역설적으로
항복에 저항이 생기는 일도
벌어진다.
삶이 별로 여의치 않거나
불쾌한 감정으로 괴로울때는
계속해서 놓아버림을 실천한다.
그러다 마침내
항복을 통해
곤경에서 벗어나고
만사가 순탄하면 놓아버림을 그만둔다.
이는 실수다.
느낌이 아무리 좋아도
더 놓아버릴 것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놓아버림으로써 얻은
고양상태와 탄력을 이용하여
계속 놓아버려라.
그러면
내내 더욱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놓아버림 자체에는
탄력이 생긴다.
일단 놓아버리기 시작하면
유지하기가 쉽게 된다.
고양됨을 느낄수록
놓아버리기도
수월하다.
이때가
억제되고 억압된 쓰레기 같은 어떤 것들에
손을 뻫어 놓아버릴
좋은 기회다.
의기소침할때라면
붙잡고 씨름하고 싶지 않을 것들이다.
완화시켜 항복할 만한 감정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다.
기분이 좋을때면
그런 감정을 감지하기
어려울 따름이다.
어떤 특정감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느낄때도 있다.
그럴때는
떨쳐버릴 수 없다는 느낌을
그냥 항복하라.
느낌을 그대로 놓아두고
그것에 저항하지 말라.
그래도 사라지지 않을때면
느낌을 낱낱으로 조각내
놓아버릴 수 있을지를 알아본다.
우리를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은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놓아버리면
그것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그럴때
흔히들 품고 있는 신념 몇가지를 살펴본뒤
맨 먼저 그런 신념부터
놓아버리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1) 열심히 일하고 안간힘을 쓰고 희생하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야 누릴자격이 있다.
2) 고통은 이롭고 유익한 것이다
3) 세상에 공짜는 없다
4) 아주 단순한 것은 그다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놓아버리면 더욱 쉽고 수월하고 즐겁게 항복을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계속 놓아버림으로써
자유상태에 머물수 있다.
감정은 오고가지만
나의 감정이
곧 나는 아니며
진짜 나는 감정을 지켜볼 뿐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더이상
자신을 감정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자각하는 나는 늘 똑같다.
변치않는 목격자가 존재함을
더욱더 자각하면서
자신이 높은 의식수준에 들어섰음을
알게된다.
진정한 큰 나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감정에 속았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내안의 참나
큰나
진짜 나
놓아버림과 영적 의도, 영적 헌신, 영적 봉헌
우리는
계속 놓아버림으로써
자유상태에 머물수 있다
첫댓글 감정과 정신기제 3가지 "억제, 표출, 회피"
우리는 표출 기제를 사용해 감정을 분출하거나 입밖에 내거나 몸짓으로 드러내거나 끝없는 집단시위로 보여준다. 부정적 감정을 표출해 내면의 압력을 내보내고 나면 억제할 수 있는 만큼만 남는다. 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사회에는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 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정반대
- 어떤 감정을 표출하면 그 감정은 증식되면서 더 큰 에너지를 얻는 경향이 있다. 그 감정을 표출한 까닭에 나머지 감정은 알아차릴 수 없도록 억제된다.
- 자기표출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프로이드의 저작과 정신분석을 오해한 결과!!
억압한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이 사용하는 기제 중에서 아마도 부인과 투사가 가장 널리 알려진 수단일 것이다. 이 둘은 짝을 이루어 서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부인은 정서와 성숙면에서 큰 장애를 일으킨다. 또 부인에는 으레 투사기제가 뒤따라 온다.
- 죄책감과 공포때문에 충동이나 감정을 억압하고는 그런 것이 내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스스로 충동이나 감정을 느끼는 대신 세상과 주변사람들에게 덮어씌우는 투사를 한다. 그러고는 그런 감정이 그들의 것인양 느낀다. 이제 그들은 적이 되며 마음은 투사를 강화하기 위한 정당한 이유를 찾는다.
회피는 주의를 다른데로 돌림으로써 감정에서 벗어나는 기제다. 회피는 연예사업과 주류사업을 받치는 근간인 동시에 일 중독자가 택하는 길이기도 하다. 마음속 느낌에서 달아나고 벗어나려는 기제는 사회에서 용인하는 것!
- 우리는 마음속 자아에서 벗어나고 감정이 올라오지 않도록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이런 활동에 의존할수록 활동자체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안녕하세요.
호킨스 박사님 말씀 중
'생명 있는 일체의 것들을 경외하고 사랑하라'
는 말씀이 있지요.
이 뜻을 토대로
의료 현장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환자를 치유하고
연구에 매진하시는
문형철님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지금처럼 우주의 결(logos)대로 사시다 보면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문선생님 내면의 위대한 힘을 사용 함에 있어
엄청난 지혜와 창조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우리라 믿습니다._()_
요즘 사랑 차크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암환자들의 의식수준이 공포, 두려움, 분노, 절망감에서 빠르게 용기, 자발성, 포용으로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감동적이네요 ㅎㅎㅎ
저도 작년부터 '놓아버림'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마음을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놓아버리고
를 통해
마음의 목격자로
크나큰 정신적 자유와 평화를 얻고있습니다
근데 문선생님이 '놓아버림'과 관련하여 잘 정리해 놓으셔서
더욱 도약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여
선생님 자료에 매료된 나머지
선생님이 이 카페에 올려 놓으신 '놓아버림'관련 자료 6편을
복사하여 제 블로그에 담아놓았답니다.
가만히 손 놓고 있어보니
선생님 허락도 받지 않고
욕심을 낸 것 같습니다.ㅋㅋ
'놓아버림' 관련 자료를 제가 퍼가도 되는건가요?
많은시간 공을 들여 누가 봐도 한 눈에 쏙 들어 오도록 올리신 건데
제가 노력없이 무상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제 양심이 '찜찜하다'
하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놓아버림이 답이죠 ㅎㅎㅎ
많은 사람들이 놓아버림을 통해 질병의 그늘, 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지적, 영적 성장이 되면 좋을거에요 ㅎㅎㅎ
우문현답!
알아 들었습니다^^
무단 수집하려는 욕심을 놓아버리겠습니다
대신 여기서 홀가분하게 공부하겠습니다
올려주시는 자료들
소중하게 아껴가며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어.. 아닌데...
마음껏 수집해서 널리널리 퍼뜨리세요 ㅎㅎㅎ
@문형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마음속에 품는 것에 의해서만 영향 받을 수 있다더니
실로 그러하네요ㅋ
제가 자료를 복사해 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는 상태에서 문선생님 견해를 묻다보니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해 줘도
제 마음은
'무단 수집은 알아서 하지마'
하는 인식과 함께 해석을 내렸습니다 ㅋ
생각이나 마음은 이렇게 오류에 잠겨 실상을 제멋대로 보기 십상이니
놓버림을 통해
마음 넘어의
본연의 지혜가 드러나도록
초대해야겠지요 ㅋ
동료 인류의 짐을 덜어주고자
말씀 창고를 조 건없이 열어놓아 주시니
그 은덕으로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성장해가리라 믿습니다
제가 자료를 가져가서 사용할 때엔
꼭 이곳 츌처를 밝힐게요
감사합니다_()_
ㅎㅎㅎ 그렇게 해주세요
제 카페는 귀한 자료가 많습니다 ㅎㅎㅎ
영적인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궁극의 진실을 깨닫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의식절차나 신노같은 것도 충실히 지키고 영적수련도 열성적으로 하는데, 언제나 또다시 무너지고 만다. 그런 수련이 효과가 있을때조자 에가가 재빨리 끼어들게 마련이고, 그러면 우리는 자부심에 찬 나머지 우쭐해져서 해답을 안다고 생각한다
"오, 주여. 해답을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로부터 저희를 구원하소서
"자기가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자들로부터 저희를 구원하소서
"자기딴에는 좋은 일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로부터 저희를 구원하소서"
생각이나 일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감정때문에 괴로운 것!
- 생각자체로는 괴롭지 않은데, 그 밑에 깔려 있는 감정때문에 괴로운 것.
육체적 고통이나
감정적 문제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의 90%를 차지하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는
괴로움에서 온다고 하지요......
@사랑챠크라 아..제가 그런 상황이에요..이 통증을 견뎌낼 수 있을까..못하면 어찌하나 그런 두려움과 괴로움...
"걔들 때문에 화가 나", 그 인간때문에 속상해, 그일때문에 겁이나
- 진실은 정확히 반대다. 억제되고 억압된 감정이 발산수단을 찾다가 외부사건을 방아쇠겸 핑계거리로 삼으면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기회만 생기면 증기를 내뿜으려고 벼르는 압력솥과 같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도록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있다.
아, 인간 경이로운 피조물이여! 슬프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고결한 존재여! 멈추지 않고 답을 찾아 헤매는 그 용기여! 우리는 무엇때문에 계속 답을 찾는 것일까? 고통때문일까? 맞다. 희망때문일까? 맞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저도 놓아버림을 3번째 읽고있는데 참 요약을 잘해주셔서..더 이해가 쉬워졌어요. 감사드립니다.
응원합니다 ㅎㅎㅎ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ㅎㅎㅎ
우리는 계속 놓아버림으로써 자유상태에 머물수 있다
2015년 9월
감사드립니다... 복잡한 생각이 확 걷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럼 아테네님은 영적자각이 있는분입니다.
영적의도, 영적자각, 영적 성숙, 영적 깨달음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having doing을 넘어서 being의 상태로...
우리는 계속 놓아버림으로써 자유상태에 머물수 있다
2106년 2월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지속적으로 실천해보세요.. 놀라운 경험이 함께 할거에요 ㅎㅎㅎ
2016년 7월 ..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번번히 저항하는 에고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이 기법을 실천하다보면 회의가 들거나 항복하는 것을 잊거나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거나 감정을 표출하고 행동으로 옮겨 감정을 분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해결책은 과정 전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계속 놓아버리는 것이다. 저항감을 내버려두고 이에 저항하지 말라.
놓아버림 285일째 날!!
항복상태
놓아버림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