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1-18
네가 개척하라 / 김진철 목사
어제 우리는 요셉 자손 가운데 하나인 에브라임 지파의 땅 분배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자신들의 선조인 요셉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크신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결과 '장자의 권리'를 부여받아 땅 분배에 참여한 유다 지파에 못지 않게 가나안의 주요지대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큰 은혜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있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에브라임 지파가 아름다운 터전에서 살 수 있게 된 유일한 이유입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에브라임 지파 역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에게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다 지파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보다 먼저 가나안 땅을 차지한 유다 지파가 자신들의 경내에 속한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는 일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유다 지파의 어리석음은 그 뒤를 따르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역시 쫓아내야 할 게셀 거민들을 쫓아내기는커녕 자신들의 종으로 삼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일들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신앙에도 모범이 필요함을 새롭게 느껴보았습니다.
오늘은 요셉 자손 가운데 나머지 한 지파를 만나게 됩니다. 1절 말씀이 그 지파를 소개합니다.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오늘은 이 므낫세 지파와 관련된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 그것을 우리의 기도제목으로 삼고자 합니다. 므낫세 지파는 요단강 동편과 서편에 각각 땅을 차지한 지파입니다. 마길 자손이 중심이 된 므낫세 지파의 반은 이미 요단강 동편에서 기업을 할당받았습니다. 따라서 본문말씀은 남은 므낫세 반 지파의 자손들이 요단 서편에서 땅을 기업으로 할당받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경계를 보면 동쪽으로는 갈릴리 바다 남쪽 끝에서부터 요단 계곡까지이고, 서쪽으로는 지중해 연변까지입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가나 시내를 따라 답부아까지이며 북쪽으로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지경과 접하게 됩니다. 본문은 이러한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되는 본문에서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 3절부터 6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기업을 그 아비 형제 중에서 주므로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므낫세의 여손들이 그 남 자손 중에서 기업을 얻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게 속하였더라"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에도 쉽지 않은, 당시로서는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일에 용기를 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슬로브핫의 딸들입니다.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 이 다섯 사람이 이 시간 우리의 첫 번째 관심입니다. 우리가 이 여인들을 성경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곳은 민수기 27장입니다. 므낫세 지파의 한 사람인 슬로브핫이 아들 없이 다섯 명의 딸만 두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재산이 누구의 몫이 되는지가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딸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고대 근동의 주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남자 중심의 상속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므낫세 자손이 자기 기업을 분배받을 때에도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는 탓으로 기업을 할당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었습니다. 그리고 그 슬로브핫 마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기업분배의 일은 더욱 심각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슬로브핫의 딸들에게서 중요한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인생에 보다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대처하는 모습입니다. 이 여인들은 당시의 관습에 따라 자신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과감하게 모세 앞으로 나아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27장 5절부터 7절 말씀입니다(p. 223). 함께 봉독합니다.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보세요. 자신들의 인생에 보다 적극적인 신앙의 태도를 가지고 달려드는 슬로브핫의 딸들을 하나님께서는 옳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해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딸들에게도 상속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슬로브핫의 딸들로부터 본받아 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역시 우리의 인생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저하거나 포기하려 드는 것은 결코 믿음을 가진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까지 오는 동안도 우리가 경험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성도님들 나름대로, 우리 청년들은 청년들 나름대로 그와 같은 경험들이 지금까지의 삶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어느 한 순간도 호락호락한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저 주저 않고 싶을 때도 있으셨지요?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에 어떻게 그 상황들을 헤치고 오늘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을 보세요. 이 여인들은 오늘 우리에게 외칩니다. 위축되고 주저하는 나약한 삶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러한 삶의 순간에 보다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손을 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신들의 인생 길에서 보여주는 귀한 믿음의 발자취입니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의 중요성은 계속되는 본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함께 봉독합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우리는 여기서 어제와 오늘 만나고 있는 요셉 자손들의 새로운 도전을 보게 됩니다. 이 도전은 지금 자신들에게 분배된 땅만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들이 넉넉하게 거주할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는 요셉 자손들이 이미 한 지파가 아니라 두 개의 지파로 축복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일에 있어서 한 분깃만을 얻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요셉 자손들은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의 형편과 처지를 알립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요셉 자손들에게 대답합니다.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요셉 자손들의 요청을 받은 여호수아는 브리스와 르바임 지역의 땅을 추가로 그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어조로 말씀합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스스로 개척하라" 이것이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요셉 자손에게 요청되는 적극적인 믿음의 자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개척하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베레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나무를 자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단어의 뜻에 기초해서 '삼림을 개간하여 초지로 만들라' 또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도전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셉 자손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들에게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계속된 광야생활과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기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습니까? 피곤했을 것입니다. 지쳐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얼마든지 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요셉 자손들에게 손가락질 할 사람들도 없습니다. 모두들 당연한 일처럼 여겨줄 것입니다. 도리어 그 동안 달려온 길이 힘겨운 길이었으니 이제는 쉬라고 말해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 자손은 그러한 나약함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려 하는 생각을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행진이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개척하라" "스스로 개척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17절로 18절 말씀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 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일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잠시 주춤하는 요셉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다시금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네가 개척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네가', 바로 '네가' 새로운 도전의 땅을 개척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볼 때 그 도전의 땅은 결코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는 단정한 땅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울창한 삼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무지와도 같은 척박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코 만만하지 않지요. 쉬운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이미 새로운 도전을 위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을 '네가' 가지고 있다면 그 삼림과 황무지를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네가 개척하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치 우리의 인생 길을 들여다보는 듯 합니다.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인생길이 어떤 길입니까? 마냥 평탄하고 굴곡도 없는 아스콘 길입니까? 아니면 아직 정돈되지 않은 비포장의 시골길입니까? 아마도 후자의 대답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아직도 불확실합니다. 때로 이 비포장 길에 뿌연 안개까지 자욱하게 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욥기에서 이와 같은 인생의 체험을 온 몸으로 경험한 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욥기 1장 서두에 기록된 그의 인생 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단란한 가족들이 욥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재산도 있을 만큼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훌륭합니다. 정말이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때 욥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욥기 23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여기서 우리가 이 시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나의 가는 길을 나도 모른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욥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이 세상 누가 자신이 걸어가는 인생 길을 알 수 있습니까? 지금도 잠시 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 우리 인생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 인생 길을 가리켜 잘 포장된 아스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길은 포장되지 않은 척박한 길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삼림이 우거진 길입니다. 여기저기 아직 개간되지 않은 황무지가 넘치는 길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제 한 가지뿐입니다. 이 길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인생의 걸음을 떼고 있는 "네가 그 삼림과 황무지를 개척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결코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입니다.
요셉 자손들은 여호수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네가 개척하라" 오늘은 이 새벽을 깨우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개척하라" "내가 너에게 주는 비전의 땅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 땅을 네가 개척하라" "지금 당장은 척박한 땅으로 보일지라도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네가 개척하라"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 개개인에게 약속된 비전의 땅을 반드시 우리의 두 발로 밟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