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의 진취(眞趣)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뒤 늦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일명 도망(悼亡)
聊得月老訴冥府 (요득월로소명부)
來世夫妻易地爲 (내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천리외)
使君知有此心悲 (사군지유차심비)
월하노인 통해서 저승세계에 하소연해서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부부의 지위를 바꾸어 놓으리라.
나는 죽고 그대는 천리 밖에 살아 있어
그대에게 이 내 비통한 심정을 알게 하리라.
추사는 15세 되던 1800년에 이희민(李羲民)의 딸인 한산 이씨(韓山李氏)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1805년 부친이 과거에 급제하는 큰 경사가 생긴 바로 그 해, 추사의 부인 한산 이씨가 스무 살 나이에 갑자기 타계했다. 1808년 23세 때 추사는 이병현(李秉鉉)의 딸 예안 이씨(醴安李氏)를 둘째부인으로 맞아 들였다. 추사는 예안 이씨와 금슬이 어지간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미술사학자(美術史學者) (崔完秀)선생은 추사의 재혼을 일러 “은반지를 잃고 오히려 금반지를 얻은 기쁨이 있었던 듯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추사가 제주로 유배 온 지 2년이 조금 지났을 때인 1842년 11월 13일 남달리 금슬이 좋았고, 귀양살이에 필요한 옷가지와 음식을 챙겨주던 아내 예안 이씨가 지병으로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추사와 34년 고락을 함께한 그녀의 나이는 55세였다. 추사가 그 부음을 들은 것은 한 달 뒤인 12월 15일이었다. 부음을 듣고 추사는 충청도 본가를 향해 엎드려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추사는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눈물의 애서문(哀逝文)을 지었다. 추사는 애서문 앞에 머리글을 먼저 차분히 적은 뒤 통곡의 제문(祭文)을 지어 아내를 잃은 아픔과 인생의 허망함, 앞날에 대한 걱정을 담고 있다.
<부인 예안 이씨 애서문>
임인년 11월 을사삭(乙巳朔) 13일 정사(丁巳)에 부인이 예산의 집에서 일생을 마쳤으나 다음 달 을해삭(乙亥朔) 15일 기축(己丑)의 저녁에야 비로소 부고가 해상(海上)에서 전해 왔다. 그래서 지아비 김정희는 위패(位牌)를 설치하여 곡을 하고 생리(生離)와 사별(死別)을 비참히 여긴다. 영영 가서 돌이킬 수 없음을 느끼면서 두어 줄의 글을 엮어 본가에 부치어 이 글이 당도하는 날 제물을 차리고 영궤(靈几) 앞에 고하는 바이다.
어허! 어허! 나는 형틀 앞에 있고 큰 고개와 큰 바다가 뒤를 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부인의 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어 매자해도 길이 없으니 이는 어인 까닭인지요.
어허! 어허! 무릇 사람이 다 죽어갈망정 유독 부인만은 죽어서는 안 될 처지가 아니겠소. 죽어서는 안 될 처지인데도 죽었기 때문에 죽어서도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더없는 원한을 품어서 장차 뿜으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남편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겠기에 형틀보다도, 큰 고개와 큰 바다보다도 더욱 심했던 게 아니겠소.......
예전에 나는 희롱조로 말하기를 “부인이 만약 죽는다면 내가먼저 죽는 것이 도리어 낫지 않겠소?”라고 했더니 부인은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크게 놀라 곧장 기를 가리고 멀리 달아나서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요. 이는 진실로 세속의 부녀들이 크게 꺼리는 대목이지만, 그 실상을 따져보면 이와 같을지니 내 말이 다 희롱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소.
지금 끝내 부인이 먼저 죽고 말았으니 먼저 죽어가는 것이 무엇이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나로 하여금 두 눈만 빤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이오. 푸른 바다와 같이,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다함이 없을 따름이외다.(‘오성수’님의 ‘한시(漢詩) 99편’에서 옮김)
추사(秋史)의 시를 읽다가 울컥 슬픔이 솟아올라 그만 눈물을 쏟을 뻔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추사의 아내 사랑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시를 읽는 가운데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사의 절절한 마음이 이입(移入)되었는지, 혹은 아내 사랑에 대한 자격지심(自激之心)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음 생애에서는 부부의 지위를 바꾸어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된 아내에게 아내 잃은 애통함이 얼마나 지극한가를 알려 주고 싶습니다.” 이 얼마나 절절한 애부가(愛婦歌)입니까? 부부유별(夫婦有別)의 경직된 유교사회에서 이 얼마나 애틋한 아내 사랑입니까? 사랑의 표현이 일상화 되고 자연스러운 요즘의 어느 남편이 부른 노래라면 이렇게까지 심금을 울리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추사의 ‘도망(悼亡)’에서는 천리 밖 유배지의 고통과 아픔, 아내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남편의 슬픔,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인한 절망감, 그리고 각별한 사랑의 깊이 등이 행간(行間)마다 짙게 묻어나고 있습니다.
첫댓글 잔잔한 감흥이 오는 그런 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