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법
우선 이건 머리로만 이해하려 하지 말구 직접 해봐야 합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오랜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얼음상태로 오래 유지해야 한다고는 생각안합니다. 그보다 이런 연습을 여러 번 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내가 중요하게 보는 건 의미이해이니까요.자꾸 하다보면 왜 이것을 하는지 저자식이 뭐땜시 이걸 하라고 하는지 알게 되어야 하거든요. 웃기는 건 이걸 법계현시라고 했다는 겁니다. 관공법문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이걸 공을 보는 거라고 한 듯합니다. 말을 안 하는 정도의 것을 공을 본다고 하면 좀 과장이 지나친 건 아닐까요?
그러 할진데, 법계를 본다라~~~ 미친 것일 지도요.?
공이 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데 어찌 보면 이 얼음법은 억지로 공이 되는 것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랜 좌선을 거쳐 비로소 체험하게 되는 아무 생각 없는 상태 즉, 삼매 같은 것을 이렇듯이 간단한 방법으로 말을 안 하고 그저 지켜보는 것으로 하겠다는 거죠. 선정의 인위적인 방법이죠. 그래서 이 얼음법은 연습을 해봐야 합니다. 직접 신체로 경험을 해보면서 글을 이해해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론적인 공허함이 있습니다.
앞에서 생각과 말이 다르다고 했으니 생각의 멈춤이라는 게 틀린 말인데 말을 멈추기 위한 애씀이 생각이기도 합니다. 생각작용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죠. 이렇게 생각할까 저렇게 생각할까 하는 그러한 것도 생각이고 생각을 하고 멈추고를 바꾸는 것도 다 생각이라고 넓게 이해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멈추어 말을 안 한다는 것이 사고 작용을 안 한다는 것이고 사고 작용을 안 하면 가치분별을 안하게 됩니다. 가치분별을 안함으로 인해 일상의 흔한 사물이나 대인관계에서나 사건이나 의미들에서도 분별작용을 안하고 가치를 안 보게 되므로 인해 자기주장과 고집을 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착을 안 한다는 것이죠.
이게 일상 생활하는 그 모든 순간에 얼음법으로 있으면서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얼음법을 하면서 이 자천법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고 그 앎이 현실에서 저러한 의미 분별과 가치분별을 안하게 되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래서 자기고집과 욕구충족을 위해 불선한 행동을 안 하며 고정관념으로 살지도 않고 편견이나 삿된 감정과 행동을 안 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의미와 가치를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즉, 공을 본 것이 되죠. 그래서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구요. 앞에선 의미를 분별하라고 했으면서 이젠 하지 말라고 하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이걸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얼음법이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되고 그러면서 감정도 멈추고 막아서 신체까지 멈추는 것인데 겉만 그리 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새기는 것이 됩니다. 그 내 속으로 깊이 새기는 과정이 필요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변해서 일상이 저렇게 되는 거지 안 그러면 초등생이 선생님에게 배워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달라짐이 있어야 하는 거지 억지춘향은 안 된다는 것이죠. 그리 되기 위해선 오랜 단련이 있어야 하고 이 단련 역시 겉의 단련이 아니라 나 자체의 변화로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계현시는 뭘 말함이냐면,
단순히 생각 멈춤으로만은 아니며 감정과 신체까지 멈추고 나아가 심층, 자아까지 멈추어 가는데 이게 경직되어 멈춤이라기보다 그렇게 현현하며 있는 그대로라는 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억지로 말 안하고 감정을 안 느끼고 신체를 안 움직이려고 하지만 이게 어느 이상가면 나 자체의 또는 내 전체가 하나의 전체로서 혹은 자연스럽게 세상에 녹아들고 어둠이나 빛에 하나 되는 그러한 감각이 있게 되는데 감각을 멈추었는데 뭔가 감각되는 하나 되는 전일함이 있습니다. 이런 감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항상 느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이 감각을 힌트로서 이해하면 가만히 있는 것으로 우린 세상과 합일하는 그러한 과정이 되어 감을 알게 됩니다.
생각 안하고 감정을 멈추니 그제야 외부가 보이고 내가 보이고 다른 게 보이는 그러한 것입니다. 안 보이는 건 가려져서가 아니라 내가 다른 것에 정신을 팔아서이며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잠시의 멈춤이지만 그로 인해 내 감각은 온전히 개방되고 세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걸 알면 바로 지금이 이세상이 정토이고 하늘이며 무극이 된다는 것을 아는 거라고 봅니다. 내가 하늘이고 무극인 것을 일상에 치여 사는 것에서 사회생활의 치열함에서 경제생활의 조급함에서 어릴 때부터 습관들여지고 성향으로 굳어져 있는 억압이나 뒤틀려지거나 혼란하게 된 마음 때문에 몰랐던 것을 바로 하고 넓혀감으로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얼음법으로 정지하는 것인데 이러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걸 알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도 되구요.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바쁜 일상을 살고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서 너무도 한쪽으로만 발달시키고 신경 쓰고만 있으며 습관들이고 익숙한 몇몇 가지만을 전부로 알고 자신을 억압하고 막고 있었던 가능성을 발현하게 하는 것이고 올라와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생각을 멈추고 감정을 멈추는 게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찾고 내가 뭘 잘못하는지 어디로 갈려고 이러는지 같은 자기반성과 함께 전체를 인식하고 저 너머의 더 크고 광활한 인식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를 넘어 초월의 세계로 가는 그 하나의 방법인 것입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의 의미를 이런 식으로 마음을 멈추게 해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서 알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생각 안하는 훈련이 아니라 생각의 다양함이나 가능성을 새롭게 재인식시키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발견이 있어서 법계현시라고 합니다. 세상의 비의가 보이는 것이고 비로소 이제야 진리의 문을 열게 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나 윤회를 단순한 반복이 되게 해선 안 됩니다. 아는 것만 보고 아는 것만 받아들이고 마음에 드는 것만 하려고 한다면 새로움은 없고 항상 같은 것의 반복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런 고정된 생각과 마음과 인생과 존재에서, 새롭고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이미 알거나 이미 이룬 성취에서 벗어나야 하고 해체시키고 파괴하는 것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고 창조적이고 재구성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 이렇게 비우고 얼음이 되어 멈추어 제동을 걸면서 자기를 다시금 재설정하고 다시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여유를 가지고 자기 시간과 공간을 가지면서 제로영역에서 자기시공으로 시작하는 그 위대한 멈춤과 도약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