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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한류 시대의 K-POP의 초국적 조건들
Transnational Conditions of K-pop in Post Hallyu(Korean Wave) Era
1. 왜 포스트 한류이고, 왜 K-POP이고, 왜 초국적인가?
한국 대중문화의 글로벌 빅뱅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했던 '한류'라는 기표가 국경을 넘어 아시아 권역
(region)에서 유령처럼 출몰한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직도 유효한가?
어떤 사람들은 한류가 애초부터 확실한 실체를 갖고 있지 않은 상상된 기표(imagined signifier)에 불과
하기 때문에 과거나 지금이나 문화민족주의를 대변하는 기표에 불과하다고 주장(Lee, 2007)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한류 열풍을 한민족의 수천 년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도약의 기회로 간주하고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을 만들자는 애국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Park, 2005: Hyun, 2004)
이와 반대로 한류를 문화산업의 도구로 보지 말고 동아시아 문화교통의 중요한 장으로 보자는 의견도
있다(Baek, 2005).
한류를 바라보는 외국의 연구자와 문화산업 관계자의 입장들도 다양하다.
한류가 미국의 문화 헤게모니에 대항할 수 있는 동아시아 권역 내의 새로운 문화적 흐름으로 긍정적으로
평가(Chen, 2001)하는가 하면, 한류, 특히 한국의 TV 드라마는 아시아 팝문화 권역 내의 불균등한 차이
들을 발견하고, 동아시아 내 대중문화의 흐름과 교환들이 어떻게 사회 정치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게 해준다고 평가한다(Chua and Iwabuchi, 2008).
저널리즘 진영에서는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은 한류의 파급 분야가 과거 드라마, 영화에서 지금은 대중
음악, 온라인 게임 분야로 확대되어 아시아 팝문화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일본에서 부는 한류 열풍이 일본 내 자이니치들의 차별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도
한다(Philip Brasor, 2004).
최근에 한국의 미디어들은 한류의 중심이 드라마에서 아이돌 팝으로 이행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류
의 문화적, 경제적 임펙트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2005년 이후 한류에 대한 해외 미디어들의 리포트들도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류의 문화현상과 문화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
은 한국의 대중문화의 '생산-유통-소비'의 시스템이 과거보다 더 강력하게 글로벌한 지위를 보유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한류를 하나의 문화담론으로 다루는 대상과 시각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초기 한류에 대한 담론은 해묵은 내셔널리즘의 논쟁을 대체한 것이었다.
미디어는 한국 드라마, 대중음악에 열광하는 아시아 팬들의 사례를 자극적으로 소개하면서, 오래 동안
미국과 일본의 문화 헤게모니 안에서 기생했던 한국의 대중문화가 마침내 자생적인 문화생산 체제와
서사를 가지고 아시아 전역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사들이 일부 한류 스타들을 향한 광적인 동아시아 팬덤 현상에만 집중하고 그 현상을 바탕으로
한류의 실체에 대한 근거 없는 평가를 내리면서 독자와 시청자들을 흥분시켰다.
정부는 한류를 지원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하는 대책 마련에 열중하면서, 2002년 이후 한국사회
에서 문화 내셔널리즘의 열기(fever)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흥미롭게도 2000년대 초중반 미디어의 상업 저널리즘에 큰 덕을 본 것은 한류 문화산업 종사자가 아니라
대학에 종사하는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주류 언론에 한류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글을 쓰고, 한류 진흥을 위한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몇 가지 현상에 대한 짜깁기 지식과 산업적 상황에 대한 직관적 판단으로 한류를 피상적으로
재단했다.
이러한 지적 비즈니스의 대가로 한국의 지식인들은 경제적, 상징적 이득을 얻었다.
물론 한류의 문화적 성격에 대한 객관적,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지식인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지식인들은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드라마 <겨울연가>와 <대장금>신드롬의 사례만을 놓고 한국 대중
문화의 국제적 위상, 산업적 전망, 그리고 범아시아 내 문화적 헤게모니의 역전에 대해 낙관적인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 낙관적인 결론에 대립해서 '한류의 종말'을 운운했던 비관적인 판단 역시 단순하고 피상적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초반 한류의 극단적인 현상들과, 객관적인 분석과 시각이 결여된 학술 담론들의 범람이 사라진
후에 한류의 문화적 성격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한국 대중문화의 국제적 정체성은 문화민족주의와 같은 담론의 논리보다는 문화산업의 논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분명하게 자리 잡았다.
실제 지난 10년 동안 한류 문화콘텐츠를 생산했던 문화 기업들이 집중했던 것은 글로벌한 문화산업의
경쟁 구도에서 얼마나 지속가능한 제작 시스템을 만드는가에 있었다.
그들이 실제로 원했던 것은 한류 문화의 생산만이 아니라 그것의 재생산이었다.
한국과 같은 국지적인 제약을 갖는 국가가 글로벌한 문화산업 체제 하에서 독자적인 재생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생산-유통-소비'의 순환 구조를 초국적인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한류 문화산업의 논리이다.
한류의 '문화열'(cultural fever)의 최 정점을 보여준 <대장금> 이후에 한국의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실제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려 했던 것은 바로 안정적인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초국적 체제였다.
초국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본의 규모를 늘리고, 킬러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생산하
며, 그 콘텐츠를 국지적 특성에 맞게 현지화 할 수 있는 배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대장금> 이후 한류는 과거보다는 좀 더 분명한 문화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고, 바로 이러한
점이 정서적, 이데올로기적 정서가 강했던 초기 한류의 지형과 다른 지점이다.
나는 이러한 한류의 새로운 변화의 양상을 '포스트 한류', 'K-POP', '초국적성'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설명
하고자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현재 한류는 담론-현상에서 자본-생산이라는 관점으로 이행했다는 점에서 '포스트 한류'
라 부를 수 있다.
즉 '포스트 한류'는 단순히 시기적으로 후기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류의 새로운 단계 혹은 한류라는
기표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제 한류라는 말은 글로벌 문화지형의 초국적 상황에서는 너무나 촌스럽고 유치하다.
국지적 대중문화들이 자유롭게 월경하는 시대에 한류는 지나치게 국적성을 내재화하는 언어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시아 각국에서 자유롭게 소비되는 상황은 오히려 한류라는 기표의 소멸을 요청한다.
그것은 마치 미국화가 제3세계 문화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발견했듯이 아시아 문화 지형 안에서 아시아
대중들의 일상적인 소비 콘텐츠로 이행하고, 한국의 문화기업들은 확대된 소비자들로 인해 자본을 축적
하는 현실에 대응한다.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한류라는 기표가 어떤 문화자본을 생산하는가에 있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한류'는 담론에서 자본으로의 이행, 생산에서 재생산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초기 한류 정체성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한국의 자본과 인력이 경쟁력 있는 문화 상품을 독자적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국적 시장에 유통시켜 차별적인 지위를 확보했다는 점에 집중했다.
그러나 현재 아시아 권역을 포함해 글로벌한 시장에서 한국 대중문화들은 대게 생산-유통-프로모션의
구조를 다국적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사전 제작 단계부터 시장의 공유를 위해 합작을 하는 경우도 많고, 감독, 배우,
제작사의 국적이 모두 다른 경우도 있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외국 국적의 멤버를 처음부터 오디션에서 캐스팅하기도 하고, 해외 진출의 경우 예외
없이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서 쇼 케이스, 방송출현, 음반발매를 프로모트한다.
이제 한류라고 부를 수 있는 대중문화 상품 중에서 순수하게 한국적이라고 한정할 수 있는 것은 쉽게 찾
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한류는 사실상 한류라는 기표의 소멸을 전제로 한다.
'K-POP'이라는 용어는 한류라는 기표의 소멸의 징후라 할 수 있다.
K-POP은 한국 대중음악을 글로벌한 지위로 번역한 것이다.
공식적인 용어로서 K-POP은 한국 팝음악(Korean Pop Music)의 약자로 사용되지만, 광범위하게 보자면,
한국의 대중문화 일반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 일반으로서 'K-POP'의 용어는 어떤 점에서 한류라는 기표를 대체한다고 볼 수 있다.
한류에서 K-POP으로의 이행은 현재 한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분야가 K-POP이라는 뜻도 있지만,
한류의 국지적 언표(utterence)가 좀 더 분명하게 글로벌한 언표로 교체되었다는 뜻도 있다.
'K-POP'은 한류의 초국적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용어이다.
사실 K-POP은 아주 최근에 한국의 대중음악을 국제적인 영역에서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한국 대중음악을 부르는 국지적인 용어는 가요(歌謠: Gayo)인데, 이 용어 대신에 K-POP을 사용하는 것
은 한국의 대중음악이 글로벌한 시장에서 차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예증한다.
그것은 과거 일본의 대중음악을 'J-POP'으로 명명하거나 홍콩의 대중음악을 'Canto-POP'으로 명명할
때처럼, 아시아 권역 내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이 독자적이고 초국적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K-POP이 범 아시아적인 팝스타인 '비'(Rain)의 열풍이나 최근에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의 인기를 언급할
때 동원되는 표상적인(representative) 용어라는 점에서 그것은 아시아 혹은 글로벌한 지형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을 통칭해서 부르는 기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K-POP은 한류의 초국적성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하면서 동시에 한류라는 오래된 용어를 해체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K-POP은 어떤 점에서 초국적이라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론에서
다루도록 하고, 여기서는 K-POP과 초국적성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세계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제1세계 팝과는 다르게 K-POP은 분명 국지적인 정체
성을 갖고 있다.
K-POP의 음악적 스타일, 기획과 제작의 특수성, 그것이 소비되는 방식은 국지적인 음악생산의 인류학적,
지리-문화적 특이성(geo-cultural specialty) 반영한다.
K-POP이라는 용어가 아무리 글로벌한 이미지로 사용된다 해도, 그것은 한국의 대중음악의 국지적 특이
성을 함축한다.
예컨대 'K-POP 차트'이나 'K-POP 특집'과 같은 말을 국내 TV 방송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정도로 K-POP
은 한국 대중음악을 대변하는 글로벌 기표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K-POP이 미적 생산의 독자성을 갖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저스틴 팀벌레이크, 어셔, 레이디 가가와 같은 미국의 팝음악
스타일을 참고해 국지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특정한 뮤지션들의 음악이나 가장 확실하게 국제적 경쟁
력을 갖추고 있는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으로 제한해서 지칭해야 할지도 모른다.
K-POP이라는 글로벌한 용어는 한국의 대중음악의 지형을 초국적인 상태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 상태는
한국 대중음악의 국지적인 조건을 전제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K-POP의 초국적성을 이야기할 때, 미국과 영국 팝의 글로벌한 성격과 구별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K-POP의 초국적성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필요와 상황에 의해 요청된 것이다.
그것은 국가의 지리적, 문화적, 인종적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어떤 목표와 당위성을 가진다.
K-POP은 자본의 재생산, 음악적 스타일을 생산하는 참고체계, 그리고 근대문화 형성의 식민지 유령으로
부터의 탈주를 위해서 분명한 소명의식을 소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목표의식이 K-POP의 초국적성에 대한 담론을 더욱 국지적이게 하거나 재국적화
한다(re-nationalize).
그러한 심리적 딜레마가 K-POP의 초국성의 무의식이다.
2. 글로벌 문화지형(The topology of global culture)에서 K-POP 양가적 위치
한국의『연합뉴스』(Yonhapnews) 2011년 2월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블룸버그TV의 시사
종합해설 프로그램인 <모노클>은 "'K-POP'은 왜 한국 산업의 가장 잠재력 있는 무기가 됐나"라는 제목
으로 한국 음악 시장을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삼성, 현대, LG는 한국 최대의 강력한 수출 브랜드지만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파워 브랜드는 보아, 소녀시대, 에픽하이, 슈퍼주니어 등 K-POP 가수들"이라고 전했다.
한국의 초국적 글로벌 기업으로 보통 삼성, 현대, LG를 거론하는데, 이 기업들 보다 K-POP 가수들이 더
파워풀한 브랜드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K-POP이 가장 뜨거운 한국의 글로벌 문화아이콘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K-POP은 한국 대중음악의 아시아화, 혹은 글로벌화를 명명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K-POP은 이제 '국지적으로 생산하고 글로벌하게 소비하라'는 슬로건에 부합하는 듯하다.
“한국의 음악 산업을 통해 생산되고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권역에서 소비되는 대중음악 및 그와 연관된
문화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국제적 고유명사”(Shin, 2005)라는 언급은 K-POP의 생산과 소비의 프로세
스가 동아시아 대중문화 안에서 경합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K-POP의 지리적 영향력을 위의 언급대로 동아시아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권력으로 확대
할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K-POP이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독립적인 음악 분야로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다른 문화적 권역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아이돌 그룹을 포함해 한국의 가수들의 국제적 인지도는 적어도 현상적이나마
동아시아 권역에 한정되지 않고 중동, 아프리카, 남미, 심지어는 미국과 유렵에까지 확대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 K-POP을 주도하는 아이돌 그룹들의 강력한 흥행 파워는 K-POP의 지리적 경계를 동아시아
에서 다른 권역으로 잠정적으로 확대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동아시아의 권역을 넘어서려는 K-POP의 초국적 사례들은 2008년에 한국의 어셔 혹은 저스틴 팀벌레이
크라고 불렀던 '비'가 미국 팝시장과 헐리우드 영화 시장에 소개되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2009년 '원더걸스'가 미국 아이돌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전미 순회 공연의 오프닝 게스트로
참여하면서 K-POP의 인지도를 높였고, 그 결과 히트곡 '노바디'가 아시아 출신 가수로는 드물게 빌보드
싱글차트 76위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JYP엔터테인먼트는 '원더걸스'를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미국 뉴욕에 매니지먼트
사무실을 열었다.
한국 미디어가 지나치게 과장되게 보도하긴 했지만, 2010년 9월 미국 LA 스테이플 센터에서 있었던
'SM TOWN LIVE' 이벤트에 상당히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참석해서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의 공연에 열광하기도 했다.
2011년 2월 26일에는 주한영국문화원이 개최한 제1회 런던 K-POP 행사에 영국의 청소년 400여명이
모였는데, 한국 미디어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이 빅뱅, 2NE1, 슈퍼주니어와 같은 한국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와 춤을 직접 따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이 미디어에서 곧잘 사용하는 ‘K-POP의 대공습'과 같은 자극적인 말로 확대 해석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든 K-POP과 관련된 해외 팬들의 반응은 동아시아 권역을 넘어서 여러 대륙으로 확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K-pop’이라는 국제적 기호로 번역되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아직 유동적인 현상에 불과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팝음악 시장에 가시적인 흔적을 남기는 사례들은 문화세계화의 양가적, 혼종적 흐름에 따른 것
으로 볼 수 있다.
문화세계화는 경제적, 정치적 세계화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양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문화세계화를 ‘문화적 미국화’의 전지구적 현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약화되면서 제3세계의 국지적 문화들이 부상하는 현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상반된 해석은 마치 정치적,
경제적 세계화를 바라보는 입장과 마찬가지로 양가성을 갖는다(Lee, 2009).
현재 세계화의 정치적, 경제적 구도는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과 재부상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정할 수 없는
복잡한 혼종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
문화의 세계화 역시 '문화적 미국화'와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이라는 상반된 담론들로 양자
택일할 수 없는 복합성을 갖고 있다.
문화적 미국화는 현상적으로 보자면 탈식민, 탈냉전 사회 이후에 미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 특히 제3세
계의 문화 안으로 내면화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문화제국주의에서의 종속과 지배와 다른 점은 그것이 국지적인 문화를 완전히 해체하기
보다는 글로벌하게 재구성하는 데 있다(Won, 2008).
제3세계 내에서 문화적 미국화는 미국의 영화, 대중음악, 스포츠, 드라마, 그리고 도시 라이프스타일이
그 나라 안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동시에 국지적인 문화 산업가들에 의해 그것들이 재 가공되어
국지적인 문화자원으로 변형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화는 현지화의 글로벌 문화 번역이다. 문화적 미국화의 대립적인 개념으로 간주되는 문화다양성
역시 미국화를 완전하게 배제하기보다는 그것을 내재적인 구성요소로 활용한다.
제3세계 문화다양성의 대안적 사례로 많이 언급되고 있는 월드뮤직(world music) 조차도 미국과 유럽의
팝음악에 영향을 받고 그 시장 안으로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 패션, 음식 등 국지적 대중문화 생산물들이 글로벌 문화 지형 안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국제적인 문화 소비의 대상이 된 것도 대게 미국화의 국지적 자원들을 활용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문화다양성은 문화적 미국화의 양면적인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글로벌 문화와 국지적 문화의 양가성은 '글로컬 문화'라는 혼종적인 문화로 번역된다.
그것은 세계화에서 문화의 탈구가 새로운 형태의 에스노 스케이프를 생산하는 것과 같다(Appadurai, 1996).
'글로벌 문화'라는 양가성의 관점에서 보면, K-POP은 가장 적절한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K-POP이 생산하는 음악적인 스타일, 뮤지션들의 패션과 춤, 그리고 매니지먼트의 시스템은 미국과 일본
의 팝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초기 K-POP의 글로벌 문화 지수를 높인 보아, 비, 이효리는 미국 팝 스타들의 스타일을 많이 차용했다.
예컨대 보아는 '한국의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는 '한국의 어셔'라는 수식어는 단지 은유적인 표현이 아
니라 실질적인 차용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비교는 국지적 흉내내기(mimicry)를 비꼬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거꾸로 K-POP 가수
들의 글로벌 지위를 역설적으로 인정하는 수사로 사용된다.
K-POP의 음악적 스타일은 비록 거의 모든 곡들이 국내 작곡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음악적 자원
들은 미국의 흑인 음악과 유럽의 테크노 음악에서 차용된다.
K-POP 가수들의 곡들이 가끔 미국과 유럽의 유명 뮤지션들의 곡들을 표절한 혐의를 받게 되는 것도
원곡 혹은 샘플링을 직간접적으로 차용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국내 주요 연예기획사 출신의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적 스타일도 독창적인 리듬이나 멜로디 라인을 보유
하고 있어도 대게 그 음악적 원천을 찾아가다 보면, 미국 팝음악에서의 힙합, 소울, 테크노 음악의 영향
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몇몇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들은 아예 미국의 작곡가들에게 곡을 의뢰한 경우도 있다.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 양식들은 국지적 음악 스타일이 강하게 드러나는 일본 아이돌 그룹의 음악에 비해
훨씬 글로벌한 스타일의 사운드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용에도 불구하고, K-POP을 제작하는 한국의 기획자들은 K-POP이 미국과 일본의 팝
음악의 아류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적 팝음악이 독자적인 제작과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의해서 생산되기 때문에,
시장으로서 자기 완결성을 갖는다.
또한 K-POP은 미국과 일본의 팝음악 뿐 아니라 유럽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적절하게 참고하면서 완전히 독자적인 음악적인 스타일을 창조해 낸다는 주장을 펼친다.
K-POP은 음악과 춤의 스타일에서 일본의 J-POP과 확연하게 차별화되고, 심지어는 1980년대 J-POP의
전성기를 대체할만한 독립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K-POP은 파워풀한 힘과 강한 멜로디, 그리고 댄서블한 리듬이 일본과 미국의 팝음악과 차별화하는 원리
라고 말하기도 한다.
K-POP의 구별짓기의 논리는 그것이 아시아 국가 내의 다른 팝음악과 공생하기보다는 경쟁하고 협상하는
일종의 ‘문화적 우세종’(cultural dominant)으로서의 지위를 선언하고 싶어 한다.
이제 K-POP의 양가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로 '보아'와 '비'의 음악 스타일을 분석해보자.
BOA의 국적은 분명 한국이지만, 그의 음악적 활동에 있어 주된 장소는 일본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음반 매장에서 BOA는 K-POP보다는 J-POP으로 더 많이 분류되어 있다.
BOA는 데뷔 초기부터 일본 음악 시장에 진출할 목적으로 장기적인 매니지먼트 계획 하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녀는 일본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일본인 가정에서 8개월간 생활하기도 했고, 일본의 최대 연예기획사 중
의 하나인 'AVEX'와 장기 계약을 맺었다.
초기 BOA의 곡은 몇 곡을 제외하고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전속 작곡가인 유영진씨가 주로 맡았지만, 이후
에는 다국적 작곡가들이 프로듀싱에 참여했고, 그녀의 패션 코디네이션과 프로모션은 전적으로 AVEX에서 담당했다.
따라서 BOA의 음악 활동은 일본의 현지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의 음악적 스타일이 완전히 J-POP의 성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BOA의 음악적 스타일과 문화형식들이 한국적인가, 일본적인가, 아니면 미국적인가하는 질문은 단순히
특정한 가수를 복제하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BOA가 일본화한 아이돌 팝스타라는 점에서 일본 여성 아이돌 팝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아무로 나미에와
하마사키 아유미의 스타일을 복제하거나 모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음악과 패션 스타일은 일본 여성 솔로 가수들보다는 미국의 팝 걸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BOA를 브리트니 스피어스 류의 아이돌 팝스타로 계열화하기에는 정서적 거리감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BOA가 음악적 스타일이나 문화적 정서에서 서양의 팝 스타일에 더 가깝다 하더라도,
실제 그녀가 활동하는 매니지먼트 체계 속에서는 아시아적 친밀도가 더 강력하다는 점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김영민 대표의 언급을 잠깐 참고해 보자.
일각에서 BOA가 아무로 나미에나 하마사키 아유미를 모방했다고 말하는 데 그것은 사실과는 다릅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BOA가 데뷔할 당시에는 하향세였고, 하마사키의 경우에는 춤에서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15살에 데뷔한 아무로나 17살에 데뷔한 하마사키는 데뷔 당시를 상기하면, BOA에 비해 춤의 파워가 떨어집니다. BOA는 서구의 팝음악을 아시아화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일본은 단지 그렇게 가기 위한 무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벤치마킹을 한 것이라면 제작과정 단계에서 브리트니를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입니다(Lee, 2006:228).
한국 국적으로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동시대 J-POP의 중요한 아티스트이자, 음악적 스타일은 미국
팝 걸의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차용하는 BOA의 문화 정체성은 분명 혼종적이다.
그것은 마치 인도의 탈식민주주의자 호미 바바(Homi Bhabha)가 말한 미미크리의 욕망, 즉 “거의 동일
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는 차이를 가진 주체로서의 타자를 욕망"(Homi Bhabha, 1994:178)한다.
BOA의 양가성은 K-POP의 주체, 장소, 스타일의 혼종 문화를 생산한다.
K-POP 음악적 생산과 소비의 양가성은 범 아시아적 인기를 얻고 있는 비의 음악 스타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비는 한국의 솔로 가수로는 가장 범 아시아적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2005년 7월 동경 국제포럼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10월 8-9일 홍콩투어, 24일 북경공연, 12월의 대만
공연, 그리고 2006년 2월 방콕 공연에 이르기까지 비는 모든 공연을 매진시키며 아시아 각국을 가로지
르는 최고의 팝스타로 부상했다.
2005년에 ‘MTV Asia Aid 최고 인기가수상’, ‘MTV Music Award Japan2005’ 아시아 한국가수상,
‘만다린 뮤직 어워드’ 최우수 한국가수상 등을 휩쓸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아시아 팝스타로 성장했다.
아시아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비는 2006년 2월 뉴욕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팝과 할리우드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비와 그의 전 제작사인 JYP엔터테인먼트는 K-POP 가수들 중에서 가장 먼저 아시아 시장을 넘어서
글로벌 시장을 꿈꾸는 인물로 평가할만하다(Shin, 2009:508).
그렇다면 K-POP의 글로벌 확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비의 음악적 스타일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비의 음악적인 스타일은 소속사를 옮기기 전까지는 제작자인 박진영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박진영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흑인음악의 리듬과 스타일을 기본으로 한다.
박진영은 미국에서 프로듀서로 인지도를 높인 후에 한국의 라디오 방송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적인
뿌리는 1950년대 말에 시작한 ‘모타운 레코드’(Motown Record)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했다.
알다시피 ‘모타운 레코드사’는 소울과 블루스 사운드를 바탕으로 흑인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가장 막강한
음악 레이블 회사이다.
'더 슈프림스'(The Supremes),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라이오닐
리치(Lioneill Rich) 등 시대를 풍미한 흑인 음악가들은 대부분 모타운 레코스사 소속이었다. 비의 음악을
작곡, 작사, 제작하는 박진영의 음악적 스타일이 비이 음악에 가미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박진영은 자신의 펑키한 음악적 사운드와는 다르게 비의 경우에는 모타운 소속 뮤지션들의 음악적 원류인
소울리듬에 힙합적인 비트를 부여한다.
비의 음악, 가령 그의 히트곡인 “나쁜 남자”, “태양을 피하는 방법”, “I DO", "Rainism"과 같은 곡들은 기본
적으로 소울리듬을 바탕으로 블루스와 힙합적인 요소들을 가미한다.
모듈레이션이 강한 리듬엔블루스와 댄서블한 힙합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한국적 팝의 주류 형식에 비해 비
의 음악적인 원천은 오히려 흑인 소울음악에 토대를 두고 있다.
따라서 K-POP의 유행형식으로서 비의 음악은 흑인 소울음악의 한국적인 변형, 특히 그루브한 비트가 가미된 힙합적인 사운드를 접목하면서 한국적인 팝음악으로 변형한 사례이다.
비의 음악은 J-POP에 많은 영향을 받은 보아와는 다르게 일본화된 팝음악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곧바로 미국의 주류 팝을 한국적으로 변형했다.
아시아 음악팬들이 비의 음악을 들으며 낮 설게 느끼지 않고, 동시에 미국 팝의 전형으로 동일시하지 않는
이유는 비의 음악이 바로 미국의 주류 팝 형식을 차용해서 한국적인 음악으로 번역해 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용에 대해 미국의 팝 음악 전문가들은 그의 음악적 퍼포먼스에 대해 미적으로 진부한 복제 수준
에 머물렀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가 하면, 반대로 새로운 문화적 융합의 현상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Shin, 509)
흥미로운 것은 범아시아 팝스타 비를 통해서 K-POP의 양가성이 음악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고 신체적
혼종성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이다.
비의 섹시한 신체와 화려한 퍼포먼스는 아시아 권역의 여성 팬들이 열광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비의 신체적 특이성은 기존의 아시아 남성 팝스타나 미국의 남성 팝 스타들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홍콩 연예산업 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비는 순수하고 순진무구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건장
하고, 강력한 파워를 겸비한 몸을 겸비하고 있어 이중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기존의 장국영, 류덕화, 여명 등 유명 홍콩스타들의 이미지가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준 것과는
다르게 비는 그러한 순수한 이미지를 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홍콩 스타들에게는 발견되지 않은 강력한
남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2005년 이후 비의 아시아 투어 콘서트는 이러한 비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잘 짜인 뮤직 쇼를 연출했다.
2005년 홍콩 공연 내내 비는 의상을 찢고 벗는 섹슈얼한 예식을 반복했고, 강력하고 현란한 댄스실력과
함께 온 몸으로 비를 맞는 장면, 공중에서 활강하는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와 동시에 하얀 풍선을 날린다든지, 여성 관객을 무대로 초대한다든지, 자신의 가족에 대한 내용을
연출한다든지 하는 낭만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순수함 모습도 동시에 보였다. 비의 신체적인 장점은 평상
아시아인들이 모방할 수 없는 서양 팝가수들의 신체적 골격과 역동적인 춤을 선이보이면서 이들이 표현
할 수 없는 동양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센티멘탈리티’라는 이중적인 스타일은 서양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양가적 이미지를 아시아
팬들에게 각인시켜주는데, 이것이 그의 노래 제목대로 “나쁜남자” 비의 비밀이다.
성적으로 업필하는 근육질의 신체를 보유하면서도 미소년적인 외모를 가지고 동양적인 겸손한 마인드를
겸비한 비의 양가적 이미지는 아시아 국가의 여성 팬들을 강력하게 흡인하는 요인이 된다.
비로 표상되는 K-POP의 양가적 특이성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한국 아이돌 그룹들의 초국적인
스타일이다.
3. 아이돌 팝의 초국적 현상들
"한국의 아이돌 팝은 그 자체로 K-POP"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 대중음악의 독점적인
지위에 위치해 있다.
아이돌 팝의 국지적인 독점력은 초국적 이행의 물적인 토대(material base)가 되었다.
만일 한국에서 아이돌 팝의 문화자본이 강력한 독점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면 글로벌한 확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아이돌 팝이 국지적인 소비를 넘어서 국제적 흥행을 일으키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아이돌 팝의 초국적 조건들은 국지적인 물적 토대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한 재생산이 서로 순환하
면서 형성되었다.
아이돌 팝의 음악 스타일,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국적, 한국 아이돌 팝에 열광하는 다국적 팬덤, 그리고
아이돌 팝을 제작하는 튼튼한 글로벌 시스템이 아이돌 팝이 초국적화하는 데 중요한 조건들이다.
그렇다면 아이돌 팝의 초국적 조건들은 어떤 함의들을 갖는가?
가장 먼저 혼종적인 음악 스타일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아이돌 팝의 음악 스타일은 미국의 힙합이나 유로 테크노에서 차용한 것이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복제하지 않기 때문에 국지적인 특이성을 지닌다.
한국 아이돌 제1세대 그룹의 첫 주자인 'H.O.T.'는 랩과 댄스를 바탕으로 1990년대 말 유행하던 랩-코어
풍의 반항적인 노래를 부르다가 몇몇 후속곡에서 밝고 명랑한 유로 테크노풍의 노래를 선보였다.
H.O.T.와 같은 시기에 라이벌 그룹으로 활동한 '젝스키스'(Sechs Kies) 역시 힙합 음악에 바탕을 두되,
전형적인 흑인 힙합이 아니라 상당히 한국적인 디스코 &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혼합했다.
이들 이후에 등장한 '신화', '동방신기', '샤이니', '빅뱅' 등과 같은 남성아이돌 그룹들은 힙합 음악에 기반
하면서도 각기 다른 음악 스타일을 혼합해 일종의 혼종적인 사운드를 탄생시켰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걸 그룹들도 음악의 토대는 미국의 힙합과 유럽의 테크노에 있지만, 그 안에 다양
한 음악적 자원과 특정한 시대에 유행하던 음악 형식을 버무려서 변종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아이돌 팝은 확실하게 미국적이지도, 그렇다고 본원적으로 한국적이지도 않은, 그야말
로 혼종적인 음악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아이돌 팝, 특히 걸 그룹의 음악 스타일은 일본 고유의 엔카 멜로디를 차용하거나, 일본풍의 펑키
한 록 비트나 스피드 메탈 사운드의 샘플링을 더러 사용해 일본 특유의 국지적인 사운드를 느낄 수 있게
차별화한다.
반면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음악 스타일은 대체로 강렬한 댄스 비트와 파워풀한 랩 플로우, 때로는 난해한
일렉트로닉의 요소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아이돌 팝에 비해 음악적인 국적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음악 스타일만 놓고 보면 한국의 아이돌 팝이 일본이 아이돌 팝보다 훨씬 글로벌한 사운드와, 국적의
정체성도 불분명한 초국적인 이미지들을 생산한다.
두 번째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다국적화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이 1990년대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미국 국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에는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 교포뿐 아니라 중국, 태국 등 아시아 현지
국적을 가진 10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예컨대 지금은 탈퇴했지만 '슈퍼주니어'로 활동하던 한경을 비롯해 '미쓰에이'의 지아와 페이는 중국 국적
을, '2PM'의 닉쿤은 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현재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 나라와 미국 등에서 오디션을 진행한다.
한국의 메이저 연예기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을 선발하기 위해 1년에
5만 명 정도를 오디션을 보는데, 이중에서 해외 현지에서 오디션을 보는 곳은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를
포함해 10개 도시가 넘는다.
한국 연예기획사들은 15년이 넘는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아이돌 스타를 발굴하기 위해 국제적인 오
디션 시장을 운영하면서, ‘현지화’ 전략으로 아시아 권역의 아이돌 스타를 캐스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다국적화 경향은 시장 공략을 위한 임의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케이 팝의 초국적화
현상에 기인한 것이며, 한국 아이돌 팝 제작 자체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아시아가 언어 장벽에 막히지 않고 문화적 소통이 자연스러워진 상황과 맥을 같이한다.
특히 아이돌 팝에서 언어 문제는 가창이 포함되는 다른 대중음악 장르에 견줘 결정적인 제약이 되지 않으
며, 아이돌 팝의 연예 제작 시스템 안에서 대안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아이돌 팝을 좋아하는 팬덤의 초국적 현상이다.
아이돌 팝은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폭넓은 지역에 걸쳐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K-POP의 초국적성을 대변한다.
SM엔터테인먼트의 '슈퍼주니어'는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 팬이 더 많다.
현재 기획사와의 계약 문제로 이전의 팀으로는 활동하지 않는 '동방신기'의 가장 큰 팬 사이트인 '카시오
페아'는 공식 회원 80만 명을 보유해 2008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동방신기의 팬덤은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모든 대륙에 걸쳐있다.
동방신기의 해체가 공식화되자 2009년 10월 다국적 팬들이 만든 유튜브 동영상 팬송 ‘Don't Say Goodbye’에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미얀마 같은 아시아 나라뿐 아니라 영국, 독일, 그리스, 오스트리아
같은 유럽 나라, 미국, 페루 등 아메리카 대륙의 팬들이 참여했다.
2008년에 '원더걸스'가 미국 팝시장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상반기부터 '소녀시대', '카라', 애프터 스쿨' 등 한국의 걸 그룹들이 해외에 진출하자 이들을 좋아하는 다국적 팬 역시 남성 아이돌 그룹 못지않게 늘었다.
이제 한국 아이돌 그룹의 팬덤은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들이 누려온 것 못지않게 아시아 권역을 넘어서 국제적인 지지층을 형성하는 중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이돌 팝을 둘러싼 문화의 지형이 초국적화하고 있는 상황과 달리, 한국에서 아이돌
팝과 관련된 사건들은 한국이라는 지리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영토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한국 아이돌 팝의 음악 스타일이 혼종적이고, 출신 멤버들이 아무리 다국적이고, 팬들도 '탈한국화', '탈아시아화'해도 아이돌 팝과 관련된 문화 현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문화 내셔널리즘의 장
안에서 배회한다.
예컨대 2PM의 박재범 사건에 관한 팬덤과 안티-팬덤의 논쟁, 슈퍼주니어 한경의 탈퇴에 관한 중국 팬덤과 한국 팬덤 간의 복잡한 대립, 걸 그룹의 일본 진출과 호응에 관한 미디어의 과장된 대서특필의 이면에는
아이돌 팝의 초국적 조건들을 재-국적화하는 문화내셔널리즘의 무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것은 한류의 탈국적 현상들을 오히려 문화 내셔널리즘의 입장으로 번역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며,
또한 아이돌 팝의 초국적 ‘생산’을 내셔널리즘으로 ‘소비’하는 한국 대중과 미디어의 독특한 반응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다국적 팬덤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거나, 쇼 케이스나 공개 녹화처럼 스타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기획
사에서 다국적 팬들을 지나치게 먼저 배려한다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국적 팬덤에 우호적인 한국 팬들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스타와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는 민족주의적 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K-POP 스타와 관련된 사건들 중에서 한국의 국가적 특성에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면 일반 네티즌
들은 엄격한 내셔널리즘의 잣대를 들이댄다.
물론 그런 반감이 개인들의 사회적 좌절감을 해소하고 싶은 과장된 반응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
로는 내셔널리즘의 원초적 감정이 그 안에 숨어 있다.
아이돌 팝의 성격상 초국적일 수밖에 없고, 단일 국가의 국적성이라는 논리로 이해될 수 없는 예외적인
현상들이 가끔씩 발생할 때도 한국 네티즌들은 여지없이 내셔널리즘의 배타성을 드러낸다.
‘초국적인 현상들이 재국적화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3세계에서 출발한 케이 팝, 또는 아이돌 팝의 국지
적 특이성이다.
4. K-POP은 지속가능한가? -한국 문화자본의 딜레마
K-POP의 초국적 조건들은 서로 인과론적인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 제작 현실은 국지적인 비즈니스로는 생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량 자본의 투자가
필요하다.
연예제작사가 투자한 자본 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제작 초기 단계부터 해외진출을 기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아이돌 팝 중심으로 대중음악 산업이 재편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돌 팝을 제작하는 자본과 경험이
집중적으로 축적되었다.
일본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아이돌 그룹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지 않은 것에 비해 한국 아이돌 그룹이 국내 음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인력과 자본 미디어가 집중하는 아이돌 팝의 제작에서 한국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K-POP의 제작 상황이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형성된 K-POP의 문화자본은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적인 한계로 인해 언제 소멸할지도 모르는 위험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K-POP의 제작 시스템이 지나치게 아이돌 팝 중심으로 독점적이고, 제작 프로세스가 투명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아이돌 팝의 제작 현실 어떤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가?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이돌 그룹들의 불공정한 전속 계약 문제이다.
대체로 아이돌 그룹들이 그러하듯, 이들이 소속사와 계약이 이루어지는 시점은 10대 시절이 경우가 대부분
이다.
아이돌 문화의 경제적 호황으로 수요-공급 사이의 균형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월적 지위에
있는 당사자는 제작자이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스타급 아이돌 그룹들보다 앞으로의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연예인과 기획사 간의 전속 계약에서 법적인 대리인이 데뷔 시절부터 참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연습생 시절 전속계약은 사실상 기획사의 주관적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장래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습생 시절에 계약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계약의 내용들은 압도적
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시작된 최초의 계약관계가 데뷔 후에 일정한 인기를 얻고 더 이상 연습생 신분에서 벗어난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점이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맺어진 불리한 계약이 일정한 성공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적용되다보니, 아이돌 그룹들과 소속연예기획사 간에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고의 아이돌 그룹인 '동방신기'와 최고의 인기 걸 그룹 중의 하나인 '카라'의 멤버들이 최고의 전성기 때
탈퇴와 분리를 하는 것도 모두 불공정한 계약 관행 때문이다.
둘째, 연예제작 자본 형성의 변화와 그에 따른 구조화된 문화자본의 커넥션 문제이다.
한국의 연예자본은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문화관행과 불공정한 커넥션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문화산업 자본과 엔터테인먼트 자본이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양성화되기 어렵다는 증거
이다.
연예기획사의 봉건적인 계약관행, 방송사와의 부적절한 공생관계, 주식 가를 높이기 위한 연예기획사들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연예-제조업’ 자본의 통합 등은 한국 문화자본의 구조적 폐해를 심화시키는 주요인
들이다.
따라서 한국의 연예 문화자본은 금융자본과 밀접한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데, 연예매니지먼트의 구조상
이러한 금융 커넥션은 연예기획사 간의 치열한 주도권 전쟁을 낳으면서 기획 사간의 전략적 인수합병,
소속사 이적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주식 가를 높이기 위한 연예 프로모션의 부적절한 관계가 형성된다.
일례로 2002년, 2007년에 터진 가요계 피알비 사건은 부적절한 연예프로모션 방식에서 연계기획사와
방송사 간의 새로운 커넥션을 보여주었다.
2002년 가요계 피알비 사건을 통해서 연예기획사는 주식상장을 목표로 소속연예인들의 집중적인 방송
노출을 요청하면서 방송 피디들에게 현금이나 차량을 제공하던 과거의 방식과는 다르게 상장을 전제로
한 주식공여 혹은 상장된 주식 거래를 제공한다.
주식을 보유한 방송 피디들은 자신의 주식 가를 터높이기 위해 거래한 기획사의 연예인들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에 독점 출연시키고 이 과정에서 연예자본과 방송제작진 사이에
돈독한 공생관계가 유지된다.
드라마제작의 경우 최근 대형 외주 제작사들이 생겨나면서 방송 콘텐츠를 매개로 직접 혹은 우회 상장을
하고 있는데, 전직 드라마 PD출신들이 외주제작사의 대표나 이사로 이동하면서 방송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이러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2009년 초 지상파 방송사 예능국의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금품수수로 검찰에 구속되었는데, 이들 대부
분이 코스닥에 상장된 연예기획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아이돌 팝의 연예제작은 단순히 매니지먼트 매출 자본으로만 산출되지 않는다.
아이돌 팝은 실제적인 경제적 이익뿐아니라 상징적인 자본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무형의 자산을 취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이돌 팝과 연계된 주식자본이다. 연예제작사의 수익구조의 최종 지점은
연예제작을 통한 순 매출을 토대로 안정적인 기업으로 인정을 받아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이다.
아이돌 스타들의 인지도는 코스닥 상장을 위해 적절한 기회요인이 되고, 이들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투자
자를 구해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은 아이돌 팝의 연예제작과 주식자본이 결합하는 전형적인 형태이다.
2008년에 한국 아이돌 팝 매니지먼트의 선두주자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이 범아시아 한류스타
배용준을 제치고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최고의 주식보유자가 되었다.
이수만 회장이 보유한 ‘SM엔터테인먼트’의 총주식가는 191 여억 원으로 배용준과 가수 ‘비’를 제치고
엔터테인먼트 계의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2010년에는 '소녀시대'를 위시해서 소속 아이돌 그룹의 인기로 그의 주식 가치는 무려 1000억 원까지
올라갔다.
최근에 JYP 엔터테인먼트는 가수와 비와 재결합을 했는데, 이는 이미 상장을 마친 비의 소속사 제이튠
엔터테인먼트와의 합병을 통해 JYP가 우회 상장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돌 팝 연예제작의 불안정한 재정 구조를 언급할 수 있다.
아이돌 연예제작은 모두 투자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은 거위는 아니다.
아래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대표적인 연예기획사들의 영업이익을 보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연예매니지먼트사인 예당은 2008년에 324억의 영업적자를 보았고, SM의 경우에도 2007년
에는 37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외형적으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수치이지만, 연예제작의 고비용 구조와 투지 위험요소의 가중, 그리고
무리한 신규 분야 투자출자 등이 주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연예기획사들이 영업 적자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제작을 하는 이유는 슈퍼스타와 킬러 콘텐츠를 제작할
경우 단 순간에 적자를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 팝의 연예제작이 최근에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연예제작의 킬러 콘텐츠에 대한 대박 기대심리는 누구나 갖고 있는 원초적인 욕망이다.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K-POP의 문화자본이 초국적인 비즈니스 시스템과 팬덤을 보유하고 있어도
이러한 내부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가 어렵다.
투명하지 않은 K-POP 초국적인 상황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에 위협을 줄 뿐 아니라, 이미 거대해진
제작 체계의 몰락을 예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K-POP의 지리적 환경은 초국적인데, 실제 제작 시스템이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K-POP은
일시적인 국지적 팝문화의 유행으로 끝날지 모른다.
K-POP의 인적 자원과 매니지먼트 시스템 사이의 부조화는 어쩌면 K-POP의 운명을 가늠하는 데 있어
가장 실제적인 지점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K-POP의 운명은 제작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에 있는 것이 아닐까?
Notes
1. <뉴욕 타임즈>는 2005년 6월 25일자 기사("South Korea adds culture to its export power")에서
역사적 중국와 일본의 문화적 지배를 막아내는 데 힘겨워했던 한국이 지금은 아시아 팝문화의 리더로
등장하고 있다"
(South Korea, historically more worried about fending off cultural domination by China and Japan
than spreading its own culture abroad, is emerging as the pop culture leader of Asia),
잘 꾸린 드라마에서 매끄러운 영화에 이르기까지, 팝음악에서 온라인 게임까지 한국의 기업들과 스타들은
서로 이질적인 아시아 사람들이 듣고, 보고, 즐기는 콘텐츠들을 갈수록 더 많이 결정해준다
(From well-packed television dramas to slick movies, from pop music to online games, South
Korean Companies and stars are increasingly defining what the disparate people in East Asia w
atch, listen to, and play)고 보도했다.
2. 대표적인 보도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The Korean Wave'(The Seattle Times, June 4, 2006), 'Riding
the 'Korean Wave'(The Wall Street Journal, May 19, 2009), 'Korean Wave' of pop culture sweeps
across Asia'(CNN, December 31, 2010).
미국의 한류에 대한 보도는 대부분 식민지 근대와 산업화 시대에서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이 어떻게 대중
문화로 일본과 중화권 국가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영화, 대중음악, 드라마, 게임 등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종사자들이 정부의 한류 지원 체계를 위한 자문
회의에서 가장 많이 요청한 것은 해외 판매와 배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각국별 문화산업 비즈니스
매뉴얼이었다.
4. 문화다양성의 공식적인 용어는 2005년 10월에 채택된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에 기반을 둔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은 미국의 문화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해 캐나다, EU,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제3세계의 고유한 문화유산과 언어의 보호, 대중 문화산업의 독점 해소, 정보
문화 격차의 해소 등의 내용 등을 담고 있다.
5. '미미크리'하는 용어는 탈식민주의 이론가 호미 바바(Homi Bhabha)의 용어를 참고한 것이다.
특히 이 글에서는 식민자의 흉내내기가 차이를 생산하면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을 참고했다.
(Homi Bhabha, 1994)
6. 표절혐의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K-POP 가수가 이효리이다.
아래의 곡을 참고하라.
"I'm Back"(Lil Precious-"So Insane"), "How did we get"(Jason Derulo-How Did We), "Get ya"
(Britney Spears, "Do Something").
물론 최근에는 K-POP 가수들의 곡들을 외국의 뮤지션이 표절한 사례도 많다.
7.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들은 초기에는 회사 소속의 전속 작곡가들이 담당했지만,
지금은 수많은 국내외 작곡가들로부터 받는다.
SM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싱 사업 부문 박준영 부문장의 언급에 따르면, SM의 음원 수급은 국내 작곡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팝 시장에서 공급받는다.
국내외 작곡가들로부터 주당 50-200곡, 연간 2천-3천곡을 받으며 2008년부터 현재 7천-8 천곡의 데이
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 작곡자들은 미국 영국뿐 아니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유럽 작곡가들의 곡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소녀시대의"Run Devil Run"는 Busbee(미국), Alex James(영국), Kalle Engstrom(스웨덴)이 공동으로
만들었고, 동방신기의 "Mirotic"은 덴마크 출신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Remee가 만들었는데,
이 작곡가는 보아의 미국 진출 곡 "Eat you up"과 샤이니의 "Love Like Oxygen"을 작곡했다.
8. 다음의 인용문을 보자. "K-pop은 ‘지역화된 지구문화’라는 일반적 성격을 넘어 아시아 역내 문화교통
의 주요 구성요소로 편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내 문화교통의 부지(site)에서 대화와 경쟁과 협상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의 변형, 혹은 재
작동이 현 단계에서 K-pop의 문화정치의 핵심일 것이다(Shin Hyun Joon: 9).
9. 2005년 10월 홍콩에서 벌어진 비의 아시아 투어 공연 “It's Rainy Day"에 모여든 2만여 관객들은 비단
홍콩 팬들만은 아니었다.
홍콩 컨벤션 센터를 가득 메운 비의 팬들은 ”Rain in Hong Kong", "Rain in Taiwan", "Rain in Thailand", "Rain in Japan", "Rain in China", 그리고 "Rain in Korean" 등 10여 개국이 넘은 아시아 각국에서 온 팬
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국적이 적힌 피켓을 들고 비의 공연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10. 이후부터 3장의 전체의 내용들은 2011년 4월에 출간할 『아이돌: HOT에서 소녀시대까지』에 실릴
필자의 글 <아이돌 팝이란 무엇인가-징후적 독해> 중에서 "아이돌 팝의 초국적성"이란 장의 원고를 대폭
수정해서 쓴 것임을 밝힌다.
11. H.O.T는 'High Five of Teenagers'의 약자이며, 아래 등장하는 젝스키스는 독일어로 6개의 수정이
라는 뜻이다.
12. 한국의 다른 걸 그룹과는 달리 소녀 하위문화의 스타일은 표방한 '2NE1'의 데뷔곡 "Fire"는 힙합과
일렉트로닉한 사운드가 믹스되었을 뿐 아니라 중간에 인도 풍의 월드뮤직 사운드도 조합해 혼종적인
리듬을 생산한다.
13. 한국의 걸 그룹과 일본의 걸 그룹들은 음악 스타일의 차이뿐 아니라 그룹의 프로모션 이미지, 의상,
안무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의 걸 그룹들이 섹시한 이미지를 표상한다면, 일본의 걸 그룹들은 규트한 이미지를 표상한다.
소녀시대, 브라운 아이드 걸스, 애프터 스쿨 등 한국 걸그룹의 바디 액션이나 패션 스타일이 섹시한 쇼걸
을 상상하게 한다면 큐트, 베리즈코보, AKB48과 같은 일본의 걸 그룹들은 주로 교복, 루즈 삭스와 같은
귀여운 소녀 이미지를 생산한다.
14. '2PM'의 리더인 박재범은 미국 시애틀 교포출신 비보이로 반항적인 이미지와 탁월한 춤 실력으로
가장 많은 팬덤을 보유했다.
그러나 어느 네티즌에 의해 그가 데뷔 초기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비하발언을 미국 사이트에 게시한 것
이 밝혀지면서 '성공한 미국 교포 청년'의 인간성을 놓고 한국 네티즌들 간의 커다란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 후에 박재범은 2PM을 탈퇴해서 미국으로 돌아갔고, 현재는 메이저 연예기획사인 '사이더스
HQ'와 계약해 솔로로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방송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15. '슈퍼주니어' 13명의 멤버 중 유일한 중국 국적을 가진 한경은 2009년 말에 전속 계약기간이 부당하게
너무 길며, 소속사가 질병으로 인한 휴식요청을 거부하고 쉴 시간도 없이 활동을 시켰다는 이유로 팀을
탈퇴했다.
이 사건을 두고 중국의 미디어는 한경의 탈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 아이돌 제작의 야만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심지어는 중국 일부 미디어는 한경의 탈퇴가 같은 소속의 걸 그룹이었던 '소녀시대'의 멤버들에게 심한
모욕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하면서 중국 네티즌들의 반한 감정을 자극했다.
흥미롭게도 중국 네티즌들은 반한 감정에 대부분 동의했지만, 슈퍼주니어의 열성팬들인 중국 '엘프' 팬덤
일부는 오히려 한경의 결정이 경솔했고, 우리는 슈퍼주니어의 한경을 지지하지, 중국인 한경을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경의 탈퇴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한국 팬덤과 오히려 그것을 비난하는 중국 팬덤의 역설적인 현상들은
팬덤이 반드시 내셔널리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16. '소녀시대'와 '카라'의 일본 진출을 보도한 최근 미디어의 헤드라인 기사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재계, 소녀시대 성공전략을 배웁시다"(한국경제, 2011년 1월 5일자). "소녀시대 일본 열도를 녹이다"(Modeweek, 2010, 8월 27일자), "소녀시대 日첬다-열도 녹인 특별한 매력은?"(스포츠서울, 2010,
8월 26일), '우애 중시시하는 일본팬들, 카라 분열에 급실망"(중앙선데이, 2011년 1월 23일자), "카라
때문에 한류 무너진다"(세계일보, 2011년 1월 27일), "카라 일본 진출 대박 조짐, 한류 걸그룹 찜!"(투데이
코리아, 2010년 8월 17일)
17. 아이돌 스타는 아니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인기 힙합그룹인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가 일부 네티즌
들에 의해서 학력 위조 시비에 휘말렸다.
일부 네티즌들은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그의 학력과 사생활과 관련된
정보들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렸다.
사태가 커지자 본인이 한 방송사와 직접 스탠포드대학을 방문해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한 것을 확인했지만, 네티즌들은 그것도 역시 조작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는 미국 유명 사립대 출신의 성공한 힙합 뮤지션에 대한 한국의 일부 대중들의 내셔널리즘적인 반발의
정서를 암시한다.
18. 주요 연예기획사 아이돌 그룹 계약기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Lee, 2010:251)
기획사 | SM | JYP | YG | DSP | ||||||||
그룹 | 동방신기 | 수퍼쥬니어 | 소녀시대 | 샤이니 | 원더걸스 | 2PM | 2AM | 원타임 | 빅뱅 | 2NE1 | SS501 | 카라 |
데뷔연도 | 2004 | 2005 | 2007 | 2008 | 2007 | 2008 | 2008 | 1998 | 2006 | 2008 | 2005 | 2007 |
계약기간 | 13 | 5-13 | 5-13 | 6-13 | 7 | 7 | 7 | - | 6 | 6 | 5 | 7 |
19. 피알(PR)비는 연예인의 방송 프로모션을 위해 연예기획사가 방송사 PD들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뇌물
같은 것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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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택』, Pentagram: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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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Reflection of Korean Wave Culture','한류문화의 현황과 반성', Monthly Moonhwayoon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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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2009), 'Have you ever seen the Rain? And who'll stop the Rain?: the globali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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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 Yong Jin and Kim Duk Ho 원용진 김덕호(2008), Americanzation, 『아메리카나이제이션』, Blue
History:Seoul.
하와이에서 있었던 ICAS2011에 발표한 원고입니다.
이동연(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Cultural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