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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제 : 2015년 03월15일
누구와 : 산악회 회원들
어디로 : 오갑산(609.4m)
지난주 토요일(3월7일) 시산제 산행이 있을 오갑산에 다녀왔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바위는 찾아볼래야 고작 삼형제 바위뿐, 그곳 마을 주민 이야기로 이산은 무릎 아픈 사람도 산행에 지장이 없다고 강 추다. 본인도 5년전 그러니까 2010년 초 회사 떠나고 마음 잡기 위해 운동 시작하면서 무릎 관절이 망가졌는데도 3월 시산제 참석하여 이 산 한 바퀴 돌았으니 이해가 간다. 사전답사를 하다 보면 여유로워져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되고 다음에 찾을 우리 회원님들 산행하기 편 하라고 등산로 장애물도 제거하고 길 안내도 해야 되는 것은 당연지사, 등산로에 쓰러져 있는 나무는 제거한다고 해도 이정표가 많이 낡아 다음 산행에 인쇄물을 가지고 와 중간 중간 설치해야 할 듯하다. 금방 일주일이 지난다.
2015년 시산제 행사가 있는 오갑산은 경기도 여주와 충북 충주, 음성 3개군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산 언저리에 오압사라는 사찰이 있어 그렇게 불리었는지 아님 산 이름을 따 사찰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되 삼국시대 에는 오압산(梧壓山)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지리적 조건이 좋아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수난을 겪은 산이다. 고구려와 신라의 한수지역 거대한 농토를 확보하기 위한 양국의 크고 작은 싸움이 잦았던 곳이며 임진왜란 때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과 전투를 하기 위해 진을 쳤던 곳도 있고 정상에서 삼형제바위 방향 옥녀봉(삼태봉)에는 통신수단이었던 봉화 터가 있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바위는 고작 삼형제 바위만 눈에 들어오며 산 천체가 유순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지장 없이 산에 오를 수 있다. 산행은 대부분 원점회귀코스로 원부저수지 앞 어우실 팬션 주차장에서 시작 두둠이산-오사고개-국수봉-이진봉(정상)-옥녀봉(삼태봉)-밀고개-원부저수지 앞 주차장까지 약 4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다. 이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다 보니 수난의 전설도 많이 내려오며 그 중 오갑고개와 오갑산 이름에 얽힌 전설이 있어 기록해 본다. 『조선 중기 감곡면 왕장리 왕대에 한씨 성을 가진 젊은 부부가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부부는 효성이 지극한데다 주변의 불쌍한 사람들을 측은하게 여기어 항상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거기다 한씨 부인의 용모가 빼어나 근동에서는 이 부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났는데, 감곡면까지 들이닥친 청나라 군사들은 진귀한 물품을 약탈하거나 여인들을 강탈하기에 바빴다. 특히 청나라 장군 빠오쟈[色五甲]는 근동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한씨 부인을 찾기 위해 부하 두 명을 데리고 왕대 한씨 집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빠오쟈가 왕대에 나타나기 전에 한씨 부인 앞에 젊은 처녀가 나타나 “지금 부인의 신변이 위태로우니 어서 들것을 만들어 모친을 모시고 나를 따르시오.” 하며 자신을 따를 것을 권하였다고 한다. 한씨 부인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아서 병중의 노모를 들것에 태우고 처녀의 뒤를 따라 나섰는데 이상하게도 들것이 하나도 무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캄캄한 밤인데도 처녀의 몸에서 빛이 나와 앞이 조금도 어둡지 않았다. 한씨 부인 일행이 첩첩 산중으로 들어갈 무렵 빠오쟈가 한씨 집을 덮쳤고 허탕을 치자 수소문하여 한씨 부부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에 서둘러 뒤를 쫓다가 험준한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처녀의 불빛을 발견하였고 고개마루에서 쉬고 있던 한씨 집안사람들을 보고 칼을 빼 들었다. 한씨 집안사람들은 이제는 별수없이 죽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체념하는 순간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처녀가 산봉우리를 향해 들고 있던 파초선을 흔들자 캄캄한 하늘 어디에선가 갑자가 날카로운 시위 소리가 들리더니 화살이 날아와 빠오쟈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슴에 화살을 맞고 죽어 나자빠져 있던 빠오쟈의 시체는 날이 밝아서야 발견되었으며 그 후 청나라 장군 빠오쟈 곧 색오갑이 죽었다고 하여 이곳 고개 이름을 ‘오갑고개’라고 부르고 그 시체가 묻힌 산을 오갑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우리나라의 전설 중 등장하는 효심에 대한 전설로서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전설지』에 실려 있고 2002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도 수록되어 있다. 하여 든 지리적 조건이 전쟁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이라 예전부터 군사적인 전설 또는 기록들이 많은 곳이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위치며 교통편이 좋고 산이 전형적인 육산으로 누구나 산에 오를 수 있어 가족 산행에 적극 추천하고 싶다.
지난주 사전답사 다녀온 결과 몇 곳의 이정표가 부실하여 인쇄 및 코팅을 하여 메가폰 주머니에 같이 넣고 이른 새벽 버스 탑승 장소인 강변 역으로 출발이다. 일년에 한번 있는 행사라 오랜만에 참석하는 회원들도 대거 와 있으니 즐겁기도 하며 설레기도 하다. 출발시간에 맞춰 두 대의 버스는 강동 역에서 추가 회원이 탑승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한다. 동쪽 하늘엔 오늘의 날씨를 예보하듯이 붉게 태양빛이 물들기 시작하며 기분이 좋아진다. 향상 그러하듯이 우리 산악회에서 산행이 있는 날은 날씨가 좋다. 아니 흐리다가도 개고 흐리다가도 산행 마무리하면 내린다. 무슨 조화인지 아님 인연인지 하여 든 좋은 징조다. 오늘도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올 한해 동안 크고 작은 산행에 아무 사고 없을 것을 예고한다. 산행 들머리가 가까운 곳이라 두 시간도 채 안되어 도착한다. 미리 와있던 원주 조인규부부와 광주 팀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마중이고 9시가 좀 지나 시산제 준비 인원을 제외하고는 대 인원이 산행에 임하고 어울실 낚시관리소 좌측 소로를 끼고 얼마 안가 좌측으로 접어든다. 항상 후미에서 집게를 들고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주어 담는 영백이를 보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이제 막 시작되는 경사가 배낭의 무게에 몸에 열이 발산된다. 하지만 지난주 토요일에도 와 봤던 곳이고 몇 년 전에도 왔던 곳이라 금방 힘든 기색은 사라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어느덧 이번이 18번째가 되는 산악회의 행사 중 큰 행사다 몇 년만 있으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20십년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돌이켜보면 무수히 많은 추억거리가 있는데도 잊혀진 건 잊혀진 대로 진하게 기억에 남는 건 남는 대로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동네 뒷산 오솔길 같은 포근한 솔밭 길을 바람 한 점 없는 오늘 같은 날 이곳에 모인 이들은 글쓴이가 강제로라도 행복한 이들로 정한다.ㅋ 그렇다 여기에 행복을 받으러 아니 주러 온 회원들이기에 오늘 같은 날씨를 하늘에서도 공급해주지 않을까? 준족의 선두는 어느덧 사라진 지 오래고 느리게 가는 미에 맞춤형인 우리 같은 즐기는 이들은 후미에서 여유로운 산행이다. 시산제 시간에만 맞게 하산을 하면 되는 것이니까. 두둠이산 이정표 지난 지도 한참이고 후손들이 잘되라고 치성 들여 조성해 놓은 묘도 지난 지 한참이고 지난 토요일에 여기저기 가로 놓여 있던 등산로의 장애물도 모두다 치웠으니 거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만은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도 볼 겸 농사가 시작 되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할 농토는 고요 그 자체이다. 출발한지 40분이 지나 후미가 드디어 휴식이다. 오랜만에 산행을 하시는 갑철, 윤태형님들이 바로 그들이고 과일로 갈증을 해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지다 나중엔 길을 잘 아니까 알아서 진행 할 것이니 우리보고 먼저 출발하란다. 선배님들을 남겨두고 간다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등산 구력이 대단하신 분들이며 혼자도 아니고 동무가 있으니 천천히 오시라 당부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출발, 같이 했으면 하던 분들이라 아무 말들도 없이 무던히 진행만 할 뿐 침묵이다.
어느 정도를 지났을까 우측으로 임도가 보이며 노루목의 이정표를 지나 살짝 가팔랐다가 내려서며 육산에서 보기 힘든 바위가 아기자기하게 버티고 있으니 보기가 좋다 이맘때쯤이면 진달래가 연분홍빛을 발하며 수줍은 모습으로 피어 있을 꽃 봉우리가 한 방울의 물기만 머금어도 금방 터질 듯한 모습으로 하지만 가뭄이 길어지며 목말라하는 봉우리가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수많은 인원이 지난 흔적 따라 봉우리 하나를 제쳐 놓고 우측으로 슬그머니 쉽게 산길이 나있다. 지난주에 이곳 어디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우리는 그렇게 먼저 지나간 흔적을 이용하여 슬그머니 쉽게 지나가 해발 429m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오사고개에 도착 잠시 휴식하며 과일로 피로를 풀고 바로 내려서서 헬기장(1)을 지난다. 조망이 괜찮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오름이 있고 봉우리가 하나 나타나며 완장봉(555.8m)이라는 서래야 박건석씨가 코팅하여 나무에 걸어 놓은 것이 있으니 이분 가끔 산에서 이름 모를 봉우리에 이런 표시를 해놓아 등산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긴다. 특히 대간 및 정맥 등 종주 길에 자주 보이는…… 감사할 뿐, 그렇게 다시 내려서서 헬기장(2)에 도착 이진봉이 1.4Km 남았다는 안내가 되어 있으며 또 다시 바로 헬기장(3)을 지나 아치형으로 넘어져 있는 소나무를 지나 충주시에서 설치한 표시 석이 세워져 있는 국수봉(594m)에 도착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표시 석에 이진봉의 높이(609.4m)을 표기하여 놓았다.
지난번 탐방 시에 알고 있었지만 이 산은 3개 시 군이 인접해 있으니 이진봉 정상에도 두 개의 정상표시 석이 있다. 통일된 마음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뿐 소나무가 무성하니 조망은 포기하고 주변을 살핀다. 이곳에서도 관한1리로 하산할 수 있는 안내가 있으니 산행 중 힘들다면 이곳에서 1.78Km만 내려가면 마을에 도착하니 산행에 두려움은 없으리라. 두 선배님들이 이곳에서 마을로 하산하셨다는……ㅋ 잠시 휴식 후 마지막 후미라 바로 진행한다. 5분정도 내려서서 이진봉과 국수봉의 중간지점(양방향 모두 330m)인 진터에 도착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지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이 주둔해 있던 곳이란다. 왜놈들이 진군하는데 이곳에서 눈치만보고 전쟁에 나서지 않았으니 결국은 충주가 무너지고 말았으리라. 그런 자리라고 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약소국의 비애라고나 할까 결국은 일본이 명나라와 전쟁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려 했던 것인데 이순신 장군의 활약에 결국 포기하고 만 전쟁이 아니었던가? 각설하고 아까와 같은 5분정도 진행하여 아름드리 소나무 곁을 지나 출발 전 영준이에게 부탁한 이정표 안내 코팅지가 정상과 삼형제 바위의 망가진 이정표 옆에 달려있다. 좋아보인다. 살짝 오름이 있고 여주군에서 세워 놓은 정상석이 있고 이름이 임진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여지까지 이진봉으로 알고 있는데 임진봉이라니…… 잠시 머물고 오갑고개 방향으로 몇 발짝 더 가보면 그곳에 산림청 헬기의 도움으로 이곳에 옮겨왔다는 음성군에서 세워 놓은 정상 표시 석이 중간부분이 훼손된 상태로 세워져 있다. 그 옆으로 아주 오래 된 이진봉 표시가 스텐레스 사각기둥으로 세워져 있고. 어느 것이 임자인지 두서가 없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 짐은 산을 좋아하는 누구나 그러하리라. 산의 정상 표시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지 지자체들에게 이익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산 관리는 관청이 있으니 거기서 일괄했으면 바램을 뒤로 다시 백하여 삼거리에서 안내 코팅지를 회수 후 삼형제바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곳은 산불로 황폐해진 곳으로 불에 탄 나무들의 무덤으로 조금씩 자연이 살아나는 듯 아마도 몇 년이 지나면 억새가 장관일 듯 제일 먼저 땅을 박차고 일어나는 복원능력이 탁월한 억새이니 조만간 억새 보러 가을에 한번 와야 할 것 같다.^^ 경사 길을 지나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있는 삼형제 바위에서 조망을 해본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길게 뻗어 산 속으로 사라지는 아랫동네와 우리가 지나온 봉우리들을 바라보니 봄은 어느덧 이곳에 와있는 듯하다. 옆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휴식하는 영동팀을 추월 등산로 한쪽에 배낭을 내려 놓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젊은이를 보며 현대를 살아가는 대세는 스마트폰이구나 느낌을 받으며 억새군락 사이로 경사 길을 올라 12시15분 옥녀봉(498.8m:삼태봉)에 도착한다. 이곳이 옛날에는 봉화 터가 있었다는 곳인데 소나무가 무성하니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하여 든 삼형제바위에서 건너다 보면 주변보다 높은 곳으로 충분히 봉화로 신호 전달 할 수 있는 위치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측 개금골 삼거리 방향으로 진행 동네 뒷산처럼 포근한 등산로 따라 20분 정도 진행 개금골삼거리에 도착 우측으로 진행하면 관한1리로 바로 하산이 되지만 등산로가 희미하고 산 중턱에 집을 짖고 뭔 훈련을 하는지 군대 유격장에서 봄직한 체력단련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목격할 수 있고 산에서 내려서서 무엇보다도 마을에 도착하면 도로 따라 한동안을 걸어야 되니 발에 피로도 만만치 않으니 좀 더 직진하여 밀고개까지 진행하여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 좋다. 하여 우리는 직진이다. 10여분을 더 진행 밀고개에서 안내코팅지를 회수 후 임도 따라 푸른 물결 반짝이는 저수지 앞 아침에 출발했던 시산제 장소에 도착한다. 준비가 다 되고 한해 무탈한 산행을 위해 KT 산악회 제 18회 시산제가 실시되며 많은 회원님들의 헌작을 마지막으로 2015년 시산제가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