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6)
케이크가 된 사람
이어진(1964~ )
부드러운 시간을 베어 물면 좋겠어 납작한 코와 스펀지 같은 입 그 입이 물고 있는 초의 긴 손가락이 되어 둘러앉은 얼굴을 익히느라 움칠 촛불이 놀란다 녹아든 팔다리가 생크림 위에 앉아 밀어 올리는 촛불의 노래
이웃들이 축가를 부르는 사이 주인공의 얼굴이 붉은 공기처럼 타오른다 한 사람이 케이크 속으로 손을 넣는다 또 한 사람이 케이크 속에서 어깨를 꺼낸다 층층 겹쳐지는 단층의 시간들
모두 돌아간 뒤 한 얼굴이 생크림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누워서 생각한다
두 눈을 감고 말랑말랑해지는 사람 낯선 방문 속으로 팔과 다리를 움츠리고 녹아버린 사람 케이크가 되어 폭죽이 되어 환하게 폭발하면 좋겠어
이어진 시인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15년 《시인동네》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사과에서는 호수가 자라고』, 연구서로 「1980년대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멜랑콜리의 정치성 연구」가 있다. 유투브 채널 <이어진의 문학의 향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26번째 시는 이어진 시인의 “케이크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축제의 시간을 가지거나 축하의 자리에 초대되기도, 초대받기도 합니다. 축제나 축하의 자리는 흥을 부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케이크”와 “축가”, “촛불”입니다. 축가(춤)가 흥을 돋우는 몸짓이라면 케이크와 촛불은 축하의 의미를 더 선명히 돋보이게 합니다.
축제, 축하의 마당은 마냥 길어질 것 같지만 웃음과 축가, 어울림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밀려오는 공허함을 동반합니다.
“모두 돌아간 뒤” 공허함을 달래고자 조금 전의 일을 테이프 돌리듯 반추해보지만 “들어가 눕는다”고 상황이 역전되지는 않습니다. 쓸쓸함까지 합세하여 허전함은 더 커지고...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모래 위에 지어진 성이 아닙니다. 상상과 희망, 생각이 넘쳐서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움츠리고 녹아버린 사람”을 “폭죽”으로 만들어 “환하게 폭발”시키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케이크” 하나에서 시작된 추억이 결국에는 우주를 만들고 또 다른 세계로 우리들을 인도합니다.
오늘은 “생크림”이 가득한 “케이크” 하나를 사서 귀가할 생각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4년 1월호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