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딸 진솔이가 '인명구조원 자격증'을 취득했다.
물론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자격증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 조건 없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유사시에 귀한 인명을 구조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간의 대화 시간에 몇 번 논의했던 적이 있었다.
딸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학 때 짬이 나는 대로 자신도 열심히 훈련해 보겠노라고 했다.
진솔이는 시간이 나는 대로 혼자서 열심히 훈련에 돌입했다.
그리고 자신의 훈련 정도와 수영 능력을 가늠해 보겠다며 'LIFE GUARD' 자격증 취득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나는 그 훈련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격증 취득의 난이도와 합격률도 소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루에 수영 훈련만 8-10 시간씩 강도 높게 진행했다.
위기에 빠진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겠는가?
그래서 애시당초 취미활동 하듯 설렁설렁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그리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생명'에 관계된 과정이자 훈련이기에 취미처럼 할 순 없었다.
자유형, 평형, 입영, 횡영, 잠영 등을 쉬지 않고 몇 시간씩 연이어서 해낼 수 있는 강력한 정신력과 체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심지어는 무거운 바벨을 몸에 묶거나 옆구리에 끼고 횡영으로 대형 풀장을 몇 번 왕복할 수 있어야만 했다.
왕왕 허벅지에 심각한 경련이 일고 쥐가 날 때도 많다.
평소에 강철같은 허벅지 근육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무거운 쇳덩어리(바벨)를 몸에 묶고 횡영을 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영역이니까.
자꾸만 가라앉는 신체와 거친 호흡 사이에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수영장 물을 음료수처럼 벌컥벌컥 마셔대기 일쑤였다.
서너 시간의 훈련이 끝난 후에 풀 밖으로 나오면 어느 땐 배만 더부룩하고 계속 구토가 나오기도 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나도 딸과 동일한 과정을 경험했기에 진솔이의 도전이 절대로 쉽지 않은 도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매우 추운 겨울날.
진솔이는 아침마다 군포에서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밤 10-11시가 되어서야 파김치가 된 몸으로 돌아왔다.
10여 일 이상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그렇게 야무지게 이어갔다.
라이프 가드,
나는 1990년도에 그 과정을 수료했다.
다행스럽게도 '해병대 특수 수색대'에서 '흑상어 대원'이 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았던 터라 수중에서의 액티비티엔 자신감이 충만했다.
전역하고 3년 후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그 과정에 지원했다.
''대한 적십자사'에서 주관했다.
고강도 해병대 훈련에 비하면 조금은 쉬운 수준이었으나 그렇다고 결코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다.
캠퍼스에서 공부할 당시 나는 법대생이었다.
그랬던 내가 체력이 좋기로 정평이 나있던 ''체대생들'과 라이프 가드에 지원서를 낸 '후보자들'을 짬을 내 지도하곤 했었다.
"법대생이 체대생들을 가르쳤다고?"
상당한 아이러니였다.
지금은 그런 체력이 안 되지만 20대 중반엔 정말로 한 체력 했었다.
나도 그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함께 훈련했던 젊은이들을 자주 가르쳤고 지도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라이프 가드'의 훈련강도와 테스트 수준을 잘 알고 있었다.
진솔이는 전 과정의 강습을 잘 마쳤고, 파이날 테스트도 십여 일 간 열심히 훈련했던 대로 깔끔하게 통과했다.
그리고 자격증이 나오자 맨 먼저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의 땀과 고생인 지를 잘 알기에 내 가슴도 뭉클했다.
"애썼다"
자격증이 없다고 해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위급상황 발생 시에 적극적으로 타인을 돕고 힘을 보태주면 된다.
다만 내 가슴이 뭉클했던 건, 그 자격증을 따기까지 치열한 훈련을 그것도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잘 참고 이겨냈다는 데에 있었다.
'특수부대'에서 3년 간 강도 높게 훈련 받았던 나에게도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는데 하물며 아직 앳된 대학 초년생이 당차게 도전했고, 몇 날 며칠 치열하게 훈련했으며 끝내 성공해냈다는 것에 대해 힘찬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수중에서 능력있는 'LIFE GUARD'가 되기 위해 다양한 동작과 역할이 완전하게 몸에 밸 때까지 하루 8-10시간 이상을 반복, 반복 또 반복해 훈련했을 것을 생각하니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진심으로 뭉클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신속하게 구해낼 수 있을 만큼 자신의 능력과 체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베스트 퍼포먼스'를 도출해 냈다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유경험자'로서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보면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이 참 많다.
긴급도는 떨어지나 중요도는 높은 일이나 훈련, 학습 등이 꽤 있다.
젊었을 때 한번쯤 흔쾌하게 도전해보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일들이다.
'LIFE GUARD'가 바로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한다.
딸의 자격증을 보면서 아들(고3)도 대학에 들어가면 그 훈련과정에 꼭 도전장을 던져보겠다고 했다.
누나처럼 자기도 여름방학 때 600킬로 '국토 대장정'에 나설 테고 당당하게 완주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헌혈도 많이 해서 아빠처럼 '헌혈 유공자' 표창도 받겠다고 했다.
"그래, 좋다 좋아"
너희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과감하게 뛰어들어 정열을 불태워 보라고 했다.
치열한 공부나 혹독한 훈련이 개인의 영달이나 출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좋지만 이 세상을 향한 작은 배려와 나눔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빠트리지 않았다.
서가에서 20년도 넘은 아주 오래된 서류 화일을 꺼냈다.
그 안에 나의 '라이프 가드' 자격증이 들어 있었다.
오래된 구식 자격증과 딸의 최신 자격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가족 네 명이 맥주 파티를 열었다.
시원한 맥주를 한모금씩 홀작거리며 한참 동안 격의 없는 대화를 많이 나눴다.
나는 자녀들에게 늘 비슷한 컨셉의 얘기를 하곤 했다.
당부였다.
출중한 '능력' 보다는 균형잡힌 '태도'와 타인에 대한 '배려'에 더 집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노라고.
학생 때는 높은 점수나 학점이 전부인 양 생각할지 몰라도 긴 인생을 살다보면 학점이나 석차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과 사람 사이의 다양한 관계에서의 '따뜻한 가슴'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녀들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잘 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대학생 딸의 'LIFE GUARD'.
타인을 위한 배려와 도움의 작은 이정표이길 기도해 본다.
그런 생각과 자세로 각자의 인생을 뜨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2011년 2월 1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