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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목간 2(61~117점)
나종혁
(61)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B
작자 미상
上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62)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夫餘雙北里九九段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구구팔십일
팔구칠〇〇
칠구육십삼
--------
팔팔육십사
칠팔오십육
육팔사십팔
오팔사십
--------
칠칠사십구
육칠사십이
오〇삼십오
사칠이십팔
--------
육육삼십육
오〇삼십
사육이십〇
--------
오오이십오
사오이십
삼오십오
--------
사사십육
삼사십이
이사팔
------
이삼육
------
이이사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
* 일명 구구단 목간, 백제 가요 목간(「숙세가」), 남근형 목간과 함께 백제 기타 목간의 3대 목간이다.
* 정훈진 판독
* 2011년 6월 백제 수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328-2번지에서 발견된 한반도 최초의 구구단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2011년 6월 백제 수도 부여 쌍북리에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목간 1점을 발굴하였으며, 칼 모양 형태로 9단부터 2단까지 단마다 구분선을 평행으로 그었다. 목간의 크기는 길이 30.1cm, 너비 5.5cm이며, 소나무 판재로 만들어졌고, 먹글씨로 쓰였으며, 9단에서 2단까지 내려서 적었다. 반복 계산을 생략하여 이제까지 발견된 한중일 구구단 목간 가운데 가장 체계적인 구구단 계산법이다. 백제 관영 유적 유물들 사이에서 발굴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夫餘雙北里九九段木簡
作者未詳
九〃八十一
八九七□□
七九六十三
--------
八〃六十四
七八五十六
六八卌八
五八卌
--------
七〃卌九
六七卌二
五□卅五
四七卄八
--------
六〃卅六
五□卅
四六卄□
--------
五〃卄五
四五卄
三五十五
--------
四〃十六
三四十二
二四八
------
二三六
------
二〃四
---- <끝>
* 원문 출전: 이기환 기자, 「백제 구구단 목간의 수수께끼」,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2017-01-20, <http:// leekihwan.khan.kr/758>.
(63) 부여 쌍북리 뒷개 목간-112
작자 미상
(一面)
慧草而開覺
(二面)
□人□□直□
(三面)
(四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기타 판독
* 소장처는 부여군문화유산보존센터이며, 2010년 부여군문화유산보존센터 발굴 조사로 충청남도 부여군 쌍북리 15번지 일원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64) 부여 쌍북리 외량부철 목간
작자 미상
(前面)
外椋卩鐵
(後面)
代線十兩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65) 부여 쌍북리 정사년 목간
작자 미상
(前面)
丁巳年十月□□
(後面)
湌米七石六斗半
岑凍宮□□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66) 부여 쌍북리 여 목간
작자 미상
与□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67) 부여 쌍북리 대불호기 목간
작자 미상
一大不好記上□□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68) 부여 쌍북리 논어 목간
작자 미상
(一面)
□子曰學而時習之不亦悅
(二面)
有朋自遠方來不亦樂
(三面)
人不知 而不慍 不亦
(四面)
子乎 有子曰 其爲人也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논어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9.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총 2점)
(69)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 1
작자 미상
전부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석목리 유적 목간 1
* 한국목간학회 보고서 판독
* 백제 사비 시대 행정 구역 단위 5부(五部)의 하나인 ‘전부’(前部)가 기록된 목간
* 2017년 충남 부여군 석목리 143-16번지 농협 주차장 예정 부지에 대한 조사에서 백제 사비 시대의 목간 총 2점이 출토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石木里百四十三-十六番地遺蹟木簡一
作者 未詳
前部 <끝>
* 원문 출전: 부여 석목리 유적 목간, 구글 Gemini, 2026-08-19 참조
(70)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 2
작자 미상
양호사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석목리 유적 목간 2
* 한국목간학회 보고서 판독
* 백제 사비 시대 식량이나 양곡을 뜻하는 “양”(糧) 자가 포함된 목간
* 2017년 충남 부여군 석목리 143-16번지 농협 주차장 예정 부지에 대한 조사에서 백제 사비 시대의 목간 총 2점이 출토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石木里百四十三-十六番地遺蹟 木簡 二
作者 未詳
糧好邪 <끝>
* 원문 출전: 부여 석목리 유적 목간, 구글 Gemini, 2026-08-19 참조
10. 정읍 고사부리성 목간(총 1점)
(71) 정읍 고사부리성 상부 상항 목간
작자 미상
상부 상항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정읍 고사부리성 상부 상항 목간
* 백제 사비기 지명 목간으로 상부 상항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소재지는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산1-1번지이다. 정읍시와 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공동으로 2021년 1월 고사부리성에 대한 8차 정밀 발굴조사에서 “상부상항” 목간이 발견되었다. 전북 정읍 성황산 고사부리성(사적 494호) 남벽 안쪽 계곡부 저습지에서 백제 사비기 오부(五部) 오항(五巷)의 행정 구역을 뜻하는 백제의 목간이 발굴된 것이다. “상부”(上部)는 백제 시대 사비기 오부의 한 곳이고, “상항”(上巷) 역시 백제 시대 사비기 오항의 한 곳이었다. 정읍 고사부리성은 백제 시대 사비기 오방의 한 곳인 중방성(中方城)으로 백제의 지역 거점이었음이 비정되며, 백제 시대에 처음 축성(築城)되어 통일 신라 시대에 개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성으로 이용되었다. 한편, 고사부리성에서는 이전에 “상부”와 “상항”이 각기 표기된 기와 편(片) 2점이 발굴된 바가 있다(정읍 고사부리성(井邑 古沙夫里城), 국가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 2026-08-20; 김동욱 기자, 정읍 고사부리성서 ‘상부상항’ 목제 유물 첫 발견, 세계일보, 2021-01-12 참조).
* 백제 상부 상항 목간은 부여 궁남지에서 출토된 백제 서부 후항 목간과 함께 백제의 지명 목간을 대표한다.
井邑古沙夫里城 上部 上巷 木簡
作者 未詳
上卩上巷 <끝>
* 원문 출전: 정읍 고사부리성 목간, 구글 Gemini, 2026-08-20; 김동욱 기자, 정읍 고사부리성서 ‘상부상항’ 목제 유물 첫 발견, 세계일보, 2021-01-12 참조
11. 남원 척문리산성 목간(총 6점)
(72) 남원 척문리산성 상항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上巷 地上囚二之其
地辶百麥二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남원 척문리산성 상항 목간
* 나종혁 판독
* 백제 사비기 지명 목간으로 상항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소재지는 전북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번지이다.
* 2025년 3월 전북 남원시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 공동 조사로 남원 척문리산성을 조사한 결과, 산성 집수 시설 내부에서 목간 총 6점이 발굴되었다. 백제 사비기의 “상항”과 “중항”이라는 지명과 “장덕”(將德)이라는 백제 16관등 제7품의 관직명이 묵서로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김동욱 기자, 「남원 척문리산성서 백제 행정 구역·관등명 기록 목간 출토」, 『세계일보』, 2025년 3월 5일자 참조).
(73) 남원 척문리산성 중항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中巷□椋大□中巷尸二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남원 척문리산성 중항 목간
* 나종혁 판독
* 백제 사비기 지명 목간으로 중항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소재지는 전북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번지이다.
* 2025년 3월 전북 남원시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 공동 조사로 남원 척문리산성을 조사한 결과, 산성 집수 시설 내부에서 목간 총 6점이 발굴되었다. 백제 사비기의 “상항”과 “중항”이라는 지명과 “장덕”(將德)이라는 백제 16관등 제7품의 관직명이 묵서로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김동욱 기자, 「남원 척문리산성서 백제 행정 구역·관등명 기록 목간 출토」, 『세계일보』, 2025년 3월 5일자 참조).
(74) 남원 척문리산성 장덕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將德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남원 척문리산성 장덕 목간
* 나종혁 판독
* 백제 사비기 지명 목간으로 장덕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소재지는 전북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번지이다.
* 2025년 3월 전북 남원시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 공동 조사로 남원 척문리산성을 조사한 결과, 산성 집수 시설 내부에서 목간 총 6점이 발굴되었다. 백제 사비기의 “상항”과 “중항”이라는 지명과 “장덕”(將德)이라는 백제 16관등 제7품의 관직명이 묵서로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김동욱 기자, 「남원 척문리산성서 백제 행정 구역·관등명 기록 목간 출토」, 『세계일보』, 2025년 3월 5일자 참조).
1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총 29점)
(75) 부여 능산리 사지 남근형 목간(扶餘陵山里寺址男根形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1면)
대가 의를 받들지 아니하니
길 제사를 서라 서라 서라
(2면)
4 6
(3면)
받들지 아니하니
하늘
(4면)
길 위의 제사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남근형 목간
* 속칭 남근형 목간이라고 불린다(길이 22cm).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다른 판독자에 따라서는 “道□立立立”(길에 서라! 서라! 서라!)라고 판독 및 해석하기도 한다. 박중환 판독은 “(앞면) 奉儀□ 道□立十二□/(뒷면) 无奉 天”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大天 天泰義 道緣立立立/(2면) 緣道□/(3면) 奉无 天/(4면) 泰无”이고, 일본인 근등호일(近藤浩一) 판독은 “(앞면) (男根모양) 无奉義□ 道□立 十二□/(뒷면) (男根모양) 无奉 天”이다. 뒷면의 “天” 자는 거꾸로 쓰여 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 nrich.go.kr/>, 2026-07-17 참조).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陵山里寺址男根形木簡
作者 未詳
(一面)
大无奉儀 □道禓立立立
(二面)
□□□四□□六
(三面)
无奉 天
(四面)
道禓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s://db.history.go.kr/>, 2026-06-04.
(76) 부여 능산리 사지 296
작자 미상
(前面)
三月十二日梨田三之□滕□□滕□□□
(後面)
广淸靑靑靑用□□用今用今□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앞면) 三月十二日梨田□之□□□□/(뒷면) 渼淸麥靑耳□□□□□”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月十二日梨田□ 之□□□□□□□/(뒷면) 广淸麥靑耳 用□□麻□□”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广淸麥靑耳□□□□□/(뒷면) 三月十二日梨田□之□□□□”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7
작자 미상
漢城下部對德疎加鹵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韓城下部對德刀加鹵”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韓城下部對德䟽刀加鹵”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8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前面)
奈率加鹵白劦之息□□淨
(後面)
急朋□□左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은 “(앞면) 奈率 加姐白劦之意□淨/(뒷면) 急明靜□□□師□□”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구멍) 奈率 □□□□ □ □/(뒷면) (구멍) 慧朋 □□□□ □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7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9
작자 미상
(前面)
三貴 土牟 市丁
-------------
至丈· 至夂· 大貴
-------------
今由· · ·
女貴
-------------
欠夂 □文
-------------
□
(後面)
乙乙乙乙乙乙乙乙乙乙
乙乙乙乙乙乙乙乙乙乙
乙乙乙乙乙乙乙乙乙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박중환 판독은 “三貴 至女 今母 兄父/□幸 至父 女貴 □文/□ □ 貴 □ □”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貴 至丈 今毋 兄久/ 文牟 至攵 安貴 □文/□丁 大貴/(뒷면) 乙 乙乙乙 乙/乙 乙 乙/ 乙 乙 乙乙乙 乙/乙 乙 乙/乙乙 乙”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三貴 至女 今母 兄父/□幸 至父 女貴 □文/□□ 大貴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참조
(8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0
작자 미상
三月仲椋山上丑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月□椋內上田/(뒷면)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1) 부여 능산리 사지 육부오방 목간(扶餘陵山里寺址人行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앞면)
글 또한 이에 법을 좇으니 육부 오방에 무릇
(뒷면)
또한 가노라니 기와 굽는 형형색색의 중부의 기구 <끝> <2026년 8월 2일>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육부오방 목간
* 박중환 판독은 “(앞면) 書亦從此法爲之凡六部五方/(뒷면) 人行色也凡作形之中□具”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又行色也凡作形之中了其/(뒷면) 書亦從此法爲之凡六ア五方”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 □ 書亦從此法爲之凡六ア五方 □ □/(뒷면) □ □ 人行色也凡作形之中□具 □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陵山里寺址六部五方木簡
作者 未詳
(前面)
書亦從此法爲之凡六阝五方
(後面)
又行之也瓦作形形中阝具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31.
(8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2
작자 미상
大家貳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윤선태, 근등호일 판독은 “大大家貳”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3
작자 미상
竹山六
□□六日□□□ □□四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고, 박중환 판독은 “竹山六/二十六日□□□ 服庫四”이며, 윤선태 판독은 “竹山六/月卄六日上來□ 眼岸四”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 □ 廿六日□□□ 服庫四 □ □/竹山六”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4
작자 미상
(前面)
智眞
四月七日 寶憙寺
智直
(後面)
□送塩二石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과 박중환 판독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智眞/ 四月七日 寶憙寺/乘/(뒷면) □送塩二石”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智眞/四月七日 寶憙寺/慧 □ □/(뒷면) □ □ □送塩二石”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5) 부여 능산리 사지 숙세가 목간(扶餘陵山里寺址宿世歌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전생에서 맺은 업
한 곳에 같이 태어나
시비 서로 따지며
높이 절하고 날 새어 오라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숙세가」 목간
* 서기 6세기 부여의 이두 표기 사언 고시 백제 최고(最古)의 시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宿世歌)
* 삼국 시대 당대인 기록(목간) 현존 유일의 시가
* 국립부여박물관, 박중환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앞면) 慧暉 前/(뒷면) 宿世結業同生一處是/非 相 問 上拜白來”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우행 宿世結業同生一處是/좌행 非相問上拜白 事/(뒷면) 慧量□前”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숙세가」 원문 판독본은 다음과 같다:
宿世歌
<앞면>
宿世結業同生一處是
非相問上拜白事
<뒷면>
慧量□前 <끝>
宿世歌
作者 未詳
(前面)
宿世結業
同生一處
是非相問
上拜白來
(後面)
慧量師前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목간』(2003년 7월 『부여 능산리 목간』 「숙세가」 관련 언론 보도 참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8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6
작자 미상
(一面)
斗之末米□□
(二面)
□当也
(三面)
(四面)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7
작자 미상
(前面)
德干尔
(後面)
无資丁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앞면) □ □ 德干□ □ □/(뒷면) □ □ 爲資丁 □ □”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德干尔/(뒷면) □为資丁”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 □ 德干 □ □/(뒷면)/(우행) □ □ 爲資丁 □ □/(좌행)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8
작자 미상
(前面)
□二百十五□
(後面)
疑□□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8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9
작자 미상
(前面)
□七定□死□
(後面)
□再拜□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0
작자 미상
(前面)
□立卄方斑綿衣□
(後面)
己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1
작자 미상
百者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2
작자 미상
(前面)
此
(後面)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3
작자 미상
(前面)
子基寺
(後面)
代和寫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부찰 목간이라고 불린다.
* 국립부여박물관, 박중환, 윤선태, 근등호일 판독,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2000~2001년 국립부여박물관 주관 부여 능산리 사지 7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능산리사지 목간 총 29점 가운데 314번, 능8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4
작자 미상
(前面)
□飮
(後面)
□日□□□固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2000년 국립부여박물관 주관 부여 능산리 사지 6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능산리사지 목간 총 29점 가운데 314번, 능8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95)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1
작자 미상
(前面)
二裏段行
(後面)
擧拱知矣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2000년 국립부여박물관 주관 부여 능산리 사지 6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15-1 일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6)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扶餘陵山里寺址四面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1면)
지락아의 식사 일기 첫날 4두 작은 되로 밥을 먹다 1주 3일 4두 밥을 먹다
(2면)
5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1주 6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2주 7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2주 8일 4두 밥을 먹다
(3면)
밥을 먹고 길을 조금 걷다 사관을 만남이니 조금 걷는 사관 도치의 몸이 검었다 길 위의 관리는 뒤로 활의 탄환을 칼의 방향으로 모모 씨의 창 창검을 겨누고
(4면)
석 22석 또 10 또 석 또 12석 또 12석 또 10 목구멍 석 12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 윤선태 판독이며, 근등호일 판본은 “(앞면) 五日食米三斗大升壬日食三斗大二七日食三斗大升二□□□ □ □/(뒷면) □道使□次如逢火吏 猪耳其身者如黑也道使浚□彈耶方□□□□ □ □”이다.
* 원문의 4면은 거꾸로 쓰여 있다.
* 2002년 부여 능산리사지 8차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陵山里寺址四面木簡
作者 未詳
(一面)
支藥兒食米記初日食米四斗小升一二日食米四
(二面)
五日食米三斗大升一六日食三斗大二七日食三斗大升二八日食米四斗
(三面)
食道使□□次如逢使猪耳其身者如黑世道使後後彈耶方 牟 牟氏 祋祋耶
(四面)
又十二石又十二石又十二石又十二石又十二石□十二石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31.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3면 이두문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하급 관리 도치의 몸이 검었다. <끝> <2026년 7월 13일>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왼쪽 옆면 이두문
* 이두문 목간이라고도 불린다.
* 536년경 신라 이두문보다 31년 뒤인 567년 백제 이두문으로서, 백제 최초의 이두문이다. 신라 최초의 이두문인 「영천청제비 병진명」이 최초 연대를 536년경으로 추정하므로, 사면 목간은 그보다 31년 이후의 연대로 추정된다.
* 소재지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이며,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라고 불린다.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 창왕명 석조 사리감, 백제 능산리 사지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백제 능산리 사지 고분군 목간에서는 현전 최고의 향가계 백제 시가 「숙세가」가 발견되기도 했다.
* 능산리 사지는 567년 조성된 백제 왕실 사찰의 터이다. 이 사찰은 백제 창왕이 부왕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고, 660년 백제 멸망과 함께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능사(陵寺)라고도 불리며, 2001년 9월 2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본 고분군은 1992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조사를 시작해서 1995년 4차 발굴 조사를 했고, 2002년 조사에서 목간 30여 점이 발견되어, 백제 유적 가운데 가장 많은 목간 발굴지로 기록되었다. 여기서 발굴된 목간에는 숙세명 목간, 보희사명 목간, 꼬리표 목간, 삼귀명 목간, 이전명 목간, 육부오방명 목간, 지약아식미기명 목간, 남근형 목간, 기타 목간 및 목간 껍질 등이 있다.
* 2009년 9월 28일자 『동아일보』 보도에서 서울시립대 국문학과 김영욱 교수가 한국목간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고대 한국 목간에 보이는 석독표기(釋讀表記)」에서 2002년 충남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 목간의 이두문에 대해 보고했다. 목간 원문 “猪耳”가 돼지라는 뜻이며, 이를 석독(釋讀)하면 돼지를 뜻하는 옛말 ‘돝’+‘이’가 되고, 이는 곧 ‘도치’로 해석된다. 고슴도치의 옛말이 ‘고솜돝’이거나 ‘고슴돛’이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김영욱 교수는 우리나라 이두문이 8세기 신라에서 6세기 백제로 소급되며, 이두문의 기원이 신라에서 백제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유성운 기자, 「향찰, 6세기 백제인들도 사용」, 『동아일보』, 2009년 9월 28일자).
扶餘陵山里寺址斜面木簡三面吏讀文
作者 未詳
小吏猪耳其身者如黑也 <끝>
* 유성운 기자, 「향찰, 6세기 백제인들도 사용」, 『동아일보』, 2009년 9월 28일 자 참조
(9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3
작자 미상
(一面)
牟己兒前子
(二面)
□□□□□□□□□□
(三面)
□□□□□□□□□
(四面)
□□□□□今□□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2000~2001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부여 능산리사지 7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4
작자 미상
(一面)
前憙拜而受之伏願常上此時□ □
(二面)
□□浩□□□□言□□□□
(三面)
經德此辛値員因故□灼除八永仰者斷四地
(四面)
道和□□□□□死□□禾禾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2000~2001년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능산리사지 7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9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5
작자 미상
(一面)
永春□□
(二面)
一□江
(三面)
□□□
(四面)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10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6
작자 미상
(一面)
馳聖辛露隋憲壤醞强治
(二面)
□□□是□□□
(三面)
阿節□□□□□□□□□□□
(四面)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2000~2001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부여 능산리 사지 7차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제2, 제3 목책열 사이 북쪽 초기 배수로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10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7
작자 미상
(一面)
□覺
(二面)
□□
(三面)
苦
(四面)>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주술 목간이라고 불린다.
* 윤선태 판독이며,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은 “1면 /2면 □大□□/3면 旨 □□/4면 ”이다.
* 2007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일대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앞서서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능산리 사지 목간 총 29점 가운데 314번, 능8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102) 부여 능산리 사지 연습 목간 능9
작자 미상
(前面)
道 道
見 公 德
(後面)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13. 나주 복암리 목간(총 60여 점)
―총 60여 점 가운데 판독 가능 총 30여 점
작자 미상
(103) 나주 복암리 목간 1
작자 미상
(前面)
庚午年三月中監數肆人
出背者得捉得安城
(後面)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三月中監數肆人/□出背者得捉得□奴”이다.
* 총 31점의 나주 복암리 목간은 부여 이외의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 최초의 지방 목간이며, 발견된 목간들 가운데 길이 60.8cm의 우리나라 최장(最長) 문서 목간이 발견되었다. 문서 목간 외에 꼬리표 목간, 봉함 목간, 다면 목간, 습자 목간 등 다양한 목간이 발견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4) 나주 복암리 목간 2
작자 미상
(前面)
軍 次月光將除云丁 從口四二 小口四
□□羅□□光定文丁妹中口一 小口四 妹非善 □□羅 光定文丁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2010년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875-6번지 일원 1호 수혈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 윤선태 판독은 “□兄將除公丁 婦中口二 小口四/定/□兄定文丁 妹中口一/前口 手決”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兄將□立□□如□ □四二中□四 □二/定/□定文丁□□一女 □□□二巴四入”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5) 나주 복암리 모라 목간(羅州伏岩里官等名毛羅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전면)
모 년 칠월 십칠 일부터 팔월 이십삼까지 모라
모 군 일곱 고려인 오다
(후면)
호지 전항 나솔 오호치
밤사이 들인 무리 비두 한솔 마진
득 모 모 차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작자 미상 나주 복암리 관등명 모라 목간
* 나주 모라 목간으로 알려져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앞면) □年自七月十七日至八月卄三□/□ 毛羅/半那水校勘 高滴人□□□/(뒷면) 尤戶智次 前巷奈率烏胡留/夜之閒徒 劍釰非須扞率麻進/□得□戶匊次 又徒□□”이다. 다른 판독으로는 “(前面) □年自七月十七日至八月卄三日/ □毛羅/半那比高墻人等若□□/(後面) 尤戶智次 前巷奈率烏胡留/夜之間徒 釰非頭扞率麻進/□將法戶匊次 又德率□”이 있다.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후면에 나솔, 한솔 등 백제 시대 관등명이 등장하며, 우측 하단이 일부 깨진 완형에 가까운 형태로서 현재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2008년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나주 복암리 고분군 사적 제404호에서 직경 5.6m, 깊이 4.8m의 대형 원형 수혈유구에서 목간 31점이 일괄 출토되었고, 이 가운데는 길이 60.8cm의 국내 최대 목간도 포함되어 있다. 백제 수도 부여 이외의 백제 지역에서 대량의 목간이 출토된 것은 나주가 처음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羅州伏岩里官等名毛羅木簡
作者 未詳
(前面)
庚午年自七月十七日至八月卄三日
毛羅
半郡比高禲人等名定道
(後面)
尤戶智次 前巷奈率烏胡甾
夜之閒徒 釰非頭扞率麻進
將法戶匊次 又德率□ <끝>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백제 목간」, 2020-10-01, <http://yokeru.egloos.
com/2275596>;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106) 나주 복암리 목간 4
작자 미상
(前面)
郡佐賢□
(後面)
受米之及八月八日高嵯支□記遺□之好二□□又及告日□□
䝴之□□ 一 □□□ □八月六日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은 “”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7) 나주 복암리 목간 5
작자 미상
(前面)
丁一 中四
大祀村主弥首山作中四
傭丁一 牛一
(後面)
涇水田二形得七十二石 右月三十日者
畠一形得六十二石
得耕麥田一形半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8) 나주 복암리 목간 6
작자 미상
(前面)
大村首山
丁一□呂一倡丁一
中一牛一
(後面)
涇水田二形得七十二石 在月三十日有
白田一形得六十二石
□得耕麥田一形半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前面> 上/<後面> 十一□”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09) 나주 복암리 목간 7
작자 미상
(前面)
竹悅
竹遠 竹□
竹麻
□□道
(後面)
幷五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10) 나주 복암리 목간 8
작자 미상
上去三石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11) 나주 복암리 목간 9
작자 미상
麻中練六四斤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12) 나주 복암리 목간 10
작자 미상
(前面)
郡得分
(後面)
□子本州久川米付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13) 나주 복암리 목간 11
작자 미상
(前面)
庚午年四月□
(後面)
□□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2010년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875-6번지 일원 1호 수혈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14) 나주 복암리 목간 12
작자 미상
(前面)
軍那德率至安
(後面)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부찰 목간으로 알려져 있다.
* 2010년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발굴 조사로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875-6번지 일원 1호 수혈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15) 나주 복암리 목간 13
작자 미상
(前面)
德德德德德
衣 衣衣衣
道道道道道
(後面)
道 衣率
道道 率率率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나주 복암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판독은 “1면 □ /道道 平平/□□行/2면 鳥二德德□德/衣 衣衣衣/道道道道□”이다.
* 총 41점의 나주 복암리 목간은 부여 이외의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 최초의 지방 목간이며, 발견된 목간들 가운데 길이 60.8cm의 우리나라 최장(最長) 문서 목간이 발견되었다. 문서 목간 외에 꼬리표 목간, 봉함 목간, 다면 목간, 습자 목간 등 다양한 목간이 발견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14. 익산 미륵사지 목간(총 2점)
(116)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318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광유 5월 2일
사듭 닐곱 역사 이듭 좌 하읍
읍 이여읍 이
읍 여듭 <끝> <2026년 7월 14일>
* 716년경 백제 시대 이후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
* 우리말 수사를 이두문으로 표기
* 수사 목간이라고도 불린다.
* 백제 시대 미륵사지 서쪽 연못지 출토 목간 2점으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연못지 동남쪽 호안 뻘층에서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 □ □/(2면) 新台𢀳□□𢀳善/𢀳𢀳/□伽□𢀳/(3면) 𢀳□ □ □/(4면) □ 𢀳毛 長”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光山五月二日人/(2면) 新台𢀳□□𢀳一雨/ 矣毛𢀳 /□□□𢀳/(3면) 𢀳□□𢀳/(4면) □𢀳今毛𢀳□”이고, 전경목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人 □ □/(2면) □ □ 新台𢀳□□𢀳一雨三十/矣毛己/□ □ □伽□𢀳/(3면) 艮 □□/(4면) □艮今包己長”이다.
* 발굴된 목간에 기록된 총 39개 문자 가운데 백제어 이두문 수사가 포함되었고, 백제어의 수사는 이두문으로 표기했으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하읍(伽第邑, 하나), 이듭(矣毛邑, 둘), 사듭(新台邑, 셋), 다습(刀士邑, 다섯), 닐곱(日古邑, 일곱), 여듭(今毛邑) 총 6개 수사(1, 2, 3, 5, 7, 8).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2가 900 국립전주박물관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재한다.
* 익산 미륵사지는 사적 150호이다.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백제 최대 사찰의 절터이다. 601년 백제 무왕 2년 사찰이 창건되었다고 한다. 922년 후백제 시대에 혜거국사비문(惠居國師碑文)에 미륵사의 개탑(改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17세기 조선 중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에 대한 발굴은 1970년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1980년~1994년 사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어, 다양한 유적, 유물과 함께 목간 2점이 발굴되었다. 목간은 사지 궁남지 서쪽 연못 안에서 사면 목간과 묵흔 목간으로 발견되었다(미륵사지 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4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318
作者 未詳
□光幽五月二日□
□新台𢀳日古𢀳刀士 矣毛𢀳 坐伽第𢀳
𢀳以如𢀳二□
口𢀳今毛𢀳□□□ <끝>
* 원문 출전: 박상현 기자, 「미륵사지 목간서 수사(數詞) 확인… 백제어와 신라어는 유사」, 『연합뉴스』, 2017년 10월 12일자 참조; 익산 미륵사지,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18.
(117)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319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량부 <끝> <2026년 7월 14일>
* 716년경 백제 시대 이후 익산 미륵사지 목간
* 우리말 수사를 이두문으로 표기한 수사 목간 총 2점의 두 번째 목간으로 추정한다.
* 백제 시대 미륵사지 서쪽 연못지 출토 목간 2점으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연못지 동남쪽 호안 뻘층에서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 □ □/(2면) 新台𢀳□□𢀳善/𢀳𢀳/□伽□𢀳/(3면) 𢀳□ □ □/(4면) □ 𢀳毛 長”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光山五月二日人/(2면) 新台𢀳□□𢀳一雨/ 矣毛𢀳 /□□□𢀳/(3면) 𢀳□□𢀳/(4면) □𢀳今毛𢀳□”이고, 전경목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人 □ □/(2면) □ □ 新台𢀳□□𢀳一雨三十/矣毛己/□ □ □伽□𢀳/(3면) 艮 □□/(4면) □艮今包己長”이다.
* 발굴된 목간에 기록된 총 39개 문자 가운데 백제어 이두문 수사가 포함되었고, 백제어의 수사는 이두문으로 표기했으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하읍(伽第邑, 하나), 이듭(矣毛邑, 둘), 사듭(新台邑, 셋), 다습(刀士邑, 다섯), 닐곱(日古邑, 일곱), 여듭(今毛邑) 총 6개 수사(1, 2, 3, 5, 7, 8).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2가 900 국립전주박물관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재한다.
* 익산 미륵사지는 사적 150호이다.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백제 최대 사찰의 절터이다. 601년 백제 무왕 2년 사찰이 창건되었다고 한다. 922년 후백제 시대에 혜거국사비문(惠居國師碑文)에 미륵사의 개탑(改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17세기 조선 중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에 대한 발굴은 1970년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1980년~1994년 사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어, 다양한 유적, 유물과 함께 목간 2점이 발굴되었다. 목간은 사지 궁남지 서쪽 연못 안에서 사면 목간과 묵흔 목간으로 발견되었다(미륵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4 참조).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319
作者 未詳
椋不 <끝>
* 원문 출전: 익산미륵사지-319,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02; 익산 미륵사지,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18.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