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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월도, 한적함에서 오는 여유
자월도는 토요일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왕래는 극히 적은 편이었다.
10월의 중간쯤이어서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인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섬 중임에도 이렇듯 사람의 왕래가
뜸하다는 것은 이제 여름이 지나 성수기 휴가철에만 ‘반짝’하고 쓰러지는 요인에 있을 것이다. 사실 인천의 섬들은
여름 한 철을 빼면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한적하게 변하고 만다. 이것이 어디 인천의 섬들뿐이겠는가? 마는.
섬이라는 이미지는 이미 우리들에게 휴식과 충전이라는 요소로 자리매김하여 “여름 휴가철” 빼고는 생각이 어려울
정도로 힘들게 고착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곳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섬 들 중에는 여름 빼고도 사시사철 붐비는
섬들이 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섬은 천혜의 자연자원과 풍광을 지니고 있음에도 바다를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는
‘귀차니즘’과 승용차보다 못한 배의 속도로 인한 거리감 및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파도를 가르고 전진해야 간다는
무언의 저항감 때문에 각광받지 못하는 불만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섬은 이와 같은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단점을 먼저 파악해야만 한다. 비와 바람과
풍랑과 안개라는 자연인자는 섬의 주민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요소인 데 섬 주민들은 수많은
세월들을 체념하고 포기하면서 지내오면서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 여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 장골해수욕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펜션. 펜션의 주인들은 대부분 친절하였다.
자월도(7.06㎢)는 굴업도(1.71㎢)보다 7배나 큰 면적을 지니고 있는 섬이다. 큰 면적을 지닌 만큼 사람도 많이 거주하는
편이다. 굴업도는 고작 12가구 20여 명이 살아가는 단촐한 섬이지만 자월도는 무려 600여명의 주민을 안고 사는 섬이다.
그래서인지 가볼 곳도 많고 풍광 좋은 곳도 많다.
우리 일행은 총 15명으로 처음 백아도를 가기로 계획했을 때보다 10명이나 줄었다.
다섯 달 전부터 백아도를 가기로 모든 준비를 맞춰 놓고 숙박할 곳까지 예약해 두었는데 갑자기 배표를 구하지 못해 모든
것이 와르르 취소된 것이었다.
덕적도에서 출발하여 덕적군도 다섯 개의 섬을 왕래하는 배편을 구하려면 몇 달 전부터 예약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가는
날로부터 한 달을 남겨두고 인터넷 예약을 시작하는데 나래호의 승선인원이 120명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주말에 출발하는
예약표는 올리자마자 매진되는 진풍경이 10월 마지막 주까지 계속된다. 까닥 늦장을 부리다가 1분 사이에 표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요즘 부쩍 관광객들이 들끓는 굴업도의 영향때문이다. 우리가 갈 적에도 단체 관광객이 무려 40여 명씩 굴업
도로 들어가게 되어 백방으로 표를 알아보고 심지어 섬 주민의 남은 예비표까지 살펴 보았어도 구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꿩 대신 닭이라고 자월도를 선택하였다.
자월도는 이미 인천 사람들에게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휴양 섬이어서 모두들 한 바퀴 둘러본 후에는 공통적
으로 ‘잘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려한 섬이었다.
▲ 국사봉으로 올라가는 임도길. 오솔길 같은 한적함을 지니고 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아침 9시에 우리고속 훼리선을 타고 자월도 달바위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쯤이었다. 4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였으나 훼리선이 5분 정도 꾸물거리는 바람에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자월도로 가는 배편은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배와 대부도 방아머리에서 출발하는 배가 있다.
방아머리에서 가는 배는 차도선으로 20여 대의 차를 실을 수 있는데 도착하는 시간은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배와 두 배
의 시간이 걸린다. 대체로 여름 성수기철만 제외하고 하루 1번을 왕래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나오는 시간은 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반드시 선사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야만 한다.
달바위선착장에서 우리가 묶을 펜션은 트럭으로 불과 3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자월도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관계로 주민들은 펜션운영과 매점 및 식당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선착장에 배가 도착하는
시간을 맞추어 봉고나 트럭을 대기해 놓았다가 자기네 예약손님을 싣고 가는 것이다. 선착장에는 ‘자월면농어촌공영버스’
가 운행하고 있었는데 이 버스도 배시간에 맞추어 운영하면서 1시간에 한번씩 섬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왕래하면서 운행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버스비는 1,000원이었다.
우리는 펜션에 짐을 풀고 물이 빠지기 전 먼저 장골해수욕장으로 향하였다. 해수욕장은 길이가 1km, 폭이 400m의 완만한
경사를 지녔는데 펜션에서도 가까웠고 선착장에서도 1km 남짓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넓지 않은 해변이었다. 자월도는
이 곳 말고도 큰말해수욕장이나 하늬께해수욕장, 진모래해변, 별란금과 같은 몇 개의 아름다운 해변을 더 가지고 있다.
▲ 국사봉을 오르는 입구 초입. 관광객을 위해 정비를 잘해놓았다. 내려올 때는 같은 길이
아닌 오른편으로 난 임도길로 내려온다.
장골해수욕장은 이미 물이 빠져 해변이 드러나 있었는데 가장자리 해변은 개펄로 이루어져 있어 바지락이나 굴, 고동
등을 잡을 수 있는 갯벌체험도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이곳 자월도는 성수기 때는 휴가를 나온 관광객이 많지만 휴가철
이후에는 낚시터로 이름이 나있다.
물이 빠지고 난 후 긴 어망을 가지고 두 사람이 바다 가운데에 들어가 양 쪽에 서서 훝어오는 후리질은 섬이나 긴 강에서
하는 방법인데, 힘은 들지만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 솔솔 재미가 있다. 하지만 후리질로 많은 양의 어획량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떤 때는 고기는 없고 해파리만 가득 올라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후리질로 건져 올리는 것보다 더 많이 잡는 방법은 역시 낚시에 있다. 자월도의 낚시터는 섬 북쪽 전체와 남쪽에 부분적
으로 널려 있는데 선착장 근처에서도 낚시줄을 드리우고 망망대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낚시꾼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광어나 놀래미 등 월척을 낚아 올리려면 섬의 동쪽에 있는 진모래 해변턱이나 북동쪽의 떡바위까지 가야 한다. 아무래
나 소득을 올리려면 수고를 마다해서는 아니된다. 그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떡바위까지 가서 잡아오는 옆 방 손님들
덕분에 오늘 우리는 횡재를 만났다.
이 방 손님들은 한번만 ‘척’ 봐도 50cm가 넘는 광어 두 마리와 그것보다 조금 작은 광어 한 마리를 낚아와서 회를 썰어 옆
방 손님인 우리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육지에서는 서로 적이 되는 정글법칙 사회이지만 섬에 오면 누구나 온순한 벗이
되어 내 것을 ‘내것’이라고 하지 않고 기꺼이 나누어주는 훈훈한 미풍이 살아 숨쉬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즐거운 호사를
누렸다. 어디에 가서 이와 같이 즉석에서 잡은 자연산 광어를 맛볼 수 있단 말인가? 이 집 펜션은 우리 말고도 두서너 팀의
손님을 더 받았는데 또 다른 옆 집 손님들은 갓 잡아 올린 꽃게 10마리 정도를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광어와 꽃게를 선사받
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입에 바른 덕담에 불과하였다. 육지 ‘마트’에서 구입해 온 삼겹살은 자연산 해산물에
비할 수 없이 부끄러워 감히 권하지도 못하였다.
▲ 짝짓기를 하고 있는 암수사마귀.
자월도에는 펜션이 많았다. 그만큼 관광객이 많이 드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이다. 우리가 묶었던 펜션 옆
에도 새로 짓는 펜션이 있었는데 섬을 돌아다녀 보니 다른 곳에서도 새로 짓는 펜션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폐가가
되어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 집도 보였는데 들어오는 집과 없어져 가는 집이 대비되면서 역사와 자연의 한 순환과정을
보고 있는 듯 진지해지기조차 하였다.
펜션이 많다 보니 그만큼 보이지 않는 경쟁도 보이는 듯 하였다. 세월이 흘러 섬의 토박이들은 많이 보이지 않고 이제는
외지에서 들어와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들은 펜션에 투숙한 손님들에게 친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삼겹살을 구워 먹기 위해 참기름과 마늘이 필요하였는데 주인에게 이야기하니 한 술 더 떠 들깨가루까지
덤으로 그냥 준다. 한번 오는 손님들에게 두번 세번 오게 하는 전략은 오직 친절밖에 없다. 한 사람에게 불친절하면 불친절을
당했던 손님은 자기가 아는 사람 100명에게 퍼뜨린다고 보면 된다. 100명은 다시 천명이 되고 만명이 된다. 인터넷에 불친절하
다고 소문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주인은 우리가 자리잡았던 일층 방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라 발소리
가 시끄럽다고 방을 옮겨달라고 했더니 즉시 빈방으로 옮겨주는 친절을 베풀어주기도 하였다. 주인은 이미 요령을 터득하였던
것이다.
▲ 폐가가 되어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집. 폐가는 마을에서 두어 군데 발견되었다.
▲ 새로 지어놓은 진흙집. 우리가 있었던 펜션도 왼편을 보면 진흙으로 지은 집이 보인다.
오전에 갯벌체험을 한 우리는 점심을 먹고 국사봉을 올랐다. 국사봉은 제일 높은 봉우리가 178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책 삼아 걷기에는 무리없이 오를 수 있는 산이었다. 산불을 예방하기 위한 임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양 측 임도의 중간에 국사봉을 오르는 이정표가 보인다.
“국사봉”이라는 명칭은 섬마다 마을마다 같은 이름이 많은데 정설은 아니지만 옛부터 나랏님이 신하를 귀양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억울하게(?) 귀양을 오는 신하들은 마을이나 섬의 제일 높은 산 위에 올라 멀리 임금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나라를 생각하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사”라는 한자어는 섬마다 각기 틀린 부분이 많아서 “思, 祠, 師, 射 ”로도 쓰여져 유래가 같지 않다는 것도 보여준다.
산을 오르면서 우리는 가을의 야생화와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섬에는 유난히 천남성, 투구꽃, 노젓가락나물과 같은
독초들이 많이 있었고 뚜껑별꽃, 옥잠난초, 용둥굴레도 만날 수 있었다.
기실 국사봉 트레킹코스는 선착장에서 국사봉을 올라 변낭금자갈해변으로 나와서 큰말해변을 거쳐 장골해변을 지나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기 일반적인데 이것만 해도 3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거리이다. 하지만 이 같은 코스는
등산 동호회 회원들에게나 통용되는 코스이고 우리와 같이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국사봉을 올랐다가 다른 임도길로
나와도 3시간이 족히 걸리는 즐거운 산책코스였다.
▲ 국사봉 정상의 정자. 계단 밑의 돌에 새겨진 산의 정상은 166m인데 소개하는 가이드 책자에는 늘 178m라고 나오는데
정상은 어디인지 궁금하다.
다음 날은 어류골을 경유하여 떡바위로 향하였다. 어류골은 골짜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어류들이 모이는 U자형 해안이었다.
펜션에서 어류골까지 걸어서 가기에는 시간이 걸려 주인댁의 1톤 트럭을 타고 어류골까지 향하였다.
떡바위로 가는 길은 산의 옆길로 가야 하는데 마침 어류골이 간조 때라 굴과 각종 어패류들이 앉았다 간 우둘투둘한 큰
바위들을 밟고 건너서 간신히 입구에 이르렀다.
길은 한 길이었고 긴 거리는 아니었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한적한 정취를 만끽하였다. 가다가 우리는 두 갈래 길을
만났다. 왼 편 길은 풀들이 비교적 짧고 오른 편 길은 풀들이 무성한 것을 보면 오른편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앞장서서 먼저 간 사람은 오른편 길로 가고 말았다. 뒤에 처져서 땅에 떨어진 밤을 주우면서 뒤따라 오던
글쓴이는 왼쪽 길로 가다가 막막한 산길에 홀로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행히 소형 마이크소리를 듣고 다시 뒤돌아가
가까스로 합류하였지만 무성한 풀숲으로 이루어진 골짜기를 가로질러 건너오느라 허벅지가 가시에 긁히는 불상사가 생기
고 말았다. 하지만 이 길은 본래 길이 아닌지라 막다른 끝이 묘지에 막히고 묘지 입구에서는 살모사가 똬리를 틀고 도사리
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도 살모사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남자는 별로 없고 여자만 많아서 가벼이 보고 도망가지 않은
지도 모르겠다. 주춤하던 남정네 한 명이 작대기를 줏어 들고 급소를 쳤더니 그제서야 마지 못한 듯 풀숲으로 사라진다.
인디애나 존스에 나오는 해리슨포드는 장애물을 없앤 후 또 다른 장애물이 있는지? 긴장을 풀지 않고 주위를 다시 둘러
보는 모션을 취하는데 묘지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가시덤불로 막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멀고 높은 곳까지 묘지를 쓰는 후손들의 수고가 우리에게는 노고(勞苦)가 되고 말았다.
시작점에서 떡바위로 다시 올랐다. 길은 외길로 길지 않았지만 사람의 왕래가 뜸한 이곳 길은 가파른 곳이 없는 오솔길이
어서 도시 속의 세파를 잊고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 떡바위로 오르는 길에서 으름열매를 발견하였다. 이와 같은 열매는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
곧바로 나무에서 따서 먹었는데 바나나와 약간 다른 달짝지근한 맛을 낸다.
떡바위에서 돌아오는 길은 아무래도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마침 간조 때라 굴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위를 딛고
해변으로 돌아 나왔다. 모두들 조심조심 걷느라 오솔길로 갔어도 매한가지 같은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시간은 12시를
넘겼는데도 시장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떤 한 군데에 집중하고 있으면 배고픈 줄도 모르고 지나가지만, 빈둥빈둥 놀고 있거나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시장기는 금방 찾아온다. 모두 할 일을 마치고 마을로 나와 예약한 식당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이 곳 식당은 자월도
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자기 집의 반찬은 어묵 빼고는 모두 이곳 섬에서 채취한 것으로 만든다고
자랑하였다. 우리가 묶고 있는 펜션집의 반찬과 비교해 보니 과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외지에서 들어와 펜션을 운영
하는 사람이 토박이와 비교가 되겠는가? 많은 사람의 음식을 준비할려면 섬에서 나온 것만 가지고는 공급이 부족할 것이다.
이것은 요즘 우리나라 어느 섬을 가더라도 비슷한 현상이다. 도시나 섬이나 모든 것이 비슷하다면 나중에는 찾아가는 횟수
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세월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별성이 있는 한적한
섬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한적한 섬도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면 결국은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막혀 토박이음식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서해의 섬들은 남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무수히 많은 섬들에 비해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많이 비껴나 있다. 알려지지
않고 무궁무진한 자연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서해의 섬들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놓고 나만 홀로 곶감 빼먹듯이 하나하나
음미하고 싶다.
▲ 목섬에서 마을로 내려오면서 발견한 무당거미. 거미에게 한번 걸려들면 무엇이든 죽음을 면치 못한다.
거미는 촉수를 이용하여 먹이를 액체화시켜 그 액체만 빨아들여 배를 채운다. 왼쪽 밑은 희미하지만
액이 모두 빠져 껍질만 남은 곤충들이다.
오후의 일정은 하늬포의 목섬이다. 하늬포에서 목섬으로 연결된 구름다리는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사진을 촬영하기에도 좋은 장소이거니와 길지 않음에도 구름다리를 건너는 상쾌한 기분도 일품이다. 다리에 서면 멀리 영흥
도 화력발전소에서 뿜어 나오는 볼썽사나운 높은 기둥줄기도 볼 수 있는데 시선을 왼편으로 틀면 송도신도시와 영종도를
잇는 길이 18km가 넘는 인천대교도 아련히 볼 수 있다.
자월도에서 인천으로 나가는 우리고속 훼리호의 출발시간은 오후 5시였다. 일찍 나가 줄을 섰어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
도를 거쳐 자월도로 오니 좌석마다 사람과 베낭으로 덮여 자리를 구하기도 힘이 들었다. 피곤한 사람들에게 베낭을 빼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려워 선창에 나가 있다가 간신히 자리 하나 빈 곳을 발견하여 몸을 붙이면서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부두에 꿈을 두고 정든 사람 손을 흔드네.’
자월도에 묶으면서 정든 사람 두고 오지 않았지만 검붉은 달빛을 뿜었다는 자월도는 달빛만큼이나 사람에게 정이 들게 하는
한적함을 지니고 있었다.
자월도의 1박2일은 섬의 모든 것을 볼 수 없었지만 다음에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정감이 가는 섬임에 분명하였다. ‘자월도
야! 내 다시 오리다!’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이면서 자월도의 아쉬운 추억은 파도의 포말처럼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 하늬포와 목섬을 잇는 구름다리. 다리 위에 서서 앞을 바라보면 영흥도 화력발전소가 보이고
눈을 왼편으로 틀면 송도신도시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가 보인다.
첫댓글 팬션들을이쁘게지었네요
역시ㅡ금강송님의설명답습니다
홈피보니 넘 이쁘고 식당도 함께 있어서 좀 비싸도 결정 했는데....
가보디 색깔이 많이 바랬더군요.
와~ 금강송님 뭔 글을 이리 잘 쓰신데요... 여행작가 하셔도 되겠습니다.
원래 인터넷 작가로 알고 있어요.
어렸을때 문학소년이었다나.....ㅎㅎ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제가 원래 좀 남드리 칭찬하면 공중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좀 있어요.
학창시절때 '엄마! 나 먹었어!' 할 때가 있긴 있었습니다.ㅋㅋ .
오~~후기 멋집니다.
맛깔나는 글솜씨에 단숨에 읽었네요.
몇가지 첨언하면 우리 으름 열매는 국사봉 가는길 먹었는데...ㅎㅎ...
글구 떡바위에서 고동 잡는다고 다들 정신 못차린건 빠트리셨네요.
혹 금강송님은 안 잡으셨는지...
전 삶아서 너무 잘 먹었답니다.
으름이야기는 사진에 나와있구요. 나머지 이야기까지 쓰면 페이지 수가 많아질 것 같아서요.
페이지 수가 많으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마우스로 금방 후딱하고 뒤로 제껴버리거든요.헤헤
멋진 기행문과
사진 감동 입니다.~~~~
작가 도전을 추천합니다.
뭐가 이리 호들갑이다냐.ㅎ
금강송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옛적 야생화 찾아 들풀샘님 따라 산과 들을 누비던 때가 그립습니다. 금강송님의 정겨운 글을 대하니 감회가 그윽합니다. 글솜씨는 여전하시군요! 자월도! 참 아름다운 섬이죠! 저도 올 해는 지인들과 자월도 승봉도 덕적도 대이작도 등을 즐겁게 다녀왔습니다.모두 아름답고 한적해 다시 또 가보고 싶은 섬들이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대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
송산님. 저도 올ㄴ만에 인사드립니다. 필드에서 뵙지 못한 지가 벌써 1년 반 정도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늘 조용한 웃음으로 곁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후견인이 계신것 같았는데요.
이번 자월도도 참 좋았습니다.언제 다시 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이런 후기글 첨봐요.
덕분에 늦은밤 야간공부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