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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정일상 원로칼럼란] 스크랩 설렁탕 이야기
청암/정일상 추천 0 조회 37 15.04.28 10:1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북소리·죽비소리·철부지소리(239)

 

설렁탕 이야기

 

 오늘 “보리피리” 3집 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리 약속돼 있던 친구들 세 사람과 만나 노닥거리다가 저녁 쯤, 좀 이르기는 했지만 이름난 설렁탕집을 찾아 한 그릇씩 비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소주 한 잔 곁들여서.

그런데 그 설렁탕집에 내 걸려있는 설렁탕에 관한 글은 극히 형식적이고 ‘옛날 임금이 선농제先農祭를 지내고 점심으로 내 놓은 음식‘이란 간단한 내력이 내 걸려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포스터붙이는 형식처럼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연히 그 내 걸린 글을 보고 설렁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설렁탕에 대한 내력과 그 어원을 음미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날 있었던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여 설렁탕의 어원과 우리의 고유음식으로 사랑받는 설렁탕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설농탕

우리들이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가 설렁탕이 있다. 웬만한 식당엔 설렁탕이란 메뉴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설렁탕이 대중음식으로 자리매김했고 이곳음식점에서도 설렁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이 설렁탕은 쇠고기, 소머리, 내장, 뼈다귀, 도가니, 족발 등을 푹 고아 우려낸 국물에 소면, 밥을 말아먹는 것으로 우리나라 대표음식 중 하나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후춧가루, 다진 파를 넣은 다음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란 입에 짝짝 붙는다. 한편 고기는 편육으로 만들어 놓고 뚝배기에 밥을 담아 끓는 육수를 부은 다음 고기를 얹으면 된다. 기름을 걷어내면 담백한 맛을 내고 국물이 우유처럼 뽀얗다. 이것이 설렁탕이다. 이 설렁탕엔 민족의 역사가 스며있고 민족의 애환이 스며있다.

설렁탕에 대한 유래로서 몽골에서 전해진 음식으로 공탕空湯을 뜻하며 ‘슈루’ ‘슬루’에서 온 말이란 설도 있고, 고기국물을 오랫동안 ‘설렁설렁‘ 끓인 음식이라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지만 가장 확실하고 역사적 사실을 봤을 때 조선시대의 세종대왕의 선농당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설이라 여겨진다.

 

 조선조 때의 성군聖君인 세종대왕은 해마다 곡우穀雨가 되면 선농단先農壇에서 선농제先農祭를 지냈다. 선농단은 신농神農씨와 후직后稷씨를 제사 지내던 곳이다. 그리고 임금이 춘분春分날에 이곳에서 농사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를 올리기도 했다. 여기서는 가뭄이 심할 땐 기우제를 지내가도 했던 곳이다.

 선농제를 지낼 때엔 임금의 궁궐 밖 행사라 수많은 신하와 호위병들이 따랐고 임금행차를 보기 위해 백성들도 모여들어 사람들로 넘쳐났다. 선농제를 올린 뒤 선농단 동남쪽의 적전籍田에서 왕이 소를 몰고 쟁기를 잡아 밭을 갈아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고 솔선수범하는 행사를 하거나 권농勸農에도 힘썼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서울의 지명으로서 창덕궁(비원)앞에 ‘권농동’이란지명이 있는데 이곳도 왕이 백성들에게 농사를 권했던 곳이라고 이름 붙여진 동네라는 사실史實이 남아 있기도 하다.

 

 하여간 그 행사를 진행하는 사이 점심때가 되고 임금을 비롯해 모든 참여자들에 점심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 때 생각해 낸 음식이 설렁탕이라 한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왕자신은 물론 왕의 수행원과 호위병 등 모든 참여자들이 너무 많아 정식이나 비빔밥 등으로 그 군중들을 대접하기란 역부족임을 느낀 왕실은 고민 끝에 이 설렁탕을 끓여내는 음식에 착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왕이 권농일에 내린 음식이 곧 설렁탕이었다. 그 때 국밥을 선농단에서 만든 것이라 해서 선농단선농탕, 설롱탕으로 불렸고 그 음식이 오늘날의 ‘설렁탕’이 됐다. 처음엔 설농탕이라 불렀으나 자음동화현상에 따라 ‘설렁탕’으로 바뀌었다는 게 국어 학자들의 설명이다.

 

 지금도 해마다 서울의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에선 선농제행사가 열리고 있다. 옛날 임금이 선농단서 지낸 제사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우리의 농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일찍부터 식량자급과 농경사회문화의 근간인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사상이 두드러졌고 그 시대엔 특히 농경사회의 전형적인 사회발전현상이었기에 이해가 간다.

요즘 우리나라의 설렁탕은 대중음식으로 각광받으면서 일반 식당에서의 설렁탕메뉴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고 설렁탕 전국배달 닷컴도 생겼다. 마트나 구멍가게에서 포장된 설렁탕을 손쉽게 살 수 있게까지 발전했다. 가정에서 손쉽게 설렁탕 끓이는 법까지 인터넷에 떠있을 정도이다.

 이 설렁탕에 얽힌 내 기억을 반추해보면 참 오래전의 설렁탕집이 떠오른다. 때는 1953년의 봄이었다. 내가 공군에 입대하여 유성(지금의 대전시)에 있는 공군신병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김해로 가기위해 대전역에 몇 시간 머물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열차가 자주 운행되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몇 번 정도만 운행이 되기에 이 열차를 타기위해 시간적인 여유가 꽤나 많았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돼서 같은 동료병사들과 설렁탕집에 들려 설렁탕을 시켜 먹었다. 생전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다. 그런데 그 설렁탕을 먹은 후 평생 그 맛난 음식을 대할 수 없었고 내 기억소자에 항상 그 설렁탕 맛이 살아남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전을 거치거나 근처 일이 있어 들릴 때엔 옛날 그 대전의 집을 찾아 가기고 했는데 지금도 그 설렁탕집은 규모가 엄청 커졌을 뿐만 아니라 3대째 설렁탕집 가업을 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통이란 참으로 큰 위력을 갖는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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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5.09 10:37

    첫댓글 옛날 임금님도 걱정하며 이런 음식을 개발케하여
    지금은 국민의 기호 식품이 돼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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