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의 노래 "싫어!"
작사,작곡,노래 - 김권환
영상 만든이
이 영상은 KIN(지구촌동포청년연대)의 김강수님이 2005년 2월
우토로 마을 실태조사를 가서 느꼈던 생각을 노래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까운 후배에게 노래를 부탁하고, 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하여 뮤직비디오로 만드셨답니다.
많은 분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는군요.
마지막 강제징용 조선인부락 '우토로'를 아십니까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들, 강제퇴거 위기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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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 총면적 6400평, 주민 65세대 203명. 일본의 마지막 남은 강제징용 조선인 부락이다. 나라를 잃었다는 이유로 일본으로 끌려가 비행장 건설이라는 노역에 시달렸던 동포들, 그들 중 일부는 해방된 조국으로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60년... 일본의 민족차별과 한국정부의 외면속에서 외롭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이들. 강제퇴거의 위기에 몰린 '우토로'를 KIN(지구촌동포청년연대)의 배지원 집행위원이 다녀왔다. | | |
올해가 을사늑약 100년,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 60년, 한일국교정상화 4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일본의 작태를 보면 2005년 역사적인 해에 우리가 와 있는 현주소를 곰곰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해방 60년, 우리는 진정으로 해방되었는가? 한일국교정상화 40년, 한일관계는 정상화되었는가?
국내에서는 한일협정 문서가 일부 공개되고 일제 강점에 의한 피해 진상을 규명하는 등 늦은 감은 있으나 어렵사리 과거사 청산의 일보를 내딛고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거두어낸 결실이다. 정부는 진상규명 뿐만 아니라 전후보상 문제에 있어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은 책임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세상이 이제야 조금씩 수많은 민중들이 반세기 이상 품어온 억울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의 민족 차별과 한국의 방치 속에서 인간의 살 권리를 유린당하고 있는 조선인들이 있다. 한일간의 질곡어린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산 증인들이 있다. 필자가 지난 달 만난 일본 ‘우토로’에 사는 재일조선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마지막 강제징용 조선인부락 ‘우토로’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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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의 입구에 늘어선 '강제퇴거'반대 입간판들 ⓒ배지원 |
일본국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 총면적 6400평, 주민 65세대 203명. 일본의 마지막 남은 강제징용 조선인 부락이다. 마을 입구에는 “강제퇴거 결사 반대”, “반전기념비”,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없애는 것”이라고 쓰인 붉은 스프레이의 입간판이 즐비하다.
주민들은 낯선 얼굴에 경계심을 감추지 못한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업자들이 온 것은 아닌지, 조선인을 해코지하려는 일본 우익은 아닌지, 방화라도 하려는 야쿠자는 아닌지. 누군가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소개하자 주민들의 얼굴은 일순 환한 미소로 번졌다. 빈 깡통을 비닐 주머니 가득 짊어지고 가던 꼬부랑 할머니는 ‘내 고향도 남쪽 경상도’라며 큰 소리로 반겨주었다. 폐품회수업으로 연명하는 일흔이 넘은 할머니의 유난히 골 깊은 주름이 뇌리에 박혔다.
이 마을 주민들은 지난 17년간 이 곳 삶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워왔다. 그러나 일본 사법부는 2000년 강제 퇴거 명령 판결을 확정하여 토지 소유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주민들은 언제 강제 퇴거가 집행될지 모르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전후보상은커녕 60년 이상 모르는 체 하다가 이제 와서 피땀으로 갈고닦아놓은 삶터에서 제 손으로 집을 부수고 제 발로 나가라는 기막힌 상황인 것이다.
1941년 우토로에 와 부친과 남편을 비행장 건설에 내보냈다는 문광자 할머니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왜 지금 와서 나가록 하는 겁니까? 우토로에 일본인이 반 정도만 살았었더라도 이런 짓은 못할 것이오. 고국에서 쫓겨나와 걸레처럼 일을 시키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방치하더니 이제는 지금 살고 있는 땅에서도 나가라고 합니다”
교묘하게 전쟁 책임 방기한 일본정부와 닛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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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항공촬영된 '우토로' ⓒ배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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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의 역사는 일제가 1941년 교토 군사비행장 건설을 위해 약 1300명의 조선인 노무자를 징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주민의 말을 빌리면 당시 우토로 지구는 돼지우리보다 못한 시궁창이었는데 조선인 노무자들과 가족이 묵을 집단합숙소(한바집)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5년 일본 패전과 더불어 비행장 건설이 중단되자, ‘한바’에서 집단생활을 하던 조선인들은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고, 일본은 이들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행정적으로 완전히 방치해버렸다.
우토로 토지는 원래 교토부 즉, 일본 정부의 땅이었다. 교토부는 전쟁에 패배하자 토지를 비행장 건설을 담당하던 군수회사 일본국제항공공업(닛산차체의 전신)에 넘겨버렸다. 그 곳에 사는 조선인들에 대한 어떠한 책임과 보상의 조치도 없이 닛산차체에 넘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우토로 토지 소유권자가 된 닛산차체는 수십 년간 주민에게 일언반구도 없다가 느닷없이 1987년 주민들 몰래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였다. 닛산차체 역시 전후보상은커녕 주민들의 거주권마저 짓밟은 것이었다.
우토로 재일조선인들은 1988년까지 우물물로 생활했다. 수도 시설이 설치된 것은 1988년. 우물물의 위생검사 결과와 전염병이 돌고나서이다. 그런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닛산차체가 수돗물 설치에 계속해서 반대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닛산차체는 87년 토지 매매 계약을 눈앞에 두고 비로소 우토로에 수도에 동의한 것이었다. 그나마 전매로 인해, 수도 설치는 완성되지 못하였고 아직도 우물물로 생활하는 세대가 있고, 수도관을 엉성하게 매입한 콘크리트 자국이 현명하게 남아있다.
우토로에 몇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지, 어떠한 주거환경인지 일본 정부는 단 한 번도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다. 저지대인 우토로는 적은 양의 빗물에도 침수피해가 크지만, 한 번도 지방자치단체가 피해 조사를 한 적도 없다. 자위대 훈련소와 깔끔한 일본인 주택가에 둘러싸여있는 우토로는 아마도 일본 정부에 있어서는 눈엣가시일 것이다.
60여 년간 그토록 내팽개쳐 두었건만 아직도 연명하고 있는 이 마지막 강제징용 조선인 부락의 생명력이 당황스럽고도 가증스러울 것이다. 필자는 일본이 자랑하는 고풍스런 건물이 즐비한 교토를 둘러보며 이런 생각을 뿌리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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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집을 벗어나지 못한 우토로의 가옥들 ⓒ배지원 |
日 교토재판소, 우토로 강제철거 취하 통보
전 토지소유권자 이의제기...대책회의 "아직 안심할 수 없어"
오는 9월27일 우토로의 한 가옥을 강제철거하기로 했던 일본 교토지방재판소가 9월22일 저녁, 우토로 주민들에게 철거를 취하하겠다는 통보를 알려왔다.
지난 8월 22일 현 토지소유권자인 이노우에 마사미씨가 강제철거 집행을 신청, 교토지방재판소가 강제철거 하겠다며 해당 가옥에 건물 수거, 토지 명도(철거 예정) 등을 언급한 공시서를 붙인 바 있다.
그러나 이노우에씨와 소유권 재판중에 있는 전 토지소유권자 서일본식산(부동산회사·본사 오사카시)이 일방적인 강제집행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재판소가 취하 결정을 내린 것. 본래 일본법 상 소송중에 있는 이해 관계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강제 철거는 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소유권자인 이노우에씨는 전 소유주 서일본식산과 우토로 토지 소유권을 두고 2심 재판을 벌이고 있는 상태. 지난 2004년 이노우에씨는 서일본식산 공동대표 한 사람과의 계약만으로 토지를 사들였으나, 다른 공동대표(가나자와 도쿠와키)가 서일본식산 명의로 '그 계약은 효력이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이노우에씨가 승소했으나, 2심은 오는 10월정도에 재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이노우에씨는 가나자와 도쿠와키씨가 죽었기 때문에 이번 2심 역시 이길 수 있다며 자신하고 있는 상황.
우토로국제대책회의 배지원 사무국장은 "만일 이노우에 씨가 승소하면 다시 강제철거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취하 소식에 결코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한편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오는 9월26일 주일본 한국 대사관에서 열리는 재외공관 국정 감사에 우토로 동포를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시켜 증언을 들을 방침이다. 또한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같은날 26일 예정되어 있던 철거반대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그간 한국 정부에 우토로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공식 행정 기구 설립 및 토지매입비 해결 등 촉구했던 대책회의는 앞으로도 '우토로 살리기 55억원 모금운동'과 한.일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촉구해나가기로 했다.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우토로 해방시켜야 한다"
우토로 문학축전, 시인·소설가 등 '문학으로 우토로 살리자' 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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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를 위한 평화문학축전 '우토로 문학축전'이 24일 오후 3시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여의도 공원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평화시 낭송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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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화해를 위한 평화문학축전 '우토로 문학축전'이 9월24일 오후 3시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여의도 공원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식을 시작했으며, 축전은 우토로를 살리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 전달과 평화시 낭송, 문예공연 등으로 구성됐다. 김용태 화가(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이사장)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국 총리대신에게 보내는 서한'을,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낭독했다. 간이무대 뒷 쪽 태극기 밑으로는 주말을 맞아 여가를 즐기러 나온 시민들이 넓은 광장을 거닐고 있었으며, 식전부터 마련된 '우토로 사진전'(사진작가 임재현, 우토로 '어머니의 노래')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번 축전은 한국문학평화포럼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우토로국제대책회의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랜덤하우스중앙, 한미약품, 다산이 후원했다. 주관단체인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작년에 이어 올해 사북, 백령도, 울진, 거창에서 문학축전을 열었으며, 오는 10월 29일 오후 6시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도리마을 남한강변에서 '여주 도리 농민문학축전)을 열 예정이다. '광복 60년, 해방되지 못한 마을' 우토로 문학축전 "한 때 5·16공원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던 이 곳 여의도 공원에서 해방되지 못한 마을 우토로 문학축전을 열게 된 것에 대해 감회가 새롭다" 축전의 사회를 본 강기희 작가의 여는 말로 축전은 시작됐다. 고은 시인(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강제로 자기 나라로 끌고 가 일을 시킨 뒤 자기 나라가 패망했다고 내쫓는 경우는 지구 상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며, "우토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 우리민족을 우습게 보기 때문이고, 강대국이 우리 강토를 빼앗을 수 있는 개연성을 주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한 "당연히 우리가 받아내야 하는 것이지, 돈을 주고라도 우토로 땅을 사려는 것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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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막기 위해 지난 8월 9일부터 오는 10월 25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반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평화, 그 먼 길 가다'라는 제목의 거리 콘서트를 펼치고 있는 정태춘 박은옥 부부 가수도 참여했다. |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막기 위해 지난 8월 9일부터 오는 10월 25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반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평화, 그 먼 길 가다'라는 제목의 거리 콘서트를 펼치고 있는 정태춘 박은옥 부부 가수의 문예공연이 이어졌다. 정태춘 가수는 "문학축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시작할 줄이야"라고 전했으며, 박은옥 가수는 "15년 전 교토시 교포들이 사는 동네에 가 봤는데, 하천 옆에 우리 교포들이 판자로 얼기설기 집을 지어 빈민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놀랐고, 강제징용된 사람들을 보며 부끄러웠다"며, "그래서 우토로 문제를 들었을 때 바로 결합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토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모임 소속 의원들은 "우토로 문제는 이슈화가 안 됐을 뿐 오랜 이야기"라며 "4월 말, 5월 초에 우지시에 직접 방문했을 때 사회보장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된 일본에서 여름만 되면 물이 차는 등 열악한 환경을 가진 우토로 마을을 개선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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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소설가(우토로살리기 희망대표)는 "4백만원도 아닌 4백만명이 일제에 의해 죽었다"며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우토로를 해방시키기 위한 책무를 지고 있다"고 축전에 모인 시민들에게 우토로 문제에 대해 호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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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소설가(우토로살리기 희망대표)는 "4백만원도 아닌 4백만명이 일제에 의해 죽었다"며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우토로를 해방시키기 위한 책무를 지고 있다"고 축전에 모인 시민들에게 우토로 문제에 대해 호소했다. 폭소클럼에서 '거울개그'로 인기를 모았던 쌍둥이 형제 이상호, 이상민 코미디언도 "동 시대를 살면서도 몰랐다"며 "젊은 층에게 우토로를 알리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 생각한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춤패 '뉘' 무용단(박은혜, 박지원, 박훈미, 남두옥)의 '내 쉴 곳은 어디?'를 주제로 한 문예공연과 어린이 청소년전통예술단 '짠지패'(김수환, 강보은, 손규인, 심산, 박하은, 박하영)의 봉산탈춤 공연도 이어졌다. 또한 '김기인과 스스로 춤모임'(박영희, 박진화, 홍은택)의 '상처의 땅에 바치는 꽃다지' 공연도 있었다. 이지상, 손현숙, 김현성 등 민중가요 및 대중가요 가수들도 해방되지 못한 마을 우토로를 위한 공연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 했으며, 황필규 목사(KNCC 인권위원회 사무국장)는 우토로 문제 경과보고를 했다. 문학축전의 중심인 평화시 낭송에는 8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8·15를 위한 북소리(정희성), 그만큼 평화(천양희), 비내리는 우토로 정다운 골목길을 걸으며(김영현), 우토로를 살려야 한다(이재무), 우리는 누구나 우토로 마을 버림받은 재일 조선인이다(김준태), 가는 길(김형수), 내 고향은 우토로 51번지(김해자), 우토로여, 이 시를 용서해주오(홍일선) 등을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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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를 위한 평화문학축전 '우토로 문학축전'이 24일 오후 3시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여의도 공원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 |
우토로 주민 이모율씨가 말하는 우토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또 나오지 않으려면 한일 정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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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제징용 마을, 우토로가 흔들리고 있다. 일제 식민지 정책과 전쟁 수행의 피해자였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집단 합숙소이자, 60여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우토로'가 토지 소유권자들의 분쟁 탓에 벼랑 끝에 몰려 있기 때문. 지난 8월 22일, 현 우토로 토지 소유권자인 이노우에 마사미씨는 제시했던 토지매입비 55억원에 대한 수수 여부가 불명확하자 교토지방재판소에 강제철거 집행을 신청한 바 있다. 이에 교토지방재판소 집행관 20여명이 같은달 30일에 9월 27일 강제 철거하겠다고 공시서를 마을 안에 붙이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가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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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에 가면 '우토로에 사랑을'이라는 문구가 사람들을 맞는다. ⓒ우토로국제대책회의 | 불행 중 다행으로 교토재판소는 9월 22일, 현재 이노우에씨와 소유권 재판 중에 있는 전 토지소유권자 서일본식산 부동산 회사가 강제집행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취하 결정을 내렸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민중의 소리>는 우토로 주민과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우토로 주민회 재일동포 이모율씨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면서 약 2시간 가량의 말다툼이 있었지만 의미없는 일이었다고 토로했다. "22일 재판소의 집행부가 찾아왔습니다. 주민들이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물어봤더니, '강제철거 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말싸움은 아니었고 이런 식으로 물어보고 대답하는 정도였습니다. 2시간 정도 이야기 했지만 의미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일단 정지가 되어서 다행으로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잠깐 연기된 것이기 때문에 계속 긴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토로 주민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현재 우토로에는 160여 교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1/3 가까이가 생활보호세대(대상자) 입니다. 수입이 없어요. 그리고 거의 혼자 사는 노인 분들이 많죠. 일본 정부에서 돈이 나오긴 하지만 원래 재일동포는 국민연금제도에 포함되지 않아 79세 이상 노인분들은 연금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생활이 많이 어렵습니다. 재일 동포 중에서도 생활 수입이 가장 낮은 곳이 우토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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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동네 내부 ⓒ우토로국제대책회의 | 현재 소유권자인 이노우에씨는 전 소유주 서일본식산과 우토로 토지 소유권을 두고 2심 재판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작년 이노우에씨는 서일본식산 공동대표 한 사람과의 계약만으로 토지를 사들였으나, 다른 공동대표(가나자와 도쿠와키)가 다시 '그 계약은 효력이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이노우에씨가 승소했으나, 2심은 오는 11월께 재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이노우에씨는 가나자와 도쿠와키씨가 죽었기 때문에 이번 2심 역시 '이길 수 있다'며 자신하고 있는 상황. 이모율씨는 "오는 11월 9일 재판결과가 나온다"면서 "결과가 나와봐야 (땅이) 이노우에에게 넘어갈지, 서일본식산에게 넘어갈지 알 수 있다. 그 후에 토지매입 여부가 결정될 듯 하다"고 설명했다. 즉 오는 11월 9일이면, 철거든 매입이든 어떠한 결판이 나온다는 뜻. 그간 민간단체들은 우토로 살리기 55억원 모금운동 및 서명운동 등을 진행해왔다. 또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토로 주민들 역시도 스스로 돈을 모아 땅을 매입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민간단체와 주민들 힘만으로 55억원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일. 우토로대책회의 등과 같은 단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제서야 관심을 갖게된 한일 양국 정부의 반응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이모율씨는 한국의 모금운동과 같은 관심에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잊지 않으면서도 한일 양국 정부의 관망적 자세에 우려를 나타냈다. "우토로대책회의 같은 한국 민중들이 우토로를 구제하기 위해, 생존권을 위해 활동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일 협정 문제 등 아직 남은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재일 동포 문제를 민단들이 도와주고는 있지만, 일본과 한국 정부에서도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재일 동포들은 희생자가 아닙니까. 다음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나서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