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 면한 항구 도시 발렌시아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발렌시아 지방은 역사적으로 로마 - 서고트 - 이슬람 - 엘시드 - 이슬람 - 발렌시아 왕국 - 스페인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지역 언어인 발렌시아어는 카탈루냐어의 한 갈래(방언)라고 한다.
# 2023년 1월 22일
처음으로 초고속 열차를 탔다. 초고속이라 과연 빠르네. 마드리드에서 발렌시아까지 300킬로미터 쯤 된다는데 1시간 40분 밖에 안 걸렸다. 호아킨 역에서 내려 (조금 헤매다가) 긴 지하도를 건너서 예약한 숙소 Petit Palace Ruzafa까지 걸어갔다. 세비야에서 묵었던 Petit Palace와 어떤 관계인지 모르지만 이곳 역시 깔끔한 미니 호텔이다. 다만. 빈 방이 없어서 얼리 체크인은 못 하고 가방을 맡겨 두고 나와서 관광부터 시작했다.
마드리드와 위도는 비슷하지만 날씨가 훨씬 따뜻하다. 지중해 덕분이겠지.
처음 도착한 곳은 걸리버 공원. 거인의 형상으로 미끄럼 놀이터를 만들었는데 아이들과 부모들이 한데 어울려 재미있게 놀고 있다. 입장료가 없어서 쑥 들어가 구경하다 나왔는데, 나오면서 보니 입장 대기줄이 길다. 입장료는 없지만 입장객 수를 통제하고 있다. 더 빨리 나올 걸 그랬나? 우리나라도 동네마다 이런 거 하나씩 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라버린 강(?)을 따라 공원이 이어지는데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들, 달리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람들이 많다. 아하, 오늘이 일요일이구나.
발렌시아 예술 과학 단지가 보이는 데까지 갔지만, 일단 길을 건너 Fallas(파야스) 박물관부터 들렀다. 3월 초에 발렌시아에서 열리는 파야스 축제는 스페인 3대 축제니 유럽 최고 축제니 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유명한 축제라는데, 축제 기간에 거리를 행진하는 커다란 인형들을 (그 중 최고 작품들을) 모아 놓은 박물관이란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무료 입장.
대단한 작품들이다. 인형 작품들과 축제 포스터들을 구경하다 보니 축제를 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솟아오른다. 그러나 과연 기회가 올까?
근처 식당을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Parcero's라는 이름의 콜롬비아 식당, 특별히 콜롬비아 음식을 시키진 않았지만, 간이 맞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콜롬비아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
배도 채웠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예술 과학 단지 구경에 나설 차례다.
야외공연장에서 돌고래 쇼를 구경하고 수족관을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중이다. 저녁 햇살을 받고 있는 예술 과학 단지는 더 아름답다. 더 버티면 야경까지 감상할 수 있겠지만, 무리하면 안 된다. 아니, 이미 무리한 것일지도 모른다. 왔던 길을 되짚어 숙소로 향했다.
# 2023년 1월 23일
역시 어제 무리를 한 것일까? 여행의 피로가 다시 쌓이는 듯해서 오전 내내 쉬다가 12시쯤에서야 호텔에서 나왔다. 구시가지 쪽으로 10분쯤 걸어가니 커다란 투우장이 나오고 (스페인 최대 투우장이란다. 그럼 세계 최대?) 그 옆에도 크고 묵직해 보이는 건물이 있다. 얼른 검색해 보니 기차역, 발렌시아 북역이다.
이어서 시청앞 광장. 시청 건물은 물론이고 주변의 상업 건물들까지 예술적 분위기가 넘친다. 유명 관광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광장이다. (그래서 다음날도 지나가다가 한참 앉아서 쉼)
다음에 찾아간 중앙 시장은 지금까지 가 본 스페인의 시장들 중에 제일 큰 규모, 게다가 벽면과 돔 지붕의 장식이 (시장이라기엔) 너무 고급이다. 아직 배가 고픈 시간이 아니라 구경만 하고 나옴.
시장 건너편에는 La Llotja de la Seda (발렌시아어로 비단 가게라는 뜻. 비단을 거래하던 무역소? 유네스코 문화 유산이란다) 라는 크고 오래된 건물이 있는데, 문이 닫혀 있다. 오늘은 전 세계 박물관이 문을 닫는 월요일.
산트 니콜라우 성당도 문이 닫혀 있어서 한 바퀴 둘러만 보고
Quart Tower라는 이름의 성문을 올라가 보았다.
성문이 많이 높지는 않아서 도시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부족했는데, 바깥 쪽 벽면의 수많은 총탄 자국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성문이 정말로 도시를 보호하는구나!
근처 식물원을 찾아가 선인장 구경 좀 하고, (겨울 식물원에는 꽃이 없으니 볼 만한 게 선인장뿐)
슬슬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 2023년 1월 24일
발렌시아 3박 일정 중에서 하루는 무르시아 지방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 있었지만, 옆지기의 컨디션 난조로 취소하고 오늘은 천천히 나가서 대성당 하나만 구경하기로 했다.
대성당을 찾아가는 길에 조금 찾아 본 바다의 문Porta del Mar. 오래된 성문을 복원한 것이라는데,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혹은 속죄?)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골목길 끝에 종탑이 나타나서, 저기가 대성당이구나! 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대성당 건물이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표를 사서 들어가 보니 과연 한 나라(발렌시아 왕국)를 대표하는 대성당답게 크고 화려하다. 레이나 광장 쪽에서 성당의 전모가 보이지 않은 것 뿐이다.
시청앞 광장에서 쉬다가 이 지방의 특색 음식인 빠에야 맛집을 검색해 보고
2시 10분쯤에 Navarro라는 식당을 찾아갔더니 좌석이 없다며 3시에 오란다. 이름 적어 놓고 주변을 구경하다가 시간 맞춰 들어가니 예약석이 준비되어 있다.
토끼고기 빠에야는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해서 못 시키고, 제일 만만한 해물빠에야를 (두 개. 빠에야는 2인분으로 파는 식당이 많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모든 메뉴가 1인분이다.) 시켰더니, 조리 시간이 30분 이상 걸리니까 애피타이저를 주문하라고 (반강요) 한다. 그래서 시킨 꼴뚜기(인지 새끼 오징어인지)는 맛있게 먹었는데, 메인인 빠에야는 좀 짰다. 미리 덜 짜게 해달라는 부탁까지 했건만... 60유로 씩이나 지출한 데 비하면 가성비 많이 떨어짐.
대성당 보고 점심 먹은 걸로 오늘 일정은 끝이다. 휴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