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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사 박물관(Vasa Museum)
스웨덴 스톡홀름의 유르고르덴(Djurgården)섬에 위치한 '바사 박물관(Vasamuseet)'은 북유럽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로, 17세기 당시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간직한 전함 '바사호'를 본래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 세계적인 해양 박물관이다.
당시 스웨덴의 강력한 군주였던 바사 왕가의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명으로 건조된 바사호는 64문의 대포를 탑재한 초호화 강력 전함이었다.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 10일 수 많은 군중의 환호속에 첫 항해를 시작하자마자 돌풍을 맞아 스톡홀름 항구 안에서 그대로 침몰하고 말았다. 항구를 채 벗어나기도 전인, 출항 후 불과 1km 남짓 기동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원인은 국왕의 무리한 요구로 설계가 도중에 변경되면서 너무 많은 대포와 화려한 장식물이 상갑판에 집중되면서 이로 인해 배의 무게 중심이 너무 높아져 복원력을 잃은 상태였고, 돌풍이 불자 하단 포문으로 물이 들이닥치며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는 분석이다.
침몰된 이후 1956년에 발견되어, 그로부터 333년만인 1961년에 스톡홀름 항구에서 인양되었다. 333년 동안 바닷속에 묻혀 있던 바사호는 1956년 해양 고고학자 '안데스 프란센'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961년 마침내 물 위로 인양되었다. 발트해 특유의 낮은 염도와 수온, 그리고 목재를 갉아먹는 좀조개가 살지 않는 환경 덕분에 선체의 95% 이상이 썩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선박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1층부터 6층까지 마련된 다양한 높이의 데라스에서 선체 하부의 용골 부터 상부의 선미루까지 다각도로 배를 관찰할 수 있다. 실제 배는 세월이 흘러 목재가 어둡게 변했지만, 박물관 내부에는 당시의 화려했던 천연색 도금과 채색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1:10크기의 정밀 모형이 건조 당시의 호화로움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박물관에는 당시 선원들의 유골을 토대로 복원한 당시 사람들의 모습, 배 안에서 발견된 의류, 신발, 식기, 무기 등 4만여점의 유물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17세기 북유럽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인양된 바사호는 총길이 69m, 최대폭 약 11.7m, 높이 52.2m. 배에 실려 있었던 대포나 기구류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여행일자 : 2026년 6월 12일
▶스톡홀름에 있는 바사 박물관 내부 관람을 하면서 당시 배 안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들과, 333년만에 인양된 바사호의 모습을 세세히 담아 보았다.
▲바사 박물관(Vasamuseet) - 박물관은 배를 중심으로 총 6개층의 관람대(테라스)로 둘러싸여 있다. 아래층에서는 배의 웅장한 바닥을,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돛대와 갑판 내부를 눈높이에서 자세히 내려다볼 수 있다.
▲선두(배의 앞부분)의 사자 조각상 - 배의 맨 앞쪽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있는 사자 조각상은 당시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2세 아돌프(북방의 사자라는 별명이 있었다)와 스웨덴 왕실의 압도적인 힘을 상징한다.
▲배를 이루고 있는 거무스름한 목재는 최고급 오크(참나무)이다. 발트해의 독특한 환경(낮은 염분과 낮은 수온, 목재를 갉아 먹는 좀벌레가 살지 못함) 덕분에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흙 속에서 이 정도로 완벽한 형태로 유지할 수 있었다.
▲선체 중간 부분, 측면에 사각형 문들이 위아래로 2줄 빽빽하게 배치된 포문(Gun Ports) - 원래 당시 기술로는 배의 안정성을 위해 대포를 1단만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국왕의 무리한 요구로 2단으로 늘리면서, 64문의 무거운 청동 대포가 상부에 실리게 되었고, 배의 무게 중심이 완전히 위로 쏠려버렸다. 지금은 포문 덮개들이 위로 열려있는 상태로 보존되어 있지만, 1628년 출항 당일, 바사호는 축하의 의미로 이 포문들을 활짝 열고 대포를 쏘며 출발했다. 하지만 출항 직후 돌풍이 불어 배가 옆으로 기울었을때, 이 열려 있는 아랫단 포문으로 바닷물이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손쓸 새도 없이 배가 기울었을거로 추측이 된다.
▲황금빛 작은배는 바사호가 처음 출항했을 당시의 원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놓은 1:10 축소 모형이다. 지금 실제 바사호는 오랜 세월 물속에 있어 어두운 갈색을 띄고 있지만, 1628년 출항 당시에는 이 모형처럼 화려한 붉은색 선체와 금빛, 푸른색의 천연색 조각상으로 뒤덮인 웅장하고 아름다운 배였다. 당시 왕실의 부와 권력을 시각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바다위 캔버스'였던 셈이다.
▲바사호가 침몰할 당시 실제로 배에 실려 있었던 돛(Sail)의 일부와 돛을 다루던 장비들이며, 바사 박물관이 자랑하는 전 세계 유일의 유물 중 하나이다. 1628년 당시 접혀 있거나 보관 중이던 돛의 일부와 그것을 돛대에 고정하던 나무 프레임, 그리고 로프 장치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17세기 직물과 선박 장비가 이 정도로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바사 박물관의 생생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는 스톡홀름 현지 교포 가이드
유리 상자 안에는 돛을 올리고 내릴 때 밧줄을 통과시켜 도르래 역활을 하던 '나무 블록(도르래 데드아이 등)' 이나 선원들이 사용하던 정교한 목공장비, 부속품들이 전시되어 있다.밧줄이 쓸려 지나간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생생한 사용감을 느낄 수 있다.
▲배가 건조되던 조선소를 배경으로 세 인물이 서 있는 모습인데, 이 인물들의 정체와 숨겨진 비화는...
1. 마르다레타 닐스도터(Margareta Nilsdotter / 가운데 여성) - 이 전시의 주인공이자 바사호 건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원래 바사호 건조를 총괄하던 네델란드 출신의 유명 조선업자 '헨릭 히베르트손'의 아내였다. 배가 완성되기 전인 1627년 남편 헤릭이 병으로 사망하자, 마르가레타가 조선소의 경영권을 이어받아 바사호 건조 프로젝트를 최종 책임지고 완공 시켰다.
2. 외쪽 남성(국왕의 대리인 또는 왕실 관료) - 무리하게 배를 키우고 대포를 더 얹으라고 압박을 가하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 국왕'의 요구를 전달하고 독촉하던 인물을 상징한다.
3. 아렌테 드 그루터(Arent de Groot) - 숨진 남편의 사업 파트너이자 '마르가레타'를 도와 바사호의 실무 건조를 이어 나간 핵심 인물이다.
▲바사호의 상부 갑판을 장식했던 핵심 조각상의 실제 크기 복원품이자, 17세기 당시의 화려한 채색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작품이다.
▲이 조각상은 당시 스웨덴의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를 고대 로마 황제의 군복과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신격화하여 묘사한 것으로, 한 손에는 통치권을 상징하는 지휘봉이나 칼을 쥐고 위엄 있게 서 있다.
▲17세기 바사호가 건조될 당시 스웨덴 제국(강대국 시절)이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미쳤던 북유럽 발트해 일대의 형세를 보여주는 역사 지도이다. 당시 스웨덴(지도의 중앙~우측 녹색 및 연두색 영역)은 국왕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지휘 아래 영토를 엄청나게 확장하던 시기였다. 현재의 스웨덴뿐만 아니라 필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및 러시아와 독일의 북부 해안가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바사호가 건조되고 출항했던 17세기 당시 스톡홀름의 중심지이자 옛 왕궁이었던 '트레 크로노르(The Kronor)성' 과 그 주변 부두의 일상을 묘사한 역사화이다. 뒤쪽의 우뚝 솟은 거대한 회백색 건물은 현재 스톡홀름 왕궁 자리에 있었던 옛 성이다. '세 개의 왕관'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당시 스웨덴 왕실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심장부였다. 안타깝게도 이 성은 후대인 1697년 대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어, 지금은 오직 이런 그림이나 기록으로만 만나볼 수 있다.
▲디오라마 전시품은 바사호 투어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1628년 8월 10일 바사호가 스톡홀름 항구를 출발해 돌풍을 맞고 침몰하기 직전의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한 모형이다. 배 주변의 푸른 바다와 뒤쪽의 어두운 바위섬 지형(스톡홀름의 쇠데르말름 섬 주변 항로)까지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있다.
▲1628년 바사호가 만들어질 당시 스톡홀름 시내의 어둡고 비좁은 골목길과 주거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장으로, 17세기 당시 스톡홀름의 전형적인 시민 주택을 재현한 것이며, 지붕 위에 깨앍같이 올라가 있는 수탉 모형은 당시 스톡홀름의 소박하고 목가적인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아주 디테일한 요소이다.
▲붉은색 선체 아래에 깔려 있는 돌들은 바사호 침몰의 결정적인 원인과 직결된 바사호에 실었던 '평형수(Ballast)용 돌'이다. 범선이 바다 위에서 중심을 잡고 똑바로 서 있으려면, 배의 맨 밑바닥(선저)에 무거운 무게추를 채워 넣어야 한다. 바사호 역시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이 거대한 돌들을 배 밑바닥에 가득 실었다. 바사호는 당시 약 120톤의 평형수 돌을 배 밑바닥에 채워 넣었다. 하지만 이 양은 배의 거대한 크기와 상부에 실린 64문의 무거운 청동 대포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돌을 더 많이 넣으면 배가 가라앉아 중심은 잡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랫단 포문이 수면과 너무 가까워져 물이 들어올 위험이 있어, 애초에 선체 자체를 너무 좁고 높게 설계한 탓에 평형수를 충분히 넣을 공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바사호의 선체를 싹둑 자른 단면을 통해 배 내부의 층별 구조와 치명적인 설계 결함을 한눈에 보여주는 '선체 단면 모형'이다.
맨 밑바닥에는 평형수 돌들이 깔려 있는것이 보인다. 배가 중심을 잡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지만, 위쪽 무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게 실렸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평형수 돌 바로 위층(하단 두번째 층)에는 수많은 나무 오크통들이 빽빽하게 쌓여있다. 여기에는 장기간 항해를 위한 식수, 술(맥주), 식량(염장 고기 등)과 화약 등이 보관되었다. 오크통 창고 위로 대포들이 양옆으로 배치된 층이 2개가 있는데 여기가 바로 바사호의 비극이 시작된 2층 구조의 대포 갑판이다. 무거운 청동 대포들이 높은 위치에 두 줄로 가득 실리다 보니, 배의 무게 중심이 비정상적으로 위로 쏠리게 되었다. 맨 위쪽 갑판에는 아주 작은 선원 인형이 서 있고, 배의 중심을 관통하는 거대한 돛대(마스트)의 뿌리가 아래쪽까지 연결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디이빙 벨(Diving Bell) - 1660년대에 바사호에서 대포를 인양할 때 실제로 사용했던 역사적인 잠수 장비의 복원 모형이다.
바사호가 1628년에 가라앉고 약 30년이 지난 1663~1665년 사이, 스웨덴의 기술자들은 이 원시적인 잠수종을 이용해 물속에 잠겨 있던 바사호의 무겁고 갑비싼 청동 대포 50여문을 건져 올리는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컵을 뒤집은 채로 물속에 수직으로 넣으면 컵 윗부분에 공기가 갇혀 물이 들어오지 않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선채 후미(고물 성채, Stern Castle) - 이 거대하고 정교한 벽면은 단순한 배의 뒤부분이 아니라, 17세기 스웨덴 왕실의 야망을 압축해 놓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다. 성채의 가장 높은 꼭대기 중심부에 두 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화려한 스웨덴 왕실과 바사 왕조의 문장이 조각되어 있다. 이배의 이름인 '바사(Vasa)'는 스웨덴어로 '곡식 단'을 뜻하는데, 문장 구조 안에서도 이 곡식 단 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층층이 테라스처럼 배치된 조각상들은 이스라엘의 다윗 왕, 고대 로마의 영웅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 국왕'이 이 대단한 영웅들처럼 지혜롭고 강력한 지배자임을 전 세계에 선전하기 위해 배치된 일종의 '바다 위 정치 광고판'이었다
▲후미(고물)벽면의 '맨 아랫부분(수면과 닿는 하부 구조)'이다. 수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거대한 나무 기둥 구조물이 바로 배의 방향을 잡는 '방향타(키)'이다. 17세기의 이 거대한 전함을 움직이기 위해 얼마나 크고 단단한 목재가 쓰였는지 실감할 수 있으며, 이 방향타는 배 내부의 '조타간(Whipstaff)'이라는 긴 지렛대 장치와 연결되어, 선원들이 힘을 합쳐 배의 방향을 틀었다.
▲바사호 선체 곳곳을 장식하고 있던 목조 조각상들이 1628년 출항 당시 원래 어떤 색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는지 고증을 거쳐 재현해 놓은 '채색 조각상 복원 전시 벽면'이다. 지금 남아있는 실제 바사호는 온통 어두운 갈색이지만, 수증 고고학자들이 침몰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상 틈새의 미세한 안료 성분들을 첨단 분석 기술로 찾아내어 당시의 원래 색상을 기적적으로 찾아낸 결과물이다.
▲바사호와 동시대인 17세기에 만들어진 아주 귀한 유물인 '17세기 채색 미니어처 필라스터' 전시이다. 이 기둥 모양의 조각상(필라스터)들은 바사호에서 직접 건져 올린 것은 아니다. 스웨덴 남동부의 '브라크네-호비' 교회에 있던 설교단 장식의 일부로, 바사호가 만들어진 시기와 완전히 일치하는 동시대 유물이다.
▲바사호 선체나 선실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고 있던 '실제 목조 장식들의 오리지널 조각 파편(진품 유물)'이다. 333년 동안 발트해의 차갑고 어두운 진흙 속에 잠겨 있으면서 선박 보존 처리(PEG 코팅)를 거쳐 지금의 독특한 검갈색 빛을 띄게 된 진짜 바사호의 유산들이다.
▲바사호 선체 외벽, 그 중에서도 대포가 드나드는 문인 '포문(Gun Port)' 주변을 장식했던 실제 목조 조각의 진품 파편들이다.
▲17세기 채색 팔레트(교회 설교단 필라스터 유물)'와 그 아래에 당시 사용된 천연 안료 가루들을 함께 배치해 둔 전시품이다.
▲바사호 선체의 우현 후미 측면부 - 선체 후미가 위로 갈수록 성처럼 웅장해지면서 옆면으로 툭 튀어나온 입체적인 방들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회랑이라고 부른다. 주로 선장이나 고위 장교들이 머무는 선실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 외벽 역시 빈틈없이 정교한 조각들로 뒤덮여 있다. 기둥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조각상들은 각기 다른 무기를 들거나 갑옷을 입고 있는 로마 시대의 전사들과 군인들의 형상을 하고 있다.
▲돛대(마스타)와 리깅(Rigging / 삭구 및 밧줄 구조물) - 수직으로 세워진 굵은 기둥이 배의 가장 중심이 되는 '메인 마스트'의 하단부이다.
마스트 양옆으로 촘촘하고 기하학적으로 뻗어 있는 거대한 밧줄 그물들은 거센 바람을 맞는 돛대가 옆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지탱해 주는 '현측 삭구(Shrouds)'이다.
▲가로로 묶인 밧줄들은 선원들이 돛을 접고 펴기 위해 높은 곳으로 기어 올라갈 때 딛고 다니던 밧줄 사다리(Ratlines)역활을 했다. 거친 파도 속에서 이 높은 곳을 맨몸으로 오르내렸을 17세기 선원들의 아찔한 삶이 그대로 전해진다.
▲메인 마스트 윗부분에 보이는 둥근 바구니 형태의 구조물은 흔히 영화에서 돛대 꼭대기에서 망을 보던 '조망대(Crow's nest)' 또는 삭구를 조절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바사호의 선수(배의 앞부분) 갑판과 포어마스트(Foremast / 앞 돛대) - 갑판 중앙에 보이는 격자 무늬(그물망 모양)로 뚫려 있는 나무 덮개들이 줄지어 있는, 이것은 배 내부 포갑판이나 창고로 빛과 공기가 틍화게 하던 '환기 및 채광용 해치(Grating)'이다. 전투시에는 이 아래층에서 대포를 쏠 때 발생하는 엄청난 화약 연기를 밖으로 빼내는 중요한 역활을 했다.
▲측면 회랑(Quarter gallery)의 돔형 지붕 구조 - 둥근 양파 모양 혹은 종 모양으로 겹겹이 얹혀진 목조 지붕은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나 성곽 건축에서 유행했던 다지인을 배위에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인양된 선체 뿐만 아니라 선박을 장식했던 수백 개의 정교한 조각상, 당시 선원들의 유품, 의복, 그리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배의 거대한 규모를 여러 각도와 높이에서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박물관 건물이 배를 감싸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다.
▲17세기 당시 선박 내부에서 사용되던 특수한 환기 장치, 램프/등잔의 덮개, 또는 선박을 장식했던 조각상 부위나 특수 도구의 일부인듯하다.
▲바사호가 침몰하던 당시의 상황이나 17세기 당시 해전/항해 모습을 시각적으로 재현해 놓은 디오라마 전시의 일부이다.
▲건덱(Gun deck / 포갑판) 재현 전시관에 있는 '24파운드 청동 대포(Demi-cannon) - 바사호는 건조 당시 총 64문의 대포를 탑재할 예정이었으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화력이 바로 이 24파운드 포 48문이었다. 약 10km(24파운드)무게의 철제 포탄을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발사 할 수 있었다.
▲바사호 종단면 모형(Vasa Cross-Section Model) - 선체 옆에 설치된 이 거대한 모형은 1628년 출항 당시 배 안에서 수백 명의 선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일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정밀한 디오라마이다.
▲층별 구조
1.상갑판 - 배의 맨 위층은 돛을 조절하는 선원들과 장교들의 모습, 그리고 선미 쪽의 하려한 선장실(Great Cabin)을 볼 수 있다.
2.상층 포갑판(Upper Gun Deck) - 바사호 침몰의 결정적 원인이 된 2개 층의 포갑판이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대포들이 빽빽이 배치되어 있으며, 선원들이 대포를 조정하거나 그 사이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열악한 일상이 작은 인형들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3.거주 및 저장 공간(Berth Deck) - 포갑판 아래 공간으로, 선원들의 개인 물품 상자, 식량, 그리고 부상자를 치료하던 임시 공간등이 재현되어 있다.
4. 최하층 홀드(Hold / 선창) - 배의 맨 바닥으로,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채워 넣은 대량의 '평형수 용 돌'과 함께 거대한 식수통, 식량 보관용 배럴(오크통), 그리고 화약고가 위치해 있다.
▲얼굴 대 얼굴(Face to Face) - 바사호 인양 당시 선체 내부와 주변에서 약 30여 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박물관 연구진은 법의학적 뼈 분석, DNA 검사, 그리고 정밀한 컴퓨터 단층 촬영(CT) 기술을 활용해 유골의 주인공들이 살아 생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나이와 키, 영양 상태는 어땟는지를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마네킹 아래 유리 쇼 케이스에 전시된 옷과 소지품들은 바사호 진흙 속에서 함께 발굴된 실제 유물들이며,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갑고 산소가 부족한 발트해 바닥에 묻혀 있었던 덕분에 선원들이 입었던 가죽 신발, 장갑, 모자 그리고 저고리 형태의 옷들이 기적적으로 썩지 않고 있었다.
▲선원 요한(Johan)의 복원 모형 - 이 마네킹은 바사호 침몰 당시 사망한 실제 선원 중 한 명을 첨단 의학 및 고고학 기술로 복원한 모형이다. 이 모형의 주인공 '요한'은 침몰 당시 약 30대 중반이었으며, 키는 약 166cm였다. 뼈의 상태를 통해 그가 살아 생전 꽤 심한 영양실조를 겪었거나 병을 앓았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바사호의 선원들(Vasa's Crew of 445 Men) - 바사호에 탑승할 예정이었던 전체 인원을 시각적으로 한눈에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벽면 전시'이다. 바사호가 완전한 전투 태세를 갖추었을 때 탑승하도록 계획된 인원은 총 445명이었다. 이 전시는 그 많은 인원이 좁은 배 안에서 얼마나 밀집되어 지내야 했는지를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해준다
1. 선원(약 145명) - 돛을 조작하고 배를 운항하는 실제 해군 선원, 포수, 장교 및 요리사, 목수 같은 전문 인력들이다. 침몰 당시(처녀 항해)에는 이들 선원과 이들의 가족 및 축하객 등 약 150명 내외가 탑승하고 있었다.
2. 군인(약 300명) -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적선에 접현하여 백병전을 벌이거나 상륙 작전을 수행할 예정이었던 육군 보병들이다. 처녀 항해 당시에는 아직 배에 타지 않은 상태였다.
* 하단에는 각 번호와 색상벼로, 이들의 직책과 역활(장교, 포수, 일반 선원, 군인 등)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바사호의 선미(Stern Castle / 배의 뒷부분) - 선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집과 같다. 맨 위 중앙에는 스웨덴 왕실의 문장과 함께, 바사호 건조를 명령한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권위를 높이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과 로마 황제들의 조각상이 가득 채워져 있다.
▲1628년 당시 바사호가 건조되고 출항했던 스톡홀름 조선소와 그 주변 환경을 보여주는 역사적 지도/파노라마 안내판 이다. 그림의 중심이 되는 넓은 부지는 당시 스웨덴 해군의 핵심 조선소였다. 현재 스톡홀름 중심가의 '블라시에홀멘'섬에 위치해 있었으며, 수백 명의 목수, 대장장이, 돛 제작자들이 모여 바사호를 비롯한 대형 전함들을 건조하던 활기찬 산업 현장이었다.
▲바사호의 부속 보트(The Ship's Boat / 롱보트) - 바사호가 침몰할 당시 본체 뒤에 밧줄로 묶여 함께 끌려가다가 같이 가라앉았으며, 1961년 선체가 안양될 때 이 보트 역시 기적적으로 함께 발견되어 복원되었다.
▲바사호 1:10 축소 복원 모형(Vasa Scale Model) - 실제 선체 옆에 전시된 이 정교한 모형은 300년 전 바사호가 침몰되기 직전, 가장 완벽하고 화려했던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축소 모형 바사호다.
▲선수(Bow)와 선수상(Figurehead)주변 - 거대한 선체 전면부와 함께 배 앞쪽으로 길게 뻗어 나간 활대(이물대)이다. 배의 맨 앞쪽에서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거대한 나무 기둥(활대)과 이를 지탱하는 이 활대는 배 앞부분에 추가적인 돛을 달아 추진력과 배의 방향 전환을 돕는 역활을 해준다.
▲아기 천사(Putto / 푸토) 모양의 청동 조각상 - 이 조각상은 바사호 내부 특히 선장이나 고위 장교들이 머물던 '선미 대선실'을 장식하고 불을 밝히기 위해 사용되었던 화려한 조명 기구(또는 가구 장식)의 일부로 추정된다.
▲바사 박물관의 선원 연구 전시실에 있는 17세기 당시 스웨덴의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 복장 복원품이다.
1.남성 복장 - 바사호의 일반 선원들이 입었던 전형적인 작업복이자 일상복이다.
2.여성 복장 - 바사호는 군함이었지만, 처녀 항해 당일에는 출항을 축하하기 위해 선원들의 아내와 가족, 그리고 축하객들이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이 드레스는 당시 탑승했던 여성들이 입었던 복식을 재현한 것이다.
▲24파운드 청동 대포의 실물 크기 복원품(Reconstruction of a 24-pounder Cannon) - 바사 박물관의 지상층(입구 근처) 널찍한 홀에 단독 전시된 대포다.
▲바사 박물관의 1층 (지상층) 메인 로비와 매표소/안내 데스크
입구에 도착하면서 바사 박물관의 내부 투어를 종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