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6-24
재수 없는 게 아닙니다 / 김영주 목사
1. 서론
언젠가 목장 탐방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음주 단속이 있었습니다. 바로 앞에서 차가 밀려서 얼굴을 내밀고 보니 앞 차가 단속에 걸려 있었습니다. 도망가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차몰고 조금 가다가 경찰들에 막혀서 잡혔습니다. 속으로 저 잡힌 사람이 뭐라고 말할까 예상해 봤습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재수 없어서 잡혔다’ 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No!
재수 없는 것 아니라, 음주를 했기 때문에 걸린 것입니다. 음주가 문제지 단속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음주 하고도 안 걸리는데 나만 재수 없어 걸렸다.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이 사람은 안 변합니다. 다음에는, ’음주 하면서 안 걸리는 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음주 운전으로 인한 더 불행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대개 인생의 위기, 어려움을 당할 때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재수 없어 걸렸다.’는 반응입니다.
이런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재수 없음을 탓하고, 분노하고 삶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잘못했다. 고치겠다.’는 반응입니다.
재수 없는 것 아니라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걸린 것이다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소망 있습니다.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비싼 수업료 내고 배운 것으로 하겠다.’ 이런 반응은 인생의 큰 유익입니다.
그런데, 대개 사람들은 첫 번째 반응을 취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전의 기회인데 패망의 기회로 받아들입니다.
2. 르호보암이 그렇습니다.
르호보암이 왕이 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와서 우리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거절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등 돌리고, 떠나버렸습니다. 르호보암의 왕 됨을 거절했습니다. 오직 유다(베냐민)만 르호보암을 지지했습니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깨닫고 정신 차려야 합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깨닫지 못합니다.
* 이 사건 이후 르호보암의 두 가지 실수
1)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을 보내 ‘세금’을 받으려 한 것입니다.
(18절)“르호보암 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그렇지 않아도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은 아도니람을 쳐 죽이고 르호보암을 공격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세금 받으러 갔다가 황급히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상황 파악이 안 될까요?
이미 하나님이 그 손을 뗐습니다.
은혜의 보호막이 거두어졌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행동을 조심해야 했습니다. 옛날의 그 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뒤를 봐 주시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여전히 다스리려하고 지배하려 하고 세금을 무리하게 거두려 하면 먹히겠습니까?
하나님이 떠난 사람의 삶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어리석음’입니다. 지혜의 하나님이 떠나시면 누구나 멍청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이 멍청함이 자신을 죽이게 됩니다.
2) 전쟁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21절)“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쫓겨 온 르호보암은 분노하고, 자존심 상해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유다, 베냐민 지파를 모아 18만 대군을 일으켜 전쟁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마 ‘저 놈들을 다 쓸어 버리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경우, 이런 상황이 되면, 이거 뭔가 문제가 있다.‘, ’내가 뭐 잘못 한 것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한 일 있나?‘ 생각하며 겸손, 자숙, 자기 성찰의 지혜가 있어야 하는 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자가 오히려 ’분기탱천‘하여 ’좋다. 전쟁이다. 한판 붙어보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얼마나 다른가 비교해 봅시다.
(수7:1, 4~9)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4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6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하나님을 알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황당한 일을 겪을 때, 회개하고 무릎 꿇고 엎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소망이 있습니다. 다시 기회가 열립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자존심’이 상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쓸어버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실제로 전쟁을 했다면,
①동족끼리의 싸움이 됩니다.
②수많은 희생을 치를 것입니다.
③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영원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④반드시 패배했을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⑤ 설령 이긴다 해도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립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까, 하나님이 ‘비상개입’ 하셨습니다.
(22~24절) “22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3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이 말씀의 요지는? ‘형제들끼리 싸우지 말라, 집으로 가라, 이 일은 나로 인해 생긴 일이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이다.‘입니다
3. 르호보암이 전쟁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상황에 대한 해석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1) 내가 힘이 없어서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나의 힘을 보여주겠다. 꼼짝 못하게 잡겠다.‘는 생각으로 전군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18만 명의 군사로 내 힘 보여주겠다.’ 자신의 죄(아버지의 죄) 때문이 아니라 힘이 없어 당했다 생각한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2) 재수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만 그런 것 아니다. 주변의 다른 이방 나라 왕들은 나보다 더 심하고, 악하게 해도 잘만 되는데 왜 나만 이러냐? 내가 재수 없어서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생각지 않고, 하나님 바라보지 않고, 자꾸 사람만 바라보면서, ‘나만 그럽니까? 다 죄 지었는데 왜 나만 당합니까? 내가 잘 못 해서가 아니라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 이렇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3)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은 저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저 놈을 제거해야 하고, 저 녀석을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내가 반드시 처치하리라.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끝장내리라!‘ 너무 무서운 생각입니다.
∴ 이렇듯 르호보암이 너무 못 알아듣고 답답하니까 하나님이 나선 것입니다.
(24절)“24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이 세상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없고, 재수 없어서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ex) (마10:29~31)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찮은 참새 한 마리가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믿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고,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걸 찾을 줄 알고, 이것을 깨달아야 그나마 그 인생이 잘못 되지 않습니다.
4. 불행한 사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바로잡으셔서 멋진 하나님의 자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영광 받기 원하십니다. 우리를 높이 들어 선전하시기 원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 너희들이 나를 믿고, 인정하면 내가 이렇게 만들어주겠다. 하십니다. 그래서 가끔 책망도 하시고, 고난의 길도 가게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고,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분노하는 사람이 제일 불행합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할 기회에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저주를 자청한 사람입니다. 유다 웃시야 왕이 그랬습니다.
예) (대하26:16~21, 23절) “16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20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23웃시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는 나병환자라 하여 왕들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의 조상들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웃시야 왕이, 제사장(아사랴)이 막을 때, ‘아, 죄송합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하고 성전에서 나왔으면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막을 때 ’화‘를 내는 순간, 이마에 나병(문둥병)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구절(20절)을 보면 제사장도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 하나님께도 치시므로 왕이 속히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웃시야 왕은 일평생 나병 환자로 살았고, 왕의 자리도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열왕들의 묘실(국립묘지)에도 못 들어가고 묘실 옆에 있는 땅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5. 결론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잘못도 합니다. 그러나 돌이킬 기회가 있을 때 돌이키면 복이 되고, 긍휼이 되고, 약이 됩니다.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면 이것이 내 인생의 ‘독’이 되어 나를 죽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말씀하실 때, 이때가 회개할 기회입니다.
이때 화내는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인생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만약 그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과 싸워서도 안 되고, 화내도 안 됩니다. 그것은 재수 없어서가 아니라, 회개하고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