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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발견』 – 윤성희
‘젊다’는 형용사고 ‘늙다’는 동사다.‘늙어간다’는 말은 있어도, ‘젊어간다’는 말은 없다. 누구에게나 늙음은 진행형이고, 우리 모두는 어떤 자리에서는 젊은이로 통하다가도 어떤 자리에서는 늙은이가 되기도 한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다가 어떤 땐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 동안에도 그것이 변덕스럽게 변하는데 그만큼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상황적인 개념이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아무리 젊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늙어감의 시간은 결코 정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윤성희 선생은 의사도, 노년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다. 그는 『문학의 발견』, 『시, 세상에 말 걸다』같은 책을 쓰기도 한 문학가로, “삶이 무뎌지지 않도록 정신을 비끄러매면서 까치발을 들어 세상을 보려고 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나이 들어서도 젊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이 나온 2023년 초에 70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70이 넘었을 수도 있겠다.
환갑이라는 예순의 나이는 나름의 의미가 깊다. 환갑, 진갑을 지날 때 인생을 돌아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나도 생각이 난다. 평소대로 생일날처럼, 가족들과 조촐히 식사 한번 한 것으로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것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60이라는 생애의 숫자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공자가 말한 이순(耳順)이란 뜻에도 그것이 담겨있다. 그는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여 우리가 나아갈 윤리적 목표를 제시했는데 ‘나이 60이 되면 이순하라’고 마치 금지 명령을 내리듯 경고했다. ‘귀를 부드럽게 하라’는 말의 뜻은 꼰대가 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모든 신체 기능이 퇴화한다. 당연히 귀도 어두워진다. 귀가 퇴화하고 입은 여러 가지 기능 중에서 말하는 기능만 남은 사람,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하고 꼰대가 되면 불통이 된다. 그래서 꼰대를 개구리에 빗대기도 한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꼰대들의 편리한 기억법과 일치한다. 아는 건 우물 하나 크기지만, 그가 떠드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맨날 그 소리가 그 소리다. 어제도 개굴개굴, 오늘도 개굴개굴….”
- 정철 『꼰대 김철수』
‘이 한마디하고 고만 할란다. 너도 반론할 얘기 있으면 해 보고 없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이것이 바로 꼰대가 하는 소리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생각 못 하는’것을 보면, 일본의 「하이쿠」(일본 고유의 短詩) 한 구절이 생각난다.
홍시여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꼰대를 탈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경직된 귀를 부지런히 닦고 문질러서 유연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그게 곧 ‘이순하라’는 자기 명령이다.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바로 내면이다. 지금까지는 ‘위로, 옆으로’였다면, 앞으로는 바다 아래로 ‘점점 깊어질 수 있도록’멈추지 말아야 한다. 높아지려 하지 말고, 깊어져야 한다. 내면이 깊어진다는 것은 정신을 저차원 상태에서 고차원 상태로 옮겨가는 여행을 말한다.
오늘날 소비사회에서의 늙음은 곧 ‘낡음’이다. 낡음은 ‘쓸모없음, 필요 없음’의 동의어로 취급되어 폐기 대상이 된다. 노인들의 무임승차 때문에 도시철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릴 때면 이빨 빠진 호랑이 자존심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자신의 전존재가 송두리째 부정되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기술진보사회에서는 성능이 좋아질 리 없는 노인은 잉여인간으로 전락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핵심 감정 중의 하나가 존재감이다.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김춘수 『꽃』). 누구나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맞은 꽃으로서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나’라는 존재감, ‘자존심’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가치기 때문이다.
노인네에게는 ‘어른도 몰라보는 싸가지 없는 요새 것들’을 향한 만성적인 분노가 온몸에 휘감겨 있다. 상대방을 할퀴고 찌르는 뾰족한 말투를 무기 삼아 공허한 권위를 방어하고 쟁취하려고 한다. 공공장소에서 새치기를 하면서도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노인네들은 그저 당당하다. 누가 이를 저지하거나 불평하면 못 알아들은 것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냥 넋두리하고 돌려세운다. 그것까지 통하지 않으면 육두문자라는 마지막 무기로 상황을 종료시키면 그만이다. 노인네들은 그것이 마치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야말로 ‘노인네스러움’이다.
지금 나는 내 나이를 헤아려본다. 잘못하다가는 노인네가 되기 십상인 것을 알아채는 나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는 나이, 그래서 손자한테도 배울 게 많다는 걸 알아가는 나이, 그런 걸 지혜라고 말하지만, 그 지혜가 진짜 지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의심해보는 나이,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을 다짐하는 나이, 열심히라는 것은 맹렬히 돌진하라는 뜻이 아니라, 차분하게 주변을 살피면서 살아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나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에 힘쓰라는 것을 알게 하는 나이가 지금의 나이다. 어른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좋은 어른’이 되는 건 더욱 어렵다.
이미 정치판에 들어가 있는 노년이나 들어가려고 하는 노인들을 나는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보수든 진보든, 좌든 우든, 이들은 공영방송의 정치 뉴스에 불신과 불만이 크다. 방송에서 다루지 않거나 다룰 수 없는 무언가에는 ‘막장 비밀’이 잔뜩 숨어 있다고 믿는다. 과거 한때 표현의 자유에 제약이 많았고, 난무하던 유언비어 속에 진실이 숨어 있던 경우가 있었다. 그 시절 무의식이 진실과 정보를 갈망하게 만들고, 열렬한 유튜브 구독자로 만든 것은 사실이다. 꾀 많은 순진한 노년들이 거기에서 대리만족의 쾌감을 얻었다. 어떤 정보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든지 설득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짜 뉴스라도 상관없고, 오히려 그걸 더 퍼 나르기에 분주하다.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것이라면 수많은 증거가 있어도 거들떠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신념만이 상식이고 합리화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혀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정치 편향은 점차 신념화되어가고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다. 정신은 맹목과 혐오와 분노로 치솟아 오르고 노년의 이성은 나날이 병들어간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는 말과 논리에 휘둘리고 그들의 밥이 된다. 그래봤자 세상이 자기 뜻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부정과 비판은 젊음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노년의 입에는 긍정과 감사의 언어를 가득 채워두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편안하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모자랄 사람이 있고,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양심보다 강한 탐심과 불공정으로 삶의 질서를 교란시킨다. 그러나 세상이 반듯하고 온전하게만 돌아간다면 그게 천국이지 세상이겠는가. 우리는 천국에 가려 할 뿐, 천국에 가 있지는 않다. 세계는 완전하지 않다. 천사들도 있지만, 독사도 있다. 햇빛이 있다면 그늘도 있다. 내가 무엇을 볼 것인가 관점을 선택해야 한다.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호승 「햇살에게」
“잘생긴 남자들도 잘나가는 경향이 있지만, 남자의 진짜 자신감은 키다. 17,000명의 전문직 남성들의 생활을 추적했더니 키가 최소한 180㎝ 이상인 사람이 훨씬 더 잘 살고, 더 많은 연봉을 받았고, 더 빨리 승진했고, 보다 유명한 지위로 뛰어올랐다.”- 다니앤 에커먼 『감각의 박물관』중에서.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몇 사람한테 해당한다. 요새는 키가 재산인 것이 확실해졌다.
조조의 키는 7척, 한나라 때 1척은 오늘날의 23㎝였으니, 161㎝로 단신이다. 키가 7척 5푼(173㎝)인 유비나 키가 8척(184㎝)인 장비와 비교해도 한참 작다. 거기다 관우는 9척, 수염 길이가 2자나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207㎝ 키에 45㎝ 수염이다. 전장에서 관우를 마주쳤을 조조를 생각하면 그림이 떠오른다. 천하의 조조라지만, 오싹한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키에 대해 확실한 콤플렉스를 가진 것은 맞을 것 같다. 다만 위로되는 말씀이 있는데,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으로 본다.”- 사무엘1, 16:7
하나님이 보기에 우리 인간은 언제나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 제 눈에 보이는 것, 제 귀로 들은 것, 제 감각으로 느낀 것만 전부라고 생각한다. 키가 크거나, 작거나 인간은 결국 그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내의 존재일 뿐이다. 경험이라는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인간은 어찌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하나님은 자기 경험의 경계선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건 신앙의 문제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적어도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정신 영토를 넓힐 수 있어야 한다. 몸의 성장판은 닫혔어도 정신의 성장판은 언제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이 들면 누구나 키가 줄어든다. 척추가 앞으로 기울고, 뼈 사이 추간원판이 달라붙고 팔다리 관절이 닳는다. 걸음의 속도와 보폭이 줄어들고 신진대사는 느려진다. 누구에게나 예외일 수 없는 신체적 노화 과정이다. 지식과 기억도 반감기에 접어든다. 거스를 수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되는 자연 현상이다. ‘벤자민 클랭클린’이 “많은 사람이 이미 25세에 생을 마감하지만, 75세까지 땅에 묻히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25세 때 이미 성장을 멈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설사 키는 줄었어도 까치발을 하면 멀리 볼 수 있다. 정신의 성장판은 아직 닫힌 게 아니다.
너나없이 스스로 말년의 삶을 상상하면 답답하고 끔찍하다. 마지막으로 거처야 할 곳이 요양원(요양병원)이라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 “당신은 생의 마지막 기착지로 요양원 말고 따로 정해둔 곳이 있는가?”여기 말고 심장이 두근거릴 만한 그런데가 있다면 같이 가자고 부탁하고 싶다. 오늘 우리가 보고 듣는 현실 속 요양원은 나 같은 가을 세대들의 미래를 위탁할만한 곳이 못 된다. 상상만으로도 어둡고 눅눅하고 을씨년스럽다. 자잘한 반짝거림이나 저녁 바다 노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죽음처럼 무거운 고요 속에서 묵은 기침 소리, 코 고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어디선가 물 내리는 소리도 난다. 어렴풋한 그 소리들은 딴 세상에서 새어 나오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데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활기와도 거리가 멀다. 여자는 시멘트로 짠 거대한 관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김경옥의 단편소설 〈천국의 문〉중
거대한 관 속은 들어갈 수 있어도, 출구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아마 출구는 영안실에 이르는 문일 것이다. 일방통행 노선에서 역주행은 허용되지 않는다. 요양원은 우리 숨이 남아 있을 때 잠시 머무는 자상에서의 마지막 거처다.
아프면 아프다고 진작 말하지.
요 모양 요 꼴 되어서
이웃에게 전화하게 만들었느냐고
노모를 타박하는 딸년도
눈시울 뭉개져 아무 말 없는 노인네도
무던하다. 생이 그렇다.
- 복효근, 「입춘무렵」부분
요양원이 문제다. 가족과의 정서적 유대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격리된 공간, 그동안 공들여 가꾸어 온 모든 인간관계도, 유효기간이 소멸되는 곳,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절해고도에 던져진 채 마음의 등불마저 끄고 마지막 수속을 기다려야 하는 곳, 안타깝지만 이게 요양원의 삶이다. 노후를 지지해줄 것이라 믿었던 안전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식들은 부모의 노후를 더 이상 지켜줄 수 없게 되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진작 말하지 요 모양 요 꼴이 되어서 이웃에게 전화하게 만들었냐고 노모를 타박하는 딸년에게 먼저 돌을 들어 정죄할 처지가 못 된다. 딸년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이심전심 한통속이다. 현실이 그러니 그럴 수밖에, 내 발로 요양원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으로, 불효에 대한 자책을 떨쳐낼 수밖에….
인생을 편안히 해주는 ‘5가지 만남’이 있다고 한다. 만나는 순서대로 보면, 1. 좋은 부모. 2. 좋은 선배나 친구. 3. 좋은 배우자. 4. 좋은 자녀. 5. 좋은 요양원이다. 하나씩 보면, 1,3,4번은 어쩌면 필연적이지만, 2,5번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우정은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긴다.’는 말은 인간관계를 쇼핑처럼 생각하는 세태를 돌아보게 하는 격언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친구와의 관계도 나의 태도에 달려 있다. 좋은 친구를 선택한 만큼 내가 좋은 친구가 되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 좋은 친구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유유상종하기 때문에.
‘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이란 게 있다. 여기에 보면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수가 전주이씨 868명, 안동권씨 366명, 파평윤씨가 346명이라고 한다. 저자는 여기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파평윤씨 윤관 장군의 후손이며, 왕비를 4명이나 배출하여 다섯 명 왕족 혈통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외에 아는 조상이 별로 없고, 명문가의 후예라는 자부심 외 내세울 건덕지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아직도 족보·가문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기겁할 얘기지만 가문의 자부심이라는 것도 열등감을 상쇄하는 심리적 위안 이상의 실제 효과는 없다. 가문의 영광에 기대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후손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리도 없다.
어느 집안이나 족보를 다 가지고 있고 족보상 양반 아닌 집안이 없다. 족보는 17세기만 해도 극소수 양반의 특권적 표지였으나 18세기 접어들어 하층민의 신분 상승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수요가 폭증되었다. 1690년(숙종)경상 지역의 양반은 9.2%, 양민이 53.7%, 노비가 37.1%였다. 그러나 100년 뒤인 1783년(정조)에는 양반 37.5%, 양민 57.5%, 노비 5.0%였고, 그로부터 70년 뒤인 1858년(철종)에는 양반이 70.3%, 양민이 28.2%, 노비는 1.5%로 줄었다. 조선 시대 말에는 양반이 80∼90%가 되었다.(역사학자 이덕일)
족보를 바꾸고 새로 족보를 제작하는 과정의 조상 갈아타기는 예삿일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아버지를 바꾸고 할아버지를 갈아치우는 환부역조가 횡행했다. 후사가 없는 집안에 후손으로 끼워 넣거나 한 세대를 더 끼워 넣는 등의 방법이 이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빈번한 외침으로 족보와 호적이 유실된 것도 원인이지만, 족보의 내력과 신빙성에 의심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또 그것은 국가가 관리한 것이 아니고 문중차원의 사적 자료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김해 김씨는 440만, 밀양 박씨가 310만, 전주 이씨가 260만, 경주 김씨가 180만, 이들을 합하면 1200만이 넘는다. 이들 모두 왕족 혈통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그것도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부계 혈통 계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부모, 자식 간을 천륜지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부모 모시기가 부담스럽고, 번거러워졌다. 현실을 인정하고 언젠가 요양원이 자기 삶의 기착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린이집 유아학대 문제에 쌍심지를 키면서 요양원의 노인학대 문제는 쿨하게 넘어가는 자식들의 심리적 바닥도 이해해야 한다. 언젠가 자식이 괘씸하고 섭섭하게 느껴지는 날이 올지 모른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하면서 구질구질한 원망을 쏟아놓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봤자 도끼로 제발 찍는 것일 뿐,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것.’‘ 너 만 잘 되면 부모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그렇게 키워놓고서 몸이 아픈데, 외로운데 찾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해야 부질없는 짓이다. 애시당초 좋은 부모가 아니라 그냥 부모로 살았어야 했다. 이미 늦은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당신도 당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요양원, 족보, 조상, 자식, 이런 것들과 고향, 친구, 행복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봤으나, 그것을 모두 여기에 옮기지는 못한다. 부부에 대해서도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갈까마귀처럼 떨어져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갈까마귀는 일생동안 암수가 같이 사는 새다.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말했다. “갈까마귀는 세상에 나온 첫해 약혼 상대를 정하고 이듬해 교미를 한 후 사람 수명만큼 사는 동안 변함없이 지낸다. 암컷이 수컷의 깃털을 쓰다듬어 주는 것은 애정 표현이고, 수컷은 암컷의 입에 다정하게 먹이를 넣어주고 사랑의 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유통 기한이 없는지 모른다. 갈까마귀가 그렇듯 어떤 부부들에게서 그런 사랑스러움을 보기도 한다. 아주 간혹.
결혼은 현실이다. ‘나’로부터 ‘우리’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성장 과정과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문화의 결합이고 확장이다. 혈연관계, 인간관계는 물론 삶의 공간까지 결혼을 통해 재배치된다. 그 적응과정에는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지금 노년 세대는 두 사람이 하나 되라고 강제로 요구받기도 했다. 그것은 지나친 압력이다. 철마천에서 보면 한 나무가 된 연리지 베롱나무가 있는데, 꽃이 피었을 때, 한 가지에는 흰 꽃이, 다른 가지에는 붉은 꽃이 피어 있다.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은 그래서 수긍하기 어렵다. 부부로 사는 것은 연출되고 편집되는 영화가 아니라, 웃고 부대끼는 현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다큐다.
멀리 있는 것이 멋있고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다. 여기에는 없는 별, 멀리 있는 별을 우리는 동경한다. 그러나 멀리 있는 별만 별이 아니다. 지구도 우주 멀리서 보면 푸르게 빛나는 별이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가 바로 빛나는 별이다.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봄이 어디 있는지 종일 짚신 신고 돌아다녀도 정작 봄은 보지 못했네’‘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봄은 정작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네’ 이 간단히 진리를 왜 몰랐을까.
한날한시에 죽게 해달라고 한 농부 부부가 있었다. 제우스는 자신에게 극진한 이들 부부에게 감동하여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마침내 생의 마지막 날 부부는 제우스에게 감사하며 서로 마주 보는 나무로 변했다. 신화 속의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의 이야기다. 그래서 부부가 같은 날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필레몬의 소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부가 한날한시에 죽기란 함께 타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태산 같은 스나미가 몰려와 집을 덮치거나, 무시무시한 재앙을 당할 때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악몽인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부부라도 한날한시에 죽기란 쉽지 않다. 필레몬의 소원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남편이건 아내건 누군가가 먼저 떠난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면 혼자 남겨졌다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 심리적 진동의 높낮이만 다를 뿐 누구나 같다. 그래서 미리 어떻게 떠날까, 어떻게 떠나보낼까를 생각해 두어야 한다. 남 일이 아니다. 나이든 부부일수록 이별의 시간은 가까워진다. 남녀별 수명 통계가 말해주듯 열에 7∼8은 아내가 나중까지 혼자 남지만, 아내를 먼저 보내는 경우도 있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에 찾아온 방문객을 앞에 두고 남편에게는 회한이 물결처럼 밀려온다.
아내가 죽자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 부른 장자에 이르기란 어림없는 일이지만, 이제 자신의 운동화 끈을 단단히 잡아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자립심을 가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자식들이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너희들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생활의 시간표를 작성하는 것에도 만족해야 한다. 남아 있는 사람은 이제 막 인생의 또 다른 사춘기를 가로질러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상처도 껴안을 수 있게 된다. 배우자 없이 노후를 보내기란 쉽지 않겠지만,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면역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노년의 품위 있는 ‘홀로서기’다.
인생이란 계단은 편도여행이다. 성장에서 쇠락으로, 상승에서 하강으로 가는 길만 있을 뿐이다. 그 사이에 변수들이 집합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청춘도 그렇다. 봄은 내년에 다시 올지라도 청춘은 아름답지만 다시 오지 않는다. 나이 들면 몸도 마음도 늙어야 자연스럽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하는데, 그건 착각이고 환시고 허영이다. 어떤 사람은 몸보다 정신이 빨리 늙기도 한다. ‘한 손에 가시를 쥐고 또 한 손에 막대를 들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백발을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이런 여유로움에 달관하기는 어렵겠지만 신기루 같은 청춘의 망령에 사로잡히지 않고 껄껄 웃으며 늙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품위가 느껴진다. 백발 성성한 자신의 한 생애의 끄트머리쯤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요에 잠겨가야 한다. 반뇌도 방황도, 사랑도 아픔도, 일도 분주함도, 이제 모두 과거라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 시기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순순히 받아들이고 짊어질 수 없는 것은 내려놓고, 돌아갈 수 없다면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집보다 수용이 힘이 있고, 비판보다 관용이 더 강하며, 냉소보다 공감이 생기 있고, 불평보다 인내가 폼이 난다. 이것이 백발의 정신이다.
사람은 이상에 작별을 고할 때 늙는다. 살아온 햇수가 늘어나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지만 감동하기를 포기하면 영혼이 더 쭈굴쭈글해진다. 신념만큼 젊어지고, 회의만큼 늙는다. 자신감의 높이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키만큼 늙는다. 희망만큼 젊어지고, 절망만큼 늙는다. 아름다움과 기쁨, 과감성과 대범함이 마음속에 있다면 아직은 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내 몸은 지금보다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나와 10년 전의 내가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나무를 통해서 배우는 사람은 나이를 통해서 경험과 지혜의 폭을 넓히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아름다워지거나 화석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고 한다. 나무를 닮으려 하는 사람은 적어도 화석화될 소지는 없는 사람이다. 나무는 나이테를 늘려갈지언정 결코 푸르름을 잊지도 잃지도 않는다. 나무에게 배워야 하는 이유다.
장수는 모든 인간의 꿈이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누구이며 얼마나 살았을까. 《구약성서》에 노아의 할아버지 므투셀라가 969세를 살아 가장 오래 살았다. 그는 187세 때 아들 라멕을 낳고, 369세 때 손자 노아가 낳았다. 노아가 600세, 증손자 셈이 98세 되던 해 마침내 숨을 거뒀다. 구약성서에는 므투셀라에 버금가는 장수인들이 아주 많은데, 최초의 인간 아담은 930세, 므투셀라 중조부 마할랄엘은 895세, 할아버지 예렛은 962세, 아버지 에녹은 365세를 살았고, 아들 라멕은 777세, 손자인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하느님은 인간의 수명을 120으로 줄였다고 한다.(「창세기」)
2005년 함안의 성산산성 터에서 발견된 700년 전 연꽃씨를 심어 꽃을 피워 〈아라홍련〉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1957년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에드먼드 슐먼 박사는 캘리포니아주의 해발 3000m 산정에서 죽은 듯 살아있는 노목을 발견하고 현미경으로 나이테를 세어보니 정확히 4,846세였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나무에 슐먼 박사는 〈므투셀라〉라고 이름 붙였다.
120년은 고사하고, 800년 900년을 살았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것처럼 들린다. 종교 영역을 차치하고 그것은 창세기 시대와 오늘날의 1년의 길이가 달랐다는데, 초점을 맞추는 학자도 있다. 3개월을 1년으로 치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공전 마찰력이 증가해 1년이 30일에서 365로 되었다는 가설은 입증되는 않는다. SF소설에서나 가능할지 모른다. 인생이란 시내버스 승객과 같아서 먼저 탔다고 먼저 내려야 하는 것도, 내리지도 않는다. 평균 수명 80세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은 학생이 있는가하면 40점을 맞은 학생도 있다. 30세에 죽은 사람도 있듯이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내일까지 살아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백세인생이라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오늘 밤에라도 그분이 찾아와서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서야 한다.
‘염라대왕이 삼경에 부르면 오경까지 살 수 없다’는 중국 속담은 우리에게는 생사를 결정할 주도권이 없음을 통찰하게 하는 어록이다. 죽음은 무방비한 삶에 쳐들어오는 끔찍한 야만인이다. 그사이는 아무런 완충지대도 없다. 늙은 노파라도 젊은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치장을 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렇게 천년만년 살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주 오랜 꿈이다. 그 꿈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꿈의 실현은 우리 몫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는 그 꿈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도 없다.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말라. 지금 가진 것이 한때는 바라기만 했던 것 중 하나였다는 것도 기억하라.”에피쿠로스 학파*창시자가 한 말이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고, 이 글을 읽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누군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1) : 헬레니즘시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 쾌락주의 철학을 펼쳤다.
내게 앞으로 남은 수명은 얼마나 될까. 계산은 간단하다. 평균 수명에 지금 내 나이를 빼는 것이다. 아니면‘100세 시대’라고 하니 100에서 내 나이를 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하거나 미련 둔다고 되돌릴 수는 없다. 허나 성경에서도 인간의 수명을 120세로 보았듯이 아직 제법 남았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2600년 전 공자는 고희까지 사는 것도 힘들다고 했고, 19,20세기까지만 해도 70을 넘긴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이별도, 기쁨도, 즐거움도 없다. 인고도 기다림도, 보람도 없을 것이고, 의미를 부여할 가치도 없다. 당연히 행복도 없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수십 년 후에 해도 된다. 무한대로 주어진 시간 속에서 모든 감정은 소거될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옥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실제 거기서 살아본 사람은 없지만 말이다.
동남동녀 3천 명을 대동시킨 서복에게 속아 불로초를 찾게 한 진시황은 49세의 단명으로 그 뜻을 접어야 했고, 바빌로니아의 영웅 길가메시 또한 신고 끝에 영생의 약초를 찾았지만 한눈파는 사이 뱀에게 도둑맞고 말다. 알렉산드 대왕 역시 오랫동안 찾아 헤맨 생명수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길을 잃는 바람에 몸종인 앙드레에게만 좋은 일을 시켰다. 그의 나이 서른세 살 때다. 이런 영웅들 모두 개인적 낙담은 컸겠지만, 누구도 죽음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실만은 분명히 보여준다.
죽음의 공포는 삶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진다. 이왕이면 늙지 않고 오래 살고 싶다. 영원히 살아서 미완의 삶을 완성하고 싶은 것이다. 이 소망이 불로장생을 꿈꾸게 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꿈이다.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수록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꿈은 더 커진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도전, 인간은 도전하는 존재다. 그러나 도전으로 다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직접 하늘을 날 수 없어서 비행기를 만들었다.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통해 내세에 기대를 건다. 이승의 결핍을 내세의 영생이 보상해 줄 것으로 믿는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명언을 남긴 프랜시스 베이컨은 역대 장수인들이 살아온 방식을 연구하면서 닭의 사체를 얼음에 채워 오래 보관한 뒤 되살리는 실험을 하다 감기에 걸려 죽었다.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고 믿은 그의 신념은 자신이 65세로 죽음으로 그것이 부질없음을 확인해 주었다. 장자도 말했다. “굴뚝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틀어봤자 가지 하나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새앙쥐가 황하강의 물을 마셔 봐야 자기 배만큼만 마실 수 있다.”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한 병조차 마시지 않으려는 인간이 생명의 유통기한을 무시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죽음이 행복하다는 것은 역설이지만, 존재의 유한성에 겸손하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의미는 유한성에서 나온다. 건강도 한계를 느낄 때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보석이 돌맹이보다 가치 있는 것은 희귀성의 한계 때문이다. 생명의 유한성은 인간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지금의 삶에 더 충실할 것을 촉구한다.
가고 싶지 않지만, 마지막에 누구나 꼭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창문이 없는 그곳을 유택이라고 하기도 하고, 무덤이라고 하기도 한다. 저택에 살던 사람은 죽어서도 저택으로 가고, 아파트에 살던 사람은 아파트 같은 납골당에 가고, 집이 없던 사람은 그저 바람에 날리듯, 물결처럼 흩어지기도 한다. 앞서 보았던 에피쿠로스는 삶이 두려운 것이 아니면 죽음도 두려운 것이 아니라며 “우리가 아직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는 우리가 이 세상에 없으니까 두려울 것이 없다.”라고 했다. 지금 여기서의 삶도 버거운데 아직 오지 않은 죽음까지 쳐다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과학자들과 현자들은 지금 여기서의 삶과 함께 죽음까지 똑바로 응시하라고 일깨운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에게도 죽음이 어김없이 찾아올’거라고 속삭인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고 상기시킨다.
우리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인생을 산다. 생로병사의 인생 여정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다 무방비의 삶에 쳐들어온 질병과 죽음의 이방인을 만나고서야 아차! 한다. 어제저녁을 같이 한 사람에게서 다음 날 아침 느닷없이 부음을 듣기도 한다.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다섯 가지 뿐이라고 한다. 1. 누구나 죽는다. 2. 순서가 없다. 3.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4.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5. 산 자는 경험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만고의 진리를 떠올리며 나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길든 짧든 나의 뼈와 살이 정신을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드러누울 때가 있으리라. 언젠가 우리 몸은 가뭇없이(안 보여 찾을 길 없음) 지워질 때가 있으리라. 아무리 몸부림쳐 봤자 맨 마지막에 차지할 공간은 책장 같은, 도서관의 책 같은 봉안당의 작은 공간 한 칸 뿐이다. 그 ‘문 없는 집의 문’을 나오면 주차장에는 여전히 상복을 입은 사람들 속에 죽은 사람의 손자 같아 보이는 누군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환하게 웃고 있고, 또 누군가는 악수를 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