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들여다보고, 잘 생각해보니 분명 그 건방진 여자 애가 맞다. 아마 나에게 재수 없는 놈이
라고 했었지. 그, 그런데 얘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지혜는 내 당황하는 표정에 그저 피식 미소 지을 뿐이다.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본다.
"나는 알 줄 알았는데…. 지혜 양과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아직 몰랐던 거니?"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다시 지혜를 바라본다. 점심 때 그 깻잎머리 소녀는 어디 가고, 이제는 요
조숙녀라니. 저 수줍은 미소가 내숭이란 걸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그 옆에 아줌마는 입가에 씁
쓸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마 내가 지혜를 알아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지혜 양이 많이 예뻐졌어요, 사부인."
"호호호. 저도 모르게 갈수록 이렇게 예뻐지네요."
앞에 놓인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입술을 씰룩거리며 곁눈질로 지혜를 바라본다. 어머니와
저 아줌마는 다시 아줌마모드로 들어가 그 특유의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이런 나를 보며 지혜는
그저 웃고 있을 따름이다. 정말 이상하다. 낮에는 그렇게 사납게 굴더니, 일부러 그랬던 것일까.
눈치 보듯 다시 지혜를 힐끔 바라본다.
쿵, 심장이 내려앉는다. 역시 내가 아까 봤었던 그 애가 분명하다. 갑자기 두 눈 동그랗게 치켜 뜨
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날 쳐다보는 표정이 가히 왕눈이 귀신이라 해도 무방하다. 놀란 나머지
난 재빨리 고개를 돌린다.
"안 그러니, 지혜야?"
언제 그랬었냐 듯, 다시 요조숙녀의 얼굴로 돌아온 지혜. 정말 저런 내숭도 없을 것이다.
"네?"
"너희들도 이제 내년이면 성년이니, 내년에 약혼식을 치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야, 약혼식! 약혼식이 누구 집 개 이름인가. 지금 내 나이가 19살이니, 정말로 내년이면 성년이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난 것이다. 10대여, 안녕이군. 하지만 20대부터가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다. 그런데 약혼식이라니 말도 안 된다.
지혜의 양 볼이 붉게 물들었다. 뭐라고 항의라도 하고 싶지만, 난 묵묵히 물 잔만 기울일 뿐이다.
그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줌마 사이에서 어떻게 말이 끝난 것 같다. 정말로 내년에 약혼식을 하면
어떡하지. 당연히 나는 마음이 없지만, 저쪽 지혜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은데, 이건 완전 정략
약혼이 아닌가.
곧 음식이 앞에 놓여진다. 냄새가 참 구수하다. 어머니와 아줌마는 그 와중에도 수다를 떨고 있다.
음식 매너 하나만은 정말로 둘 다 뛰어난 것 같다.
왼쪽 손목에 차여있는 시계를 바라본다. 7시 30분이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된 것이다. 7시에 들레
와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내가 보낸 음성메시지 들었겠지? 그럴 거야. 아니, 꼭 그래야만 돼.
앞에 놓인 비싼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 아니,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옳은 말일 것이다. 그래
도 예의 상 몇 조각 잘라 입에 집어넣는다. 시선은 오직 시계에 닿아있다. 1분 1초가 지나갈 때마
다 난 더욱 더 초조해져 간다.
"애들이 쑥스러움을 많이 타네요. 호호."
7시 45분이다. 나는 들레가 내 음성메시지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 가슴은 더욱더 초조하다.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 말만 하고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심장이 미어져 터질 것만 같다. 내 심장이 뛴다. 그리고
내 다리도 뛴다.
밖으로 빠져 나왔다.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바닥을 때리고 있다. 설마하니 들레가 기다리고 있을
까, 아마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 세찬 빗속을 뚫고 달려가는 것은 무섭지 않다. 다만 들레가 무척이나 걱정이 된다. 몸은 그렇
지 않지만, 지금 이 마음만은 예전 박종탁이 되어 들레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이 슬프다. 나
때문에 많이 아파할 들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터질 것만 같다.
"천상재, 잠깐만!"
들려오는 소리에 뒤를 쳐다본다. 그곳에는 지혜가 서 있다.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알고 있
을까.
"어디 가는 거야!"
해줄 말이 없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그으며 난 바로 빗속으로 뛰어든다. 세찬 빗줄기가 온 몸을
강타한다.
몇 초 뛰지도 않았건만, 벌써 온 몸이 축축이 젖었다. 그런 건 상관없다. 지금은 오직 들레만 생각
날 뿐이다.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여자, 내가 지켜줘야만 될 여자, 하지만 지금은 불쌍한 한 가녀린
여인.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른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
아직도 핸드폰이 꺼져있다. 아직 내 음성메시지를 못 들은 것이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
몸으로 들어와 들레와 만난 시간은 별로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들레는 나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냥 갔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왠지 마음속은 그렇지가 않다.
여기서 들레와 만나기로 한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20분 거리다. 택시를 타면 금방이지만, 지금 내
수중엔 돈이 없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에겐 지금 무엇을 타고 가야된다는 생각조차 미치지 못하
고 있다. 그저 들레만 생각하면 달리는 것이다.
이제는 확신이 섰다. 들레는 기다릴 것이라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내 온 몸이 그렇게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 들레야.'
잠시 스쳐갈 소나기가 아니었다. 벌써 몇 시간 째 이렇게 굵은 빗줄기가 땅에 퍼붓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주위를 감쌌다. 달도, 별도 오늘만은 볼 수 없을 듯하였다.
민들레는 그 끊이지 않는 빗줄기 속에 서 있었다. 노란 우산을 쓰고 이렇게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모른다. 주위에는 비를 피하기 위한 빠른 걸음들과, 낭만을 즐기는 연인들이 길을 오가고 있었다.
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 빗물을 휘날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들레는 왼쪽 손목을 들어 시계를 바라봤다. 8시 10분이었다. 상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7시인 것
을 미루어보면 벌써 1시간 30분이나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금
더 먼저 일찍 왔기에 2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리가 저려도 어디 앉을 만한 곳이 있지 않았다.
들레는 자신이 왜 그를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왠지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꼭 뭔가 후회할 것만 같았다.
종탁도 늘 이랬다. 꼭 약속 시간이 1시간은 오버해야 나타났다. 지금 들레는 종탁에게 많이 미안
해했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녀가 목숨보다 사랑했던 남자였다.
언제부턴가 들레는 상재에게서 뭔가 끊을 수 없는 것을 느꼈다. 그건 무엇보다 큰사랑이고, 자신
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의 체온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하였다.
이제는 집에 가고 싶었다. 5분만 더, 10분만 더, 이렇게 기다린 것이 벌써 2시간 째였다.
걱정이 되는 들레였다. 혹시나 상재에게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닐까, 내심 조마조마하였다. 그
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좋아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뭔지 모르는 이끌림이라고. 하지만 그녀
의 몸은 상재를 향한 모든 생각과 느낌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시계를 한 번 더 바라본 들레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기간도 이제 막바지에 달했는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막 그녀가 발을 때려 할 때였다. 저기 빗줄기 사이로 흐릿한 한 남자의 형태가 드러났다.
'종탁이?'
흐릿하게나마 들레의 두 눈가에 그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그녀가 너무도 보고싶었던 얼굴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절대 잊혀질 수 없는 그리운 얼굴이었다.
들고 있던 우산이 바닥에 떨어졌다. 빗물이 머리카락을 금세 다 젖혔다. 얼굴에 흐르는 빗물 사이
로 그녀의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들레야!"
온 몸이 빗물에 흠뻑 젖었다. 그래도 난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곧 들레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였다.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들레는 그곳에 서 있었다.
"들레야!"
들레의 몸도 빗물에 흠뻑 젖어있다. 그 밑에 우산이 떨어져 있다. 난 들레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꼭 끌어안는다.
"왜, 왜 기다렸어. 그냥 가야지, 바보야. 너 정말 바보야! 나 같은 놈 만나려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
는 거였어? 왜 그랬어. 그냥 가야지. 그냥 가야 내가 안 미안한데, 그냥 가야지 내 속마음이 편한
데, 이 바보야. 내가 너한테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이걸 어떻게 다 갚아야할 지 모르겠어. 넌 모
르겠지만, 난 너한테 항상 미안해. 또…, 많이… 사……."
"흑… 상재야, 내가 미안해. 나 너만 보면 종탁이가 생각나서 자꾸만 눈물이 나와. 너를 보면 종탁
이가 떠올라. 자꾸만 겹쳐 보여. 우리 종탁이 정말 불쌍한 놈인데, 하고 싶다던 일도 못하고 그렇
게 갔는데, 난 해준 것도 하나도 없어. 너만, 너만 보면 자꾸만 종탁이가 생각나. 그래서 미칠 것
같아. 넌 분명히 상재잖아. 종탁이가 아니잖아.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들레가 내 가슴을 밀치며 돌아선다. 그랬구나. 내가 잘못한 거였어. 난 내 죄를 그냥 속죄하고 싶
었을 뿐인데, 그게 더 들레 마음을 아프게 한 거였어. 하지만 난 들레가 예전의 박종탁을 잊지 않
았으면 한다.
'나 여기 있잖아. 바로 네 앞에 있잖아, 바보야. 박종탁 네 앞에 있잖아. 이렇게 울고 있잖아. 너
때문에 울고 있잖아.'
빗물에 내 눈물이 감춰진다. 다행이다. 이런 내 눈물을 들레가 볼 수 없어서, 혹시나 내 마음을 들
킬 걱정이 없어서 다행이다.
"미안해, 상재야."
들레가 달려간다. 이렇게 그냥 가도록 놓아줄 수는 없다. 내가 다 미안한데, 왜 네가 미안해하는
거야. 달려가는 들레의 어깨를 붙잡는다.
"박종탁 그 새끼 너한테 잘한 거 아무 것도 없어. 그냥 너만 좋아한 거야. 그 새끼 친구 때문에
목숨 버렸어. 넌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죽어버린 새끼야. 그런 새끼 아직도 좋아하는 거야? 그냥
잊어. 제발 잊어. 그딴 새끼 다 잊어버리란 말야!"
짝, 들레의 손이 내 뺨을 때린다. 너도 슬프지? 그런데 내가 더 슬픈 것 같아, 들레야. 나 너한테
모든 걸 내어줄 수도 있어. 네가 사랑한 만큼보다 내가 너 더 많이 사랑했던 거 알아? 마지막 죽
는 순간에 너 생각나서 얼마나 슬펐는데. 그런데 지금 이런 네 모습을 보니 그냥 네가 종탁이, 아
니, 나 잊어버렸으면 좋겠어. 매일 울잖아. 나 때문에 매일 울잖아.
나라고 좋겠는가. 이런 말은 나도 하기 싫다. 나 자신을 버리는 것이기에, 점점 잊혀져 가는 내 자
신을 거부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겁이 난다. 예전에 내 모습을 모두 잃어버릴까, 겁이 난
다.
울고 있는데, 울고 있지 않은 것만 같다. 그냥 너도 비가 되어라. 눈물하지 말고 그냥 비가 되어
라. 그게 더 좋을 거야.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들레는 다시 뒤돌아 걸어간다. 붙잡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떠나는
그녀를 그저 눈물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너무도 비참하다. 미안해 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저주스럽다.
"그냥 나 죽은 걸로 하지. 그냥 나 아무 것도 생각 안 나게 죽은 걸로 하지. 아니면 정말로 기억
을 지워버리지. 왜……,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서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첫댓글죄송합니다.이 글을 읽으신 분은 지금20곳에 올리셔야 합니다. 저도 당했습니다.... 믿긴어렵겠지만,이글을 읽고 글을 안올리면 3시간 안에 모든 가족이 죽습니다.... 우습개 들릴지 몰라도 이건 진짜입니다. 몇일전에도 이 글을 어긴 사람의 일가족 모두가 원인모를 바이러스로 죽었다 [
첫댓글 죄송합니다.이 글을 읽으신 분은 지금20곳에 올리셔야 합니다. 저도 당했습니다.... 믿긴어렵겠지만,이글을 읽고 글을 안올리면 3시간 안에 모든 가족이 죽습니다.... 우습개 들릴지 몰라도 이건 진짜입니다. 몇일전에도 이 글을 어긴 사람의 일가족 모두가 원인모를 바이러스로 죽었다 [
ㅋㅋㅋㅋㅋㅋ 재밋냐 -0 -;
그런해괴망측한건 이제 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