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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해 산행 계획을 세울 때는 '팔령재 → 백장공원 → 백장암 → 서룡산 → 투구봉 → 삼봉산 → 등구재 → 백운산 → 금대산 → 금대암 → 가흥리'의 14km, 7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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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산
높이: 1,187m
위치: 경남 함양군 함양읍
산행은 팔령치에서 시작해 산자락을 휘돌아 감투봉을 올라 능선을 타면 정상이다.
함양군 마천면 촉동마을(삼봉산 남쪽)에 가면 옛날 가야 구형왕이 거주하면서 무기를 만들던 빈 대궐터(일명 빈대굴)가 있으며, 마천면 등구마을은 변강쇠와 옹녀가 전국을 떠돌다 마지막에 정착해 살던 곳으로 주변 경관도 절정이며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목이다.
북쪽으로 하산하면 한평생 민속 의약으로 이름을 떨친 인산 김일훈 선생을 기린 민속 의학연구소와 죽염공장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촉동과 등구를 거쳐 칠선계곡 입구로 하산하면 된다. - 한국의 산하
경남의 오지 함양 삼봉산! 해발 1,187m의 산으로 현재 진행 중인 해발 1,000m가 산 163개 중 133번째로 오르는 산이다. 경남 함양 마천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어렸을 때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 당시에는 이름은 몰랐으나, 뒷산인 금대산, 백운산은 자주 놀러 갔던 산이고, 삼봉산 또한 그 놀이터 중 하나였을 거다. 어렸을 때도 백운산은 빨치산 관련해 많은 얘기를 들어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나, 금대산이나, 삼봉산 등 그 외의 산 이름에 관한 기억은 없다. 그 이름을 알게 된 건 2019년 5월 초파일 기념 삼정산 칠 암자 순례에 나섰다가, 이왕 삼정산 끝까지 왔으니, 내를 건너 백운산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산행 계획을 세우다가 가흥리 뒷산이 금대산이고, 자주 놀러 갔던 절이 금대암이라 부른다는 걸 알았다[산행기].
삼봉산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정리하다가, 오도재를 들머리나 날머리로 하는 산이라는 소개 글을 보고, 오도재? 많이 듣던 이름인데? 해서 찾아보니, 2013년 8월 친구 셋과 경남의 오지로 1박 2일 피서 및 먹방 여행을 떠나, 함양 고택에서 1박 후 백무동으로 수영을 하러 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고개다. 물론 1970년대 중반 마천 가흥리에서 살던 시절 산골 오지로 막걸리 배달하는 경운기를 얻어타고 많이 올랐던 고개나, 그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몰랐다기보다는 나이를 먹어가니, 작은 저장 공간에 기억해야 할 건 많아, 저장 공간을 다른 것에 비워줬기 때문일 거다. 2013년 당시 오도재로 올라가는 갈지자의 도로를 보고 정령치가 떠올라서 처음으로, 고개 직전의 변강쇠와 옹녀를 기념하는 조형물에 두 번째로,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성문에 세 번째로, 마지막으로 임천 건너로 보이는 지리산 조망에 놀랐었다. 이후 자차로 지리산을 방문하는 경우 꼭 들리는 장소 중 하나가 오도재가 됐으나, 그 정상이 삼봉산이라는 건 모르고 있다가, 해발 1,000m가 넘는 산의 산행 계획을 세우다가 알게 됐다.
처음 삼봉산행 계획을 세울 때는 동서울에서 백무동행 버스를 타고 인월에서 내려, 택시로 들머리인 팔령치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이후 팔령치를 들머리로 서룡산, 삼봉산, 백운산, 금대산을 거쳐 가흥리로 하산하는 코스로 계획을 세웠다. 다만, 들머리인 팔령치에서 날머리인 가흥리 버스 정류장까지의 거리나, 소요 시간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 망설이던 중 우연한 기회에 오지 산행을 가끔 하는 산악회 게시판에서 삼봉산행 공지를 봤다. 그때는 다른 중요한 산행 계획이 있어 참여하지는 못하고, 산악회도 찾는 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만족했었다. 이후 삼봉산행 계획이 다시 산악회 게시판에 공지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산악회가 안 간다면, 좀 번거로우나, 대중교통으로 다녀오면 되는 산이라, 급한 건 없었다.
그러던 중 8월 5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악회 게시판에 들어가 미래의 산행 계획을 둘러보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삼봉산과 각화지맥이라는 타이틀에 감춰진 각화산과 왕두산 계획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바로 그 3개의 산행을 신청했다. 그리고 9월 25일 산악회 지맥 팀의 각화지맥 1구간 산행에 동행했다. 사실 그 구간 중에 각화산이, 10월 9일 예정인 2구간 산행에 왕두산이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지맥 산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산악회 계획을 무시하고 한 번에 각화산과 왕두산을 다녀왔었다[산행기].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인 10월 2일 삼봉산에 올라 지리산 전경을 감상할 예정이다. 다만, 산악회 계획 코스가 처음 대중교통으로 계획했던 코스와 아주 다르나, 백운산이나, 금대산은 2019년 초파일 칠 암자 산행 시 다녀온 산이라, 아쉬울 게 없었고, 대신 서룡산이 추가된 오히려 가보지 않은 산 위주의 코스라 마음에 들었다. 필요한 준비물은 평소와 다름없으나, 지리산 주 능선 조망이 목적 중 하나인 산행이라, 좀 힘들기는 하지만, 줌렌즈가 있는 무겁고 큰 카메라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리고 지도로 날머리 주변을 살펴본바, 식당이 있을 거 같지 않아, 최대한 유유자적 즐기는 산행을 계획 중이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거의 야유회 수준의 산행인데 동행하는 친구가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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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거의 남도 끝이나 다름없어, 산악회 버스 출발이 양재역 기준 평소 7시 정각이 아니라, 6시 50분으로 평소보다 10분 이르다. 기상부터 집을 나서기까지 50분의 시간을 가지고 준비했을 때 약간 시간이 남아, 이번에 기상은 변함없으나, 출발은 10분 일찍 하는, 즉 준비 시간을 40분으로 줄여보기로 했다. 물론 5시 51분 즈음에 정류장에 도착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평소의 50분 준비 시간을 거의 다 활용할 수 있으나, 그 버스를 탔다가는 5시 57분 불광역에서 출발하는 전철을 타기 위해 도착할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하고, 그럼에도 전철을 놓치는 때도 있어, 40분에 집을 나서 불광역까지 걸어가는 게 속이 편하다. 볼일 보고, 점심 준비하고, 누룽지 끓여 아침 먹고, 씻는 등 평소 다름없이 막상 해보니 10분을 줄여도 별문제가 없었고, 줄이지 않았을 때와 같이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 쥐어짜면 뭐든 가능하다. 해서 계획대로 5시 40분 집을 나와 대조시장을 관통해 불광역으로 향했다.
아직 어두운 5시 51분에 불광역에 도착해 지하역사로 들어가 승차장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며 열차를 기다렸다가, 5시 57분에 도착한 차를 탔다. 역시 구파발 출발 열차라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와중에 등산객 서너 명이 보이고.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감상하며, 책에 열중해 있는데, 목적지 한 정거장 전에 도착했다는 음성메시지가 음악을 대신해 나왔다.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양재역이니, 내리라는 2차 메시지에, 놓고 내리는 게 없는지 확인 후 차에서 내렸다. 6시 41분경 등산객의 성지인 양재역 12번 출구로 나가자,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두 개의 산악회가 주로 이용하는 마을버스 정류장은 등산객으로 붐볐다. 나도 자주 이용하는 산악회로 7시에 출발하는 게 대부분인데, 벌써?
붐비는 등산객을 뚫고, 이번에 동행하는 산악회가 이용하는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자 거기도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시각이 43분이고 버스의 출발 예정 시각이 50분이나 정확한 도착 시각을 알 수 없어, 앉을 만한 곳이 있나 두리번거렸으나, 애용했던 서초구청 주차장 기초인 튀어나온 축석은 여성 등산객이 차지하고 있었고, 주차장까지 올라가기 귀찮아 서서 산악회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대보다 이른 6시 45분경 몇 대의 버스가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는데, 다행히 제일 앞에 있는 게 삼봉산행이어서 버스를 찾아 헤매는 수고를 덜었다. 만석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편안한 여행을 위해 배낭을 짐칸에 실기로 하고 버스 내에 필요한 물건은 이미 배낭에서 꺼내 손에 들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해 정차하는 걸 보고 버스로 달려가 짐칸의 문을 열고, 배낭을 넣고 온도를 잰 후 내 자리로 갔는데, 누군가 앉아 있었다.
혹시 내가 버스를 잘못 탄 게 아니냐고, 인솔 대장에게 산행지를 물어보려는 순간, 내 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이 앞자리와 좀 바꿔 달라는 말에 그러라고 하고 하나 앞자리로 가 앉았다. 거의 최후에 신청한 한 쌍으로 붙어 있는 두 자리가 없어 따로따로 앉아야 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꼭 그 자리에 앉을 이유도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슬리퍼로 갈아 신고 가장 편한 자세로 이어서 책을 보는 중 가끔 지도 앱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대전을 지나,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들어서는 순간 또 금산인삼랜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휴게소도 구경하고 싶었는데, 예상대로 8시 55분경 버스는 인삼랜드 휴게소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볼일을 본 후 늘 그랬듯이 뒤로 돌아가자, 연못에 과거에 보지 못했던 물고기 떼가 보였다. 못 보던 장면이라 사진을 찍은 후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전면에 본격적인 코로나와 함께 하는 삶을 알리는 모습의 늘어선 관광버스가 보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좌석에는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이 적힌 지도가 놓여있었다. 그런데, 인솔 대장의 성격인지, A4용지에서 지도는 작게 차지하고, 구간별 주의사항에 관해 차례대로 자세히 쓴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도야 폰의 등산 앱에 의지할 거라 의미가 없어, 다른 인솔 대장의 지도도 대개 간단한 주의사항과 구간별 소요 시간만 참고했는데, 이 인솔 대장의 지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차적 기록은 중요해 그 부분만 폰의 카메라로 찍어 산행 중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코스와 주의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으나, 나눠준 지도를 읽는 수준이라,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본인 소개와 함께 처음 했던 말에 약간 놀랐다. 안내산악회의 산행지는 산악회(운영자)에서 선정하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인솔 대장이 선정하고, 그 흥행에 책임을 진다는 거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방식으로 운영하는 산악회도 있겠지만. 그 말을 듣자 안내산악회별로 산행지에 특성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즉 지금까지 품어왔던 인솔 대장은 단순한 차장이라는 생각이 틀렸다!
대장이 설명하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의자를 자기 좋게 만든 후 잠을 청했는데, 일어나보니, 함양이 멀지 않았다. 해서 정신을 차리고,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순간 등산화로 갈아 신고 요즘에는 필수장비가 돼 버린 미니 스패츠도 착용하는 등 버스 내에서 할 수 있는 등산 준비를 마쳤다. 급경사라 다른 도로보다 더 짧은 갈지자로 만든 지안재를 한 번에 올라가지 못해 두 번이나 서서 기어를 바꾸며 간신히 오르는 버스가 혹시 뒤로 밀릴까 봐 약간 겁까지 났었다. 그렇게 지안재에 올라, 변강쇠와 옹녀 기념물을 지나,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오도재에 도착한 시각이 애초 산행 예정 시각이었던 10시 30분을 6분이나 지난 10시 36분경이었다. 버스 내에서 가능한 산행 준비는 마쳤으나, 배낭이 짐칸에 있어 못 한 걸 준비하기 위해 배낭을 꺼내 오도재 전망대로 그늘로 가서 마저 했다. 그리고 아래를 바라보니, 관광객을 위한 데크 계단으로 자전거를 들고 올라오는 사람이 보였다. 썩어도 준치라고 버스가 헉헉대고 오도재로 올라오며 추월한 라이더가 많았는데, 창으로 그 경사를 올라가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이 라이더는 자전거를 끌로 도로로 올라가기보다는 들고 계단을 오르기로 한 거다. 마지막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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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산행의 들머리는 "지리산제일문(智異山第一門)"을 성벽을 지닌 성문이라고 가정하면, 오른쪽 성벽을 따라 나 있었고, 그 길목에 시비를 비롯해 과거 서낭당이 있던 자리에는 '오도령수호신위'라 쓴 산신비가 있었다. 그리고 성벽으로 가자 산신각이 나타났다. 산신각 옆에 "산신각 복원비"가 있는 거로 봐서 복원한 건데, 그럼 거의 5m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서낭당과 산신각이 있었다는 건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복원된 산신각 앞에는 삼봉산 지도가 서 있었다. 최근 웬만한 산 들머리에는 다 있는 지도는 물론이고, 이정표 구경도 못 한 오지만 다녀서인지 대단히 반가웠다. 그리고 그 옆 이정표에 의하면 이번 산행의 최고 목적지이자 최고봉인 삼봉산 정상까지 3.9km라고. 산악회 기준 이번 산행의 총 거리가 들머리인 오도재에서 날머리인 백장공원까지 11.5km이니, 삼봉산까지 1/3로, 사실상 힘든 코스는 끝이다. 하긴 안내 산악회는 다른 산도 거의 비슷하게 코스를 짜기는 하지만.
예상대로 시작하는 등산로는 탄탄대로였다. 대로지만, 경사가 심한 길을 10분가량 오르자, 길은 좌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까지의 길이 오도재를 가꾸기 위한 작업로였다면, 이제부터 진정한 등산로다. 해발 1,500m가 넘는 산의 능선이 아닌 대한민국 산의 능선을 따라가면 어디나 울창한 숲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 삼봉산 또한 다르지 않아, 그저 앞만 보며 가야 했다. 그런데, 그 길목에 전혀 의외의 안내문에 깜짝 놀랐다. 사람이 아니라, 야생동물에 의한 산약초 피해 예방 시설이 있다는 경고문이다. 결국, 같은 짐승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간에게 야생동물에 빗댄 경고문인데, 짐승 같은 놈이라는 얘기다! 언제부터인가 함양이 산삼을 대대적으로 재배하고 홍보하는 중이긴다.
역시 삼봉산도 일반적인 한국산에서 벗어나지 못해 등산로 곳곳에 바위가 길을 가로막아, 산행의 재미를 더했다. 물론 거대한 바위는 전망대 역할도 있어 목적지인 삼봉산의 세 봉우리와 가야 할 능선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러나, 아직 이번 산행의 목표 중 하나인 지리산의 전경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첫 번째 전망대에서 4분가량 가자 오도봉이다. 이번 산행에서 내세우는 오도봉, 삼봉산, 사령산의 첫 번째인 오도봉이다. 먼저 오도봉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먼저 와 있던 등산객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물론 찍어 주기도 하고. 딱히 조망이 좋은 것도 아니라, 인증을 찍은 후 바로 오도봉을 떠나 삼봉산을 향해 떠났다.
오도재에서 삼봉산 쪽으로 9분 정도 가자, 작은 암봉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과거에는 암봉을 넘었으나, 현재는 암봉을 우회하는 등산로가 있었다. 물론 그 우회로를 무시하고 암봉으로 기어오르자 예상대로 두 번째 전망대다. 첫 번째가 보여주지 못했던 지리산 전경을 보여주는. 오도봉에서 서로 인증을 찍어주고 동행한 등산객도 올라온 후 감탄을 연발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역광이라 선명하지 않다는 거. 반대쪽인 삼신봉에서라면 아주 선명한 사진이었을 거 같은 날씨인데. 물론 바로 앞에 있는 삼봉산의 세 봉우리는 선명하게 찍혔다. 주변 경관 감상을 끝내고 암봉 건너편으로 내려가려고 하자, 같이 있던 등산객이 '길은 아래로 있는데….'라는 말에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반대쪽 암벽을 살펴보니 예상대로 암벽 곳곳에 과거 길의 흔적이 있었고, 그 흔적은 우회하는 길과 만나고 있었다. 해서 먼저 내려간 후 '이리로 내려와도 됩니다!'라고 그 등산객에게 소리쳐 알려주고, 삼봉산 첫 번째 봉우리로 향했다.
두 번째 전망대 암봉을 떠나, 8분가량 가자, 다시 암봉이 나타났으나, 조금 전 지나온 암봉과는 높이나 난이도나, 차이가 컸다. 더욱이 앞선 암봉에는 그나마 인적이라도 있었으나, 이 암봉은 인적도 보이지 않았다. 왼쪽으로 우회로가 있고, 그 우회로를 따라 산악회 리본도 많이 달려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라 이끼가 잔뜩 낀 바위를 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그 등산객이 ‘길이 맞냐?’고 물어, "아닙니다, 리본을 따라가세요! 궁금해서 올라가는 겁니다."라고 뒤를 향해 큰 소리로 얘기하고 계속 갔다. 생각보다 쉽게 올라갔으나, 예상외로 울창한 숲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삼봉산의 세 봉우리 중 하나였다. 3봉 중 첫 번째 봉우리를 넘자, 우회해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다시 만났고, 오른쪽으로는 데크 계단이 앞에는 목책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데 목책이 있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경고판이 없었다. '출입금지'나, '등산로 아님' 같은.
원래 가지 말라는 곳이 더 궁금한 게 법 없이 사는 무법자나, 동행이 없어 선뜩 목책을 넘지 못하고 그 앞에서 능선으로 난 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당연히 많은 등산객이 갔다가 돌아오거나, 사고가 빈번해 목책으로 막았을 테지만, 선명한 등산로가 있었다. 그걸 보고 바로 목책을 넘어 금지된 길을 따라갔다. 물론 직전의 봉우리를 우회했던 그 등산객은 벌써 데크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금지된 길을 따라 계속 갔으나, 별 이상한 건 발견하지 못하고, 끝 지점에서 여성 등산객이 밧줄을 잡고 암벽을 내려가는 걸 보고 목책을 넘어온 무법자가 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등산객이 다 내려간 후 가까이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허탈했다. 이 정도 암벽에 목책으로 길을 막았다니, 무언가 대단한 걸 기대했었는데.
밧줄이 왜 있는지도 모르는 암벽을 내려와 10여 미터를 가자, 다시 그 우회로인 정규 등산로와 만났고, 그 길을 따라 4분 정도 급경사를 오르니 삼봉산 정상이다. 10여 명이 동시에 있을 수 있을 정도의 평지 한쪽에 정상석이 있었고, 금대암 갈림길 이정표 아래에는 한 쌍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정상석 앞에는 동행했던 등산객과 또 한 명의 등산객이 인증을 찍고 있었다. 먼저 정상석 사진을 찍고 그 등산객에게 다시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오도재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주변 조망을 사진으로 남기고 정상을 떠났다. 12시가 넘은 시간이고 배도 고팠으나, 그늘 한점 없는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 건 미친 짓이라는 판단에 투구봉으로 가는 길목에서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당을 찾아 급경사 등산로로 팔령재 방향으로 5m 정도 내려가자 등산로 왼쪽으로 서너 명은 둘러앉을 수 있을 만한 평지가 나왔다. 물론 울창한 숲속이라 적당한 그늘이 뜨거운 햇볕을 막아 주었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산행지인 함양에는 당일이나 전날 비 소식이 없었으나, 전날 서울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에 혹시나, 산에는 비가 내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 않다가 들고 온 스티로폼 방석을 바닥에 깔고 앉아 먹거리를 꺼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메뉴의 점심을 먹은 후 내가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하고 입가심으로 오이 반쪽을 먹으며 식당을 떠나 다음 봉우리인 투구봉을 향해 갔다. 삼봉산 정상에서 6분가량 가자, 울창한 숲사이로 봉우리가 보여 당연히 투구봉이라 생각하고 갔는데, 아니었다. 투구봉은 더 멀리 있었다. 그걸 알게 된 건 2시 33분 '인산농장' 갈림길에 도착했는데, 그 이정표에 투구봉 2.2km라 적혀있었다. 그걸 보자 투구봉까지도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대장이 언급한 날머리 식당도 영업이 불투명한 상태라 급한 건 없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에 평속 2.5km는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투구봉을 향해 갔다.
그나마 양호한 등산로를 따라 투구봉을 향해 가는데, "인산농장" 갈림길에서 40여 분 거리에 도착하자, 갑자기 조릿대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짜증 나는 조릿대 구간을 벗어나자 투구봉 삼거리다. 다른 방향은 거리가 적혀있는데, 가장 중요한 투구봉까지는 거리가 적혀있지 않은 이정표가 삼거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차피 가야 할 봉우리,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서 평속을 유지하며 경사를 올라가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철탑과 왔다 갔다 하는 등산객이 보였다. 순간 반대쪽에서 오는 등산객인가라 생각하고 반가웠다. 당시만 해도 내가 선두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봉우리 정상에 오르자 바위 위에 정상석이 있었다. 투구봉이다. 해발 1,068m! 사실 한국의 산하에서 검색해 보면 이번 산행 코스에 있는 봉이나 산 중 유일하게 삼봉산만 있어, 나머지 오도봉, 투구봉, 서룡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높이조차 모르고 있었다. 해서 오도봉, 투구봉이 해발 1,000m가 넘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투구봉의 높이를 알고 나니, 연비지맥 중 오도봉부터 투구봉까지 해발 1,000m가 넘는 구간만 달린 거라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투구봉 정상에 도착해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그 등산객은 서룡산 방향으로 떠났다. 그걸 보고 반대편에서 온 등산객이 아니라, 같은 산악회를 이용한 등산객이라는 걸 알았고, 내가 선두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선두가 아니라는 게 아니라, 인증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떠난 걸 아쉬워하며 카메라를 바위 한구석에 놓고 투구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겼다. 이후 방해물이 없는 암봉에서 여전히 역광이라 자세히 보이지 않는 지리산 주능선을 감상했다. 아까 첫 번째 전망대에서는 보이지 않던 칠 암자가 있는 삼정산 능선을 보면서는, 지난 칠 암자 순례산행을 떠올리며 잠깐 감상에 젖기도 했다[산행기]. 당시만 해도 힘든 줄 모르고 뛰어다녔는데.
역광이라 아쉽기는 하나, 주변의 절경을 사진으로 남긴 후 1시 30분에 투구봉을 떠나 마지막 봉우리인 서룡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길이 달랐다. 사실 서룡산은 '한국의 산하'나, 산경도 등에는 보이지도 않는 오지 중의 오지 산이라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삼봉산행도 연비지맥인 팔령치에서 시작해 투구봉에서 좌회전해 가는 코스라, 우측에 있는 서룡산에 갈 일이 없다. 물론 삼봉산에 도착해 지맥 꾼은 오도봉에서 지안재로 가는 연비지맥을 따라갈 거고, 지리산 조망이 목적인 등산객은 삼봉산에서 백운산을 거쳐 금대산으로 갈 거다. 고로 투구봉에서 팔령치 방향으로 우회전하지 않고 서룡산 쪽으로 직진하는 순간 오지 산행 시작이다. 오지답게 험난한 길을 헤치고 전진해 1시 45분에 서룡산 정상에 도착했다. 투구봉을 1시 29분에 떠났으니, 서룡산까지 700m의 거리를 이동하는 데 16분이 걸렸다.
역시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 카메라를 바닥에 고정하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이런 것에 대비해 삼각대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것도 무겁게 느껴져 안 가져 다닌 지 1년이 넘었다. 정상이 울창한 숲에 갇혀있어 주변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 인증사진을 찍은 후 바로 인솔 대장이 언급하고 나눠준 지도에도 기록된 전망대로 향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자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그 이정표에 의하면 서룡산 정상은 50m, 인월은 3.6km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한 방향은 의도적인지, 아니면 풍수에 떨어져 나갔는지 원본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누군가 "서진암"이라고 쓴 희미한 흔적만 보였다. 이런 때를 대비해 인솔 대장이 나눠준 지도를 찍은 사진으로 방향을 확인했다. 코스의 중요 이정표에 순번을 매기며 작성한 글의 2번부터 9번까지는 사소한 거리 오차를 제외하면 정확했다. 그리고 다음에 "10. 80m 가면 삼거리(서진암 방향)"도 이정표의 50m와는 30m의 거리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괄호 안에 있는 "서진암 방향"이다. 서진암 방향으로 가라는 얘기다. 그래도 혹시 몰라, 폰의 등산 앱 두 개를 확인해보니, 서진암 쪽으로만 등산로가 표시된다.
당연히 서진암 쪽으로 직진하며 "11. 최고의 조망터 범바위(로프 잡고 올라감)"의 범바위에서 조망하기 위해 등산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밧줄이 설치된 바위를 찾으며 하산했다. 그런데, 투구봉에서 서룡산까지의 길도 좋지는 않았으나, 인월삼거리 이후 길에 비하면 고속도로에 가까웠다. 즉 서진암 방향으로는 그나마 소수의 등산객도 찾지 않는다는 거다. 관목을 헤치기도 하고 급경사를 내려가기도 하며, 밧줄이 설치된 큰 바위를 찾았으나, 아예 바위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7분 가까이 내려가니 밧줄은 없으나, 전망대 구실은 할 거 같은 바위가 나타나, 나무를 이용해 바위 위로 올라갔다. 보이는 거라고는 지나온 능선이 다였으나, 계속 숲에 갇혀 있다가 확 트인 조망을 보자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그럼 전망대지 뭐! 그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하산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니, 인솔 대장이 준 지도에 기록된 "12. 이후 백장봉…."의 그 백장봉이 진행하는 길목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정확히는 삼거리에서 인월 방향 쪽에.
인솔 대장의 대형 실수다. 하지만, 등산 지도를 보다 보면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우리가 근접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혹시 백장봉이 두 개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며 능선을 따라 더 내려가 보기로 했다. 사실 돌아가기에는 늦었다. 그리고 이 길도 백장암으로 향하며, 애초 계획한 코스보다 길고 오지라, 범바위나 백장봉에 가고자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내게는 더 만족스러운 코스다. 그래도 범바위에서 보이는 조망이 궁금해 백장봉이 두 개이기를 빌며 갔다. 그렇게 가다 보니 왼쪽 숲사이로 논과 마을이 보였다. 정면에는 칠 암자의 삼정산 능선이, 우로는 내년 철쭉 철에 오를 예정인 인월의 덕구산과 바래봉이. 범바위는 아니나 이 정도의 조망처면 전망대로서 최고다. 다만, 역광이라 자세히 보이지 않는 게 아쉬울 뿐! 태양의 위치상 범바위라고 다르지 않을 거다.
고개를 돌려 서룡산의 모습을 보니, 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대개 유명하거나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산은 능선 위에 툭 튀어나온 봉우리가 있게 마련인데, 그게 없다. 고만고만한 봉우리의 연속이라, 뱀이 꿈틀거리는 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중에서 제일 높은 걸 상봉으로 삼아, 서룡산(西龍山? - 서쪽의 용이라는 뜻이 아닐까?)이라 명명했을 거다. 조망도, 산 자체도 볼 게 없으니, 동네 뒷산으로 남았을 산이, 해발 1,000m가 넘는 높이에, 역광이나마 지리산 조망 덕에 소수나마 산꾼이 찾는 산이 된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급경사의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전망처에서 8분가량 내려가자 숲 사이로 기와를 얹은 서너 채의 건물이 보인다. 백장암이다! 백장암을 보는 순간 범바위와 백장봉에 오를 수도 있겠다는 미미한 기대마저 버렸다. 머리로는 계획한 코스에서 벗어났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교차 검사를 위해 등산 앱의 지도를 보니, 백장암 길목에 하산로가 있었다. 잠깐 백장암을 갈까 말까 고민했으나, 마감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백장암에 있다는 국보는 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비록 갔던 길 돌아오는 코스지만, 백장암에 들리기로 했다.
다시 길을 재촉해 2시 23분에 서진암 삼거리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왔던 산길과는 확연히 다른 등산로를 보니, 백장암과 서진암 사이는 많은 불자나 관광객이 다닌 듯했다. 이정표는 없으나, 서진암 갈림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도 있으나, 서진암 쪽에 놓인 기와 한 장이다. 당연히 등산 앱의 지도도 확인했다. 그 등산 앱에 의하면 길은 직진하면 된다. 그런데 오른쪽 계곡으로 앞에 보이는 길과는 상태가 다른 길이 있었다. 고로 삼거리가 아니라, 사거리다! 위험한 길이라 누군가 설치한 밧줄까지 있는. 등산 앱은 직진하라고 하는데, 백장암의 위치를 보나, 산꾼이 만든 위험천만한 길이 향하는 방향을 보나, 오른쪽 계곡으로 가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임 없이, 죽죽 미끄러지는 길 같지 않은 급경사를 가로지르는 산길로 들어섰다. 물론 그 길은 중간중간 없어지기도 해 흔적을 토대로 만들며 전진하기도 했고, 와중에 좀 위험하다 싶은 곳에는 선배 산꾼이 설치한 밧줄이 있었다.
사거리에서 급경사의 위험한 길을 8분가량 내려오자 돌탑이 나타났다. 사진 한 장 찍고 돌탑을 지나니, 앞에 거의 임도에 가까운 길이 나타났다. 등산로다. 그런데 이정표가 있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위로는 계곡을 건너고 있었고, 아래로는 계곡을 따라가고 있었다. 감은 위로 가라고 하는데, 이성은 아래로 가라고 했다. 신뢰하는 등산 앱인 ‘e-산경표’에는 없는 길이다. 판단이 서지 않아, 이성이 지시하는 대로 아래로 갔다. 그런데 그 길로 50여 미터를 가자, 느낌이 싸해 다시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니, 길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해서 주저 없이 발걸음을 돌려 다시 그 갈림길로 돌아가 계곡을 건너 위로 갔다. 그 길로 6분가량 가자, 길 상태는 변함이 없는데,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게 다시 기분이 싸해졌다. 해서 등산 앱의 지도를 확대와 축소를 반복해 전체 지세를 살펴봤다. 결과 백장암 갈림길을 지나쳐 백장봉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되돌아왔던 길의 정체는 서진암 갈림길에서 봤던 앞으로 뻗어가는 등산로가 능선을 따라 내려와 백장암으로 가는 순례길로, 내가 내려온 계곡 길은 기로 지르는 지름길이었다. 지름길답게 길도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했었고.
다시 걸음을 돌려 왔던 길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아예 폰을 손에 들고 수시로 지도를 확인하며, 오른편으로 길을 찾았다. 지도에 의하면 백장암으로 향하는 길이 멀지 않은데, 길이 있어야 할 오른쪽은 너덜의 계곡에 관목까지 덮고 있어 도저히 길이 있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계속 우측을 주시하며 가는데 앞에 "입산 금지, 송이버섯 보호구역"이라 쓴 리본이 달린 금줄이 있었다. 좀 전에 무시하고 지났던 금줄이다. 그런데, 그 금줄을 지나, 바로 우측으로 물길처럼 보이는 길이 있었다. 아니, 물길을 등산로로 이용하고 있었다. 해서 아까 물길이라 생각해 그냥 지나쳤던 거다. 결국, 금줄 직전이 백장봉 삼거리다. 왼쪽은 백장암으로, 직진은 백장봉으로 향하는. 그 삼거리에서 백장암 방향으로 초반에는 물길이나, 이후 과거 임도로 쓰인 거 같은 길로 10분가량 가자, 의외의 장소에 쉼터가 있었다. 그리고 등산 앱이 가리키기로는 그 왼쪽에 하산로가 있고, 직진은 백장암이라고. 그러나 백장암으로 향하는 길은 명확하나, 하산길은 잘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금줄까지 쳐 있었다.
과거 임도로 백장암을 향해 가는데, 오른쪽 앞에서 소리가 나 쳐다보니, 승려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지게에 기다란 판자를 지고 오른쪽 숲에서 나왔다. 해서 그 사람이 나온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절집이라기보다는 서민의 별장에 가까운 판잣집 있었다.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 집을 감상하며, 고개를 돌자 절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우소만 서너 채를 지나 매의 눈으로 각 절집의 위치와 용도를 파악했다. 대웅전은 조금 더 가야 했고, 위로 문이 활짝 열린 산신각이 보였다. 처음 산신각의 위치에 약간 놀랐다. 산신각이 대웅전과 비슷한 위치에 있어서다. 다만, 산신각은 돌과 흙으로 단을 쌓아 대웅전보다 조금 높을 뿐이었다. 문이 열린 산신각으로 가 백장봉 산신에게, 보우하사 무사 산행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남은 구간도 무사할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미리 인사했다. 이후 그나마 백장암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산신각 앞에서 백장암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후 가장 먼저 눈에 띈 신선각 바로 아래에 있는 식수처로 가 지금까지 방문한 모든 절에서 그랬듯이 물맛을 봤다. 백장암의 약수는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石間水)을 모은 것인지, 표주박을 걸어놓은 기둥에 "석간수"라는 명패를 붙여 놓았다. 물맛은 시원하고 좋았다. 물맛을 본 후 본존불에게 신고하려고 대웅전으로 갔는데, 두 불자가 참배 후 승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걸 방해할 수 없어 조용히 정면으로 가 모기장 틈으로 보이는 본존불에게 인사만 하고 대웅전에서 내려와 국보라는 삼층석탑으로 갔다. 석탑을 보자마자 왜 국보인가 바로 알 수 있었다. 각 몸체에 조각한 보살, 선녀, 천왕 등! 그리고 모르고 있었는데, 보물로 석등도 있었다. 물맛을 보고, 본존불과 산신에게 인사하고, 보물을 봤으니, 백장암에서 해야 할 일은 다 해 본격적인 하산을 위해 트랭글이 알려주는 등산로로 갔다.
백장암 주차장에 주차해 있는 10여 대의 차를 보며, 저거 얻어 타고 내려갈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등산 앱 ‘트랭글’이 가리킨 등산로로 갔다. 임도다! 아니, 정확히는 백장암으로 올라오는 포장도로다. 그리고 산기슭에는 백장봉에서 내려오는 길도 있었다. 인솔 대장의 착각이 없었다면, - 본인 말에 의하면 자신도 처음 접하는 구간이라, 블로그를 참고했다고 했으니, 블로그 또는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 저 길로 내려왔을 터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도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백장봉 쪽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이 있었다. 그 등산객은 대장의 말을 안 들었다는 건데…. 어쨌든 포장도로를 따라서 하산하는 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용납이 안 되는 거라, 그쪽으로 안내한 트랭글을 버리고, 다른 등산 앱인 ‘e-산경표’의 지도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럼 이곳으로 오는 길에 봤던 쉼터로 돌아가야 했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걸 대단히 싫어해 백장암에서 바로 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암자 밑 계곡 쪽으로 가 샅샅이 뒤졌으나, 없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돌아 쉼터로 갔다.
e-산경표에 의하면 쉼터 오른쪽으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입구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쉼터를 중심으로 계곡 쪽은 빙 둘러 금줄을 쳐 놓았다. 당연, 송이버섯 때문이다. 금줄을 통과해 그나마 길 같아 보이는 걸 따라 내려가는 데 중간중간 그나마 그것도 사라져, 감(感)은 왼쪽으로 1m가량 떨어진 곳의 짐승의 흔적이 있는 곳을 가리키나, 검증을 위해 확인한 등산 앱은 길이 오른쪽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해서 이성이 시키는 대로 오른쪽으로 관목을 뚫고 갔다. 즉 백장암 쪽으로 계곡 방향으로 갔다. 관목을 헤치고 가느라 등산 앱을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꽤 많이 뚫고 온 거 같은데, 여전히 길을 만나지 못했다. 길은커녕 갈수록 관목은 우거져, 뚫기도 쉽지 않았다. 해서 관목에 기대서서 폰을 꺼내 등산 앱을 확인한 순간 머리가 띵했다. 등산로에 가까워졌거나, 지나친 게 아니라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지도 해석에 오류가 있었다. 등산 앱이 가리키는 방향과 진행 방향이 반대라, 좌우도 바뀌어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나마 더 진행하기 전에 확인한 게 다행이다. 참고로 교통 앱 등은 지도와 진행 방향을 일치시킬 수 있으나, 사용 중인 두 가지 등산 앱은 그게 안 된다. 물리적으로 폰의 위가 무조건 북이다. 고로 북으로 올라가면 문제가 없으나, 남으로 내려갈 때는 좌우가 반대다.
해서 남으로 내려가는 산행 시에는 머릿속으로 좌우를 바꿔서 생각하는 게 익숙지 않아 가끔 폰을 거꾸로 들고 지도를 보곤 했는데, 이번 산행 하산 길에서 그걸 깜빡했다. 더 망설일 필요도 없이 우하(右下)로 가던 걸 좌하(左下)로 방향을 바꿔서 관목을 뚫고 다시 능선으로 접근해 갔다. 그리고 3시 32분경 드디어 길에 도착했다. 길을 보자 허탈했다. 이렇게 상태가 좋은 길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송이버섯을 지키기 위해 하산로 입구에 관목과 쓰러진 나무 등을 펼쳐놓아 발견하지 못했다. 거의 산책로 수준의 등산로를 따라 4분 정도 가니 사거리다! 당연 등산 앱에는 없다. 하산 중이라 좌는 아니고, 직진 아니면 오른쪽 길이라, 먼저 직진했다. 그러자 묘가 나타났다. 산길 길목에 묘가 있는 건 흔한 일이고, 묘가 있다는 건 인가가 가깝다는 얘기라, 반가웠다. 묘를 지나 길이 있나 살펴봤으나, 뚜렷하지 않았다. 해서 다시 사거리로 돌아와 우회전해 20여 미터를 내려가자 임도 삼거리다! 상태로 봐서 지금은 폐기된.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과거 임도로 내려가며 도로의 안전 가이드 등을 볼 때 단순한 임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도였나?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지? 궁금증은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해결하기로 하고 지금은 3시 50분까지 식당에 도착해야 영업을 하고 있다면 그나마 30분 정도 하산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구임도? 국도 삼거리에서 구도로를 따라 250m 정도 가자, 다시 삼거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포장도로다. 위치로 봐서 백장암에서 내려오는 거다. 그 시각이 3시 41분으로 목표 시각 3시 50분까지는 9분이 남았으나, 지형이나 차량 소음을 고려했을 때 식당이 멀지 않았다. 그 포장도로로 날머리인 백장공원으로 향하며 요란하게 짖는 개를 구경했는데, 역시 어린 놈이 요란하고, 덩치가 있는 백구는 그늘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개가 짖는 건 무서워서라고 했던 게, 중국 속담이었던가? 주변 집을 구경하며 터벅터벅 내려가 문제의 '백장원 식당'에 도착한 시각이 3시 46분으로 목표보다 3분 일찍 도착했으나,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라 과히 실망하지 않고 더 내려가자 도로 한쪽에 주차해 있는 버스가 보였다. 날머리다. 현재 시각 3시 48분 산행이 끝났다. 마감 시각보다는 42분 이르게!
3
텅 빈 버스에 타 양말과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그리고 카메라와 점심 후 입가심으로 먹고 남은 오이 반쪽을 들고 계곡으로 갔다. 백장암 하산 길을 찾기 위해 고생했던 그 계곡의 하류다. 계곡 주변을 휴식처로 만든 게 백장공원이었다. 계곡을 중심으로 좌는 복숭아와 생수 등을 파는 포장마차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공원 겸 쉼터에 설치된 의자에는 일찍 도착한 등산객이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들 대부분은 인솔 대장의 말을 무시하고 서진암이 아니라 인월 방향으로 간 등산객이다. 정확히는 무시가 아니라, 대장 지시 순번 1인 트랭글 트랙을 내려받아 그걸 따라간 사람이다. 그 트랙은 당연히 인월 쪽으로 인도하고 있으니까. 그들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이를 먹으며 발을 물에 담갔다. 투구봉 이후 오지 산행이기는 했으나, 코스가 길지 않아 발과 다리는 멀쩡할 뿐만 아니라 땀도 나지 않아, 세족에 대한 욕구도 일지 않았으나, 버스에 맨발로 있으려면, 발을 씻는 게 예의라 씻을 뿐이다. 다만 상체는 땀을 많이 흘려 세수가 간절했다.
세수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유유자적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하산한 등산객이 속속 계곡으로 씻으러 오고 있었다. 계곡이 좁고, 위와 아래는 거의 폭포 수준의 경사라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게 힘들어 대략 10m가 조금 안 되는 구간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같이 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평소라면 웃통을 벗고 런닝 바람으로 세수를 하곤 했는데, 여성 등산객을 의식해 모든 걸 입은 채 세수만 했다. 그런데 남들은 그렇지 않았다. 런닝이고 뭐고 상체는 다 벗고 씻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여성들도 무덤덤한 게 익숙한 모양이다. 이런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나 자신에 놀라며, 늦게 도착한 등산객이 씻을 수 있도록 계곡을 떠나 오른쪽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건지, 풀은 무성하고, 쓰레기가 넘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각들이 범상치 않았다. 해서 공원 명이나, 소개 글이 있나 찾아봤다. 있었다! 공원 명은 "변강쇠백장공원"이다!
변강쇠와 옹녀는 함양 오도재와 지안재의 전유물이라 생각해왔기에 여기서 그 한 쌍을 볼 줄 상상도 못 했다. 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 등산처럼 그들의 본거지 오도재에서 능선을 따라 여기까지 오는데 빠른 사람은 4시간이면 충분하다. 고로 변강쇠와 옹녀가 이 동네에 오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다. 변강쇠백장공원에 있는 특이한 조각을 사진으로 남기고, 배가 고파 공원을 떠나 버스로 갔다. 배낭에서 사과를 꺼내 들고 다시 봉숭아를 파는 포장마차로 돌아가 주인장의 의자에 앉아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뒤에서 누가 불렀다. 해서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포장마차 주인인지 묻는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동행으로 보이는 사람이 같은 동행이라고 얘기하자, 미안하다고 하며 너무 자연스럽게 주인 자리에 앉아 사과를 먹고 있어서 무얼 좀 살까 하고 불렀다고 했다. 정말 이 동네에서 현지 생산물 포장마차나 해볼까?
대장이 최소 4시 25분까지는 버스로 오라는 말이 기억나 4시 20분에 포장마차를 떠나 버스로 갔다. 내 자리에 앉아, 오전에 이어 패드로 책을 읽고 있는데, 25분경 대장이 현 시각 2명을 빼고 다 도착했다고 했다. 그 두 명은 백장암에서 차를 얻어타고 내려오는 중이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대장은 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겠느냐고 했으나, 마감 시각인 4시 30분을 지나 38분경 백장암 쪽에서 차가 내려오고 그 차에서 등산객 두 명이 내렸다. 그 둘이 타자마자 버스는 서울 향해 출발했고, 지체 없이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휴식을 위해 신탄진 휴게소로 들어갔다. 대장이 10분 내로 버스로 돌아오라고 하자, 기사가 저녁을 먹어야 했는지, 15분으로 하자고 했다. 해서 15분, 그럼 나도 간단하게 먹어 볼까 가장 빠른 게 뭐지? 가장 빨라 보이는 우동을 먹기로 하고 식당으로 가 메뉴를 보니, '대전역 가락국수'라는 게 있어 그걸 주문했다. 누군가 이름 잘 지었다. 과거 바쁜 와중에 먹던 가락국수, 거의 같은 환경에서 먹는 우동! 그런데, 그 우동이 떠나기 5분 전에 나왔다. 최선을 다해 먹기는 했는데, 결국 반 정도만 먹고 버스로 돌아가야 했다.
버스로 돌아가자 인솔 대장이 ‘QR 본인’ 인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인증이 되면 "인증했습니다." 또는 "접종 완료 후 14일 지났습니다"라는 음성 메시지가 나왔다. 버스에 탄 승객의 거의 90%가 “…14일 지났습니다.” 라는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승객이 "나이 다 드러나네…."라고 해서 승객을 웃겼다.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 산악회 버스? 어쨌든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가 7시 56분 양재역 12번 출구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함양 삼봉산행을 마쳤다.
처음 세운 계획도 아닌, 산악회 계획도 아닌 '오도재 → 관음봉 → 오도봉 → 삼봉산 → 투구봉 → 서룡산 → 서진암 삼거리 → 백장암 사거리 → 백장암 갈림길 → 백장공원 갈림길 → 백장암 → 백장공원 갈림길 → 백장공원'의 13km(트랭글), 5시간 20분의 삼봉산 오지 탐험이었다. 계획보다 1.5km를 더 움직였다. 이동 5시간 9분, 휴식 11분!
오도봉에서 서룡산에 이르는 해발 1,000m가 넘는 능선을 달린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만족이다.
역광이라는 게 아쉽기는 했으나, 지리산 주 능선과 북으로 뻗은 능선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임은 틀림없다. 삼신봉은 최고의 조명 아래 지리산 주 능선과 남으로 뻗은 능선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 이 두 봉우리에 올라 지리산을 봤다면 지리는 다 본 거!
투구봉 이후 서룡산에서 백장공원까지의 오지 산행도 좋았다.
언젠가 백장암, 서진암, 금강암의 서룡산 삼 암자 순례도 해 볼 생각이다. 물론 이번에 놓친 최고의 조망처라는 범바위와 백장봉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