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주최 문화관광해설사 제주도 워크숍이 6/25~27일정으로 진행되며 저도 동료들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인천시내 도심, 강화, 웅진 지역해설사 및 담당공무원 약100명이 참가하는 큰 단체가 되었습니다.
장마시절 이였지만 마지막 날만 비가 좀 왔지, 맑은 날씨 덕에 좋은 휴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동료들 전체가 가니까 평소 교류가 없었던 분들과도 대화할 수 있어서 추억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주의 나라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1993년 제주도였습니다. 당시 문선명 참아버님께서 제주도 수련원에 일본여성식구를 모이게 하셔서 특별수련회를 거행하셨습니다. 그래서 25년만에 제주도를 방문하게 되었으니 감개가 깊었습니다. 당시는 처음 문선명, 한학자 참부모님을 뵐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고, 드디어 주의 나라 한국에 갈 수 있다는 만족감으로 시종(始終)했으니 제주도의 역사나 특징 등 생각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여행사 가이드가 안내를 해줬고 관광지에서 숲 해설사에게 자연에 대한 설명도 받을 수 있어서 유의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첫날은 애월해안가를 답방 했습니다. 그리고 서커스 공연을 구경했습니다. 중국인 팀이 공연을 했지만 초등학생 같은 연령의 아이들까지 연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연 끝난 후에 연기자가 손을 흔들어 배웅해줬는데, 보니까 어린 연기자의 얼굴이 우울해지고 있었습니다. 동료가 설명하기에 “중국인들이 고아들에게 연기를 시킨 것 같아”고 하네요. 정말 본인이 서커스가 좋아서 연기한다면 괜찮겠지만, 평일에 원래 학교에 가는 시간에 외국에서 연기를 하고 있으니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제주도는 한라산이 분화(噴火)해서 생긴 섬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벼농사가 못하며 다른 곡물을 주식으로 해왔다고 하네요. 지금도 쌀을 본토에서 가지고 오는 것이니, 저는 식당에 갈 때 마다 밥은 남기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한라산 주변에 오름이라고 하는 측화산(側火山)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거문오름(拒文岳)을 등산했습니다. 마지막 날이어서 비를 맞고 등산했습니다만, 정상에 가서 그 신비스러운 풍경을 보니까 감동을 받았습니다. 등산길 고생도 깔끔하게 씻어준 것 같았습니다.
그 외에 비자림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에 숲 해설사가 우리 일행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숲 해설사님은 많은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했지만, 저는 메모를 안 해서 아쉽게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주도 같은 화산이 폭발해서 생긴 땅에 흑이 많지도 않다. 그래서 식물에게 너무나 가열한 환경이다. 그래서 나무들은 암(岩 )을 껴안고 뿌리를 내린다. 처음은 자기가 먼저 살려고 옆 나무에게 공격하고 상처를 주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대풍 등 오니까 결국은 옆 나무끼리 얽히면서 공생(共生)한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내용을 들으면서 마치 한일가정인 우리가정 같아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문화적 차이나 역사문제로 어느 때 서로 상처를 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협조를 하면서 환경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3일동안 족욕(足浴)마사지도 받고 문화공연도 관람하며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날에 우리 동료가 삼별초에 대해 가이드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삼별초는 고려시대 최씨 무인정권 때 만든 최씨의 사병들입니다. 13세기 몽골의 공격을 받은 고려는 개경에서 강화에 천도(遷都)했습니다. 그러나 최우(崔瑀)가 사망한 후 후계자 문제로 무신들이 흩어지며, 원종(元宗)은 몽골과 협의하며 무신들에게서 정권을 탈환했습니다. 갈 때가 없어진 삼별초 병사들은 진도, 제주도로 거점을 옮기면서 싸우다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동료는 동지(同志)의식으로 더욱 친하고 싶어서 일부로 “삼별초”를 내세운 것 같아요. 강화와 제주를 삼별초가 연결해 준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가이드님의 입에서는 뜻밖에 답이 나왔습니다. “제주도 출신자 입장으로 말 한다면 삼별초는 재난 뿐이고 잊어버리고 싶은 사건이다. 평온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고려 패잔병(敗殘兵)들이 와가지고 축성하고 포진했다. 그 후에 여몽연합군(麗蒙連合軍)이 진압하러 왔다. 덕분에 무관한 제주도 주민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라고 가이드는 말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서 놀랐지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역시 그 지역을 찾아가지 않고 역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을 상대반의 입장으로 보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재확인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제주여행의 큰 선물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천시 세금으로 이 귀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공금으로 큰 선물을 받은 만큼 금후 해설활동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추기(追記)
여행 때 청평수련원 셔츠를 입고 갔습니다. 마음 속에서 참부모님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회식 때 마다 술자리가 되었지만 완고하게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나는 원래 술을 안마시고 종교적으로도 우리교회는 금주주의다”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회식 때마다 눈에 띈 존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