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함
[삼하 6장]
[내용개요]
본장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온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다윗은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구심점이었던 법궤를 새로운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생존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인식한 다윗의 신앙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손으로 들어서 옮기게 되어 있는 법궤를 수레로 운반하려다가 웃사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자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를 두었다(1-11절). 그 후 하나님이 법궤로 인해 오벧에돔의 집에 축복하심을 들을 다윗은 율법이 명한 대로 제사장으로 하여금 법궤를 어깨에 메게 하고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모셔 왔다. 이로 인해 기쁨에 찬 다윗은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고 맥 성들과 함께 잔치를 배설하였다(12-19절). 한편 자신의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법궤를 맞이한 기쁨으로 인해 춤추었던 다윗을 비난하던 미갈은 하나님에 의해 자식 을 못 낳는 징계를 당하게 되었다(20-23절).
[강 해]
사울 시대부터 백성들에게 잊혀졌던 하나님의 법궤에 관한 이야기가 본장에 돌연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강력한 신정 국가 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을 보여 왔던 다윗은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습니다.
1. 법궤를 옮김
1)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
다윗은 블레셋을 정복하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게 되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법궤는 바알레유다 즉 기럇여아림의 산 가운데 아비나답의 집에 유치되어 있었습니다(참조, 삼상7:1-2).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길목 곧 예루살렘 서쪽 15km 지점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은 지는 70년이나 되었습니다. 이 기간은 아넥 전투 때부터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a. 온 이스라엘을 거느린 다윗(대상13:6)
b. 거룩하게 대하여야 할 법궤(민4:15)
2) 삼만 명을 선발함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를 옮겨 오기 위해서 다윗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삼만 명의 무리를 선발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숫자를 다윗이 선발한 것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도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강력한 신정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a. 삼만 명을 선발함(삼하6:1)
b. 대부분 군사들로 이루어짐(대상13:1-2)
3) 법궤 이동
다윗은 법궤 운반에 필요한 사람들을 데리고 기럇여아림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비 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다윗 왕은 법궤를 옮겨 오는 일에 악대와 찬양대를 동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법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했습니다.
a. 언약궤는 레위인들이 운반함(신10:8)
b. 악기를 사용하여 찬양함(시71:22)
2. 법궤로 인한 재앙과 축복
1) 웃사의 죽음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데 쓰인 도구는 소가 끄는 새 수레였습니다. 법궤가 실린 새 수레를 끄는 사람은 아비나답의 두 아들인 웃사와 아효이었습니다. 법궤를 운반하는 방법은 다윗의 명에 의한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규례에 비추어 볼 때 어긋나고 매우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성소의 모든 기구를 운반하고 보관하는 책임을 맡은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만이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참조, 민3:27-32). 그리고 법궤를 어깨에 메어 운반토록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규례를 어김으로써 비극의 싹을 배태하고 있었습니다. 웃사와 아효는 다윗의 명에 따라 수레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소들이 놀라서 갑자기 뛰는 바람에 수레에 실린 법궤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그러자 법궤가 땅에 떨어질 것을 염려한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잡았고 그는 하나님의 징계로 즉시 죽게 되었습니다.
a. 수레에 싣고 이동시킴(삼상6:8)
b. 성물을 만지지 말라는 명령을 어김(민4:15)
2) 오벧에돔이 받은 축복
웃사의 죽음으로 법궤 이동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법궤를 가드 사람인 오벧에돔에게 맡기었습니다. 오벧에돔은 웃사의 죽음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 집에 두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의 신앙을 말해 줍니다. 법궤를 모신 오벧에돔은 법궤로 인하여 온 집안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a. 웃사를 치심으로 인하여 두려워함(대상13:12)
b. 법궤를 모시게 된 오벧에돔(대상13:14)
3. 법궤를 안치함
1) 다시 법궤를 운반함
법궤로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에 큰 축복이 임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일시 중지했던 법궤 이동을 다시 재개하였습니다. 그는 지난번의 잘못을 깨닫고 이번에는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운반코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로 하여금 법궤를 메게 했습니다. 법궤를 멘 레위인들은 여섯 걸음을 걸은 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벱궤를 운반하기 시작할 때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은 이전의 잘못을 속죄하고 축복에 감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은 출발할 때 뿐만 아니라 운반을 마친 후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자냈으며 운반하는 동안 계속 노래와 연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즉 그는 법궤를 운반하는 동안 베 에봇을 입고 있는 힘을 다해 춤을 추면서 기뻐하였습니다.
a.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심(시115:13)
b. 고핫 자손이 법궤를 멤(민7:9)
2)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시킴
레위인들에 의해 법궤는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되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안치하기 위해 새로 장막을 만들었고, 먼저 법궤를 모신 장소를 성별하기 위한 일종의 봉헌식을 드렸습니다. 법궤가 수도 예루살렘에 안치되었다는 것은 왕국을 다스리는 진정한 통치자의 보좌에 하나님께서 좌정하셨음을 공포하는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법궤가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안치됨으로 이스라엘은 이제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나라로서 면모를 갖추어 영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분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외견상으로 법궤를 중심부인 예루살렘에 두었듯이 그들의 심령 골수에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새겼다면 이스라엘의 영화는 그야말로 영원 불멸했을 것입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무리에게 떡과 고기와 건포도 떡을 나누어 주어 기쁨을 함께했습니다.
a. 오벧에돔의 집을 거쳐 다윗 성으로 들어온 법궤(삼하6:12)
b. 하나님을 찬양함(출15:2)
3) 미갈이 저주받음
법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춤추는 모습을 그의 아내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고 업신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법궤를 안치한 다윗이 궁으로 돌아오자 미갈은 다윗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춤을 왕의 권위와 체면을 손상케 하튼 처사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미갈의 태도는 옳지 않은 것으로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a. 경멸은 우매한 것임(잠11:12)
b. 자식이 없음은 하나님의 저주임(렘22:30)
결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생각하는 다윗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먼저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단어해설]
2절. 그룹. 하나님의 천사 중 하나. '생명나무의 수호자, 성전 봉사자' 등으로도 나타남.
5절. 수금. 유발이 최초로 사용한 현악기. 팔레스타인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특히 잔치 때 쓰임.
6절. 타작 마당. 곡식을 타작하는 넓은 곳으로 통풍이 잘되는 언덕 위에 있었음. 보통 때는 놀이 마당, 회의 장소 등으로 사용됨.
14절. 에봇. 제사장이나 왕이 종교 의식을 행할 때 입는 옷.
[신학주제]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법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여부스를 몰아내고 예루살렘에 새로운 수도를 건립함으로 통일 왕국의 기반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군사적 또는 정치적인 면에서는 효과적인 것이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는 방법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그 출발부터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형성되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존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울을 지켜 본 다윗은 이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한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법궤는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의 보증이다. 이는 법궤를 언약궤라고 부르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따라서 법궤를 옮겨 온 다윗의 행동은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전적 신뢰의 표현인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서약이다.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율법에 대한 철저한 순종으로 나타나야 한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스스로 파기하는 행위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보호로부터 제외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보호와 그의 백성들의 순종적 반응은 구약의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신약 성도들의 삶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다.
[영적교훈]
본장에서 다윗은 일국의 왕이지만 법궤가 들어왔을 때 자신의 옷이 벗겨져 사람들에게 드러날 정도로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를 칭찬하시고 오히려 다윗의 행동을 비난한 미갈에게 자식을 낳지 못하는 벌을 내리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도들의 가장 큰 기쁨이며 최선을 다해야 할 일임을 교훈해 주고 있다. 성도들은 세상 바람들 앞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시며 또한 그런 성도들의 모습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