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문해력” 높이기 (44) 사심판, 천국, 연옥, 지옥
장례미사 때 우리는 감사송에서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라 노래합니다. 부활의 희망을 분명히 갖고 살아가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여전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이 두려움보다 희망으로 가득한 매일이 되기 위해서라도 사심판과 그 결과인 천국와 연옥과 지옥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심판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세상 끝날에 이루어질 사건으로 주로 이야기하지만, 각자가 죽은 뒤 곧바로 자신의 행실과 믿음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각 사람은 죽자마자 사심판으로 각자의 영혼 안에서 영원한 갚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각 사람의 영혼은 정화를 거치거나(연옥), 곧바로 하늘의 행복으로 들어가거나(천국), 곧바로 영원한 벌을 받습니다(지옥).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의 삶이 저물었을 때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표현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21~1022항).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과(곧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연옥의 과정을 마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들은 성삼위와 동정 마리아와 천사들과 모든 복되신 분들과 함께 친교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이들을 구원하여 당신 나라로 불러 모으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계속 기쁘게 수행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24, 1029항).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 죽었지만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나 하늘의 기쁨에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선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0항). 교회는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연옥이라 부릅니다. 우리말에서 연옥은 지옥과 동일하게 감옥을 뜻하는 ‘옥’자를 사용하고 정화하는 불로 설명되기에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서의 고통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구원이 보장된 연옥과 그 어떤 가능성과 희망 없이 영원한 벌을 받는 지옥은 그 어떤 공통점도 없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1항). 오히려 연옥은 영원한 구원의 관점에서 천국의 예비 단계로 보아야 하며 이런 점에서 연옥보다는 연국 또는 연당 같은 표현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거룩함을 얻기 위한 정화의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을지는 모르나 영원한 구원이 보장된 과정이기에 분명히 참고 견딜 수 있는 희망 속 기다림의 시간일 것입니다. 다만 교회는 오래전부터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좋은 관습을 갖고 있었고, 우리의 기도가 특히 연옥 영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에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특히 미사 성제를 비롯하여 자선과 대사, 보속을 권고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2항).
지옥은 하느님과 또 복된 이들과 이루는 친교를 결정적으로 ‘스스로 거부한’ 상태를 일컫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3항). 믿고 회개하기를 끝까지 거부함으로써 떨어지게 되는 영원한 벌의 상태가 바로 지옥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4항). 지옥의 주된 고통은,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것이며 ‘영원히’ 이어지는 상태이므로 그 어떤 변화의 희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5항).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도 지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며 성경이 전하는 지옥에 대한 가르침들은 악인들을 단죄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기보다는 그 누구도 영원한 벌에 떨어지지 않도록 회개하라는 절절한 호소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6항).
이러한 회개에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 하느님께 반항하여 죽을죄(대죄)를 짓고 끝까지 그것을 고집하는 이들은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7항). 우리 모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죄를 늘 성찰하며 고해성사를 통하여 죽을죄를 용서받아 영원한 구원이 보장된 은총 상태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417~424쪽, 1020~1037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