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반곡구가(盤谷九歌)」 유배객의 9가지 비애를 노래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도 유배문학 「반곡구가(盤谷九歌)」는 조선 후기의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거제도 유배지 반곡(盤谷)에서 지은 아홉가지 노래 〈적소구가(謫所九歌)〉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 김진규(金鎭圭)는 1689년 기사환국에 연류되어 거제도로 유배왔다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해배되어 돌아갔다. 그의 거제유배기간은 1689년~1694년이며, 배소는 거제면 동상리 반곡(盤谷)서원 부근이다.(現 거제 반곡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이 시는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언급하며 유배객의 비애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서문(序文)에선 이 노래를 창작한 동기에 대해 밝혔고, 본문(本文)에선 유배지(謫所)에서 부르는 9가지 비통한 노래(九歌) 즉 ‘나그네(客), 무덤(墓), 어머니(母), 숙부님(叔), 형님(兄), 동생(弟), 아내(妻), 아이들(兒), 내 인생(吾生)’을 주제로 하여, 차례대로 9수(首)의 노래를 구성하였다.
○ 먼저 <서문(序文)>에선, 유배객의 처절한 심경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이 작품의 창작 배경을 당나라 시인 두보가 고난 중에 지은 「동곡칠가(同谷七歌)」를 떠올리며, 이를 자신의 귀양살이에 빗대 「반곡구가(盤谷九歌)」를 지은 배경이라고 밝히고 있다. 두보의 「동곡칠가(同谷七歌)」의 배경보다 훨씬 비참하고 더한 슬픔을 느낀다고 언급한다. 두보는 피난 중이었으나 가족이 곁에 있었고 죄를 지은 상태도 아니었으나, 자신은 온 집안(본인, 형, 숙부)이 동시에 바다 멀리 유배되었고, 늙은 어머니와 할머니를 어린 동생 하나에게 맡긴 채 뿔뿔이 흩어졌다고 말한다.
* 이어 「반곡구가(盤谷九歌)」의 의미에 대해 덧붙여 놓았다. 반곡(盤谷)은 김진규가 유배 생활을 하던 거제도(당시 거제현)의 지역 이름이다. 구가(九歌)는 두보의 '칠가(七歌)'에 두 수를 더해 아홉 굽이의 노래로 엮었다. 이는 자신의 비극적인 감정을 쏟아낼 길이 없어, 시를 빌려 슬픔을 달래고자(紓悲苦之思) 한 것이다.
*또 서문에 나타난 가족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형님은 수로로 천 리나 떨어진 제주섬으로, 본인은 장려(瘴癘)가 도는 남쪽 끝으로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본가에는 쇠약하고 병드신 어머니와 연세가 매우 높으신 할머니가 계셔서 걱정이고, 자신의 집에는 집을 옮겨 다니며 정착하지 못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로 인해 염려스럽다고 한다.
*서문의 마지막에서 김진규는 "두보의 언어적 묘미를 흉내 내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기막힌 슬픔을 풀어내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화려한 문학적 기교보다 진실한 고통의 기록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가치다.
○<본문(本文)>에서는, 유배지에서 부르는 아홉 노래 〈적소구가(謫所九歌)〉를 읊었다. 유배지(謫所) 9가지 노래(九歌)로는 ‘나그네(客), 무덤(墓), 어머니(母), 숙부님(叔), 형님(兄), 동생(弟), 아내(妻), 아이들(兒), 내 인생(吾生)’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유배 생활의 고통과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아홉 개의 노래로 구성한 연작시다. 각 장(章) 결구(結句)마다 '오호○가혜(嗚呼○歌兮)'라는 후렴구를 사용하여 유배객의 비극적인 심정을 극대화하고 있다. 각 장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수(其一),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과 병든 자신의 처지, 고향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외로운 나그네를 노래했다.
*둘째 수(其二), 조상의 묘소(墓, 선영)를 돌보지 못하는 불효의 죄책감을 드러냈다.
*세째 수(其三), 병드신 어머니(母)와 80세가 넘으신 할머니(王母)를 뒤로하고 떠나올 때의 끊어질 듯한 아픔을 노래했다.
*네째 수(其四), 숙부(叔) 역시 유배를 떠나 서로 다른 섬에 갇힌 기구한 운명을 탄식했다.
*다섯째 수(其五), 스승이자 벗 같았던 형님(兄)과 멀리 떨어지게 된 슬픔을 노래했다.
*여섯째 수(其六), 어린 동생(弟)에게 두 분 어머니의 봉양과 집안일을 모두 맡기게 된 미안함을 전했다.
*일곱째 수(其七), 홀로 고생하며 집안을 꾸려갈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담았다.
*여덟째 수(其八), 아빠를 찾는 어린 딸들과 아들 '아뢰'를 향한 애틋한 부성애를 드러냈다.
*아홉째 수(其九), 행복했던 과거와 달리 재앙이 겹친 현재의 삶을 돌아보며, 하늘에 답답함을 호소하며 마무리했다.
이 시는 당시 유배 문학의 전형적인 특징인 '충군(忠君)'보다는 가족 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적인 슬픔에 더 집중하고 있어, 읽는 이의 감성을 깊게 자극하는 작품이다.
○ 한문 문체 「가(歌)」는 한문학의 갈래에서 운문(韻文)에 속한다. 주로 '노래', '악곡', '가사'를 의미하며, 음악에 맞춰 부를 수 있도록 운율을 갖춘 시가(詩歌) 형태다. 즉, 시(詩), 사(詞), 부(賦) 등과 함께 운문 문체에 포함되며, 형식상 인물의 성덕을 칭송하는 송(頌)의 일종인 게송(偈頌)이나 가송(歌頌) 등의 형태로도 사용되었다. 한문 산문과 대비되는 운문(韻文) 혹은 시가 문학의 일종으로, 주로 감정이나 서사를 노래조로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구가(九歌)」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이 지은 시집으로, 당시 초나라 민간에서 신에게 제사 지낼 때 부르던 노래인 무가(巫歌)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본래 가창과 춤을 동반했던 악곡에서 유래했기에 운율이 뚜렷하며, 구절 사이에 감탄사 '혜(兮)'를 넣어 가락을 조절하는 특징이 있다.
이 글은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 시(詩)편에 실려있다.
●**「반곡구가(盤谷九歌)」** 원본(原本)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서문(序文)> 옛날 두자미(두보)가 진주와 농주 일대를 떠돌 때 ‘동곡칠가(同谷七歌)’를 지어, 신세의 어려움과 형제자매가 흩어진 상황을 서술했는데 그 사연이 몹시 슬프고 괴로워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 나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데다 이제 막 상기(喪期)를 마쳤는데, 형제가 모두 죄를 얻어 바다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형님이 유배된 곳은 물길로 천 리나 되고, 내가 있는 곳은 그보다 조금 가깝긴 하나 장기(瘴氣, 유독한 기운)가 가득한 남쪽 끝입니다. 한 분뿐인 숙부님 또한 이미 먼저 섬으로 유배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병으로 쇠약해지셨고 할머니께서는 몹시 노쇠하신데, 오직 어린 아우만이 곁에서 봉양하며 이사를 거듭하느라 아직 정착할 곳조차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가냘픈 아내와 어린 자식들은 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저 두보의 처지는 그저 난리를 피해 먹을 것을 찾아다닌 것일 뿐, 몸에 죄를 입어 벌을 받은 것도 아니요, 땅에 장기가 적었으며, 곁에는 아내와 자식이라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는 진짜 비참하고 괴로운 상황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찌 나처럼 한 집안 세 사람이 동시에 멀리 유배되고, 골육과 친척들이 모조리 떨어져 생이별하게 된 경우와 같겠습니까?
만약 두보가 이런 상황을 당했다면 그 노래의 슬픔과 괴로움은 분명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병환 중에 문득 그 가락을 본떠 ‘반곡구가’를 지었습니다. 감히 두보의 절묘한 언사를 흉내 내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를 빌려 비통하고 괴로운 마음을 달래고자 함입니다. 반곡(盤谷)은 상군(거제도)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바로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昔杜子美流落秦隴 作同谷七歌 以叙身世之艱難 弟妹之分離 其辭悲苦 有足感人 今余早孤 外除屬耳 而兄弟俱承譴海島 兄所謫水路千里 余稍近而瘴癘㝡南徼 有一叔父先已謫海島 母氏衰病 王母篤老 而只有少弟將奉 移家遷次 未奠攸居 未知弱妻稚子又何如也 彼子美不過避地就食 身無責罰 地少瘴癘 而有妻子相隨 此非眞悲苦 豈若余一家三人同時遠謫 骨肉親眷 擧皆睽違隔絶者哉 使子美當此 其歌之悲苦 想不止此 故於病間 輒衍其曲爲盤谷九歌 非敢擬其言語之竗 盖欲藉以紓悲苦之思也 盤谷 裳郡村名 而卽余所寓云]
*<본문(本文)> 〈적소구가(謫所九歌)〉 유배지에서 부르는 아홉 노래.
①첫 번째(其一)
有客有客謫海島 나그네 있어 바다 섬으로 귀양 오니
疾病侵尋顔色槁 병은 깊어지고 얼굴은 초췌해졌네.
山嵐海瘴擁茅屋 산의 나쁜 기운과 바다 안개가 초가집을 에워싸고
颶風掀簸潮聲擣 태풍은 몰아치고 파도 소리는 땅을 때리네.
故鄕迢遰尺書稀 고향은 아득히 멀어 편지 한 장 귀하니
北望雲天令人老 북쪽 하늘 바라보며 하릴없이 늙어가는구나.
嗚呼一歌兮歌初發 아아, 첫 번째 노래를 시작하니
簷前寒雨助蕭瑟 처마 끝 찬 비가 쓸쓸함을 더하는구나.
②두 번째(其二)
有墓有墓在蘆谷 무덤이 있네, 노곡(蘆谷)에 무덤이 있네.
先人幽宅之所卜 선조들께서 명당이라 잡으신 곳인데,
期將灑掃當晨昏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으려 했건만
豈知流落隔涯角 어찌 알았으랴, 바다 끝으로 유배 올 줄을.
人生不得守丘壠 사람으로 태어나 조상 묘소조차 지키지 못하니,
松栢冥冥長在目 무덤가 소나무와 잣나무만 눈에 선하구나.
嗚呼二歌兮不成聲 아아, 두 번째 노래를 부르려니 목이 메어 소리가 나지 않고,
衰草荒庭白露生 거친 풀 자란 마당에 흰 이슬만 맺히는구나.
③세 번째(其三)
有母有母衰且疾 어머니 계시네, 늙고 병드신 어머니 계시네.
况復王母垂八耋 게다가 할머니께서는 여든을 바라보시네.
臨分左右携兩子 작별할 때 좌우에서 두 아이의 손을 잡으시며,
王母揮涕母哽咽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시고 어머니는 흐느끼셨지.
呑聲忍淚强爲別 소리를 삼키고 눈물을 참으며 억지로 이별할 제,
一步一顧腸斷絶 한 걸음 걷다 돌아보니 창자가 끊어지는 듯했네.
嗚呼三歌兮歌㝡悲 아아, 세 번째 노래가 가장 슬프니,
西日爲我且遅遅 서산의 해도 나를 위해 더디게 가다오.
④네 번째(其四)
有叔有叔若事親 숙부님 계시네, 어버이 섬기듯 모신 숙부님.
先人同氣唯一人 돌아가신 아버지와 한 기운인 오직 한 분인데,
早孤偏覺瞻依切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의지하는 마음 더욱 간절했거늘,
遠別那堪涕淚頻 멀리 이별하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今來同作海外囚 이제는 다 같이 바다 위의 죄수가 되어,
兩島渺渺波無津 두 섬이 멀리 떨어져 건널 나루조차 없구나.
嗚呼四歌兮歌誰倚 아아, 네 번째 노래를 부르며 누구에게 의지할까,
繞屋竹林秋聲起 집을 둘러싼 대숲에 가을 소리만 일어나는구나.
⑤다섯 번째(其五)
有兄有兄愛恭備 형님 계시네, 공경과 우애를 다해주신 형님.
手足之恩師友義 형제의 은혜는 스승이자 친구의 의리와 같았네.
三年丙舍纔同衾 3년 상 치르며 곁에서 잠자리를 함께했는데,
一朝炎海俱禦魅 하루아침에 이 바다로 쫓겨와 귀신과 다투게 되었네.
漢挐雞龍邈難望 한라산과 계룡산은 아득하여 바라보기 어렵고,
瓊雷視此猶尺地 경주와 뇌주 땅도 이곳에 비하면 지척이로다.
嗚呼五歌兮聲轉苦 아아, 다섯 번째 노래는 소리가 더욱 괴로우니,
天畔孤鴻叫其儷 하늘 끝 외로운 기러기가 짝을 찾는 소리로다.
⑥여섯 번째(其六)
有弟有弟能無𧏮 동생이 있네, 동생인들 어찌 근심이 없겠는가.
小未成童大未壯 작은 아이는 아직 어린애요 큰 아이는 채 장성하지 못했는데
一叔二兄皆遠遷 숙부 한 분과 형 둘이 모두 멀리 유배 갔으니,
兩母之奉是誰仗 두 분 어머니 봉양은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上慰慈顔下幹蠱 위로는 어머니 마음 위로하고 아래로는 집안일을 도맡았으니,
我曹詒罹爾獨養 우리 형들이 죄를 지어 너 홀로 고생하는구나.
嗚呼六歌兮間噓唏 아아, 여섯 번째 노래에 간간이 한숨 섞이니,
遙看孤雲慘不飛 멀리 보이는 외로운 구름도 슬픈 듯 날지 못하네.
⑦일곱 번째(其七)
有妻有妻共結髮 아내 있네, 머리 올려 함께 산 아내 있네.
百年深情千里別 백 년의 깊은 정 두고 천 리 밖 이별했네.
絶域寄衣獨辛苦 먼 땅에 옷 지어 보내느라 홀로 고충이 심할 텐데,
何時擧案同飢渴 언제쯤 밥상을 마주하고 굶주림과 목마름을 함께할까.
家難兒癡惸無依 가문의 재앙에 아이들은 어리석고 의지할 곳 없으니,
深愧平生仰望缺 평생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깊이 부끄럽구나.
嗚呼七歌兮歌悽悽 아아, 일곱 번째 노래는 처량하고 슬프니,
羨彼鳥雀皆雙栖 저기 쌍으로 깃드는 새와 쥐들이 부럽구나.
⑧여덟 번째(其八)
有兒有兒男復女 아이들이 있네, 아들과 딸들이 있네.
與汝幾時更相聚 너희와 언제 다시 서로 만날 수 있을까.
兩女稍長知怨別 두 딸은 좀 커서 이별의 원망을 알 테고,
幼女學語能喚父 막내딸은 말 배우며 아빠를 부르겠지.
阿雷眉目最可念 아들 '아뢰'의 눈매가 가장 눈에 밟히나니,
不願如父願繼祖 아비는 닮지 말고 부디 할아버지를 닮거라.
嗚呼八歌兮謌有思 아아, 여덟 번째 노래에는 그리움이 담겼으니,
母思我甚我思兒 어머니는 나를 생각하고 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네.
⑨아홉 번째(其九)
吾生半世知歡不知悲 내 인생 반평생 즐거움만 알았고 슬픔은 몰랐네.
朝舞斑衣夕塤箎 아침에는 색동옷 입고 춤추고 저녁엔 악기를 연주했지.
自從失怙灾禍綿 아버지를 여읜 뒤로 재앙이 이어지니,
何限千憂與百罹 어찌 천 가지 근심과 백 가지 고통에 그치겠는가.
鯨波萬疊夢魂迷 만 겹 파도에 꿈길조차 어지럽고,
半壁寒燈影相隨 벽에 걸린 찬 등불 아래 내 그림자만 따르는구나.
嗚呼九歌兮曲終飜 아아, 아홉 번째 노래로 곡조가 끝나려 하니,
欲問高天天不言 높은 하늘에 묻고 싶어도 하늘은 말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