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간도의 독립운동의 두 갈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②추수투쟁과 춘황투쟁
중공동만특위는 28일에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대중을 동원하여 시위행진을 하며 일본의 만주점령을 반대하는 것과 목전의 추수투쟁과 결합해서 할 수 있는” 항일투쟁 단체를 만들고 다양한 모양의 반봉건투쟁과 항일운동을 전개할 것을 여러 민족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호소하였다.
동만의 조선인 농부들은 중국공산당의 지도아래 반봉건투쟁과 항일집회와 시위행진을 실시하였다. 연길과 화룡 등 현들에서는 농민협회, 반제동맹 대표대회를 소집하고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을 결의하였으며 “반제전선” 등 간행물들을 간행하여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야욕을 폭로하며 일치단결하여 싸울 것을 만주 내의 여러 민족에게 호소하였다. 이렇게 조선 농부들이 중공동만특위와 각 현위의 지도아래 감조감식투쟁을 벌인 것을 추수투쟁, 춘황투쟁이라고 부른다.
1931년 봄, 9.18사변이 일어나기 전 동북군벌정부는 3:7, 4:6제로 소작료인하 법령을 반포하였다. 이 때 지주들과 일제의 군벌은 결탁하여 3:7과 4:6의 소작료 인하를 외치는 조선 농부들을 진압하려고 하였다. 이에 중공동만특위는 농민들을 선동하여 “일본제국주의 타도하자”, “반동지주 타도하자”는 구호아래 반봉건 타도 추수투쟁을 시작하였다.
동년 9월에 연길현 로두구 부근의 관도구, 대기동 등지의 800여명 농민들이 중국공산당의 호소에 따라 추수투쟁을 시작하였다.
로두구에서 시작된 추수투쟁은 연변지구를 휩쓸었다. 연길현의 팔도구, 소영자, 화룡현의 개산툰, 왕청현의 배초구, 소왕청, 훈춘현의 경신, 밀강 등지에서도 추수투쟁이 고조를 일으켰다.
특별히 연길현 팔도구, 소영자와 화룡현의 개산툰, 훈춘의 밀강 일대의 투쟁이 거셌다. 4개월 남짓 계속된 추수투쟁에 조선인 농부 1만 5천여 명이 참여하였다. 연길현에서 약 8천여 명, 화룡현에서 약 4천여 명, 왕청과 훈춘에서 각각 약 1천5백여 명이 참여하였다. 투쟁으로 인하여 소작료가 인하되었으며 조선인들 속에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항일투쟁의 방법이 다양해졌다.
1932년 봄 동만의 조선인 농민들은 중국공산당의 인솔 아래 만주족 농민들과 함께 춘황투쟁을 일으켰다. 당시 일제의 침략과 대지주들의 가혹한 착취로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추위와 기아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중공동만특위는 농민들을 조직하여 잡세와 빚의 상납을 거부하고 식량을 빌려 보릿고개를 넘기며 침략자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취지의 춘황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2월초에 연길현 의란구의 수백 명의 조선인 농민들이 “차량(借糧)”투쟁14)과 “식량탈취”투쟁을 벌였다. 의란구 부근의 남양동, 신광, 춘흥, 귀암동 등지의 수백 명의 농민들이 시가행진을 하면서 차량과 식량탈취 구호를 외치며 구룡평을 향하여 행진하였고 의란구 북부지역의 왕우구, 청학동, 봉서동, 원수동, 유채 등지의 400여 명의 농민들은 유채촌에 집결하여 지주의 식량창고를 열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리하여 의란구 남북 두 지방의 농민 시위대 1,200여 명은 구룡평에 모여 일본경찰서를 포위하고 친일 지주들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였다. 일본은 연길의 50여 명의 일본군 수비대를 출동시켜 농민들을 향해 저격하였고 농민들은 결사적으로 저항하였다.
의란구의 춘황투쟁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연길현의 세린하, 옹성라자, 조양천, 팔도구, 로두구, 마반산, 화련리, 훈춘현의 중강자, 연통라자, 왕청현의 영청동, 대감자, 전각루, 용번구와 하룡현의 삼도구, 평강, 개산툰, 팔도하자, 및 안도현의 여러 지방의 수많은 농민들이 춘황투쟁에 참여하여 식량을 빌리고, 탈취하며, 친일 지주들과 앞잡이들을 청산하고 축출하며 일본군경의 학살 행위에 저항하였다.
둥만에서 약 2만 명이 춘황투쟁에 참가하였는데 그중 연길현에서 약 1만 명, 화룡현에서 5천 명, 훈춘현에서 3천 명, 왕청현에서 2천 명이 참가하였다. 춘황투쟁은 3개월 정도 지속되었으며 선명한 항일투쟁의 기치를 들고 친일파들을 축출하며 항일운동을 드세게 일으켰다.
두 투쟁을 통하여 일제와 만주 괴뢰정권은 동만의 농촌지역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어 연길현의 해란구, 의란구, 팔도구, 화룡현의 달라자구, 평강구와 삼도구구, 왕청현의 하마탕구, 대왕청, 요영구, 가야하, 훈춘현의 대활구, 연통라자 등의 농촌은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받는 조선인 농부들에 의하여 통제되었다.
③항일 유격대 설립과 활동
1931년 10월 12일, 중공중앙은 “만주사변사업에 관한 지시서한”을 내려 유격투쟁을 전개할 것을 동북 각급 당 조직들에게 요구하였다.
1931년 11월 16일, 중공만주성위는 당 중앙의 지시에 따라 유격대창건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각지에 순시원을 파견하였으며 양림을 성위 군위서기로 임명하여 유격대 창건사업을 지도하게 만들었다.
1931년 12월 16일, 중공동만특위는 연길현 명월구에서 동만 각 현의 책임자와 당, 단 열성자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는 유격대 건립에 관한 성위의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항일유격대 건립 건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명월구회의는 이미 조직된 반제동맹, 농민협회, 공회, 부녀회, 소선대, 적위대 등 민중단체를 근간으로 해서 항일유격대를 건립하여 유격투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1932년 2월 15일, 중공동만특위 군위서기 양림은 동만유격대사업대강을 제정한 후, 2월 17일에는 동만적위대사업대강을 발표하였다.
동만유격대사업대강은 유격대 임무를 “군중을 발동하고 정치여향을 확대하며 무기를 탈취하여 적들의 통치를 뒤엎거나 그 세력을 전멸하고 … 토지혁명을 진행하며 소비에트정권을 건립하고 부단한 투쟁 중에서 홍군을 성장, 발전시켜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두 문서는 유격대에 대한 당의 영도문제, 유격대의 조직문제, 유격대의 선전훈련사업, 유격대의 전술, 포로사업과 유격대의 급양 등의 이론을 제공하였다.
1932년 봄, 중공연길현위에서는 당원, 단원과 대중들을 동원하여 봉건세력과 일군의 무기를 노획함과 동시에 의란구, 로두구, 팔도구, 해란구 등지에 돌격대, 적위대 등 항일무장대를 조직하였다. 의란구돌격대, 해란구 화련리적위대, 화련리유격대, 로두구돌격대, 연길현적위총대, 연길현유격대는 친일지주집을 습격하거나 만주국 경찰을 공격하며 세력이 확장되었다.
1932년 10월 말에 중공연길현위는 의란구와 로두구의 돌격대를 합하여 연길현항일유격대를 설립하였다.
안도현에서는 1931년 말부터 항일유격대 창건사업을 시작하였다. 1932년 동만특위 공청단15)
은 항일유격대를 창설하도록 조선인 지도자를 파송하여 1932년 4월 25일에 안도현 소사하 무주툰 토기점골에서 항일별동대를 창건하였다.16)
왕청현항일유격대는 왕청현노농항일유격대와 구국군별동대, 영안에서 온 북만노농의용대, 안도에서 온 유격대가 합하여 조직되었다.
훈춘유격대는 1931년 12월에 중공훈춘현위에ㅓ 군사주비위원회를 설립하였다. 동월에 훈춘현위군사부가 대황구에 별동대를 조직하였다. 1932년 3월에 훈춘 연통라자 서구에서 돌격대가 건립되었다. 1932년 6월, 중공훈춘현위는 연통라자 서구에서 연구항일유격대를 설립하였다. 1932년 7월에 대황구유격대를 토대로 영북항일유격대를 설립하였다. 1932년 가을, 성구와 번구에서 돌격대와 유격대가 설립되었다. 1933년 1월 중공훈춘현위는 연구유격대와 황국유격대를 합병하여 훈춘항일유격대를 만들었다.
중공화룡현위는 1932년 봄에 당원, 단원, 적위대 책임자회의를 소집하여 개산툰구, 달라자구, 평강구, 삼도구구 등지에서 돌격대, 적위대를 건립하였다.
1933년 2월 중공화룡현위는 각 구의 유격대를 어랑촌으로 모아 화룡현유격대를 설립하였다. 그 아래 3개 소대를 두었다.
1933년 초까지 동만의 연길, 화룡, 왕청, 훈춘, 4개의 현 유격대에 도합 360여 명의 대원이 있었고 그 중의 90% 이상이 조선인이었다. 조선인들은 친일 지주를 공격하며 무기를 탈취하고 항일 유격대를 창건하는 투쟁에서 솔선수범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였다. 항일 유격대는 밀림에서 일제와 만주 군의 대토벌에 맞서 싸우며 동북인민혁명군으로 발전되어 갔다.
④항일유격근거지
1932년 여름과 가을부터 동만의 조선인들은 각지의 당의 지시 아래 항일유격근거지를 창건하는 투쟁을 시작하였다.
2) 동북인민혁명군 설립과 활동(1933년 ~ 1935년)
2023년 9월 4일 월요일 축시
우담초라하니 올리다
6부에서 계속됨
각 주
14) 차량(借糧)”투쟁 : 양곡을 빌리는 투쟁.
15) 공청단 : 공산청년단.
16) 연변조선족사 집필소조 편, ⌜연변조선족사 상⌟, 263쪽, 연변인민출판사, 2010년
17) 소비에트 : 노동자, 농민, 병사의 대표자로 구성되는 평의회
18) 연변조선족사 집필소조 편, ⌜연변조선족사 상⌟, 276쪽, 연변인민출판사,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