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cott Lee 쎔의 질문을 받았다. 우선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내일 이들 MEK에 대한 내용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내용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란에 대한 포스팅 잘 하지 않았었는데 그에 대한 이유는 다른 것을 다룰 것이 너무 많아서이기 때문이다.
질의 1) 이란 호메이니가 회교 혁명할 때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왕정을 무너뜨린 이후, 왜 그토록 공산주의자들을 잔인하게 탄압을 했는지, 단순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일까?
답) 호메이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다. 친서방 정책으로 미국, 영국의 지지를 받은 팔레비 욍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1963년 팔레비 왕가의 샤한 샤 (왕 중의 왕)을 비판하다가 쿰에서 체포되었고 팔레비 정부는 그를 터키를 거쳐 이라크, 다시 프랑스로 추방했다. 그가 파리에 도착하자 프랑스 반체제 성향 지식인들에 의해 핍박받는 민족지도자라는 이미지로 대대적으로 부각되어 일약 세계적인 정치가로 부상한다. 이란 이슬람 종교지도자들 및 추종자,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이슬람혁명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주도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아 그들의 지원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소련과도 연결되어 서로 간에 긴밀한 연락이 오고가기도 했다. 이란 혁명 당시 팔레비 왕가를 무너뜨리는 것에는 이슬람주의자들만으로 되지 않았다. 그는 이란 내 공산주의자들과도 손을 잡았고 이들은 장점을 적극 활용했다. 호메이니가 가장 선호했던 공산주의자들의 장점은 바로 "선전선동으로 인한 이미지의 극대화"이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친서방의 팔레비 왕조가 석유 산업을 이용해 번 돈으로 이란 국민들에 대한 복지가 아닌 자신들의 부를 채우기 위해 썼다. 이에 극악의 빈부격차를 불러왔고 이에 시민들이 그에 대한 부를 시민들을 위해 분배해주길 원했다.
이같은 시민들의 요구는 평등과 부르주아를 혁파해 그들이 갖고 있는 부를 분할하자는 공산주의자들과 생각이 거의 같았다고 볼 수 있다. 호메이니는 이를 철저히 이용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을 이용해 시민들의 불만에 불을 지폈고 이것이 혁명 때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Леонид Брежнев)의 지원을 받았다. 브레즈네프 또한 팔레비 왕가의 친서방, 친미주의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었고 미군이 이란에 들어와 미사일 기지를 만든다면 소련 영토였던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일대에 대단한 위협이 될 수 있었기에 브레즈네프 입장에서는 적극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란의 공산주의자들, 이들의 무장 집단인 MEK는 당시 브레즈네프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이란은 소련의 입장에서 볼 때 냉전 시기, 자유진영과 양분하여 이를 완충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호메이니는 공산주의자와도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철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였고 모범적이고 성실한 생활과 윤리 원칙을 중요시한 인물이다. 게다가 공산주의는 무신론인 이념인데 반해 이슬람은 유일신 절대주의의 사상을 갖고 있다. 특히 호메이니 같은 독실하고 가장 원리주의적이며 근본성을 갖춘 인물에게는 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와 이슬람은 같은 공간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큰 배경이 바로 소련이다. 그리고 중국도 이들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호메이니 입장에서는 소련과 중국, 모두 미국이나 서방만큼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선동 효과와 그 위력은 호메이니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호메이니는 확실한 신(神)이 통치하는 국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확립시키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배경에 있던 소련과 중국으로의 위협을 차단하고 완전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성립을 위해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들을 쳐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공산주의자들의 지속적인 집회가 언젠가는 이슬람 공동체의 큰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이런 공산주의자들이 단결하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제적으로는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고 국내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워 이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숙청을 감행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애초부터 신을 부정하는 것과 신을 절대자로 삼는 사상적 토대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질의 2) 이란의 공산주의자들은 왜 그리 지독하게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감행하는지, 누적으로 3만명 이상의 이란인들을 테러로 살해했다. 왜 그런 것일까?
답) 이란 공산주의자들이 이란의 민간인들을 테러한 것은 미시적으로는 공포심 자극이고 거시적으로는 소련이 무너지고 다수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민주화 되었음에도 자신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선동 외에도 큰 장점은 무장 테러로 인한 정당성 주장이다. 미시적인 의미에서도 먼저 본다면 그들은 민간인 테러를 통해 "신이 내려와도 너희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은연 중의 압박이다. 이들을 죽이면서 "보라! 너희들이 이렇게 죽는데 알라가 너희를 왜 구하지 못하느냐? 신이 있냐? 너희 구하지 못하면서 너희가 믿는 신은 왜 보고만 있느냐"라고 무신론의 공산주의를 내세우면서 알라를 믿는 어리석음을 규탄하는 것이다.
이란 뿐 아니라 공산주의가 확립되기 전, 많은 국가들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테러를 자행했다. 특히 예를 들어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도 6.25 이전까지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의 사보타지가 있었다. 이는 공산화 되기 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에서도 그러했고 소련 이전 러시아 제국 때도 소비에트화 되기 전까지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의 테러 및 사보타지가 난무했다. 따라서 이란도 MEK가 그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 종교와 민족은 이미 반동 사상이다. 그러니 같은 동족을 동족으로 보지 않고 이념에 따라 갈라진다.거시적인 의미로 보자면 공산주의가 붕괴 되었어도 자신들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존재감 과시"로 봐야 한다.
질의 3) 지금도 MEK 같은 공산주의 망명 집단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여전히 테러를 저지르고 있구요. 살인 광신 컬트 집단 같습니다. 그것도 자국민인 이란인을 죽이는 테러를 저지르고 있죠. 인종적인 요인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 소련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미국과 서방은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거대한 한 축이 붕괴되었음에도 미국과 서방은 또 다른 새로운 적을 찾는다. 이 때 부상한 지역이 중동 지역이다. MEK 집단은 공산주의적 혁명을 통해 새로운 이념 국가를 세우려 한다. MEK는 “민주주의, 인권보호, 자유시장경제, 중동평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실체는 지도자인 마리암, 마수드 라자비 부부의 개인숭배와 같은, 북한이나 투르크메니스탄과 유사한 형태의 독재적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박해한 호메이니와 이슬람 근본주의는 적이었다. 이들은 1981년 이란 당국에 의해 활동이 금지되면서 이때부터 적극적인 테러와 사보타지를 개시한다. 이들은 알리 라자이 대통령과 모함마드 바호나르 총리를 암살하고 이라크로 도주했다. 때마침 시아파를 탄압하고 있던 사담 후세인은 MEK를 지원했다. 이라크로 본거지를 옮긴 인민전사기구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군의 지원을 받아 이란을 공격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며 이들은 후세인의 지원을 받다가 미국이 이라크 공격하면서 미국에게 굴복했다.
그러나 이들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알아본 미국, 이스라엘 등 친미 세력들은 이들을 중동의 "트로이 목마"로 박아 놓고 이들을 지원해 중동과 이란을 교란시키고 있다. 자국민인 이란인을 죽이는 것은 인종적인 요인이 아니라 이념적인 요인이 가장 크며 미국은 이념이 아닌 이란을 붕괴시키는게 목적이지만 그 목적을 위해 MEK의 이념적인 요인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표어는 이슬람 사회주의지만 이슬람과 사회주의는 함께 그 교리 차로 인해 함께 존속할 수 없으며 신을 부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대다수 무슬림들의 배척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