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송파구 잠실역 주변에 있는 대형 서점 두 군데에 들러서 '택리지' 두 권을 샀다.
이중환은 (1690~1756년)은 이조 숙종 때 태어난 충남 공주 사람.
조선 8도에 대한 인문지리 책이다.
1751년에 발간했으니 온통 한문.
나는 한문 원문이 든 책과 원문을 옮긴 책을 동시에 구입했다.
당파 싸움으로 두 번이나 유배되어 집도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사람 좋기 좋은 곳을 찾으려고 했던 결과가 위 책이다.
살기 좋은 곳으로는 공주 갑천을 첫째로 삼았으나 유배생활로...
8도 곳곳에는 많은 마을이 있다.
복거지(卜居地), 계거지(溪居地)로는 충청도 남포 화계(花溪)도 들어 있다.
당시의 남포현 화계는 지금의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의 1리에 속한다.
구룡리는 1리, 2리로 나누는데 1리가 화망이다. 산골이다.
화계는 화망(花望)으로 지명이 변천된 듯 싶다?
뒷산이라고 해야 해발 200m 정도 낮은 산, 앞산인 화락산(花落山)도 해발 240m 정도인 얕은 산이다.
화망마을은 얕은 산이 구석구석 구렁거리며 감싸여 있다.
무창포 포구가 있는 갯바다는 걸어서 40분 거리이고, 동쪽 강과는 40분 거리이고, 내륙의 골 깊은 산도 반나절 거리이다.
이렇게 작은 마을, 오지의 산골마을(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임)을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선정했을까?
인심이 온화하고, 농사 짓고, 강과 바다가 가까우니 수운할 수 있고, 병란(전쟁) 관심이 적은 지역이어서?
2017년인 남한에는 마을이 몇 개나 됄까? 5만 개쯤 될 것 같다.
여기에 이북까지 보태면 마을은 8만 개에 달할 것 같은데...
이 가운데 아무런 특색이 없는 작은 곳, 산골 마을이 끼었다니...
왜 가거지(可居地)로 봤을까?
그는 두 번이나 당쟁에 유배되어 전국을 떠돌았기에 온화한 곳을 찾았을 것 같다.
완벽한 곳을 찿아내지 못했어도, 이 책에서 그의 실학사상, 실사구시, 평등사상을 엿보게 한다.
그 분이 되살아서 2017년인 지금을 본다면?
1930년대 일제시대에 신작로가 생겼고,
1930년대에 이웃 마을에 장항선이 신설되어 기차 소리가 들리고,
1980년대에 농공단지로 마을 동편이 줄어들었고,
1990년 초에 납향받이 앞뜰 논이 경지정리되어서, 갯바다와 연결된 시냇물에서는 참게, 장어가 사라졌고,
1995년대에는 서쪽에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서낭댕이 뒷편 산으로 나서, 자동차 소음이 들리고,
2016년인 작년에는 남향받이 앞산과 앞뜰이 일반산업단지로 사라지고 말았다.
북쪽 외각 산자락이 조금씩 남아 있는 마을로 쪼그라들었다.
작은 산골 마을 형태는 사뭇 변했다.
지역개발은 많은 지리, 인문, 민간역사를 사라지게 한다.
택리지 사본이 여러 권이다.
내가 오늘 산 번역본은 육당 최남선이 교열한 책이다.
육당 최남선... 좀 그렇다.
1919년 3.1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분인데 친일파로 변절해서 해방 후에는 재판받아야 했다.
그는 '광문회' 출판소를 운영했기에 위 택리지를 교열한 모양이다.
택리지 사본(번역된 것)을 추가로 더 구해야겠다.
2.
원문은 한문.
내가 읽을 수는 없다.
한자옥편을 펼치지 않는 한.
나는 요즘 1900년대의 한자 공문 몇 개를 보았다.
온통 한문이거나 또는 한문에 우리글은 토씨는 몇 개(조사)가 고작이었다.
불과 100년 이쪽 저쪽인데도 과거인데도...
이런 관점에서 나는 주시경 선생을 존경한다.
어려운 한자보다는 쉬운 한글을 평준화, 현대화 기틀을 마련해 주셨기에...
나는 한자, 한자어(한자를 한글로 쓴 말과 글)을 덜 써야겠다.
나는 그냥 우리글 한글로나 읽고, 글 쓰겠다.
내일 모레에는 시골로 내려간다.
내일, 아내는 성당 모임 있다, 하루 더 머물겠다기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서울에서 너무 오랫 동안 머물렀다. 열이레째.
내 고향은 지금쯤 가뭄 피해, 장마 피해가 났을런지도 모른다.
야트막한 산 아래라서 아무리 비가 내려도 물 피해는 없다.
단지 텃밭에 빗물이 고이면서 흘러내리는 산지형태라서 풍수 피해가 극히 적은 지형이다.
2017. 7. 17. 월요일.
구한말까지는 화계리(花溪里).
인터넷으로 지명을 검색하니 남한에도 여러 군데나 된다.
화망(花望)은 외톨이?
상구리, 하구리, 화망이 합쳐져서 구룡리(九龍里)로 지명이 바꿨단다.
구룡리는 1리(화망), 2리(장마)로 소분류될 만큼 작은 마을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첫댓글 저도 한자가 어려워요
한자가 섞인 책을 공부 하다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지요
님의 글에서는 한자어가 엄청나게 많은 이유를 알겠군요.
공부 많이 하셨다는 증거.
저는 나이들수록 한자는 자꾸만 잃어버리네요.
우리말을 되살려 썼으면 하고요.
나이 든 시골 노인네들이 사라진 뒤에서나...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