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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의 주장- | -홀리죠이의 주장- |
A : 예수님께서는 택한 자들만을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
| A' : 예수님께서는 택한 자들만이 아니라 죄 자체의 값을 치르신 것으로서 온 우주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 |
B ; 피 흘리심의 효력은 택한 자들만이 누린다. | B ; 피 흘리심의 효력은 택한 자들만이 누린다. |
결국 홀리죠이의 글은 보편 속죄론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창진의 주장 같다면 구원받고 멸망 받는 자들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된다.
2. 제한 속죄론을 주장하게 하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
① 예수님은 구원받는 자기 백성만을 위해 오셨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여기에서 ‘자기 백성’을 위해, 곧 구원받는 자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 1:11에서 보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의 ‘자기 백성’은 곧 자신을 죽인 유대인들로 바리새인도 포함된다. 즉 구원 받는 자들만을 가리키고 있지 않는다. 렘 5:26에서도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은 주님의 권위아래 있다. 다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②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만 구원 받는다.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 이 구절은 그랜드미션 신대원 김경규 교수의 글을 보면 쉽게 해결 된다.
And as many as had been appointed to eternal life believed.”
헬 호소스(hosos)는 as many as(~만큼, ~만큼 큰)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만큼의 사람들이 믿었다, or 믿은 사람들의 수만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되었다.”는 것이다.
③ 예수님은 ‘내 양’을 위해서만 목숨을 버리셨다.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본 비유는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에 대한 가르침이다. 자기 양만을 구원하기 오셨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이 아니다.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그래도 깨닫지 못함으로 다시 가르치신다.
[요 10: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삯군 목자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달아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고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곧 인류의 목자는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내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하시지 않으시고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아 너희들의 참 목자는 너희를 위해 죽기까지 마다않는 바로 나 예수니라’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서두에 선언하신 것이기도 하다.
④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할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보내셨다면, 하나님의 목적은 실패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속죄가 주는 구원의 유익은 택한 자들에게만 적용된다.” -듀레틴-)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다며 구원을 소리 질러 간청했다. 그러나 주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마 15:24) 고 하셨다.
실제로 주님은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신 것이다.
(마 10: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눅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만약에 잃어버린 자들만을 위해 오셨다면 믿는 모든 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이라고 한정하시기 때문이다(마 10:6). 그러나 결국 주님은 헬라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다(막 7:26,29).
☞ 예수님의 오신 내역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실제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받아들여 제사장 나라로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빛이 되기를 거부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사 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그러므로 그 특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간 것이며,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시기하여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롬 11: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롬 11: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에서부터 온 세상이 구원 받게 하심이 최종적인 목적임은 다음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사 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이란 믿어 구원 받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 중의 잃어버린 자들을 가리켰던 것이다. 주님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위해 오셨지만 사실 이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다만 이스라엘이 영접하지 않음으로 그 은혜가 더욱 가속되어 이방으로 흐른 것이다. 잃어버린 자가 구원 받는 자라는 등식은 말도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주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자란 주님을 떠난 세상 모든 사람들인 것이다(김경규 교수). 그리고 주님은 이 모든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다만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만 구원을 받는 것이다. 주님은 억지로 구원 받게 하시지 않으신다.
※보편 속죄론과 만인 구원설은 다르다. 보편 속죄론은 대속의 범위를 말하는 것이고, 만인 구원설은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