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시편 9편 후반부입니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Sing praises to the LORD, enthroned in Zion; proclaim among the nations what he has done.
For he who avenges blood remembers; he does not ignore the cry of the afflicted.
O LORD, see how my enemies persecute me! Have mercy and lift me up from the gates of death,
that I may declare your praises in the gates of the Daughter of Zion and there rejoice in your salvation.
The nations have fallen into the pit they have dug; their feet are caught in the net they have hidden.
The LORD is known by his justice; the wicked are ensnared by the work of their hands. Higgaion. Selah
The wicked return to the grave, all the nations that forget God.
But the needy will not always be forgotten, nor the hope of the afflicted ever perish.
Arise, O LORD, let not man triumph; let the nations be judged in your presence.
Strike them with terror, O LORD; let the nations know they are but men. Selah
시편 전반부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시요, 환난 때의 요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세상에서 압제와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요새이신 여호와께 피합니다.
여호와를 자신의 요새와 피난처로 삼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인하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힘인 말과 병거와 사람의 숫자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일을 알기에 주를 이름을 의지합니다.
이들을 주께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말씀이 이러함에도 다른 것을 의지하면 어떻게 됩니까?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애굽이 갈대 지팡이라서, 그것을 의지하려고 잡으니 부러져서
이스라엘의 어깨가 찢어졌고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다가’
나라는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주의 이름을 알았다’면 애굽을 의지하지 않았을 것인데 ‘주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을 몰랐다는 것은 이방나라와 같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전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모른 지를 보여줍니다.
이방 나라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 이름과 자기 행위를 믿습니다.
우리가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주의 이름과 그 행하신 일을 믿지 않고
자기 이름을 위한 자기 행위만 믿고 산다면 이방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시려고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성도는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는 일들을 한다면
이 역사 속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낭패와 실망을 당한 후에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도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며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며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었습니다.
이런 이방인의 특징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지만
그들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에 주의 이름으로 오신 분을 배척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의 이름을 아는 사람입니까?
주의 이름을 모르는 이방인입니까?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네피림을 원합니다.
세상의 영웅호걸을 원합니다.
이들이 하는 일이 바벨탑을 쌓는 일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9~20절을 보면
‘사람이며 인생인 주제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이방의 나라들이며 이방인들입니다.
우리도 다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구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이 인생뿐 인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힘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한 인생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는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성도의 별명이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벧전 1: 1-2)
이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성도들의 등장은 삼위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하심으로 창조되어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구별하여 믿게 하십니다.
무엇을 믿게 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하시려고 택하셨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게 된 자들이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삼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성부성자와 성령 찬송과 영광 돌려보내세
태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무궁토록 성삼위께 영광 영광 아멘’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주님을 아는 자로서
세상의 헛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 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 같이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