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021년 6월 5일 예산카페에 올렸던 글인데 요즘 예산에 내려와 일을보다 생각이나 올려 봅니다 이때 광해군 배경의 보쌈이란 드라마가 상영중 이었음
드라마 보쌈
며칠째 예산에 내려와 있다
등기부상의 종중 대표를 바꾸는 일
종중 토지가 고속도로에 편입되어 보상에 필요한 서류를 만드는 일
객지에 살던 종원이 귀향해 집을 지으려하는데 진입로가 없어 종중 토지를 매매 하는 일
이런 일들을 해야하는데 준비서류가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 쉽지가 않다
그제는 이런 일로 종중 산을 가게 되었다
이곳에는 예산에 처음 정착하신 도사공 선조님부터 후대로 일가를 이루며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이곳에 오면 유독 관심을 갖고 찾는 산소가 있다 족보에도 기록이 없고 왕조실록으로 확인 할수있는 안타까운 분의 산소이기 때문이다
요즘 보쌈 이라는 드라마의 그 시대 광해군 때에 사셨던 분이다
그분 생애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선조는 광해군을 그리 좋아하지를 않았다
총애하던 인빈김씨의 아들 신성군을 세자로 세우려 하였으나 임진란 피난중 의주에서 병사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인빈김씨는 후일 안전을 위해 광해군을 세자로 밀어주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의 언니와 형부(辛鉉) 사이의 딸 즉 조카를 궁으로 불러들여 광해군 처소의 궁녀로 보낸다 이분이 광해군때 숙원 신씨이며 이곳에 산소가 모셔져있는 분이다
인조 반정으로
이이첨을 비롯해 후궁이나 김개시등 많은 사람들이 참수를 당했지만 이분은 고향으로 낙향해서 쓸쓸히 여생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추측이 된다
하기는 인조가 인빈김씨의 손자이니 숙원 신씨의 당질 즉 오촌조카가 된다
그 영향도 있었을까 하여튼 화는 면하신것 같고 그 당시 근거지가 한양과 예산을 오가며 사셨을 때이니 아마도
귀향 하셔서 조용히 사셨던것 같다
광해군 일기를 보면 숙원신씨는 미모가 뛰어나고 시와 서예가 뛰어났다 또한 바둑을 잘두어서 광해군은 며칠씩 정사를 뒤로하고 숙원 신씨와 내기 바둑을 두어 결재서류가 너무많이 밀려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다
이렇게 기록 되어 있는것을 보면 숙원신씨가 얼마나 총명하셨는지 짐작이 된다
그렇게 불운의 한생을 마치고 이곳에 묻히신것 같은데 그뒤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묘비는 받침돌만 남은채 흔적이 없고 상석과 한쌍의 동자석이 남아 있는데 문관석 무관석 동자석도 아닌것 같은 꽃무늬를 강조한 꽃치마를 입고있는 처음보는 동자석이 세워져있다 궁의 나인석은 아닐까 그런 추측을 하게되는 좀 특이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나는 그곳에 한동안 서성이다 돌아왔다
이제 그 산소가 누구의 산소인지 아는 우리집안 종인들도 없는것 같고 별 관심들도 없어 보인다
이 당시에도 우리 예산 문중에는 많은 분들이 벼슬길에 계셨는데 숙원신씨의 오라버니가 4명 이었는데 신종적은 봉렬대부 연기현감 사옹원 제검.신종괄은 통덕랑.신종술 내승 호군 첨사.신종형이 있다
내사복시의 내승(정3품)은 어승마조련 왕의 시위 명령전달 및 궁궐의 입직 어승목장관리등을 담당했다
그렇게 왕의 지척에서 모시는 근시직이라서 복신 이라하였다 그래서 왕의 사족만이 임명되었다한다
신종술께서 인조14년 내승 이셨을때 당질인 선석공 신계영께서는 승지로 계셨다 신계영 께서는 후일 승진을 거듭하셔서 종1품 판중추부사 까지 오르셨다
세월은 모든것이 잊혀져 가는 것이다 그래서 무상일 것이다
할머님 편안히 계십시요
사백년이 훌쩍 지난 후손 꼬마가 절 올리고 갑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