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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에 복을 더 하사!
(역대상 4:9-10)
사람은 저마다 소원을 가지고 삽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는 것과, 복 받는 것을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 자신을 보면서 복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았지만 특별히 우리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으면서도 이 성경이 복있는 사람으로 기록한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야베스라는 사람입니다. 역대상에서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등장시키다가 야베스라는 사람에 한해서 여러 가지 축복받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베스가 받은 축복에 대하여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도 많은 조상의 자손들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지만 야베스에 한해서만 이와같이 존귀한 자라는 칭호를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야베스가 어떻게 이런 복을 받았을까? 거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첫째, 하나님께 복을 구해야 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야베스가 어떻게 복을 받았나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기도로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가 복받은 비밀에 대하여 성경은 야베스가 복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그는 구하여 아뢰옵기를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복을 하나님께 구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을 구해야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복이란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은혜를 뜻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때 이것을 복이라고 말하는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 10:22). 우리가 물질을 받는 것은 다 복입니다. 누구든지 노력하면 물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심있는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아닙니다. 근심없는 복이어야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복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복을 자칭 복이라고 말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인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복을 받고 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 복이지 자기가 얻은 것은 복이 아닙니다.
야베스는 차원 높은 복을 여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야베스가 구하는 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를 위해서 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받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나의 구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나의 삶의 최고의 가치로 추구한다면 그 복은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부르짖는 것은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복만 구하고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야베스의 기도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복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것은 좋은 것입니다. 반드시 복을 받아야 됩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참석해서 목사님들을 볼 때 제 마음속에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목사님들이 다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다. 어쩌면 저렇게 똑똑하고 당당한가' 여러 가지 면에서 모두 다 훌륭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돌아오면서 한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못난 사람이야 부족한 사람이야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나에게 큰 복을 주셨을까 그 많은 목사님들이 다 훌륭한데 왜 못난 나에게 이런 복을 주셨을까 어느 것 하나 복받을만한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큰 복을 주셨으니 이 은혜가 얼마나 큰가' 그 이유를 저는 회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 한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복없는 부모를 만났습니다. 복없는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디를 보나 복이 없었습니다. 조상의 무덤에 가서 성묘를 해도 복받은 무덤이 없었습니다. 어느것 하나 복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린 나이에 예수를 믿은 후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1-2)
그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 나는 복된 조상이 없었고 복된 부모를 못만났지만 이 어린 종을 복되게 하셔서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이런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주여, 주께서 복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저는 살 수가 없습니다." 가슴에 손을 대고 "복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복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혹시 이 가운데 '나는 복된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복없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간구하십시오.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제가 며칠 전에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을 구입해서 읽는 중에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기적을 이루는 기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책에 보면 존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존이 천국에 갔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안내하기 위하여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존을 데리고 가서 천국의 황금길과 아름다운 저택을 보여주었습니다.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천국의 황홀함 속에 젖어있을 때 이상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존이 보고 싶다고 하자 베드로는 안보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베드로는 존에게 그곳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건물에는 바닥에서 천정까지 선반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선반에는 빨간 리본이 묶여진 하얀 상자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그 리본에는 전부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존이 물었습니다. "제 것도 있습니까?" 그때 베드로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존은 자기의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자기 이름이 쓰여진 상자를 열었습니다. 존이 열어본 상자 안에는 그가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기 원하셨던 많은 복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구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주기 원하셨던 복을 다 받지 못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
주님께서 분명히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는데 우리는 천국에 복을 쌓아놓고 도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복받기를 원하신다면 복에 복을 더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만 받으면 모든 복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에 복을 더한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물론 유대인의 강조점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씀 속에 신비한 비밀이 있습니다. 육신의 복 위에 신령한 복을 더해야 됩니다. 현재의 복에 미래의 복을 더해야 됩니다. 땅의 복 위에 하늘의 복을 더해야 됩니다. 젊어서 받은 복에 노년의 복을 더해야 됩니다. 돈을 버는 복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선하게 쓰는 복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맨하탄에 있는 River side church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는 미국의 대부호 록펠러가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는 어린시절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기도로 인하여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받은 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복을 더하여 웅장한 성전을 지어 봉헌했습니다. 저는 22층 종탑에 올라가서 허드슨강을 바라보면서 "오 주여, 록 펠러가 받은 축복을 복에 복을 더하사 우리 한신의 가족들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소원을 빌었습니다.
둘째,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복을 많이 받아 지경을 넓히는데 나의 삶의 영역을 넓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 '지경'이란 말은 해변이나, 경계를 말하는데 미국의 초기 개척자들이 넓은 땅을 차지하려고 했던 강열한 소원과 같은 말입니다. 더 넓은 의미에서 국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땅끝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베스 당시 이스라엘 국가적인 상황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에게 그 약속의 땅을 분배해 주었던 때였습니다. 야베스는 그 당시의 상황을 보고 '나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지'라는 소원을 갖고 '나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해 주었는데 그 땅을 보면서 야베스가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지경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업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지경입니다. 하나님은 그 지경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과, 사업계와, 더 넓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며칠 전에 우리 아들이 한 차를 타고 오면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 세상의 성공한 사람들은 다 인간의 교제를 넓혔는데 아버지는 친구와의 교제나 인간의 교제를 잘 못하시면서 어떻게 성공하는 복을 받았습니까?" 저는 총회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다른 사람들은 여유있게 대화도 하고 교제도 나누는데 저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보면서 좀 안되어 보였던지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교제를 안하는 사람이 아니야 많은 사람과 교제를 했지" "어떻게 했습니까?" "나는 목사님 몇 분과 교제한 것이 아니라 많은 성도와 설교로 교제하고, 은혜로 교제하고, 기도로 교제했지 친구 몇 사람 사귀는 것은 큰 교제가 아니야 많은 교인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이 큰 교제야"
삶의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기회를 넓혀야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24년 전 청계산 바위에 앉아서 기도할 때에 어느날 하늘로부터 빛이 비취면서 저에게 보여준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이 말은 지경을 넓힌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야베스의 기도와 상통합니다. 요셉은 복에 복을 더하사 그 지경이 담을 넘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우리는 지경을 넓혀서 그 지경이 국경을 넘어 천국의 지경까지 넓혀가야 됩니다. 우리의 재능이나, 우리의 사업이나 지식 모든 면에서 날마다 넓혀가야 합니다. 우리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셋째, 주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게 하시고 근심이 없게 하소서."
지금까지 야베스는 많은 연약한 중에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복을 유지하는 복이 필요했습니다. 야베스는 복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더 큰 간구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야베스의 기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자기의 복을 빼앗고 성공을 무너뜨리려고 우는 사슴처럼 달려드는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간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경을 넓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복을 유지하고 지키는 것은 더 큰 복입니다.
성공은 성공과 더불어 실패의 기회를 더 많이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안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주의 손으로 도우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우리는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기도의 끝에 이 기도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기도를 지키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기도는 그 복을 지키고 복을 잃지 않는 기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았음에도 복을 지키지 못해 다 잃어버립니다. 이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넷째, 존귀한 자 야베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9절)
우리는 복받은 사람으로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를 성경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돈 벌었으나 부자 소리 듣는 것이 아니라 존귀한 자라는 말을 듣고, 출세했으나 출세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말하고, 많은 재능을 가졌으나 재주꾼이라는 말을 듣지 아니하고 역사의 위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바로 복입니다.
히브리말로 야베스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보다 더 문자적인 표현은 "그가 고통을 불러오다"라는 뜻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고통을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야베스를 낳을 때 수고로이 낳았다고 하는 것을 볼 때 가정에 큰 시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장애자로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조실부모 했는지도 모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분명히 불행한 사람으로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존귀한 자로 바꾸어졌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었습니다. 고통 가운데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에 하나님께서 존귀한 자로 바꾸어 줍니다. 왜? 하나님께서 원하는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이런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나는 복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없이 태어났다고 탄식하십니까? 야베스처럼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존귀한 자로 바꾸어지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먼훗날 하나님 앞에 갈 때 우리가 어떻게 가야 하겠습니까? '너는 존귀한 자다' 이렇게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이번 총회 기간에 한국교회사에서 큰 스승으로 존경을 받는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100주년 탄신 기념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는 1901년 9월 18일 함경북도 조그만한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1961년 한신대학에 입학해서 면접을 할 때 그 인물은 전혀 학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교수님들은 다 인물이 출중한데 유독 그 분만 농사꾼처럼 생기셨습니다. '저렇게 생기신 분이 어떻게 학장이 되었을까' 저는 수수께끼였습니다. 나도 못났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거기에 비하니까 아주 잘난 사람이에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그 분 앞에만 가면 절을 합니다. 그 분의 글을 읽으면 가슴이 뜁니다.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이 있다고 한다면 장공 김재준 목사님입니다. 그래서 제 속에 그분 신학이 들어있습니다.
1950년 6.25 민족 전쟁이 일어나자 동자동에 있던 조선신학교가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9.28 수복이 되면서 학교가 문을 열고 부산에서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김재준 교수님이 안계십니다. 수소문을 해보니까 거제도 섬 어느 시골 농촌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용 목사님이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얼른 부산으로 가십시다. 그곳에서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안가네. 내가 그동안 하나님에 관하여 많이 가르쳤네. 이제 하나님 앞에 설 일이 두렵네. 하나님께서 '네가 하나님에 관하여 많이 가르치고 돌아왔나' 물으신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뵐 수 있겠나 나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했네. 농사 짓고 살기로 했네." 그러나 거절하시는 교수님을 제자들이 억지로 모셔갔습니다. 그래서 김재준 목사님은 다시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리라'는 정신이 그를 존귀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함경도에서 태어날 때는 야베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가슴속에 예수가 계셔서 예수의 정신이 살아서 드디어 역사에 존귀한 자로 남았습니다.
이 가운데 자기 자신을 천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날 때부터 복 없이 태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모를 원망합니까 형제를 원망합니까 하늘을 보십시오. 주님을 보십시오. 하늘을 향해서 야베스처럼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면 주께서 야베스를 존귀한 자로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돌리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