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회_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여의도 증권가로의 외도
여러모로 나와 카페를 알려갔지만, 세상과 사람들에게 알려진 만큼 카페 운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차에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 다른 증권회사로 이직을 하는데, 팀을 새로이 조직하려 한다며, 혹시 함께할 뜻이 있는지 물었다. 마침 나도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그 제안이 달콤하게 들렸다.
그 당시 내게는 커피를 배우는 제자 겸 직원이 한 명 있었기 때문에 그가 주중 오전과 오후 영업을 혼자 맡아준다면, 나도 투 잡을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의도 증권가와 카페를 오가며 두 가지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잘하면 이번 기회에 여의도에서 돈을 벌어 살림살이도 나아지고 더 나아가 매장 확장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6시 여의도 증권회사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업무를 봤다. 그 후 미팅이 없으면 바로 카페로 이동해 정장바지와 흰 셔츠 차림으로 앞치마를 두른 채 밤 9시까지 커피를 추출하고 손님을 맞았다. 주중에 외부에서 커피 특강이라도 있으면, 그 복장 그대로 이동해 강의를 이어갔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카페에서 일했다. 그야말로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여의도 증권맨과 카페 사장 겸 바리스타로서 역할을 바꿔가며 치열하게 산 것이다.
증권회사에서 나의 주요 업무는 IBInvestiment Bank 브로커리지였다. 기업공개, 기업 매각 주선 등 여러 업무를 했으나, 대개 자금이 필요한 기업과 금융기관을 연결해주고 중개수수료를 받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고객사 담당자를 만날 때면 준비하는 것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더치커피였다. 커피를 선물로 주니까 다들 신기해하고 궁금해 했다. 내 전후 사정을 듣고 난 후 그들의 반응은 ‘내가 참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아마 그들 눈에는 증권회사가 나의 주업이고, 카페는 취미로 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어쨌든, 마케팅 수단 중 하나는 커피였다. 핸드드립 도구를 넣은 커피 상자, 가배함을 들고 가 본격적인 미팅을 하기 전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해 대접하면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한결 가볍고 밝아졌다.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들 흥미를 보였다.
나의 이런 마케팅 툴은 어느새 증권회사 대표님께도 들어가 임원 경영전략 회의 때 참신한 마케팅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여의도에는 지인뿐 아니라 대학 선후배들이 은행, 증권, 보험 등 각종 금융회사에 포진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후배가 커피를 매개로 여의도에서 모임을 하나 만들면 어떻겠냐며 제안해왔다. 그래서 만든 것이 ‘여의도 금융인을 위한 커피 교실’이었다.
알음알음으로 15명이 모였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11시 50분부터 12시 50분까지 한 시간 동안 모임을 가졌다. 내가 커피에 대해 강의하고 커피추출 시범을 보인 후 함께 추출 실습을 하는 모임이었다. 점심은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 가벼운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직접 추출한 커피로 음료를 대신했다. 서로 일하는 회사와 업무는 달랐으나, 커피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금세 가까워졌다. 다시 한 번 커피가 가진 매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커피 교실에서 만난 선배 덕에 다시 한 번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더 큰 증권회사로 이직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연봉이나 대우가 이전보다 좋았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업무 또한 내가 잘하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분야여서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투잡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서 카페를 정리하라고 했다.
내가 여의도로 다시 돌아온 것은 커피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커피를 더 잘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내게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커피였다. 여러모로 힘써준 선배께는 뭐라 말할 수 없이 죄송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여의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만 5개월 동안의 외도는 이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커피 팟 캐스트 <커피 읽어주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