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사반은 과거 빠뎃라오의 거점 도시였으나 지금은 UXO와 항아리 평원으로 관심있는 일부 관광객이 찾는곳..
오는 방법은 라오스에서 루앙프라방이나 방비엥을 통해서 와야하고 베트남은 북부 출입국이 허용되는 관리소를 통해서 와야하는데 무조건 하루를 몽땅 투자해야합니다..
길은 있는데 거의 파손되어서 도로는 없다고 봐야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차량은 중국의 과적 물류트럭들~~
악순환의 연속이고 중국의 지원이 없으면 보수나 건설할 인프라가 전혀없는데 중국애들은 수수방관..
혹시 라오스를 방문할 계획이라도 상기 두가지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어면 패스해도 됩니다..
너무 험하고 지치는 여정이며 폰사반 도심은 매력있는 관광지가 거의 없고 서비스도 뚝 떨어져
영어로 대화되는 상대가 거의 없습니다!
먼저 UXO를 아시려면 라오스의 근세 역사를 아셔야 합니다..
폰사반 이곳의 이름을 장식하는. 것은 "비밀 전쟁(Secret War)"..
장황하지만 역사 제대로 알기 차원에서 옮겨봅니다!
관심 없으시면 당근 패쉬~~
"1950년 '레드 프린스'라 불린 쑤파누봉 왕자(Prince Souphanouvong)가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 베트남의 호치민과 함께 프랑스에 대항하면서 스스로를 '빠텟라오'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루앙프라방 왕가의 일원이었던 쑤파누봉 왕자는 베트남의 나뜨랑에서 7년 동안 살면서 호치민을 만났고 그의 정치적 동지가 되었다. 곧이어 빠텟라오의 수장이 된 쑤파누봉 왕자는, 반정부 세력을 결성하고 베트남 호치민 군대와 함께 라오스 후아판 지역을 점령한 뒤 위앙싸이에 공산정부를 설립하였다.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 라오스 국토에 주둔한 외부 세력의 철수를 결의하였고, 퐁쌀리 주와 후아판 주를 빠텟라오의 자치구역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북베트남 세력은 라오스의 동쪽 지역을 점령하고 라오스의 입헌 군주 정부에 대항하는 빠텟라오를 강력하게 지원했다.
냉전체제 속에서 라오스 내정 역시 공식적인 왕이자 중립주의자인 쑤완나푸마 왕자(Prince Souvannaphouma), 우익 세력인 짬빠싹의 분움 왕자(Prince Bun Oum), 빠텟라오의 쑤파누봉 왕자의 세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이에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이 동남아시아 조약기구 SEATO(The Sou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를 결성하고 라오스 우익 세력에 군사 원조를 시작하면서 극심한 내전이 시작되었다.
1955년 11월부터 1975년 4월까지 있었던 베트남 전쟁(2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는 북베트남과 미국과 연합군이 지원하는 남베트남 간의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졌으며 이 전쟁은 라오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으로 향하는 전쟁물자 지원이 라오스 영토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를 '호치민 트레일'이라고 하였다. 호치민 트레일은 싸완나켓 남쪽과 베트남 국경 지역의 대부분을 관통했는데 미국은 이들의 물자 지원을 중단시키기 위해 총 209만 3,100톤의 폭약과 제초제, 고엽제를 라오스 지역에 투하하였다.
하루 평균 177번, 9년 동안 8분마다 비행기 한 대 분량의 폭약이 투하된 양이라고 한다.
또한 빠텟라오 점령지인 폰싸완 지역에도 집중 포격이 이루어져, 결국 빠텟라오 수뇌부는 씨앙쿠앙 동굴로 거점을 옮기게 되었다.
미 중앙정보국은 또한 라오스 소수민족인 몽족을 동원해 빠텟라오에 대항하였는데 현재도 미국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이런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이 당시의 전쟁을 '비밀전쟁(Secret War)'이라고 부른다."
이후 이야기도 언급..
"빠텟라오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1973년에는 라오스 13개 주 중 11개 주를 장악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여 1974년 완전히 철수하였으며 빠텟라오는 푸쿤(Phoukhoune) 지역에서 정부군을 제압한 후 1975년 12월에 비엔티안으로 무혈입성하였다. 당시 정부군은 비엔티안의 입성을 미리 예고해 많은 수의 왕정인사, 공무원, 의사, 교사, 몽족 사람들이 메콩 강을 건너 태국으로 피신하였고, 이때 피난민의 수는 약 4만 5,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라오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들어서기 몇 달 전 일이었다. 쑤완나푸마 왕자의 서명이 들어 있는 초대장을 받고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70인의 왕정군 고위 관리들이 납치되다시피 폰싸완 지역으로 보내졌다. 이후로도 많은 공무원들과 군 관리들이 단지 몇 주 동안만 이루어질 세미나라는 확인을 받고 후아판, 앗따쁘, 퐁쌀리 지역의 재교육 캠프에 자원하였다.
결국 빠텟라오는 비엔티안 무혈입성에 성공하였고 왕을 폐위한 뒤 라오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을 설립하였다. 폐위된 왕과 가족 역시 재교육을 명목으로 1977년에 후아판으로 추방되었으며 1978~1981년 사이 기아로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와 같은 재교육 정책으로 약 4만 명이 추방을 당했는데, 대개 산악 지역의 수용소에 갇혀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반복적인 정치 교육과 노동을 강요받았으며, 식량을 자급자족해야 했다.
특별한 학대나 고문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대부분 기아와 말라리아 등으로 사망하였으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인해 재교육 캠프는 결국 폐쇄되었으나 아직도 몇 명의 정치범이 재교육 캠프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파누봉은 공산정권 수립후 1986년 사임할때까지 주석과 의회 의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는 화폐에 등장하는 "카이손 폼피한"이 라오스 정치를 주도합니다..
미국의 개입이 만들어낸 라오스의 아픈 역사이며 폰사반은 아직도 남아있는 "비밀전쟁"의 후유증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미국이 쏟아부은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중 "MAG UXO"라는 불발탄 제거를 위해 활동하는 NGO에 의하면 10%이상이 불발탄으로 폰사반 지역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MAG는 NGO은 명칭이며 UXO는
불발병기 (unexploded ordnance)의 약자입니다..
삶이 궁핍한 라오인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불발탄을 탐색하고 있으며 지금도 불발탄 사고로 연간 백명이상의 라오인들이 사망한다고 합니다..
NGO들은 국제적으로 폰사반의 실태를 알리기 의해서 노력하나 미국이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비밀 전쟁"이 되다보니 정당한 경로의 후원은 전무한 실정..ㅠㅠ
도심에는 MAG UXO 안내센터가 있는데 삼층 건물을 사용중이며 1층은 전시관으로 운영중~~
입장은 무료이며 지역을 돕기위한 도네이션을 홍보하는데 자발적으로 진행됩니다..
라오스와 전세계에서 MAG가 활동하는데 주력 활동 국가가 미국이군요!
미국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전 세계 각처를 전쟁처로 만들고 폭탄을 쏟아붙고 뜻있는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만든 "똥덩어리" 처리하고~~
재미 있는 나라입니다..
항아리 평원이나 도심 외곽을 돌아보면 폭탄폭발흔적인 "BOMB CREATER"는 사람 수보다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살아 남았지만 먹고 살아야하니 서양이나 특히 미국에 대한 눈에 보이는 거부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속은 제가 모르니..)
돌항아리 평원에서 비포장으로 5km 정도를 들어가면 SPOON VILLAGE라는 슬픈 마을이 있습니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으니 불발탄을 수집 해체하여 생을 영위하는데 포탄 중간의 알미늄으로 재래 대장간 방식으로 스푼과 조그마한 소품을 만들어서 관광객에게 판매합니다..
스푼하나 5백원선~~
조악한 품질으로 사용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나 DONATION 차원에서 몇개 구입했습니다..
이런장소를 찾는 이들도 대부분 서양인들..
이런 생활을 만든 것도 제국주의부터 시작된 서양인들의 만행에서 비롯된 것~~
관광온 서양인들 죄책감보다는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표정이 대부분~~
어릴때부터 세뇌된 "인종 우월 주의"가 쉽게 바뀌지가 않겠죠~~
시내를 돌아보면 불발탄을 문입구에 전시하고 있거나 집에도 몇개씩은 가지고 사는 동네가 폰사반(시엥 쿠앙)입니다!
아침 문을 연 여행사를 찾느라고 일찍 기상했는데 궁즉통~~
툭툭 기사가 업체를 소개해서 겨우 해결~~
스쿠터로 돌아보았는데 차량이 만들어내는 먼지에 귀가하니 옷이 황색으로 변했습니다..ㅎ
간혹 보이는 서양인 관광객들~~
개별 여행객은 전혀 없고 단체버스로 이동하는 중장년층들 뿐입니다..
폰사반은 일반적인 관광객이 찾는 관광 도시는 아닙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