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는 인간 취급 안한다…12·12 곳곳서 ‘돌진’ 하나회
전두환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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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한남동의 총소리
3회. 전두환의 힘 ‘하나회’
12·12는 전두환의 승리이자 하나회의 승리다. 당시 실질적으로 군을 움직인 건 육사 출신 소수 엘리트 장교들이었다.
그들 중 핵심은 하나회 회원이었다.
군은 공식적인 지휘 라인 대신 하나회라는 사조직과 육사 출신 선후배라는 인간관계로 움직였다.
하나회의 출발 ‘오성회’
하나회의 원조는 육사생도 시절 전두환(뒷줄 오른쪽 두 번째)과 노태우(뒷줄 오른쪽 끝), 김복동(뒷줄 왼쪽 끝)의 친목모임이었다. 육사 11기 5명이 모인 ‘오성회’로 출발, 후배들까지 조직화하면서 군내 실세 ‘하나회’로 성장했다. 중앙포토
전두환의 회고록에 따르면, 하나회의 출발점은 1952년 피란지 진해에 세워진 육군사관학교다.
전두환은 6·25 전쟁통에 ‘4년제 정규교육을 시켜준다’는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하지만 합격 정원 200명에 들어가지 못했다. 예비합격자 28명을 추가로 뽑았는데, 그중에서도 끝에서 두 번째로 턱걸이 합격했다.
전두환은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제대로 다니지 못했었다.
대구 출신 전두환은 입학하자마자 동향인 노태우, 김복동과 몰려다녔다. 국가와 충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고 한다. 셋은 삼국지 주인공(유비·관우·장비)처럼 ‘도원결의’를 했다.
최성택 등이 합류해 다섯 명이 되자 ‘오성회(五星會)’란 이름을 붙였다. 5명이 모두 별(장군)이 되자는 취지에서 ‘별 성(星)’자를 붙인 별명을 만들었다.
전두환은 용성(勇星·용감한 별), 노태우는 관성(冠星· 으뜸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