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에 왜 정권 실세들이 쇠고랑을 차나?
[PF폭탄이 터진다·②] 권력형 게이트와 PF의 상관관계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은 퇴출 위기에 처한 제일저축은행 구명 로비를 벌이다가 구속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 처남인 김재홍 씨에게 4억 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의 손윗 동서 황태섭 씨를 제일저축은행 고문으로 앉혔다. 유 회장은 황 씨에게 사무실을 제공하고 억 대의 고문료를 지급했다. 유동천 회장 때문에 새누리당 정형근 전 의원,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 등이 수사를 받았다. 야권 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법정에 서야 했다.
삼화저축은행.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부인인 서향희 씨가 고문변호사였다. 수 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경우 부실 덩어리 삼화저축은행 고문을 맡았다는 이유로 청와대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사위 전종화 씨는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회장, 브로커 이철수 씨, MB의 보좌관 출신이었던 윤만석 씨와 함께 삼화저축은행 인수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프라임저축은행.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영업정지된 프라임저축은행으로부터 퇴출을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관련해 이상득 의원의 '장롱 속 7억 원'이 주목을 받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리고 2011년을 뒤흔든 스캔들 중심에 있던 부산저축은행. 'BBK 소방수'로 2007년 대선 때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구속됐다. 그는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를 받고 감사원 감사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비 대가가 '물방울 다이아'였다는 말까지 나왔다. 감사관들은 "은진수 위원은 감사위원이 아니라 브로커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은진수 전 위원에게 로비를 받았다고 지목된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은 불구속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부산저축은행 브로커 박태규 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청와대 김두우 전 수석은 구속됐고, 김해수 전 정무비서관은 징역형을 받았다. 부산저축은행을 감시했어야 할 금융 당국 고위 공무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 즈음, 김황식 국무총리는 "저축은행 사태는 전적으로 금융 당국 책임"이라고 탄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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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구속, 혹은 기소된 은진수 전 감사위원과 김해수 전 정무비서관 ⓒ연합 |
PF는 어떻게 '비리'로 연결되는가?'고위험 고소득'을 추구하는 저축은행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측근들이 줄줄이 연루됐고, 정치권에서 힘 깨나 쓴다는 거물들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문가들은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관련 고위험 금융
상품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PF
대출이 부실로 이어지고, 부실이 곧 비리로 이어지는 사례는 무더기로
입증되고 있다.
여기에 비리를 덮기 위한 또 다른 비리가 이어지면 악순환의 덫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상호
신용금고는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2005년 12월 금융당국은 감독 규정을 바꿔, 사모투자
펀드 투자 등을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여신비율 8%이하, BIS비율 8%이상인 저축은행을 우량은행으로 규정한 '88클럽'에 해당하는 곳에 대규모
대출이 가능하도록 허가했다. 저축은행 간 인수
합병을 가능케 해 덩치를 불릴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서 저축은행은
부동산 PF대출에 대거 뛰어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퇴직한 금융당국 고위 공무원들이 저축은행 고문, 감사,
주주로 들어간다. 감독
기능은
무력화된다.
2007년 6월 상호
저축은행중앙회가 'PF 대출 취급규정'을 만들면서 PF
대출은 빠르게 확산됐다. 지난해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2010년 말 기준으로 PF대출 비중이 73.4%에 달하기도 했다. 이는 2011년 '부산저축은행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무분별한 대출이 이뤄지면서 부산저축은행은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포스텍, 삼성꿈장학재단 등으로부터 1000억 원의 대출을 끌어들여 이를 모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도 비리 의혹은 여지없이 불거졌다. 당시 부실 저축은행에 1000억 원을 투자하도록 한 '정권 실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던 것이다.
PF 대출 부실 사례는 부산저축은행이 특히 잘 보여줬다.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은 1990년대 말 캄보디아
신도시 건설 사업에 4965억원을 투자해놓고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이같은 투자 과정에서 부산 저축은행 MB 측근 연루로
몸살을 앓던 새누리당은 김진표 민주
통합당 전 원내대표 등 야권 거물급 인사 연루설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
최시중, 박영준 등 정권 실세들이 줄줄이 엮인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 과정에서도 미래저축은행과
솔로몬저축은행이 PF 대출을 하면서 불법 증액 대출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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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시티 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뉴시스 |
"빚잔치 벌이다 '아차' 하면 정치인 먼저 찾더라"3차 퇴출 명단에 포함된 솔로몬저축은행, 미래저축은행 사태도 동일한
패턴의 반복이다. 회사돈 200억 원을 빼돌려 밀항을 하려다 붙잡힌 '엽기 행각'의 주인공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다.
김찬경 회장은 지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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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건설 관련 사업 시행사에 200억 원을 대출했다.
문제는 시행사가 투자금을 대출받은 후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곧바로 '비자금'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김찬경 회장이 투자를 가장해 대출을 해 준 후 자금을 빼돌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계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비자금 조성은 곧바로 저축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비자금은 주로 정치권 로비 자금으로 이용된다. 관련해 김 회장의 '인맥'이 또 주목을 받고 있다. 김 회장이 정치권과 연줄을 대기 위해 2007년 대선 직전 고려대 최고위 과정에 1기로 등록했다. 김 회장의 동기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이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회장 등이었다.
솔로몬저축은행 임석 회장의 인맥도 주목을 받는다. 임 회장은 과거 DJ 정부 시절 인사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정치권에는 이명박 정부 인사를 비롯해 친박계 인사들과 친분설까지 돌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청와대 고위급 인사들의 구속으로 이어졌던 것과 비슷한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저축은행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PF 대출로 '빚잔치'를 벌이다가 사태가 악화되면 힘 있는 정치인을 찾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고위 인사들이 저축은행 '낙하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상'에 가깝다. 감시를 해야 할 금융 당국 검사역이 저축은행에서 불법 대출을 받아 구속되는 사례와 같은 황당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들을 감시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이들의 '비리'를 덮어주다가 쇠고랑을 차기도 한다. 자격 미달의 CEO와 대주주, 그리고 정부 관료와 커넥션, '소방수'로 등장하는 정치인은 PF 비리의 주된 등장인물이다. 비리는 고질적인 부패의
원인이다. 부패는 PF 대출, 저축은행 사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독버섯을
자라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