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화음이라는 연한 푸른색 배경 위로 펼쳐진 아름다운 선율의 무지개 같은 이 소나타
풀랑크의 플루트 소나타는 1953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음악 후원자 엘리자베스 스프라그 쿨리지를 기리며 그녀에게 헌정되었다. 1957년 스트라스부르 페스티벌에서 장 피에르 랑팔과 작곡가 본인에 의해 초연되었는데, 한 평론가는 이를 두고 풀랑크의 최고작, 아니 그보다 조금 더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클라랑동은 르 피가로(Le Figaro)지에 풀랑크의 플루트 소나타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속에서 터져 나와 진정한 의미의 노래가 되었다고 격찬했다. 그리고 섬세한 화음이라는 연한 푸른색 배경 위로 펼쳐진 아름다운 선율의 무지개 같은 이 소나타의 칸틸레나(Cantilena)악장은 강인한 윤곽을 지니면서도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선율의 향연이라고 덧붙였다.
이 곡의 형식은 드뷔시의 후기 소나타들처럼 자유롭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는 철저한 내적 구성과 풀랑크의 모든 후기 작품에 깃든 깊은 지혜를 통해 비로소 얻어진 것이다.
두 개의 빠른 악장은 작곡가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데, 그의 발레 음악 「암사슴(Les biches)」의 아련한 메아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또한 이 소나타의 아름다운 칸틸레나는 풀랑크의 유명한 작품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The Dialogues of the Carmelites)」를 떠올리게 한다.
https://youtu.be/3bgrvd0EdPE
1963년 1월 30일, 프랑시스 풀랑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에 잠긴 장 콕토가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흘러나오던 이 맑은 샘이 한순간에 멈춰버렸다. 현대와 고전 사이, 거장들의 유산과 기교와 어린아이 같은 신선함이 융합된 멜로디의 강인하고도 소박한 독창성 사이에서 이루어진 그 신비로운 균형의 기적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탄생한 새로운 작품들을 우리는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한 젊은 작곡가는 드뷔시, 라벨, 슈미트 같은 인상주의 대가들을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음악에 실증을 느끼고 있을 때 스트라빈스키가 강한 슬라브적 색채로 다가오듯 건강하고 명료하며 강인한 프랑스적 스타일로 풀랑크가 나타났다고 동료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풀랑크가 17세 일 때 그는 어머니와 함께 한 상점에 들어갔다. 그때 드뷔시가 그의 아내와 함께 그곳에 들어왔다. 풀랑크는 무척이나 감격해 다리가 후들거렸다. 드뷔시가 탈의실로 들어가자 의자 위에 거꾸로 놓여 있던 드뷔시의 모자 안감을 마치 신비한 부적이라도 되는 양 만져보았다.
그 무렵 풀랑크는 큰길가에 있는, 돈을 조금만 내면 음반을 들어볼 수 있는 가게에 들렀다. 원래는 좀 야한 발라드 곡을 들어볼 생각이었지만, 우연히 피아니스트 에두아르 리슬러가 연주한 샤브리에의 '이딜' 음반을 발견하고는 그 곡에 완전히 매료되어 내리 열 번이나 반복해서 들은 일이 있었다.
이 두 가지의 일화는 드뷔시와 샤브리에가 풀랑크에게 있어 위대한 두 스승이자 정신적 대부와도 같은 상징적 존재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풀랑크는 누구의 작품이나 매력을 느낀 것들을 본보기로 삼았지만 결코 남을 모방하지는 않았다.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조롱 섞인 그의 독보적인 개성은 그의 모든 작품들에서 드러나지만, 그가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한 세대 앞선 클로드 드뷔시가 그러했듯 프랑스적 천재성을 구현해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