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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장래의 희망이 무어냐고 물으면 예전엔 의사, 판·검사, 대통령 등이 많이 하는 대답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연예인을 가장 선호한다고도 한다. 어쨌든 자기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나도 꿈은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남 앞에 서기를 좋아했다. 이야기하는 데 재주가 있었던지 엄마 따라 영화 한 편이라도 보고 온 날은 동네 친구들 모아놓고 그 앞에서 보고 온 영화를 그대로 재연해 보여주었다. 친구들은 직접 본 것보다 더 재미있다며 손뼉을 쳤다. 나는 이야기로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가 어느 날은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무대에 세우셨다. 무대는 학교운동장 앞쪽, 조회 때마다 교장 선생님 훈화하시는 단상이었다. 넓은 운동장 가득 전교생이 모여 앉아 있는 앞에서 동화구연을 하라고 하셨다. 그땐 지금과 달리 숫기도 좋았던지 많은 학생들 앞에서 평소 읽었던 ‘어부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화의 내용과 더불어 할아버지 할머니 목소리까지 흉내 냈던 것이 다 기억난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국어 시간마다 낭독을 독차지했고 등장 인물의 개성을 살려 읽어서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꼭 성우가 되라는 격려를 받았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의 내 희망은 성우가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친한 친구와 안무까지 연습하며 노래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하늘을 찌를 듯 인기 있던 펄시스터즈의 노래를 불렀다. 학교행사나 소풍, 체육대회가 있는 날은 친구와 듀엣으로 화음을 맞춰 친구들 앞에 섰고 교감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졸업 후 가수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시고 격려해 주셨다. 그래서 한때 나의 꿈은 가수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연극반이 생겼다. 호기심에 연극반에 가입했더니 내가 3학년이었으므로 반장을 맡았다. 그때 연극반에 한 학년 아래인 후배가 하나 들어왔는데 그리 예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매우 열정적인 아이였다. 나와 친구들은 그저 호기심으로 설렁댄 것이었지만, 그 아이는 정말 연극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활발한 활동이 없자 무척 실망해서 잘 해보자며 적극적으로 언니들을 부추기기까지 했는데 그냥 호기심으로 연극반을 선택했던 나는 그리 열심히 하진 않아 그 아이를 실망하게 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그저 즐거운 학창 생활을 보내느라 가졌던 꿈은 까마득하게 잊게 되었고 꿈을 이루려는 열정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노느라 바빴다. 어느 날 TV를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 들어와 열심히 해 보자고 조르던 후배가 탤런트가 되어 등장한 것이다. 그리 뛰어난 용모가 아니어서 여주인공은 아니었고 억척스러운 역할을 주로 연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자기의 꿈을 좇아 이룬 것이니 훌륭해 보였고 그녀의 열정이 새삼 감동으로 다가왔다.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녀가 한동안 모습을 감추더니 이제 지긋한 나이로 ‘사랑과 전쟁’에서 시어머니나 아주머니 역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곽정희’ 라는 이름의 이 고교 후배 탤런트가 나는 무척 부럽다. 예쁜 여배우로 남진 않았어도 풋풋한 여고 시절 꿈을 그녀는 이루어 낸 것이다.
나는 살면서 몇 개의 꿈을 가졌었지만, 그것을 이루려고 치열하게 노력해 본 적이 없다. 만약 가졌던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성우? 가수? 연기자? 어느 것 하나 되어보려는 열정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저 약간의 재능을 자랑삼았던 정도이니 자신의 하고 싶은 꿈을 향해 치열하게 노력하여 이룬 사람들이 부럽고 존경스럽기만 하다. 한때 가졌던, 하나도 이루지 못한 나의 꿈들이 새삼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