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앞선 사역자
예수님이 오시기에 앞서 여러 사역자들이 예비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세례 요한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며 그 길을 평탄케 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백성들을 회개시키고 주를 영접할 준비를 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탄생 역시 예수님의 탄생 앞에 준비되고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아버지 스가랴 제사장이 제비를 뽑고 당번이 되어 성전에 들어갔을 때 천사가 그 향단 우편에 서서 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너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스가랴는 나이가 많도록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처음에 잘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스가랴는 성전에서 나올 때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스가랴가 실제로 그 아내 엘리사벳을 통해 아기를 배게 되었고 6개월 후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스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았을 때 그 이름을 지으려고 하는데 스가랴 말을 못하니 서판에서 요한이라 글을 써니 그 입이 열려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이 말씀처럼 주님 앞서서 큰 사역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스가랴 제사장은 성령이 충만하여 그 아들 요한이 앞으로 주님 앞서서 훌륭한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 예언을 하게 되는데 그 말씀이 오늘 읽은 이 말씀입니다. 그의 예언대로 세례 요한의 사역을 통해 예수님의 구원을 어떻게 전개되어지는지 말씀을 통해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다윗의 집의 구원의 뿔을 예비하리라!
스가랴 제사장이 성령충만을 받아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사 다윗의 집을 다시 일으키시며 그 뿔을 높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누가복음 1:69]”
여기서 보면 ‘우리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성도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구원의 뿔을 높이리라는 것입니다. 뿔이라는 말은 ‘강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소가 싸움을 할 때 적을 물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슴의 뿔은 ‘영광스러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너무나 비참하게 살아왔습니다. 수많은 대제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포로생활을 해왔습니다.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 마저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후 바사의 제국이 일어나고 물론 포로귀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사에 이어 헬라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민족의 지배가 쉽지 않습니다.
헬라제국의 말기에 잠시 100년 동안 마카비 혁명을 통한 하스몬 왕가의 이스라엘 차체 통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로마제국이 일어나서 지중해 주변의 나라들을 다 복속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까지고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해방을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을 독립적 해방이라 여기기도 했습니다. 구원의 뿔을 높여서 적을 물리치고 속량해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일을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기를 소원했습니다. 즉 다윗의 왕가가 부활하여 강한 적을 물리치고 더 강한 나라를 건설하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누가복음 1:71]”
표현을 합니다.이것이 이스라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에 무장혁명으로 로마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열심당원이라고 했습니다. 시몬이라는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주님의 교훈을 받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으로 헌신하는 제자다 됩니다.
“74.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누가복음 1:74~75]” 스가랴 제사장이 노래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이 되어 주를 섬기되 성결과 의로 주를 섬기며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국에 전쟁에서 패하고 또 포로로 잡혀가고 고난을 겪는 것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해방이 될 때에는 진정으로 그들이 죄에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제대로 말씀대로 섬길 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이런 사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집을 일으키십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요셉이 다윗의 가문의 자손이며 예수님이 그 가문에 태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윗과 같이 무장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봉기시키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을 죄에서 회개시키고 또 그의 십자가 보혈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백성들이 말씀으로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고 부흥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게 하여 주의 백성들이 성결과 의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섬기게 되는 진실된 일이 있는 것입니다. 아멘 이것이 주의 일이며 사역입니다. 아멘
그래서 주의 사역을 위해 앞서서 그 길을 예비하는 자가 있었는데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 즉 야생 꿀을 음식으로 먹으면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아멘 그리하여 많은 백성들이 요단강가로 와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일에 준비된 것입니다. 아멘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누가복음 1:76]” 세례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앞에 태어났으며 공생애도 예수님보다 조금 앞에 시작하여 주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우리도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성탄절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성탄절을 앞두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땅에서 하신 사역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백성들이 죄에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승천 후 언젠가 재림하실 터인데 그 재림을 준비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됩니다. 아멘
둘째, 참 빛을 증거하는 자가 되거라!
76절을 한 번 더 읽어보면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누가복음 1:76]” 이 아이는 세례 요한을 의미합니다.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 받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가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라고 했습니다. 원래 이 말씀은 이사야 40:3절 말씀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이사야 40:3]” 이 이사야 40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하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하고 심지어 우상을 숭배하고 하니 이 민족이 적국에 패하고 또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 적국은 바벨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연단을 받은 후 포로에서 돌아올 것인데 그 광복의 기쁨의 소식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때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고대사회에 왕이 마차를 몰고 순행을 나가면 미리 군사들이 가서 안전하게 준비를 하고 길이 파인 곳에는 매웁니다. 마차의 바퀴가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높이 솟은 곳은 파서 평탄하게 합니다. 심지어 광야에서는 길이 잘 명확하지 않으니 길을 닦습니다. 더구나 사막 같은 곳에서는 미리 길을 잡아 놓습니다.
왕 되신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오실 때 그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돌아올 때 길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는 처음에 여호와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신약성경 마태복음 3:1~3절에 이렇게 인용을 합니다.
“1.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3:1~3]”
이 이사야의 말씀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가 세례 요한이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실제로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하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외쳤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경건한 자였습니다. 그 더운데 낙타 털옷을 입은 것은 마치 엘리야가 털이 가득한 모습과 같았습니다. 엘리야가 주의 앞서서 먼저 올 것이라는 말라기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메뚜기를 먹으며 음식을 절제하고 경건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천국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회개를 하고 자신을 준비시켜 세례를 받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다른 별명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백성을 죄에서 사하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누가복음 1:77]”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심으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 앞서서 준비시키는 자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탄생도 예수님이 탄생하였을 때 6개월 전에 세례 요한이 탄생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백성들은 이렇게 변화됩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누가복음 1:78]”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마치 돋는 해가 위에 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캄캄 밤에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어둠은 서서히 물러가고 광명한 빛이 임하고 온 세상에 햇빛으로 밝게 빛납니다. 그리고 따스함으로 감사며 추운 냉기는 사라집니다.
그와 같이 어둠과 그늘에 있는 백성들이 광명한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누가복음 1:79]” 주님이 오시면 백성들에게 큰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실제로 갈릴리 주변의 백성들은 얼마나 고통 가운데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민족의 침략을 수시로 받는 변방지역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고려나 조선시대 북방에 여진족이나 거란족이 얼마나 자주 침범하여 고통을 줍니까! 그리고 남방 해안지역에는 왜구가 출몰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곡식을 빼앗아 가고 심지어 도기 기술자들을 노예로 끌고 갑니다. 갈릴리 지역이 그런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대제국의 말발굽 아래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 피폐 할 때로 피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영적으로 암흑기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으로 밝히 천국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백성들을 고통에서 치료해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마치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듯이 광명한 빛을 백성들에게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를 만난 백성들은 어둠이 사라지고 믿음 안에서 큰 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은 참빛이십니다. 우리 진주기독교 크리스마스트리 축제를 참빛축제라고도 합니다. 참빛은 주님이십니다. 어둠에 성탄절 불빛을 비추듯이 우리 주님이 참빛을 세상에 비추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는지 주를 믿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참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멘
결론) 참 빛이신 주님을 비추자!
우리는 참 빛이 되시는 주님을 빛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 안에 그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은 생명입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받았습니다.
“7.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7~9]” 세례 요한은 이 참 빛을 증언하는 자입니다. 이 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빛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참빛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1:4]”
. 예수님께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심으로 그 생명의 빛이 있습니다.
이 빛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처럼. 아멘