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입대를 약속 했다가 미국 시민권을 따 버리고만 가수 유승준 사건은 사람들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 준 줄로 안다.
누구 보다도 그의 노래를 좋아하여 따르던 많은 팬들이 겪었을 갈등은 일반인들로서는 짐작키 어려운 것이었으리라.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팬으로 남겠다는 열성 팬들과 실망의 발길을 돌린 팬들로 두쪽이 나고 말았다.
일반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도 컸던것 같다. 부모를 따라 이민 갔던 아이가 재능 있는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 조국의 무대로 돌아와 뛰는 모양을 보았을 때 '역시 피는 못 속여'라고 하며 대견해 하였을 것이 아닌가. 더구나 영장이 나오면 꼭 군에 입대하겠다고 거듭 약속하는 모양을 보았을 때의 뿌듯함은 그대로 감격이었으리라. 그런데 하루 아침에 약속을 어기고 미국 시민권을 따버리고 말았으니 그 배신감이 얼마나 컷겠는가?
유승준 사건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많은 고민을 안겨 준 줄로 안다. 가수 유승준은 평소 무대에 설 때 마다 자주 하나님을 찾았다. 한 사람의 공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거듭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는 듣는 청중에 앞서 그가 믿는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이 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랬던 그가 공약(?)을 어기므로 온 나라 안을 벌집 쑤시듯 하고 말았으니 같은 기독교인으로 받은 충격이 어떠하였겠는가? 하늘 보기 민망 하였을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당장에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세간의 손가락질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가수 유승준 사건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갈등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팬들과 일반 국민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래도 그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공개적으로 내 놓고 도리깨질이라도 해 볼 수 있었지만 눈알이 튀어 나올듯한 고통을 안고서도 말 한마디 못한채 냉가슴만 앓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으니 다른 사람 아닌 1천만에 육박하고 있다는 지구촌 각처의 해외 동포들이었다.
마침내 조국 정부가 '입국 거부'라는 법정 최고형(?)으로 그에 대한 최종 매질을 결정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때 1천만 해외 동포가 느낀 '가슴 철렁한 충격'은 해외 동포들만이 아는 아픔이었을까? 그것은 가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가수 유승준에 대한 조국 정부의 '입국 거부' 라는 매질은 해외 1천만 동포들에게는 유승준 개인의 종아리만 때리는 매질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조국이 그에게 내린 최종적인 죄명은 그가 '외국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으니까! 해외 1천만 한국인들은 유승준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루 아침에 조국으로 부터 '외국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과연 외국인인가? 우리는 과연 외국인인가? 우리는 과연 외국인인가?'
나는 1천만 해외 동포들에게 묻고 싶다. 천만번 물어도 어찌 이 아픔이 가시랴만!
나는 조국의 품을 떠나 산 설고 물 선 이민길에 오른 순간 부터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까지 한시도 내 어머니 조국을 잊어본 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조국을 멀리 떠나 살아 보았기 때문에 조국에 대한 모성적 그리움도 더 하였고 그래서 조국에 대한 혈통적 충성심도 더 하게 되었다고 자부 할 수 있다.
해외 동포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거주지의 신분 증명서를 초월하는 사랑이다. 나는 1천만 해외 동포들도 다 나와 같은 심정으로 날마다 창문을 조국 쪽으로 열어 놓고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해외 거주자라는 신분 때문에 유승준과 함께 하루 아침에 입국 거부를 당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어디다 대고 하소연 할 곳 조차 없는 '외국인' 천애고아들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물론 유승준 사건으로 인해서 가장 뼈 아픈 고민을 하고 가장 현실적인 고통을 겪었을 당사자는 다름 아닌 조국 정부였을 줄로 안다. 조국 정부의 입장은 실로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울고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우는' 격이었을 것임을 어찌 짐작치 못하였다 하겠는가? 그러나 조국이 내린 최종 결정은 오히려 조국이 과연 이 사건을 놓고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울고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우는' 고뇌를 하기는 하였는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실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조국의 최종 결정은 '품 안에 있는 자식만 자식이고 밖에 있는 자식은 자식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찌 이 같은 극약 처방이 있을 수 있단 말인고!
어머니! 어머니! 내 어머니 조국이시여! 이것이 웬일이란 말이옵니까? 우리 민족은 5천년 동안이나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 가 없는 어미 사랑으로 암닭이 병아리를 품듯 한민족을 조국의 한품에 품어 왔습니다. 비록 가끔씩 아주 못된 자식이 나타나 더 이상 품어 줄 남은 손가락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하더라도 조국은 '미운 자식에게 떡 한개 더 주는' 초월적 사랑으로 끝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천만 해외 거주 동포들의 목에 하루 아침에 '외국인'이라는 주홍 글씨를 걸어 놓으시다니요! 이것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옵니까?
어머니는 이 시대 해외 동포 1천만의 의미를 진정 모르신단 말이옵니까? 대한민국은 그 머리를 백두산을 베게 삼아 베고 누우면 그 다리가 제주도 한라산에 복숭아 뼈가 걸리는 작은 국토를 가진 나라 입니다. 더구나 지난 반세기 동안은 남북이 허리가 잘려 마치 어머니 자궁 속의 어린 아이 같은 모양으로 웅크리고 살아온 우리들 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은 '좁은 국토에 입이 너무 많아서' 라는 데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처지 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난 5천년 동안 한반도로 결정 지어져 온 우리의 국토를 넓혀 갈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마음은 넓혀 갈 수 있고 민족의 정신은 해외로 해외로 뻗어 나갈 수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지구촌 각처로, 동서는 물론 저 얼음의 나라 남극과 북극에 이르기 까지 한국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할 정도로 지구촌 각처로 뻗어 나가고 있는 1천만 해외 동포들이 누구 입니까? 바로 저들이 해외로 뻗어 나가는 이 민족의 마음이며 그 정신의 담쟁이 넝쿨이 아닙니까? 한국인이 가는 곳을 따라 대한민국의 상권이 뻗어가고, 한국인이 가는 곳을 따라 한류문화 열풍이 파도치며, 한국인의 발길이 가 닿는 곳 만큼 대한민국의 정치력이 뻗혀간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진정 모르신다 하시겠습니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은 지구촌 인류가 오랜 세월 공동으로 가꾸어 온 지구촌 삶의 방식의 기본 상식 입니다. 그 말의 근본된 뜻은 잠시 거쳐 가는 길이든 얼마동안 머믈러 살든 그 땅의 주인의식의 일부를 나누어 가지고 살 줄 알아야 된다는 데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 주인 의식이란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 일과성의 사소한 여행 규칙을 지키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그 나라 거주자로서의 신분 증명서를 취득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천만 해외 동포가 로마에 가서 로마의 법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이 조국을 배신 하는 일이 된단 말입니까? 그것이 조국으로 부터 '외국인'이라는 주홍글씨를 목에 걸어야 하는 처벌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대한민국은 그렇게 쇄국적 민족주의의 포로 입니까?
한 사람의 한국인이 로마에 가서 로마 법을 따라 살지 않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며 제멋대로 살다가 쫒겨나게 된다면 그것이 누구의 부끄러움이 됩니까? 대한민국은 자국민이 로마에 가서 로마법을 따라 살지 않고 제멋대로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며 살다가 쫒겨나는 것이 자랑이 됩니까, 아니면 모범 시민으로 칭찬 들으며 사는 것이 자랑이 됩니까?
1천만 해외 동포들의 거주국 신분증은 로마에 가서 로마법을 따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해외 동포 1천만은 천만번 다시 말 해도 대한민국 국민 일 뿐 입니다. 물론 그 '로마인 신분증'을 개인적인 사욕을 위해 악용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같은 '로마인 신분증'을 악용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벌은 당현히 '로마인 신분증'을 악용한 그 일에 대해서만 벌을 주어야 할 것이고 그 대상도 그 일을 행안 그 당사자 개인에게만 내려져야 할 것 입니다. 그래야 민주주의 입니다. 그런데 철 없는 한 청년의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에 대한 벌로 전체 1천만 해외 동포들을 한꺼번에 묶어 그 목에 '외국인'이라는 주홍글씨를 거는 청천 벽력 같은 벌을 내리시다니요? 어머니,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새끼들이 비록 철이 없어서 5천년이라는 역사의 나이를 먹고서도 아직도 노론 소론 남인 북인 하던 버릇에서 못 벗어나 전라도니 경상도니 자기들 끼리 쌈질을 그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에미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입술이 터져 피가 나도록 악물고 절대로 편가르식의 말이나 결정은 끝까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옵까?
조국은 이제라도 가 없는 어머니의 사랑의 마음으로 가수 유승준을 다시 품에 품으라! 자식에 대한 사랑의 매질이 참된 사랑의 매질이 되려 한다면 반드시 매질을 멈추고 끌어 안는 일이 있어야지만 된다. 끌어 안는 일이 없는 매질은 사랑의 매질이 아닌 폭력이 될 뿐이다.
가수 유승준은 아직 소년 티 조차 채 가시지 않은 철 없는 이 민족의 한 아이일 뿐이다. 더구나 그가 저지른 잘못은 국체의 안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불순한 사상에 연유된 잘못이 아니다. 만약 그의 잘못이 그 같은 사상에 연류된 것이라면 그에 대한 '입국 거부'는 그 개인에 대한 입국 거부가 아닌 그 뒤에 있는 불순 사상 집단에 대한 입국 거부가 될 것이므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유승준은 단지 재능 있는 한 가수였을 뿐이다. 그가 저지른 잘못이 비록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관계된 일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유승준이라는 한 개인의 잘못으로 처리 되어야 민주주의다. 그가 군 입대 약속을 어기는 방법이 '로마인' 신분증이었다 하더라도 그것도 여전히 그 개인이 저지른 잘못일 뿐 전체 1천만 해외 동포가 공동으로 저지른 잘못은 아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한 개인의 잘못에 대한 죄명을 정함에 있어서 만에 하나라도 죄 없는 같은 마을 사람들 까지 끌고 들어 갈 위험이 있는 죄명은 끝까지 피하였어야 옳았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모국'이라고 한 목소리로 부르며 그리워 하는 조국 어머니의 자식 사랑 방법이 아니겠는가?
유승준이 저지른 잘못이 전체 조국의 젊은이들의 군복부 의욕에 찬물을 껴 얹을 위험이 있다는 정부의 논리도 그리 적절한 것은 못되었다. 물론 얼마간의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은 '정부 차원'에서 내 놓을 수 있을 만큼 어른스럽거나 성숙한 논리는 못되는 것이었다. 현 정부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정신 머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내 조국의 젊은이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직접 묻고 싶다. 너희들이 설마 그렇게 까지 나약한 정신 머리의 젊은이들이었더란 말이냐? 그리하여 좌도 우도 분간 하지 못할 정도란 말이냐? 한 젊은이가 결과적으로 조국에의 충성심을 배신한 결과를 낳은 잘못된 결정을 보고 거기에 바른 판단을 내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의지를 다질 능력 조차 없을 정도였더란 말이냐? 그리하여 그 잘못된 한 청년의 행위를 본 받아 너희들도 우루루 군 복무 의욕을 잃어버릴 정도로 내 조국 대한민국의 정신 머리가 그정도 밖에 안 되는 허약한 것이었더란 말이냐?
조국은 유승준 문제의 처리를 앞에 두고 1천만 해외 동포에 대한 어머니 같은 사랑 쪽에도 같은 무게를 두고 그 죄명을 결정 했어야 옳았다. '솔로몬의 재판' 까지 끌어다 대지 않더라도 조국의 지구촌 자국민 끌어안기 사랑은 도둑놈 아들이라도 땅끝까지 쫓아가 끝내 품에 안고 돌아오는 다함 없는 어머니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조국은 이제라도 철 없는 한 어린 청년으로 말미암아 1천만 해외 동포에게 까지 내린 혈통적, 정신적 폭력을 중단하고 유승준을 다시 품에 품으라! 조국이 유승준을 끌어 안는 것은 유승준 개인을 끌어 안는 것이 아니라 1천만 해외 동포를 끌어 안는 일이 됨을 깊히 숙고 해야 될 것이다. 현 정부가 이제라도 유승준 사건을 지구촌 한민족의 결속을 다지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지혜 있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