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名學성명학 --작명
공자(孔子)는 명부정즉언 불순(名不正則言不順)이라
해서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과 질서가 바로 설 수 없음을 경계했죠. 이 말은 동양 철학에서 단순한 기호나 호칭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선천적 구조인 사주와 후천적 삶의 흐름을 잇는 가교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어요. 이름은 불리는 순간마다 반복되며 개인의 삶 속에 스며들고 그렇게 축적된 흐름은 결국 삶의 태도와 방향으로 드러남니다.
해서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과 질서가 바로 설 수 없음을 경계하기도 했죠. 이 말은 동양 철학에서 성명(姓名)이 단순한 기호나 호칭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선천적 구조인 사주와 후천적 삶의 흐름을 잇는 가교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음을 알리고 있어요.
오늘날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손쉽게 수리와 오행으로 배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성명학 역시 데이터의 영역으로 들어왔어요. 그렇지만 정보가 많아질수록 이름에 담긴 해석의 깊이는 오히려 얕아지고, 숫자는 남았지만 맥락은 사라졌고,
결과는 즉각 제시되지만~ 그 결과를 책임지는 해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현대적 관점에서 이름은 사회적 약속이자 하나의 디자인일 수 있고, 통계와 데이터는 주관적 편향을 줄이는 더 분명 유용한 도구가 될수 있겠지만, 성명학의 진정한 학술적 근거는 단순한 수치의 합산에 있지 않고 그 핵심은 언제나 사주의 중화(中和)에 있는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이건 부족한 오행을 기계적으로 채워 넣는 산술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사주 구조가 또 흐름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지를 먼저 읽는 데서 출발하는거라 보고있으니.
예컨대) 삼하(三夏)의 무더위 속에 태어나서? 水氣가 절실히 보이는 사주라 할지라도 토 기운이 약해서 물을 가둘 힘이 없다면? 무분별한 수의 보강은 오히려 근간을 흔드는 독이 될 수 있고, 이때 필요한 건? 물을 직접 주입하는 데이터적 계산이 아니라~ 金의 生助를 살피거나 토의 제방을 먼저 다지는 조율인 것이죠.
작명이란것이? 육신과 육친과 오행의 운기를 먼저살피고, 마지막으로 중화의 개념으로 생극조화형충을 통관으로 중화시키되 오행의 태과불급만으로 살펴 짓는것은 아나라 저는 득하고 있으며. 여기에도 일정한 수순과 법칙이 존재합니다.
1. 첫째! 팔자에 없는 오행은 불러다 쓰지 않는다.(불러와도? 발 붙일 곳이 없으니 공하다 보는것이죠. .오히려 해가 되어서 자리를 차지하니 정작 필요한 오행을 쓰지 못하게 되더라구요)
2.격과 격국은 평생을 지배하는 진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강하지만 정작 팔자를 지배하는 왕한 심리가 무엇인지를 파악~그 심리가 제대로 발하고 있는가? 너무발하고 있는가?를 파악하여 거기에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적용시키구요.
작명시 오행을 선택할때, 사주가 이러구 저러구 하니 이러한 오행을 넣어서 사주를 중화롭게 또는 생조나 부조를 하되 각자 팔자의 심리나 기에 따라서 생각하고 답을 내리는것이 지혜로운 판단이 아닐까? 저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이런 미묘한 판단은 고정된 알고리즘 즉 데이터로 포착되기 어렵고, 누적된 사주데이터 임상과 축적된 학문적 통찰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하고...
명리 버금가게 엄~~청 어려운 분야더라구요. 성명학 역시...저같이 머리나쁜 사람들을 평생 공부하게 만드는 마법의 동양철학입니다.
하여,명명(名命)은 그저 단순한 글자 조합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어떤 철학적 기준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고 그 선택에는 깊은 경외심과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고 봄니다.
학문적 근거를 바탕으로 삶의 맥락을 읽어내고, 그 기운이 이름이라는 그릇에 무리 없이 담기도록 조율하는 과정은 기계적 수치가 결코 담을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니까요...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어느 항구로 가야 할지 모르는 항해사에게는 어떤 바람도 유리하지 않다고 말했어요.
이름 역시 다르지 않다고 봄니다.. 이름은 항해사의 목적지를 설정하는 일이고, 단편적인 데이터는 통계적 평균치를 제시할 뿐 한 개인의 삶이 지닌 고유한 맥락과 잠재력까지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이지요.
드러난 수치에만 매몰되어 이름의 길흉을 논하는 일은 악보의 음표는 읽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선율의 감동은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봄니다.
따라서 작명을 의뢰하는 사람 또한 신중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겠고.,. 사주의 깊은 이치에는 관심이 없고 단편적인 어플의 수치에 따라 감정이 오르내린다면 차라리 한자의 틀을 벗어나 순수한 한글 이름을 선택하는 편이 더 정직하고 현명할 수 있겠어요.
억지로 맞춘 정보에 일희일비하며 운명을 재단하는 일은 전문가가 정성껏 쓴 삶의 처방전을 스스로 찢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고 자신에게도 평생 힘든 일이 될테니까요...
이름은 평생 불리며 개인의 무의식과 관계 속에 축적 되는 에너지의 결정체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이름을 대함에 있어 단편적인 정보에 흔들리기보다 그 안에 담긴 운명으로 무게를 성찰하는 태도가 뭣보다 중요하며 운명을 대하는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좋은 처방전도 소용이 없음을 알아야 함을 늘 배웁니다... 이름은 인생을 대변하는 가장 짧고도 장엄한 선언이기 때문이지요.
...성명학 전문가가 아닌~지극히 아둔하고 미련스러운 명린이의 주관적 성명학 단상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