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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1.만복사저포기
전라도 남원에 양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일찌기 어버이를 여의었는데 아직 아내를 얻지 못하여 홀로 만복사(남원에 있는 고려 문종때 지은 절)라는 절간 구석의 동편에 방 한칸을 얻어 외로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살고있는 절간 방 앞에 배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는데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여 꽃이 활짝피어나서 온 뜰안이 찬란하여 은세계를 이룬듯 아름다왔다. 그는 무시로 답답하고 외로울때면 달밤의 배나무 밑을 거닐면서 시를 읊기를 즐겨하였다. 그가 읊은 시에 하였으되 "한 그루 배꽃 나무 외로움을 벗 삼으니, 시름도 한많은 달 밝은 이 밤에, 외로운 창가에 홀로이 누웠으니, 어느 곳 고운 님이 퉁소를 불어 오나, 비취는 외로운 것, 짝 잃고 날아가고, 원앙새 한 마리가 맑은 물에 노니는데, 그 뉘집 아가씨께 이 마음 붙여 두고, 시름없이 깊은 생각 바둑이나 둘꺼나, 등불 가믈가믈 이내 신세 점치는 듯." 양생이 시를 읊고 나니 문득 공중으로부터 소리가 있어 가로대 "그대가 참말로 고운 배필을 만나고자 할진대 그 무엇이 어려울것 있으랴!" 이 소리를 듣고 양생은 크게 기뻐함을 마지 아니 하였다. 그 이튼날은 곧 삼월 이십사일이었다. 그 고을 풍속에 해마다 이날을 맞이하여서는 많은 젊은 남년들이 반드시 만복사를 찾아 향불을 피우고 저마다 소원을 비는 것이 풍습이었다. 이날 양생은 저녘 예불이 끝나기를 기다리어 법당으로 들어가 자기 소매 속에 깊숙이 간직해 가지고 갔던 저포(옛날 사람들이 점치는데 쓰던 윷 같은 것)를 내어 부처님 앞에 던지기에 앞서 스스로 바라는 바를 사뢰었다. "오늘 제가 부처님을 모시옵고 저포 놀이를 해볼까 하나이다. 만약 소생이 지오면 법연(불교의 설법하는 좌석, 자리)을 베풀어 부처님께 보답해야 할 것이오며, 그렇지 아니 하여 만일 부처님께서 지신다면 바드시 아름다운 여인을 소생의 배필로 점지하여 주시옵기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렇게 축원을 외운다음 문득 저포를 던지었더니 과연 양생이 승리를 얻게 되었었다. 곧 그는 부처님 앞에 끓어 엎드려 사뢰어 가로대 "저의 아름다운 인연은 이미 정하여졌사오니 원컨대 자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소생을 저버리지 마시기 바라옵니다."하고, 양생은 불탁 및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안되어 꽃같이 아름다운 화용월태(꽃의 모양 달의 자태. 엄청난 미인)의 아가씨가 들어왔다. 이는 열대여섯 밖에 되지 않았는데 검은머리, 깨끗한 단장으로 곱게 채운을 타고 내려온 월궁의 선녀와 같아서 가만히 바라보니 그 아름다웁고 고운 모습은 이루 형용하기 어려웠다. 흰 손으로 등잔에 기름을 따루어 등불을 켜고 향로에 향을 꽃은 뒤에 세 번 절하고 꿇어 엎드려 슬피 탄식하며 가로대 "인생이 박명하기 어찌 이와같을 수가 있사오리까?"하고, 품 속에 간직하였던 축원문을 꺼내어 부처님 탁자위에 드리니 그 글에 하였으되 "아무 고을 아무 동리에 사옵는 소녀는 외람됨을 무릅쓰고 부처님 앞에 사뢰옵니다. 이즈음 변방이 허무러져 왜도적들이 쳐들어와 싸움이 쉬일 날 없사와 봉화불이 해마다 그칠 날이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건물이 파괴되고 백성을 노략하오매 친척과 종들이 동서사방으로 피난하여 정처없이 유리걸식하였나이다. 수양버들과 흡사한 가냘픈 소녀의 몸이오라 먼 길에 피난키여의치 않사와 깊은 안방에 들어엎디어 금석 같은 굳센정절을 더럽힘이 없었건만 야속하온 우리 부모,이 여식의 수절하옴이 마땅치 않다하여 궁벽한 곳에 옮겨두어 초야에 묻혀 사옴이 하마 속절없이 삼년이나 되온지라 달 밝은 가을밤과 꽃 피는 몹 아침에 고단한 영혼어이 위무할 길 있사오리까? 흐르는 흰 구름과 쉬임 없는 물결 소리 들으며 무료한 세월을 보내옵노니 그윽히 깊은 골짜기에서 평생의 박명 박행함을 탄식하오며 홀로 공규를 지키어 기막힌 밤을 보내오니 님 그리운 이내 정이 채란의 외로운 춤을 홀로 스퍼하였삽더니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서러운 영혼 맘둘 곳 없사옵고 그러그러 날은 가고 밤은 와서 구곡간장 다 녹아 없어지나이다. 어지신 부처님이시여! 자비와 연민함을 베푸시옵소서, 인간의 한평생이 이미 정해져 있사옵고, 부부의 백년가약 또한 피할 길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하로 바삐 꽃다운 인영과 배필을 점지해주시옵소서." 여인은 축원물을 바치고 난 후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 슬픈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중에 불좌 밑에 숨어서 이를 엿보던 양생은 그 아름다움에 황홀 난측하여 스스로 그 정을 가누기가 어려워 문득 뛰어나와 말해 가로대 "아가씨의 지금 읽은 글월은 대체 무슨 내용의 것이오니까?"하고, 이윽히 여인의 글발을 한번 흝어보고 만몀에 기쁜 빛을 감출 수 없어 여인에게 일러 가로대 "그대는 누구시기에 이곳에 홀로 와 있읍니까?" 여인은 아무런 놀라움과 두려움도 없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저도 사람임은 분명하오니 의심을 푸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배필을 구하고 있는 중이시죠. 굳이 성명을 알아 무엇하시리까?" 이때 만복사는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절 한 모퉁이에 옮겨 살고 있었는데 법당 앞에는 다만 쓸쓸한 행랑채가 남아 있었다. 행랑채 끝에 판자방이 한칸, 매우 비좁은 방이 있었다. 양생은 여인을 눈짓하여 옆에 끼고 안으로 들어가니 여인도 이를 거절치 않고 따라가는 것이었다. 이에 양인은 운우(직역하면 구름과 비인데 남녀의 즐거움을 이름......)의 즐거움을 누리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 달이 동산에 솟아 오르며 그 황홀한 그림자가 창가에 비치는데 문득 어디서인지 사람의 발자욱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여인이 먼저 놀래어 "누가 왔느뇨? 아무개 아니냐?"하는 말을 여아가 대답하여 가로대 "그렇습니다. 낭자께서 문 밖에 일보도 나가지 아니 하시더니 오늘 어찌 이런 곳에 와 계시오니까?" 여인이 이에 대답하되 "오늘의 가연은 실로 우연한 일이 아니다. 높으신 하느님과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고운 님을 점지해 주신 덕택으로 백년해로를 하게 되었으니 이만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비록 어버이께 말씀 드리지 못하였음은 예의에 어그러진 일일지나 그러나 이렇듯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되었음을 한평생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너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주안상을 차려 가지고 올지니라." 시녀가 명을 받들고 물러간 뒤 얼마 후에 당시 돌아와 뜰아래에서 합환의 잔치를 베푸니 때가 이미 사경(새벽 두시 전,후)에 임박하였었다. 양생은 가만히 그 주안상의 그릇을 보살펴 보매 기명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으며 술잔에는 기이한 향내가 진동하는데 이는 인간의 것이 아닌상 싶었다. 양생은 속으로 은근히 의심해 마지 아니하였으나 그 아가씨의 맑고 고운 음성과 몸가짐이 아무래도 어느 명문집 따님이 한때의 정을 걷잡을 길 없어 이 어두움 속에서 담을 넘어 뛰어나옴이 틀림 없으리라 생각하고 별달리 생각지 아니 하였다. 아가씨는 양생에게 술잔을 권하며 시녀를 시켜 굳이 권주가 한 가락을 부르게 한 뒤에 양생에게 말하기를 "애는 옛곡조 밖에 알지 못한답니다. 청컨대 당신께서는 저를 위하여 한 수의 노래를 지어 불러 주도록 하여 주시오면 고맙겠읍니다." 양생은 쾌히 허락한 다음 곧 만강홍(원래는 배의 이름 입니다.)가락으로 한 곡조 지어 시녀에게 부르게 하니 "봄 추위 쌀쌀한 바람에 명주 적삼 팔랑이고, 애닯아라 몇 몇 번이나 향로에 불이 꺼졌던고, 저문 뫼 눈썹인양 가물거리고, 저녁 구름 양산모양 퍼졌는데, 비단 장막 원앙 이불에 뉘로 더불어 노닐는고, 금비녀 반쯤 꽃은 채 퉁소 한 가락 불어볼가나, 덧 없는 저 무정 세월 어이 흘러만 가느뇨. 봄밤 깊은 수심 둘 곳 한이 없는데, 타오르는 등불 가물거리고, 병풍 낮으막히 둘러 한갖 헛되이 흘리는 눈물, 뉘로 더불어 위로 받으랴. 기쁠시고 오늘의 이 밤, 봄바람이 소식 전하여 중중 첨첩 쌓인 정한, 봄눈 녹듯 녹았어라. 금루곡 한가락을 술잔에 기울여서 한많은 옛일 느껴워 하노매라." 노래를 마치매 여인은 슬픈빛을 띠우고 말하였다. "그대를 진작 만나지 못하였음을 못내 한스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가연을 어찌 천행이라 하지 않사오리까. 당신께서 만일 소첩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종생토록 당신의 건슬(수건과 빗)을 받들겠나이다. 만일 당신께서 저를 버리신다면 저는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나이다." 양생이 이 한 마디를 듣고 한편 놀라우며 또 한편 고마운 생각이 가슴에 부듯하여 말하였다. "그대의 사랑을 내 어찌 저버릴 수 있으리요?" 그러나 아가씨의 일거 일동이 아무래도 이상하여 그는 유심히 그의 동정을 살피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 하였다. 그때 마침 서쪽 봉우리에 지는 달이 걸리고 먼 마을에서 닭으 홰 치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그때 절간의 새벽 종소리가 울려오자 먼동이 희끄무래 트이기 시작하였다. 여인이 말하기를 "너는 그만 술상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가거라." 인하여 시녀는 곧 안개슬듯 어디로인지 없어지고 말았다. 여인이 말을 이었다. "아름다운 인연이 이미 이루어진지라 낭군을 모시고 저의 집으로 돌아갈까 하였읍니다." 양생은 기꺼이 승락하고 아가씨의 한 손을 잡고 앞길을 향해 걸어가는데 마을을 지날 때에는 울타리 밑에서 이미 이웃 개들이 짖기 시작하였고 행길에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뭇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은 누구든지 양생이 여인을 데리고 돌아오는 모습을 본이가 하나도 없었다.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있으랴. 다만 어떤 이가 "양총각 식전 이른 새벽에 어디 다녀 오시는 거요?"하고 의아히 물었다. 양생은 대답하였다. "어제 저녁에 크게 취하여 만복사에서 누었다가 방금 옛날 친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양생은 그 아가씨를 따라 깊은 숲을 헤치고 가는데 이슬이 길을 적시어 초로가 막막하였다. 이에 그는 겨우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당신 사시는 곳이 어째 이렇게 황량한가요?" 이때 아가씨도 옛날 글을 외워 농을 걸었다. "이슬 내리는 오솔길을 저물기 전에 가고 싶건만, 어인 이슬 길가에 차, 내 소원 막히느뇨" 양생도 그냥 있지 아니하고 또한 옛글 한 귀절을 외워 읽었다. "엉거주춤 저 여우는 다리 위로 건너가네. 정든 아가씨 노리는 마음, 미친 놈 멋없이 설렁대네." 둘이는 함께 웃으며 또 읊기도 하면서 함께 드디어 개녕동으로 나아갔다. 한 곳에 당도하니 쑥밭이 들에 가득하고 한 채의 아담하고 고운 집이 수려히 서있는데 여인은 향생을 데리고 그리고 들어갔다. 방 안에는 침구와 휘장이 드리워 있고 인하여 밥상을 드리며 어제 저녁의 만복사 차림새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기쁨과 환락으로 연사흘을 즐기었다. 그 즐거움은 한 평생의 아름다운 추억됨에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시녀도 얼굴이 아름답고 고우나 교활한 모습은 볼 수 없으며, 좌우에 벌려놓은 그릇들과 가구들은 무늬가 없으니 필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닌 듯 하였다. 그는 가끔가끔 의아한 마음을 금치 못하였으나 아가씨의 은근하고 정다운 접대에 그만 그런 생각들은 봄눈 슬듯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을 흘렀다. 어느날 아가씨는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곳의 사흘이 인간 세상의 삼년에 해당하는데 이제는 그만 그대의 돌아갈 때가 되었으니 인간 세계로 돌아가시어 옛일의 생업을 돌보심이 어떠하리이까?" 하고 이별의 잔치상을 차리어 한턱을 베푸는 것이었다. 양생은 슬픔이 갑자기 밀려오며 "대체 그게 원 말이오?" 하고 대어들듯 말하였다. 여인이 말하되 "오늘의 미진한 연분은 다시금 내생에 기필하리라고 굳이 믿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 곳으 예절로 말하더라도 인간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으니 저의 이웃 친척들과 만나보고 떠나심이 어떠하리까?" 양생이 대답하되 "그렇게 합시다." 이에 여인은 시녀를 시켜서 친척과 이웃의 친구들을 초대하였다. 이날 초대된 사람으로는 정씨, 오씨, 김씨, 유씨가 모였는데 이들 네 아가씨들은 모두 귀가 거족의 따님이어서 천품이 온순하고 풍류가 놀라우며 또한 총명하여 학문을 아는 것이 많아 능히 시부에 뛰어났다. 낭낭한 음성으로 시를 읊기 시작한 정씨는 구름 같은 쪽진머리가 귀 밑을 덮은 채 매우 활발 명랑한 여인이었다. 이에 노래를 읊으니 그 시에 하였으되 "봄 밤에 꽃과 달 다 함께 고울세라. 이 내 시름 그지없어 저달아 물어 보자. 이 몸이 죽어 가서 비익조(암,수가 각각 날개 한개와 눈 하나씩을 가진 상상의 새로 암, 수 둘이 모여야 완전한 모양이 되므로 남녀의 금슬을 상징하는 새랍니다. 이를 테면 원앙정도.......) 될량이면, 푸른 하늘 아래 님과 함께 나래 펴리." "칠등(무덤 속에 켜는 등불)이 캄캄하여 밤은 깊어 적요한데, 북두칠성 가로 비껴, 달빛이 흐르는제, 슬플사 저승 길에 뉘 있어 찾아 오리. 푸른 적삼 쪽진 머리 단장함도 아득할사." "그대 어이 믿을손가, 백년 가약 뉘 지키리. 봄 바람 스칠 적에 지난 일을 어이하리. 베게 위에 눈물 흔적 몇번이나 스몄던고, 산비(산에 오는 비) 험하여라. 뜰에 그득 배꽃 진다." "꽃다운 젊은일래, 속절 없이 지내려니, 적막한 비인 산에 그 몇 밤을 내 울었나. 남교(중국 땅이름. 신선이 운교라는 이름의 부인을 만나던 곳. 애인을 만나는 밀회장소 같이 생각 하심됨) 지나는 손님인줄 모르나니, 어느 해 좋은 기약 그 님을 만날는고." 오씨는 연약한 쪽진 머리와 요염하고 애교 띠운 얼굴로 스스로의 넘치는 풍정을 이길 길 없어 계속하여 읊었으니 "절간에 향 피우고 돌아가던 밤일는가. 가만히 던진 저포 뉘 있어 중매했나. 봄 꽃 가을 달에 다함 없는 긴긴한을 그대 주신 한 잔 술에 봄눈 슬듯 녹았어라." "복사꽃 붉은 볼에 새벽 이슬 적실 적에 깊은 골 봄은 깊어 나비조차 오지 않네, 기쁜지고 님의 집에 꽃다운 이 잔치를 새 고조 다시 불러 이 술잔을 받으시라." "해마다 찾는 제비 이 봄에도 날건마는 님 그리는 이 내 심사 애끊는듯 허무해라. 부럽도다 저 연꽃이 일연 탁생 그 아닌가, 연못에 밤 깊으면 함께 즐겨 노는구나." '검푸른 높은 산 위에 높이 솟은 다락이 있어 연리지(후한서에 나온 말로 뿌리가 다른 나무가 서로 얽혀서 마치 한 나무인듯 자라는 것으로 효심을 상징했지만 나중엔 비익조 같은 의미로 부부애나 남녀간의 사랑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연리지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전 왜 엉뚱하게도 나무 접목시키는게 생각나는지.... 늙어서 그래.... 늙어서... ㅠㅠ;;;;)에 열린 꽃은 이제 붉게 피었건만 이 인생 한 백년이 꽃나무만 못하여서 한많은 이 내 청춘 눈물 걷힐 사이 없네." 이때 김씨는 그 용모를 단정히 하여 음전한(음탕함 등이 연상되는데 문맥상으로는 그런 뜻이면 안되지요. 음전하다, 음전함 등은 행동이 점잖고 얌전하다는 그런 뜻입니다. 좋은 말이에요.) 태도로 붓을 들어, 앞에 읊은 두 사람의 시편이 너무 음탕함을 꾸짓어 말하였다. "오늘의 일은 다만 이 좌석의 흥취를 돋울 뿐인데 어찌 각자의 방탕스런 정회를 베풀어 처녀의 정조를 잃으며 인간 세계의 손님에게 더러운 우리의 애기를 퍼뜨리게하랴."하고 말을 마치자 곧 낭낭한 음성으로 읊었다. "밤은 깊어 오경(새벽 3~5시. 모두 날밤을 새며 논듯 하군요...)인데 귀촉도(귀신이 슬피 우는게 아니고 직역하면 "촉나라로 돌아가는 길"인데 두견새, 소쩍새를 이르는 말입니다. 야행성으로 밤에 울지요. 아마도 효과음으로 출현한듯...) 슬피 울어 북두성 기울어져 은하수 멀고 멀사. 애꿇는 옥퉁소를 다시 정녕 불지 마오. 이 고운 풍경을랑 속된 인간 알까 하네." "흐믓이 부으리니, 금 술잔 하나 가득, 취토록만 잡으시오, 술 걱정 아예 마소. 내일 아침 저 봄 바람 사나웁게 밀려 오면, 한가닥 저 봄꿈을 어이하료 어이해." " 초록색 엷은 소매 부드럽게 드리우고, 풍류 무르익어 술잔 잡으니 한잔 한잔 또 한잔을 맑은 흥취 깨기 전에 님을랑 가지 마소. 다시금 새로운 말로 새로운 노래 지우리라." "구름인양 쪽진 머리 몇해 후에 진토되련고, 그리던 님을 만나 오늘에야 웃었나니, 신기하다 자랑 마라 운우의 미친 기쁨 풍류 짙은 이야기, 저 세상에 알릴세라." 유씨는 얼굴과 모양이 호화롭지는 않으나 소복(하얀 옷인데 보통 상복으로 입지요. 시 내용에도 암시로 많이 깔려있습니다. 무슨 암시 일까요? 수수께끼.... ) 단장하고 일찌기 규중의 법도 있는 집안에서 자라나 침묵을 지켜 말이 없더니 이때 저윽이 웃으며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철석(말 그대로 쇠와 돌입니다. "철석같은 동생머리...."라고는 안쓰죠^^;;;; 굳고 단단한 것을 이릅니다.)같이 굳은 정조 지켜 온지 몇몇 핸가, 구슬 같이 고운 모양 구천에 묻혔구나. 그윽한 봄 밤이면 월궁 항아(월궁이니 항아니 많이 나오죠? 달의 궁전에 궁녀를 말하는데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입니다. 전지현이니 김태희니 비유하듯 말이죠.) 짝을 지어 계수나무 푸른 그늘, 나 홀로 잠에 취해." "우습구나 도리화(도화와 오얏꽃. 즉 복숭아꽃과 자두꽃을 말하는데 봄에 피는 화사한 꽃으로 보통 여자를 상징합니다.) 봄 바람이 부는 즈음 무슨 일로 남의 집에 함부로 휘날리나. 한평생 이내 절개 가실 줄이 없건마는 흰구슬(구슬이 많이 나오죠? 언뜻 구슬치기 하는 구슬이 떠오르지요. 옛날 구슬은 보석 같은 걸 상징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름답고 귀한것 등을 상징하지요. 아이들을 은 구슬이니 금구슬이니 비유하는 것은 애가 동그랗다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귀하다는 거죠. 보통 여자 아이에게 구슬을 비유합니다. 귀하고 아름답다는 의미니까요.) 고운 무늬 티 묻을까 저어하네." "연지 찍는 이 습관이 쑥대(쑥대밭이란 말 많이 들어 보셨지요? 쑥과 대나무는 뿌리로 번식을 하는데 이들이 한번 들어서면 뽑아도 뽑아도 죽이기 힘들고 빽빽하게 들어서 다른 식물이 들어오기 힘들죠. 마당 있으시면 한 번 심어보세요. 뼈저리게 느끼 실테니까요. 한마디로 난장판을 이르는 말입니다.)머리 다북하고 향내 그윽한 경대 서랍 푸른 이끼 끼였구나. 오늘 아침 그대 님의 잔치에 참예하여, 머리 위의 붉은 꽃 보기만도 부끄러워." "기쁘도다 아가씨여 백년 낭군 만났구나. 하늘이 정한 배필 월로(월하노인. 남녀를 연결해주는 신선인데 붉은 실로 묶어줍니다.)의 붉은 실에 금슬(직역은 거문고와 비파입니다. 이것도 중국 고전에 나온 문구의 인용입니다. 부부의 정 같은 것을 상징합니다.)은 더욱 굳어 빌건대 그대 두분 양흥과 맹광(후한서에 나오는 금슬 좋은 부부이름 양홍은 남편, 맹광은 마누라 되십니다.)되시오라." 이때 아가시가 유씨의 읊은 시편의 맨 끝장을 보고 문특 고마운 생각을 나타내어 자리를 나오더니 "저도 또한 재주 없사 오나 글자의 획은 겨우 분별할 줄 아오니 어찌 홀로 감회가 없으리까?"하고 곧 시부 한장을 지어 읊었다. "개녕동 깊은 골짜기 봄의 수심 안은채로, 꽃은 지고 피고, 일백 근심 더 할세라. 아득한 초협(중국 지명) 구름 속에 님을 여의고는 소상강(중국 고전 설화에서 나온 말로 아황과 여형이라는 두 여인이 남편의 죽음에 소상강 대밭에서 슬피울어 대나무가 눈물에 물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 대밭 속에 눈물어린 눈동자야. 맑은 강 따뜻한 날씨 원앙새는 짝을 찾고, 비취새(물총새. 털을 장식용으로 썼습니다.) 노니는 구나. 님이여! 맺사이다. 굳고 굳은 동심쌍관(부부간에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맹세하며 맺는 실.) 비단부채(사랑을 잃은 여자를 비유한 말) 가지고 맑은 가을 원망 마라." 양생은 또한 글에 능한 편이었건만 그들의 시법을 감상하니 청고(맑고 고결하다. 청고하다.)하기 이를데 없고 놀라운 신운(고상하고 신비스러운 운치)이 향양함을 보고 경탄하여 마지 아니하였다. 이에 곧 자기도 시 한수를 지어 답하여 읊으니 대개 다음과 같았다. "이 밤이 어인 밤인고, 고웁고 고운 님을 기꺼이 맞이했네.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 앵도알같이 붉은 입술 그 위에 문장인걸 어쩌나. 그 재주, 그 문장 천고에 없으리. 직녀성이 베틀 던지고 인간에 내렸는가. 월궁 하아 절구공이 버리고 이곳에 왔노매라. 희고 맑은 단장 술잔을 드리어라. 운우의 즐거움이 익숙치 못하지만 술 붓고 시 읊으 유쾌함 다시 없네. 기쁘고녀 내 짐즛(짐짓의 옛날 말.). 봉래섬(봉래산. 삼신산의 하나로 신선들이 사는 곳)을 찾아 들어 신선이 여기 있네, 풍류도를 만났구나. 이름 난 술잔에 금향(금향로라고 써진 책도 있고 금향이라고 써진 책도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지라 뭐가 맞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금향로는 아실테고 금향은 궁중에서 향주머니를 이르는 말입니다,) 속에 안개는 서려, 백옥상(백옥같은 모양) 솟은 앞에 매운 향내는 나부끼고 푸른 비단 부엌에 미풍은 불어 오네. 정녕코 님을 보며 이 잔치를 열게되니 하늘에 오색구름 찬란코 아름답다. 님이시여 님이시여, 옛일을 돌아보라. 문소(신선이름) 채란을 사랑했고, 장석(신선이름)은 난향을 만났어라. 인생의 어울림도 반드시 인연이어니 마땅히 술잔을 들어 해로하길 맹약하리. 님이어 가벼이 말씀치 말라. 가을에 부채가 소용 없으리니 세세생생에(다음 생에 그 다음 생에 쭈욱~. 영원히란 뜻) 그대와 부부되어 아침 꽃 저녘 달에 끊임없이 노닐려오." 이에 술이 다하자 서로 하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아가씨는 은잔 한 벌을 내어 양생에게 내어주면서 말하였다. "내일은 저의 부모님께서 저를 위하여 보련사(남원에 있는 절)에서 음식을 베풀 것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청컨대 보련사 가는 도중에서 기다리셨다가 부모님을 함께 뵙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그것 좋은 말씀이요."하고 양생은 다음날 아가씨가 이르는 말대로 은잔을 들고 보련사로 가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과연 어떤 명갓집 행차가 따님의 대상을 치르려고 수례와 말이 잇달아 보련사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 명갓집의 종자인듯한 사람이 길가에 은잔을 들고 서있는 양생을 발견하고 그의 주인께 여쭙는 것이었다. "마님나리! 우리집 아가씨 장례 때 관속에 묻었던 은잔이 벌써 인간 세상에 훔친바되어 나타났읍니다." "그게 무슨말이냐?" "네, 저 서생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말씀드린 것이올시다." 문답이 끝나자 주인은 곧 탔던 말을 멈추고 양생에게 가만히 다가와 은잔을 얻은 유래를 묻는 것이었다. 양생은 사실대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은 한참이나 멍청히 있더니 입을 열었다. "내 일찍 팔자가 불행하여 슬하에 여식 하나 있었더니 왜구의 난리에 그를 죽이고도 미처 정식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개녕사(남원에 있는 절) 곁에 묻어두고도 머뭇머뭇하다가 이제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오늘이 하마 대상날이라 부모된 마음에 어이가 없어 보련사에 가서 시식(불교에서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행하는 것.) 이나 베풀까 해서 가는 길일세. 자네가 정말 그 약속대로 하려거든 조금도 의아치 말고 여식을 기다려서 함께 오게나." 말이 끝나자 주인은 먼저 보련사로 가는 것이었다. 양생은 과연 홀로 서서 기다리니 약속한 시간이 되자 아가씨는 시녀를 데리고 그곳에 엄연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서로 기쁘게 맞이하여 손을 잡고 보련사로 향하였다. 아가씨는 절문으로 들어가더니 - 우선 부처님께 염불하고 곧 흰 장막 안으로 들어갔는데 스님들과 친척들중 그를 본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양생이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양생만이 아가씨를 본 것이었다. 아가씨가 양생에게 말하였다. "진지 잡수시지요 함께..." 하였다. 양생이 그 말을 그의 부모님께 말하였더니 부모도 이상히 여기어 이를 엿보고 있었다. 드디어 "그럼 함께 밥이나 들게."하였는데 아가씨의 형상은 보이지 아니하고 수저 소리만이 달그락거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하는 짓과 흡사하였다. 그들은 크게 놀라와 드디어 장 속에 신방을 마련하고 양생으로 하여금 함께 자게 하였는대 밤중쯤되어 낭낭한 음성이 들리어 왔다. 사람들이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문득 아가씨의 소리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아가씨는 말하였다. "이제부터 저의 자세한 신세타령을 여쭙겠나이다. 제가 예법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시경에 말한 건상(직역하면 치마를 겆어올림. 치마를 겆어올리면 무슨일이 일어날까요? 남녀의 난잡함을 이르는 말입니다^^)과 상서(직역하면 쥐를 본다는 말인데 쥐만도 못하다는 뜻. ) 두 시의 뜻도 모르는 것은 아니옵니다. 하도 오래 들판 다북 속에 묻혀이/ㅅ어 풍정이 한번 발하매 마침내 능히 이를 이기지 못하였읍니다. 뜻밖에도 삼세(과거, 현재, 미래)의 인연을 만나 그대의 동정을 얻게되어 백년의 높은 절개를 바쳐 술을 빚고 옷을 기워 평생 지어미의 길을 닦으려 하였나이다. 그러나 아까웁게도 숙명적인 이별을 위반할 수가 없어 한시바삐 저승길을 떠나야겠습니다. 운우는 양대(중국 지명으로 초의 양왕이 미인을 꿈꾸던 곳)에 개고 오작은 은하에 흩어지매 이제 한번 하직을 고하오면 뒷날을 기약할 수 없어 헤어짐에 임하여 이 서럽고 아득한 정회를 무엇으로 말씀드려야겠나이까?" 이런 말을 하고 아가씨는 슬피우는 것이었다. 이윽고 스님과 사람들이 혼백을 전송하니 영혼은 문밖으로 나가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아니하고 슬피우는 소리만이 은은히 들려왔다. 그 속에 소리있어 말하기를 "저승길이 바쁜고로 괴로운 이별 하건마는 비옵건대 내 님이여 저버리지 마옵소서. 애닯도다 어머니여, 슬플진대 아버지여, 내 신세를 어이하나, 고운 님을 여의도다. 아득하다 저승길이, 이 원한을 어이하나." 사라져 가는 가느다란 소리는 점점 없어져 그 소리를 확실히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부모도 아가씨의 일이 정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다시 의심치 아니 하였고 양생역시 그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었음을 그제야 뚜렸이 알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한층 더욱 슬픔은 고조되어 그의 부모와 어울려 슬프게 통곡하였다. 이때 그의 부모가 양생을 향하여 말하기를 "은잔은 자네의 소용에 맡길 것이오. 그리고 내 딸이 지니고 있던 밭 두어 이랑과 여비 몇 사람이 있으니 자네는 이로써 내 여식을 잊지 말아 주게."하였다. 우튼날 양생은 고기와 술을 가지고 아가씨와의 상봉의 터를 찾았더니 과연 하나의 빈장(시신을 관에 넣어 땅에 묻지 않고 짚같은 것으로 덮어둔것. 이 소설의 배경이 왜란 때이므로 전쟁 중에 임시로 처리한 것인듯 합니다.)한 것이 있었다. 양생이 음식을 차려놓고 지전(죽은 자의 여비로 쓰라고 태워주는 가짜 돈. 죽은 사람이 물건을 가져가서 저승에서 쓰도록 옷 이나 물건 등을 태우기도 하지요.)을 불사르며 조문을 지어 읽으니 다음과 같았다. "오오, 그리운님이시여! 님은 어릴적부터 천품이 온순하고 커서는 자태가 아름답기 서시와 같으며 문장은 숙진(글잘하는 선녀)을 능가하여 규문 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항상 어머니의 교훈을 잘 받았었소. 난리를 겪어도 굳은 정조를 온전히 하더니 그만 왜적을 만나 목숨을 잃었구료. 황량한 쑥밭에 몸을 의지하고 피는 꽃 돋는 달에 마음만이 슬펐다. 봄바람에 귀촉도 구슬피 울고 가을 철의 비단부채 무엇에 쓰리까. 지나간 밤에 님을 만나 기쁨을 얻었으니 비록 유명이 다르다 할 것이나 운우의 즐거움을 님과 함께 하였구려. 장차 백년을 해로하렸더니 어찌 하룻저녁의 기쁨으로 이별이 닥칠 줄이야 뉘 알았겠소. 고운 님이시여! 그대는 응당 달나라의 난새(금난새... 가 아니라 역시 상상에 새로 오색과 오음을 낸다는 새입니다.)를 타시옵고 익산에 비가 되오리다. 땅이 암암하여 돌아올 길 바이 없고 하늘이 아득하여 그대 뵐 길 끊쳤세라. 다만 묘묘막막한 중에 그대 뵈올 길 가만히 기리며 님의 영혼 말들어 내 구슬피 울었고 장을 헤칠 때마다 마음 찢기오이다. 총명한 그대시여! 고운 그대시여! 그 음성 귓가에 쟁쟁하고 아아 이 설음 내 어이 하리이까. 그대의 삼혼(사람 마음에 있다는 세가지 혼)이 없어졌다 하여도 하나으 영혼 기리 남을지니 여기 잠시 고운 모습 나타내실지어다. 비록 나고 죽음이 다르다하나 그대의 총명으로 나의 글월에 어이 느낌이 없으리오." 그뒤 양생은 이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집과 농토를 전부 매각하여 저녁마다 제를 올리고 시식을 하였더니 하루는 그 아가씨가 공중으로부터 양생을 불러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은덕을 입어 이 몸은 이미 딴나라의 남자의 옷을 받아 태어나게 되었나이다. 유명의 한계는 더욱더 멀어졌다하나 당신의 두터우신 은정을 어찌 길이 잊을길 있사오리까. 그대도 마땅히 다시 정업(맑고 깨끗한 업. 나쁜 척이 아닌 좋은 업을 이름)을 맞아 저와 더불어 함께 영원한 윤회를 해탈케 하여지이다." 양생은 그후 다시 장가들지 아니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을 캐면서 살았는데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뒷일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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