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와 지금부터(시103:13-18)
2020.7.5 맥추감사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따스한 봄날 한 천사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마치고, 잠시 여기저기 세상을 구경하였다. 천사는 노을빛에 빛나는 환상적인 장미꽃을 보았다. 천사는 기념으로 몇 송이의 꽃을 기념품으로 챙겼다. 그리고 천사는 어느 바닷가 오두막 집 마루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았다. 옹알이를 하면서 미소 짓는 아기의 모습이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아기의 미소도 기념품으로 챙겼다. 그런데 그때 마침 고된 일을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입마추면서 젖을 물려주었다. 아기도 엄마도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감동된 천사가 말했다.
“아…….! 저 어머니의 사랑이야 말로 내가 모든 세상에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답구나. 저것도 가져가야겠다!"
천사는 아름다운 꽃과 아기의 미소와 엄마의 사랑, 이 세 가지 기념품을 갖고 하늘로 올라갔다. 다른 천사들이 환영하면서 그 천사가 어떤 기념품을 가져왔는지 궁금해 했다. 그런데 천사가 기념품들을 열었을 때,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름다웠던 꽃들은 시들어서 향기도 다 사라졌고, 아기의 미소도 빛이 바래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사랑만은 그대로였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변함없는 엄마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고, 예쁘던 자녀들도 점점 커 가면서 변하지만,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지난 주일 밤에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강선옥집사님의 가족(아들-배성연, 남편-배기열 안수집사)의 간증과 찬송연주다. 배성연 형제는 발달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강선옥집사님 내외는 극단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아깝지 않은 노력으로 아들을 서울예술고와 서울대학교 음대(피아노 전공)를 졸업시켰다. 물론 서울대학교를 보낸 것이 사랑이나 성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 속에서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그분들 역시 그분들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이런 실례는 그분들뿐만 아니라,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씨나 세계적인 중증 장애인으로서 세계적인 성악가의 반열에 오른 ‘레나 마리아’, 핸드폰 판매원이었지만 믿음으로 승리한 성악가 “폴포츠”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예배를 마친 후에 교회 사무실에서 잠시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던 중에 강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까지 저의 30~40대의 시간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에 앞으로의 아들의 진로에 대해 생각이 많다는 말씀도 하셨다. 이 말을 들으면서 부모의 사랑의 숭고함과 함께 연약한 인간의 한계도 동시에 느껴졌다. 아무리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 해도 자녀의 모든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이것이 인생의 한계다.
그러나 이 시간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향하신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없다. 그래서 일찍이 이것을 깨달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시103:13-17)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시103:15-17)
이와같이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실까? 그 이유를 오늘 본문 시편 103편 13-14절에서 알 수 있다. 다 같이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
1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이유는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들이 단지 먼지뿐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라는 표현에서 “우리의 체질”이란 단순히 먼지와 같은 나약한 육체의 상태뿐만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포함해서, 사람의 됨됨이, 한계, 툭하면 ‘팽~“하고 혈기부터 내는 성질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까지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들도 우리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 시도 살아갈 수 없는 먼지에 불과하다. 제발 이 땅에서 우리의 생명과 건강과 소유물들이 한없이 계속될 줄로 착각하지 말자.
이처럼 우리의 한계와 체질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보내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으실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우리들의 앞에 있는 수많은 필요들에 대해서 이렇게 선포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우리들에게도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 다윗이나 사도 바울처럼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이다. 맥추감사절은 단순히 농사로 보면 보리나 밀을 수확한 것을 감사하는 절이지만, 우리의 생활 전반을 염두에 두고 보면 한 해 중에 전반기를 결산하는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금부터”도 지켜 주실 미리 고백하는 의미가 있다.
태안 쪽으로 가다면 보면, 근흥중학교 앞에 있는 현수막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지금까지 이런 개학은 없었다! 극한 개학!”
이 문구 하나가 현재 우리 사회의 어려움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지금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난 전반기 동안 코로나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서 역대 가장 어려운 시간들 중의 한 극한 시기를 살아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과 약함을 기억하시며,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겨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례들은 성경에 많이 나온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왜 하나님이 좋은 길들을 놔두고 홍해 앞에서 서게 하셨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홍해 밑에 지름길(첩경, 곧은 길)을 숨겨 놓고 계셨다(시77: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시77:19)
앞으로 ‘있을 것이다’가 아니다. 이미 있었다. 따라서 알고 보면 결국 홍해 고난은 그들을 죽이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고, 그들을 살리기 위한 고난이 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바로 이 점을 깨달을 필요가 분명히 있다. 지금의 코로나나 개인적인 삶에 코로나나 홍해 같은 고난들은 나를 죽이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나를 살리고 강하게 하기 위한 고난인 것을 깨달아야 져야 한다. 우리 삶의 진짜 위기는 경제나 건강의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위기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 때로 코로나나 홍해와 같은 극한 고난을 허용한다 할지라도, 그런 고난들을 허용하시기 전에 이미 고난의 바다 밑에는 은혜의 첩경(지름길) 숨겨 두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 굳센 믿음으로 남은 시간을 힘 있게 달려가자. 이렇게 하면 주님은 반드시 이렇게 고백하는 날을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은혜는 없었다! 최고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