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부삼천지교(孟父三遷之敎)
대한민국에 맹모(孟母)가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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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바람이 아니라 이제는 바지바람
이제는 아버지까지 나섰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치마바람이 어디 어제 오늘만의 문제이랴만 순수한 자식사랑을 벗어나 급기야는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작금의 상황을 풍자한 영화 '맹부삼천지교(감독 김지영)'가 바로 그것.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자면 우리나라의 현 교육 상황을 심각하게 비판하거나 고찰하는 건 아니고, 먼저 간 엄마를 대신해 홀아버지를 내세운 풍자극에 다름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해도 무방한 영화라는 소리.
억지스러운 상황을 어색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감독의 연출 역량은 좋았지만 끝으로 갈수록 뒷심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고 매달리게 되면 관객은 미리 질려버리는 법. 부성애와 가족 사랑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주입식 메시지'가 심기를 편치 않게 한다.
아버지의 부정이 조폭을 때려눕힐만큼 대단하다는 걸 내세우며 웃음과 눈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는 했으나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할 듯.
아버지는 조폭보다 쎄다?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며 죽은 아내를 대신해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사는 맹만수(조재현). 다행히도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아들 맹사성(이준)은 강북고 전교1등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던 중 손님들로부터 집, 학교, 학원이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 있어야 명문대에 합격한다는 일명 '일당십락'의 소문을 듣고, 고민 끝에 조폭들에게 사채까지 얻어 대한민국에서 아파트값이 제일 비싸다는 대치동 금싸라기 아파트의 주민이 된다.
나름대로 꼼꼼한 뒷조사 끝에 모의고사 전국1등 최현정(소이현)이 사는 앞집에 이사한 것 까진 좋았는데, 같이 살고 있는 전국 1등의 삼촌이 외지에서 쫓겨온 조폭(손창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고민하는 맹만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와 조폭과 그 똘마니들은 연일 고성방가와 술판으로 맹만수의 심기를 극한 상황까지 몰아간다. 맹목적인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오직 아들만을 위해 살던 맹만수는 마침내 교육 환경을 방해하는 이웃 조폭을 제거하기 위해 동태 대가리를 자르던 칼을 잡았으니....
손창민의 연기 변신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단연 손창민이다. 반항아 이미지이면서도 곱상하고 부드러운 만년소년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손창민이 180도 바뀐 연기를 선보인다. 온몸에 용이 날아 다니고 머리는 레옹 스타일로 한 것은 외형적인 변화일 뿐 실상 주목해야 할 것은 느끼하면서도 인정사정없는 그의 캐릭터 변화이다. 그러나 전국1등 조카 현정에게만은 항상 고분 고분하는 모습은 귀여움까지 느낄 정도.
그에 비해 조재현은 이 영화에서 평이한 연기를 펼쳤다고 볼 수 있지만 그건 영화의 캐릭터가 그렇다보니 거기에 충실했을 뿐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배우들이 그처럼 망가지는 연기를 했으면 어색할 뻔한 몇몇 장면을 나이스 캐치로 잘 잡아 내어 감독의 체면을 세웠다.
연기 경력이 오래된 배우일지라도 야누스적인 연기를 펼치는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법인데 손창민의 조카로 나오는 소이현은 신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매서움과 여린 속내를 동시에 잘 나타내고 있다. TV에서는 드라마라로 먼저 인사를 했지만 영화는 첫 신고식.
'살인의 추억'에서는 송강호와 김상경에 눌려 빛이 바랬던 워커발 형사 조용구役의 김뢰하는 큰 형님인 손창민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넘버2로 나와 경박하게 흐를 수있는 조폭들(최준용, 도기석)의 연기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다.
문제는 영화의 감초역할로 등장하는 손현주와 조재현의 아들로 나오는 이준인데, 감독은 영화속에서 이 배우들의 장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어설프게....그것도 많이 어설프게 만들어 놨다. 범생이인 맹사성역의 이준이 콘서트를 하는 장면은 전혀 감동있게 와 닿질 않고 영화속에 보너스로 끼워 놓은 뮤직비디오라는 인상만 강하게 든다. 또한 크레딧 엔딩에서의 손현주의 오버액션을 굳이 집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함부로 만들면 안된다는 생각만 굳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 저것 떠나 시장 바닥에서 깡통 도시락에 찬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조재현의 연기는 영화의 자잘한 과오를 덮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슴 찡한 장면. 중국의 수필가 주자청이 말했던가. 돌아선 아버지의 뒷모습은 언제나 서글퍼 보인다고...
그런게 아버지요 부모인가 보다....
감독 : 김지영
출연 : 조재현, 손창민, 소이현, 이준, 손현주
개봉 : 2004.3.26
*이 글은 한국일보측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http://cafe.daum.net/cine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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