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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님
요한복음 14:12~18
I.도입 :
보혜사 설교가로 평생을 살며 어떤 설교 주제는 못내 자신감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설교의 주제는 설교할수록 자신감이 넘칠 때도 있습니다.
가령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따뜻하게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가?
살아계신 성령님을 증거 할 때에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모하는 성령님에 관한 설교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제게는 대단히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들에게도 행복한 시간,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령론. 성령의 사역”에 관한 공부를 1년 두 학기 공부를 해 본 적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 공부를 해왔습니다.
제 서재엔 성령론으로 분류된 책이 100여권이 훨씬 더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두 기둥의 균형을 잡으려고 몸부림을 했던 내 목회의 여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부터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
성령론 설교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 성령님은 누구신가? 라는 주제의 첫 번째 설교 “보혜사, 성령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 가운데서 한 절만 남기라고 한다면 요절은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기 “보혜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본문 14장 1절부터 24절까지 24절 안에 성령님의 동행과 위로를 말씀하시며 성령이란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26절에 가서야 그 보혜사가 곧 성령님이란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신문에 등장하는 말도 아니고 문학작품이나 연속극 등에서 사용되는 말은 더더구나 아닙니 다.
일상생활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입니다.
교회에 와야 들어보는 보혜사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고대 중동에 재산이 많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부자에게는 바보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부부가 함께 죽으면서 그 많은 재산을 바보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재산을 관리해 주겠다고 들어온 청지기가 야금야금 재산 하나 하나를 자기 이름으로 다 빼돌렸습니다.
이 바보 아들과 나쁜 청지기가 법정에 섰습니다.
청지기는 문서 하나 하나를 들이대며 모든 재산이 자기 것임을 증명해 나갑니다.
그런데 정작 바보 아들은 판사의 질문마다 베베베베~~ 하면서 대답을 못합니다.
이때 재판장이 바보 아들에게 묻습니다. “너의 보혜사가 없느냐?” 여기서 “보혜사”는 너를 변호해 줄 사람이 없느냐?
네 아버지, 네 어머니를 대신해서 너를 지켜줄 사람이 없느냐?
네가 할 수 없는 이 위기 상황을 대신 맡아서 해결해 주는 지혜자가 없느냐?
이게 보혜사. 파라클레토스(paracletos)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바보 아들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영적인 문제에 바보가 되어버린 우리를 보호해 주시 고 하나님 앞에서, 세상에서, 그리고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변호해 줄 지혜의 영이 파라클레 토스(paracletos) 보혜사입니다.
II.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십시다.
성서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오늘 본문은 최후의 만찬 전후쯤 하신 생애 마지막 설교 말씀이 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조금 있으면 십자가에 달려 죽을 거야. 제자들이 얼마나 놀라고 걱정이 되었겠어요. 이때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아. 그리고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 하면 내가 다시 올 거야. 내가 아버지께로 가지만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와서 세상 끝날까 지 너희들이 어떤 일을 하든지 거룩한 일, 선한 일에 동행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능력으로 함께 할 거야. 이런 말씀을 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시작하면서 오늘 읽어드린 본문 12절에 참 귀한 말씀 한 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안 믿으려고 해도 저절로 믿어지는 참 이상한 믿음의 은사가 있습 니다.
못 믿을 말씀이 없어요.
그런데 딱 한 절 이 요한복음 14장 12절은 믿어지지가 않더라고요. 아니 도대체 내가 누군데?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내가 해. 그보다 더 큰 일을 한다니 이건 말도 안 돼. 그래서 제일 마지막에 믿었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속의 사역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세주는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이 말씀을 두고 혹 가소로운 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은 고작 오천 명 앞에서 설교를 했는데 자신은 매 주일 수만 명 앞에서 설교를 하니 이보다 더 큰 일이 아니겠느냐. 자랑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기껏해야 열 명의 나환자들을 한 번에 고쳤는데 자신은 병원을 세워서 수백 명, 수천 명을 고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일이 아니냐고 또 자기를 자랑합니다.
혹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은 팔레스타인에 갇혀서 말씀을 증거했는데 자기는 온 세계를 다니 면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이냐고 뻐깁니다.
오늘 본문은 감히 이처럼 건방을 떨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앞으로 성도들을 통하여, 제자들을 통하여 기독교의 선교역사, 교회를 통한 복음사역, 세상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사역이 얼마나 엄청나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격려하는 말씀이지 요.
그 일 또한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재주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아닙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잘 읽어 보면 두 가지의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 성령의 능력 이 두 가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자산이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어지는 14절을 보세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첫 번째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주 나시기 전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찬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병든 자가 낫습니다. 마귀가 두려워 떨며 떠나갑니다.
하늘 보화 창고가 열립니다. 택한 백성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즉시 시행하리라! 성도의 능력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입니다.
두 번째는 어떻게 이 일들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성령의 능력으로 이 일들이 우리를 통하여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선한 역사는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슬픔, 걱정에 잠긴 제자들을 위로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이어가면서 성령에 관한 주제 말씀이 네 번씩이 나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교회 시대는 성령 시대입니다.
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복음의 역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 지는 역사입니다.
구약에 수 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예수님 오신다.
메시야가 오셔. 두 번째로 마지막 날에 성령님이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신약의 수 많은 약속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예수님 다시 오신다는 것과 둘째 마지막 날에 성령님이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공통된 한 가지 약속은 마지막 날에 성령님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주의 영으로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이 임하면~
III.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시면 「하늘이 땅을 침노할 때」라는 책에서 빌 존슨은 현대교회와 성도들의 가장 큰 위기는 성령의 도움이 없어도 종교인으로 종교생활을 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서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성령의 도움없이도 물질, 문명, 과학이 발달해서 사는데 별로 어려움없이 살게 될 것이다.
이게 잘된 일이 아니고 신앙생활의 위기라 말하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종교인이 되어 살아가며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 권의 욕설 중에 성령받지 말고 예수 믿고, 성령없이 목회하라는 말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보혜사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paracletos)의 가장 정확한 번역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는 천국의 동행자”입니다. 본문 16절에서도 보혜사를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는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는 오리지널 동행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이 임마누 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데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다르다. 이 마이크와 이 책상이 다르다는 뜻의 “다른”은 “테테로스”입니다.
이 스피커와 저 스피커가 다르다 즉 같은 종류지만 다른 둘이란 뜻의 다른은 “알로스”입니다.
예수님이 보혜사이셨는데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셨는데, 각 사람에게 임하는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 알로스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가 마지막 날에 왜 필요한 것일까요?
첫 번째, 인간은 혼자의 힘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너도나도 죄를 범하여서 영적 까막눈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님이라 구세주라 부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네비게이션이 신통방통합니다.
제가 속으로 네이게이션 개발 자에게 노벨상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걸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천국 가는 네비게이션, 성령님 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할렐루야!
두 번째, 왜 천국 가는 동행자가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인간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단독자입니다.
이 세상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교인들이 있어도 영원한 영적 동행자가 없으면 외롭습니다.
우리에게 친구도 있고 교우도 있고 부부도 있고 부모도 있고 자식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구원받는 일은 단독자로 서는 것입니다. 아내 치맛자락 붙들고 천국갈 수 있는 사람 없습니다.
부모님의 천국 가는 불병거를 타고 자식이 천국 갈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죽음의 자리에 설 때에 그 자리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 손을 잡고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분, 죽음의 블랙홀을 지나 천국으로 인도할 때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시니 그가 성령님입니다. 세 번째, 이 땅에서 천국 가는 동행자가 파라클레토스가 필요할까요?
신앙생활하다 보면 우리 힘으로 안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무거운 짐이 너무 많습니다.
울어야 하는데 나와 함께 울어줄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때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이 바로 파라클레토스, 성령님입니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 있다면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입니다.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입 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능력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으시기 바랍 니다.
이렇게 성령충만이 귀한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이”라는 관상어가 있습니다.
어항속에서 키우면 5cm쯤 크는데 손가락만 하다고 합니다. 연못에서 키우면 한 뼘이 더 되는 25cm쯤 된다고 합니다.
강물에서 크는 고이는 1m가 된다고 합니다.
똑같은 “고이”인데 어디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크기가 달라지더라. 우리의 신앙도 어항 속에서 사느냐, 연못에서 사느냐, 깊은 강물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믿음 의 크기가 달라지는 겁니다. 축복의 크기가 달라지는 겁니다. 능력의 크기가 달라지는 겁니 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어항이 아니라 연못이 아니라 깊은 강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의 신앙생활이, 믿음의 능력이 깊은 강물에서 살아가는 충만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시기 전 초대교회 지도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제자들 은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죽는 자리까지 따라가겠다고 다니던 수 제자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총칼 앞에서가 아니라 심부름하는 여자아이 앞에서. 그게 인간입 니다.
그러나 오순절 다락방에 각 사람 머리 위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이 임하자, 바람같은 강력한 성령에 감동되어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흩어졌던 제자들이 돌아옵니다. 죽음 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를 뒤집어 놓습니다.
로마 제국을 이겨냈습니다. 교육을 다시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군가 수백억의 헌금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자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보혜사 성령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가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을지어다!
IV. 성령 하나님! 임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임재를 그토록 갈망하고 사모하십니까?
성령이 오실 때에 네 왕좌를 내어드리고 내 마음 중심에 왕좌를 내어드리고 그 분 앞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져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기 원하고 여러분을 축복하기 를 원할 때에 성령을 제한하지 않는 신앙의 고백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제가 교우들 가정을 심방하곤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느 정도 성 장될 때까지 목사의 주사역은 성도님들의 가정을 심방하고 교제하는 일들이었습니 다.
마두동 예배당 시절입니다. 젊은 집사님 한 분이 제가 찾아오더니 “저희 집에 심방 한번 해주세요.”
듣자하니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데 인생에 중차대한 문제에 부딪혀 있는 겁니다.
너무 걱정이 되니까 아내에게 그러더랍니다.
“당신 혼자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 교회 목사님이 와서 기도 한번 해 주시면 안될 까?” 그리하여 불신남편을 만나기 위해 가정 방문을 했지요. 집사님 눈이 빨개져서 예배 전에 간증을 합니다.
남편이 줄담배를 피우고 하루종일 술에 찌들어 있을 때가 많이 있었는데, 목사님 오 신다고 벽지를 새로 바르고 커텐을 바꾸고 거실에 진열되어 있던 양주병들을 모두 치웠답니다.
저는 지금까지 심방하고 신앙생활하고 목회를 해 봤지만 목사가 심방 온다고 벽지 를 갈아 끼우는 사람은 장로님 중에도 못 봤거든요. 커튼을 바꾸는 사람은 권사님 중에도 못 봤거든요. 집안에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그런 것들 갖다 버리는 사람 처음 봤거든요. 이 시간에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고,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된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성령의 임재를 위해 양주병을 갖다 버릴 용기가 있으십니까?
냄새나는 탐욕과 음욕과 분노와 미움과 용서치 않음과 더러운 것들로 우글거리는 내 심령의 것들을 십자가 밑에 쏟아놓고 하나님을 모시고 성령을 모실 수 있는 용기가 있으십니까?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 위에 성령님을 모시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은 단순한 능력이나 내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분이십니다.
천지우 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땅이 어둠 속에 있고 혼돈과 공허 가운데 있을 때 그분의 품 안에서 우주가 만들어졌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 시간에 고백하십시다.
성령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성령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의 주권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인치셔서 하늘나라 백성을 삼아 주신 분이십니다. 내가 성령님을 붙들어 큰 일을 하는게 아닙니다.
티끌같은 나지만 성령님이 나를 붙드시면,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죄를 이기고 질병을 물리치고 사탄의 권세 를 부셔뜨리고 기적을 행하고 은혜의 역사를 이 땅에 펼쳐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자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통달하고 아십니다. 그분은 내게 가장 선한 길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 내가 해결 해야 될 과제가 무엇인지, 지금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무겁기만 하고 엄중하기만 한 태산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나 때문에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나 때문에 슬퍼도 하시고 눈물도 흘리시고 고통을 겪으시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친히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선한 일을 계획 하시고 나를 위하여 선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넘치는 일들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
사사기에 삼손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인류역사 가운데 가장 힘쎈 사람이 삼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나귀 턱뼈 하나로 훈련된 군사 천명이 삼손을 잡으려 덤벼듭니다.
그런데 나귀 턱뼈 하나로 군사 천명을 몽땅 죽여버립니다. 군사 가 칼을 들고 덤비는데 나귀 턱뼈 하나로 싸워서 천명을 죽이는 장수 중에 장수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떠났습니다. 자기 힘으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인 줄 몰랐습니다.
여자의 품에서 머리카락이 잘려지고 성령이 떠나자 노예가 되어 눈이 빠졌습니다. 조롱거리 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사가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맷돌을 돌리고 있습니다.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기록한 비극적인 기록이 사사기 16장 20절 말씀입니다. “...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성령 떠나고 나면 눈 빠지는 노예가 되는 겁니다. 안 보이는 겁니다. 힘이 사라집니다. 직분 가졌다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이겠습니까?
어제 잘 믿었다고 성령 이 충만한 것이겠습니까? 성령으로 다시 한번 충만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오래전 경기도 이천에 한 교도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가페 재단이 설립한 소망 교도소로 바뀌어졌습니다.
이 교도소 안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검증된 프로그램 을 하나 하나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학교도 하고 알파코스를 진행했습니다. 한번은 우리교회가 알파코스를 진행하는 가운데 제가 성령수양회를 섬겼습니다.
수도없이 성령수양회를 인도해 왔지만 무기수, 장기수들을 대상으로 했던 교도소 성령수양회만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성경이 말하는 이적과 기사와 표적과 성령의 임재와 권능과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하도 많이 죽여서 사람 죽인 간증하는게 감옥 안에서 이 사람 직업이 되었 습니다.
이 사람이 사람 죽인게 죄라는 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니까 자기 가슴을 난 도질을 하는 겁니다.
죽은 영혼들을 향하여 미안한 마음과 가족들을 향한 통회 자 복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땅바닥에서 뒹굴고 뒹굽니다. 오색찬란한 죄라는 죄는 다 짓고 무기수가 그 곳에 들어왔습니다.
이 양반이 기도 하다가 방언이 터졌습니다.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두 다리를 버둥대며 두 손을 휘휘 저으며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본 역사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뜨거운 역사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정말 성령이 역사하기에 그곳이 적합한 장소입니까?
은혜받기에 적합한 사람들이 아니었습 니다.
성령이 임재하여 역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은 어떤 상황에도 방해를 받지 아니십니다. 인간의 약점에도 제한을 받지 아니하십니 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강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문제가 많기 때문에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게 어떤 분이 물을 것입니다.
1) 목사님 저는 신앙이 너무 어려요. 이제 교회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나 같은 사람도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럼요. 당신의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성령이 도와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거예요. 더 강력하게 오시는 거예요.
더 충만히 오시는 거예요.
2) 목사님 나는 아직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회개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속일 수 없는데 어떻게 해요. 나 같은 사람도 성령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당신 혼자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기에 성령이 오시는 거예요.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주시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3) 목사님 나는 지금 살아야 될는지 죽어야 될는지 내가 겪고 있는 이 문제가 너무 크기만 해요. 세상 누구도 도와 줄 사람이 없어요.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임재하실까요? 그럼요.
그 문제 해결하실 분이 하나님 밖에 없어서 하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당신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것입 니다.
믿으세요. 예수 이름의 권능으로 기도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믿으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 이 세상 살아갈 때 외롭고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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