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봉헌 축일 강론 : “성전에서 아기 예수 봉헌”(루카 2,22-40) >(2.2.일)
* 예수 성탄 후 40일째인 오늘, 주님 봉헌 축일로 지냅니다.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우리도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우리의 모든 것을 봉헌하기로 결심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아기 예수님의 탄생 40일째 날, 성모님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산모의 정결례를 치르고, 아들을 봉헌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습니다.
레위기 12,1-8에 따르면, 산모는 남자아이를 낳으면 40일, 여자아이를 낳으면 80일 부정한 상태가 됩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양 1마리와 비둘기 1마리를, 가난하면“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성모님과 요셉은 형편이 어려워서 비둘기 2마리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또한 탈출기 13,2에 따르면, 맏아들은 하느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주님께 바친 후 돌려받기 위해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데려갔습니다.
성모님과 요셉은 거기서 예언자 시메온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으리라고, 성령께서 그에게 알려주신 인물입니다. 그 예고대로 그는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가 아기 예수를 보고 안으며 “이제는 떠나가게 하소서”라는 찬양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때 성전에 나이 많은 예언자 한나도 있었는데, 그녀도 아기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예수님 얘기를 했습니다.
성모님은 빠듯한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힘들어하셨습니다. 출산하자마자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했고, 예수님 때문에 죄 없는 아기들이 죽었으며, 남편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고된 삶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성모님은 하느님 뜻에 맞게 사셨고, 그렇게 인류구원사업에 참여하며 당신 삶을 봉헌하셨습니다.
2. “봉헌”(Consecration)의 성서적인 의미는 “따로 떼어놓는 것”입니다(탈출 12,13 참조). 우리가 하느님께 어떤 것을 따로 떼어 드리면, 하느님은 봉헌한 사람뿐만 아니라 봉헌된 제물 모두 거룩하게 축복하십니다. 다시 말해 첫 수확을 봉헌하면 다른 짐승이나 곡식이 거룩해지고, 또 첫아들을 봉헌하면 그 아이의 온 생애를 하느님이 축복해주십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에 예수님의 봉헌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의 봉헌도 묵상해야겠습니다. 1년간 사용할 초를 축복하는 이유는 ‘초’가 봉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초는자기 몸을 태워 빛을 내면서 세상을 위해 자기 자신을 봉헌합니다.
오늘 축일을 위해 많은 분이 가정과 본당 전례를 위해 봉헌하셨습니다. 제대초, 제병, 포도주 등 봉헌해주신 금액이 총 3,427,000원입니다. 봉헌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미사를 드릴 때마다 고마운 마음으로 사용하겠습니다.
3. 봉헌을 잘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해보겠습니다.
1) 신앙생활은 ‘봉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앙생활 시작 때부터 우리 자신, 우리 삶, 우리 목숨을 봉헌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 연휴 때 가족을 많이 만나셨죠? 친가족이 좋은 점도 있지만,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 않으면 1년에 몇 번 못 만나고 서먹해집니다. 하지만 같은 본당 교우는 가까이 살고, 1주일에 적어도 1번 이상 만나서 가족보다 교우들이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2) 봉헌은 지금까지 주님께 받은 은혜와, 앞으로 받게 될 은혜에 감사드리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에 기록된 아벨과 카인의 봉헌을 비교해보면 좋겠습니다.
양치기 아벨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가장 좋은 것’, 양떼 중에 맏배를 바쳤지만, 농부 카인은 대충 바쳤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좋아하실 수밖에 없었고,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습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카인은 동생을 죽이고도 죄를 뉘우치지 않고, 다른 핑계를 대었기 때문에 천벌을 받았습니다.
3) 봉헌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그분께 되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내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을 그분께 바치는 겁니다.
→ 구약성서 욥기에 보면, 하느님이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욥의 믿음을 시험했는데, 욥은 그 어떤 불행이나 고통이 와도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견뎠습니다. 욥의 믿음을 확실히 아신 하느님은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 2/1(토) 16:30-18:00, < 이태석 신부님의 삶과 신앙 >에 대한 토크 콘써트를 했습니다. 이태석 재단의 구수환 이사장이 짜임새 있게 강의하셨고, 후원비를 드렸습니다.
아프리카 남수단은 20여 년의 전쟁으로 200만 명이 죽었고,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부족 전쟁으로 40만 명이 죽었는데, 이태석 신부님은 전쟁이 한창이던 2001년 남수단에 찾아갔고,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 병원을 짓고 주민들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평생 의사나 병원을 만날 수 없던 그들에게 이태석 신부님은 예수님 같은 분이었습니다.
소년병으로 끌려간 아이들을 구해서 공부하도록 학교도 세우고, 아이들을 위해 남수단 최초의 브라스밴드도 만들었습니다. 가족한테 버림받은 나병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치료약과 음식도 나눠주면서 8년간 고생하다가, 2010년 48세 때 대장암으로 선종했습니다.
신부님 유물 중에 “발 그림들”이 있는데, 발이 썩으면 잘라야 하는 나병환자들의 발을 조금이라도 보호하려고 신부님은 폐타이어로 신발을 만들어줬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신어본 신발입니다. 신부님 제자 중에 의사가 된 사람이 30명인데, 그들은 신부님이 하던 방법대로 환자들을 따뜻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태석 신부님처럼 봉헌하며 살아야 합니다.
4) 그런데 어떤 것을 봉헌하든지 마음과 정성이 중요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봉헌”에서 예수님이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이유는 그녀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바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봉헌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